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16)
마법을 품다 (116)
야영지로 돌아왔다. 모두가 경계를 철저히 한 채로 로딘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딘 마법사님, 어떻게 됐습니까?”
“일단 우리는 안심해도 되겠어요. 북서쪽 먼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아! ‘우리는’입니까?”
“예. 저쪽에 어떤 마을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위험할 수도 있겠죠.”
로딘의 말투는 담담했다.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로딘의 말을 들은 다니엘 상단주가 흠칫 놀랐다. ‘우리만 안전하면 그만이지.’처럼 들려서, 괜스레 등골이 서늘했다.
‘맞아. 마법사였지.’
다니엘은 마법사들의 일반적인 성격을 떠올렸다.
신경질적이고 이기적이며, 타인의 아픔에 관심이 없는 자들이 마법사였다. 친구인 베트너에게도 종종 그런 모습이 보이곤 했다.
‘마냥 좋은 사람일 수는 없어. 긴장해야지.’
다니엘은 로딘을 보며 좀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로딘은 여전히 후드를 푹 눌러쓴 상태였다. 로딘이 시키지 않아도 지토가 알아서 그런 형태를 유지했다.
모닥불만 타오르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눈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후드를 눌러쓴 모습이 지금의 로딘이었다. 그래서 은근히 음침한 인상을 풍겼다.
“로딘 마법사님, 밤에는 제 마차에서 쉬시지요. 마차를 내어 드리겠습니다.”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제 마차가 편해서요.”
“아, 예. 그러시다면.”
로딘은 모닥불을 멍하니 보며, 머릿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특별한 주제를 정해 놓고 하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때그때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걸 파고들었다.
오늘 본 충격 흡수 마법진, 마나석 교체 방식, 저녁 전에 만났던 트롤과 멀리서 난장판을 만들고 사라진 거대한 미노타우로스, 오늘 낮에 계속 작업 중이던 마법진까지.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로딘이 생각에 잠기자, 래리가 분위기를 살피더니 슬쩍 일어났다.
“형.”
“왜?”
“저 연공해도 돼요?”
래리의 음성은 조심스러웠다.
괴물의 괴성이 들린 후, 뭔가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말 한마디도 함부로 못 하는 분위기라 연공 얘기를 꺼내기가 눈치 보였다.
“응. 해. 매튜하고 비앙카한테는 미리 말해 두고.”
“저들은…….”
“카리스하고 제나한테는 내가 말해 놓을게.”
“고마워요, 형.”
카리스와 제나한테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카리스와 제나가 감각이 둔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마스터치고 둔하다는 의미였다. 일반인이나 어지간한 검사보다는 훨씬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카리스와 제나는 멀리 있는 기척을 느끼는 감각은 떨어지지만, 가까이 있는 마력과 오러의 흐름을 느끼는 건 놀라울 정도로 기민했다.
모우드 황무지의 지하 유적지에서도 로딘의 마력 패턴을 보고 공격을 할지 말지 결정할 정도였다.
그런 카리스와 제나가 마차 안에 래리가 있다는 걸 모를 리는 없었다. 마차 밖에서 미리 느낄 테니, 연공 중에는 출입을 삼갈 터였다.
* * *
밤이 됐다. 불침번을 서는 용병들과 잠을 자지 않는 전투 인형 둘을 제외하면 모두가 잠든 시간.
마차 안에서 작은 여자애가 꼼지락거렸다.
‘잠이 안 와.’
약 2년 전, 약탈자들의 위협 속에서 로딘에게 구함을 받았다. 그 이후, 주변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억지로 눈을 감아도 머릿속은 맑기만 했다.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로딘 오빠가 가까이 있는 이상 그 누구도 두렵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머릿속이 복잡했다.
“에고.”
생각 같아서는 로딘 오빠나 래리 오빠를 깨워서 놀자고 하고 싶은데, 그럴 순 없었다.
로딘 오빠는 하루 종일 마차에서 마법진을 그렸고, 래리 오빠는 시간이 날 때마다 혹사하듯 훈련하는 사람이었다. 수면을 방해하는 나쁜 동생이 되긴 싫었다.
부스럭!
조심스럽게 마차 문을 열고 나왔다. 마차 입구에 있던 제나가 히죽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 자?”
“이상하게 잘 수가 없어요.”
“졸리지 않은데 억지로 잘 필요는 없지. 밤 산책이라도 다녀올래?”
“그래도 돼요?”
제나의 제안에 비앙카의 눈이 동그래졌다.
깜빡하고 있었다. 자신과 놀아 줄 사람은 로딘 오빠와 래리 오빠만 있는 게 아니었다. 카리스 아저씨는 좀 무섭지만, 제나 언니는 오늘 마차에서 잘 놀아 줬다.
“안 될 건 뭐야? 여긴 카리스한테 맡기면 되는데.”
“가요. 산책하러 가요. 얼른. 얼른.”
“그래. 가자.”
제나가 카리스에게 손짓했다. 데리고 간다는 의미였다.
카리스는 힐끔 쳐다보더니,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가자.”
“이힛. 신난다.”
비앙카는 제나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야영지 주변을 돌아다녔다. 용병들 몇 명이 잠깐 쳐다봤지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오늘 제나의 실력을 봤기 때문이다.
“제나 언니는 얼마나 강한 거예요?”
“글쎄다. 여기서는 공자님하고 카리스를 제외하면 적수가 없지.”
적수가 없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상단을 호위하는 용병 전체가 덤벼도 제나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그건 알아요. 나도 언니가 휙 퍽 하는 거 봤다고요.”
“휙 퍽은 뭐야?”
“휙 하고 못생긴 마수한테 다가가서는 퍽 하고 기절시켰잖아요.”
“그게 휙 퍽이었구나. 호호호. 재미있는 표현이네. 카리스는 뭐야?”
“휙 삭이요.”
“창을 휘둘러서 삭 죽였다는 뜻이구나. 호호호.”
대화를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야영지에서 조금 멀어졌다. 멀리 야영지에 만든 불빛이 보이니,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어? 물 냄새다.”
“그래? 가까운 곳에 물이 있나 보네.”
제나는 전투 인형이라 냄새를 맡지 못했다. 비앙카의 말을 들은 후에야 물 냄새가 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 봐요.”
“그럴까?”
10여 분을 걸으니,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나무를 헤치고 조금 더 나아가니, 폭이 5미터 정도로 좁은 개울이 나타났다.
“오, 진짜 물이다.”
“낮에 보면 경치는 좋겠다.”
“응. 제나 언니는 취미 같은 거 없어요?”
“취미? 그런 거 없어. 굳이 찾자면 검술이랄까?”
전투 인형으로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 취미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마도 제국 시절 전대 마스터와 60년을 함께했는데도 들어 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뭐예요? 래리 오빠하고 같은 대답이잖아요.”
“래리도 이렇게 답했어? 참 재미없는 녀석이네. 그러면 넌 취미가 뭐야?”
“이히히, 저도 고민 좀 해 보려고요. 래리 오빠처럼 하루 종일 훈련만 하고 살긴 싫거든요. 보고 있으면 갑갑해요.”
“래리가 좀 외골수이긴 하지.”
둘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갔다. 차가운 물이 둘의 발을 훑고 내려갔다.
“하아, 저는 감정을 잃지 않을 거예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감정을 잃다니.”
“저는 로딘 오빠가 좋아요.”
이야기가 맥락 없이 튀는 느낌이었다. 이게 뭔가 싶었지만, 제나는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이성으로?”
“아니요! 가족으로 좋다는 뜻이에요. 가족!”
비앙카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소리가 한밤의 숲을 쩌렁쩌렁 울렸다. 야영지에서 멀어지지 않았으면, 잘 자고 있던 사람들을 깨울 뻔했다.
“그래. 네겐 은인이기도 하지?”
“예. 저한테는 고마운 오빠예요. 그런데 좀 무서워요.”
“무섭다고? 공자님이?”
“예. 오늘도 용병들을 좀 더 많이 도왔으면 다치는 사람이 안 나왔을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트롤도…….”
트롤의 배를 무심하게 가르던 로딘의 모습이 비앙카에겐 충격이었다. 너무 잔인해서,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졌다.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마법사는 다 로딘 오빠처럼 되는 걸까요? 전에 본 다른 마법사도 막 협박하고, 소리치고 그랬어요.”
“글쎄다. 내가 공자님을 모시기 전에 모셨던 분이 있어. 그분은 지금 공자님하고 비교하면 정말 잔인한 분이셨지.”
제나는 전대 마스터였던 엘라네리엔 황녀를 떠올렸다.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자신은 만들어진 존재였고, 명령하면 따르는 인형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눈을 뜨고, 주인이 바뀌고 깨달았다. 지금의 주인인 로딘은 정말 착한 사람이라는걸.
“로딘 오빠보다 더요?”
“아까 용병들을 다 구해 주지 않아서 무서웠다고? 내가 전에 모셨던 분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야. ‘처리해.’라고. 그럼 나와 카리스는 길을 막고 있던 모든 생명체를 말살했겠지. 마수뿐 아니라 사람까지.”
엘라네리엔 황녀는 고귀한 사람이었다. 태생이 황족이었고, 황가 내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막내였다.
그래서인지 과하다고 할 정도로 자기애가 강했다.
황제만 아니면 항상 자신이 제일이어야 직성이 풀렸다. 누군가가 자기 위에, 혹은 앞에 나서는 걸 견디질 못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아까 공자님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물론 다치는 용병은 없었겠지. 그럼, 과연 용병들은 좋아했을까?”
“당연하죠. 다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구욧!”
“그들은 용병이야. 용병은 이름값과 경력으로 몸값이 정해지지. 만약 공자님의 도움으로 1명도 안 다쳤다면, 도시로 갔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위험한 상황이 닥쳤지만, 한 마법사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라고.”
그랬다면 살아남긴 했어도, 용병에겐 남는 게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남에게 구출되었다, 대단한 마법사 일행을 봤다. 이 정도가 끝이었다.
“그게 왜요?”
“하지만 공자님이 적당한 선에서만 손을 댔어. 결국 남은 트롤은 그들이 직접 처리했지. 이제 그들은 도시로 가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야. ‘전멸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는데, 동료들과 힘을 합쳐 물리쳤다.’라고.”
“어? 뭐가 다른데요?”
“그들은 스스로 힘으로 이겨 냄으로써 영웅담을 떠들 자격을 얻었지. 그 영웅담으로 몸값도 오를 거야. 강한 마수와 싸워 이겼으니, 자신감도 생겼을 테고.”
제나의 설명에 비앙카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다치지 않는 게 최선이었을까? 아니면 이번처럼 적당한 선에서만 개입하는 게 나은 걸까?
비앙카는 아직 거기까지 생각할 정도로 경험이 많지 않았다. 나이를 좀 더 먹고, 많은 경험을 해야 오늘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마냥 잔인하다고 생각했던 로딘에게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정도면 됐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아니야. 나한테는 신기한 경험이었어. 나는 공자님이 너무 무르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무르다고요? 로딘 오빠가요?”
“응. 너무 물러. 공자님은 좀 더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을 때도 되도록 죽는 사람이 적은 방법을 택하려고 노력하시거든.”
제나가 로딘의 성향을 처음 파악했던 시기는 지하 유적지에서 탈출할 때였다.
당시 로딘은 6서클 마법사였고, 마스터 검사 2명이 함께하고 있었다. 유적지 주위에 많은 마법사가 있었지만, 로딘 일행을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엘라네리엔 황녀였다면 나오자마자 다 죽이고, 유유히 서쪽으로 걸어갔을 것이다. 피는 많이 보겠지만, 더 확실한 처리 방식이었다.
하지만 로딘은 갱도를 나가자마자 마법 몇 번 날리고는 리치몬드 후작령과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살생을 줄이기 위해 굳이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세드리아 마탑과 부딪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엘라네리엔 황녀였다면 당시에 집 앞에 있던 마법사 전부를 죽였을 것이다. 뒷감당은 나중 문제였다.
뒤끝이 길어서 두고두고 신경 쓰일 적을 살려 둘 바에야 기회가 왔을 때 다 죽이는 게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로딘은 확실한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나중에 힘들더라도 당장 피를 안 보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로딘 오빠는 우릴 떠나겠죠?”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느낌이 들어요. 로딘 오빠는 결국 떠날 거라는 느낌이요.”
“흐음.”
제나는 느낌 같은 건 잘 모른다.
말로는 ‘느낌’이 어떠니, ‘기분’이 어떠니 얘기하지만, 실상은 그런 정신적인 감정은 느낄 수 없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로딘이 언제까지고 래리와 비앙카 곁에 머물지 않을 거라는 건 확실했다. 이건 느낌이 아니라, 근거가 있었다.
‘황도로 가야 하니까.’
마도 제국의 유산을 이은 이상, 로딘은 무조건 마도 제국 당시의 황도로 가야 했다. 그곳에서 마도 제국의 말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아봐야 하고, 마도 제국의 유산도 물려받을 운명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로딘과도 가볍게 대화를 나눠 봤다. 마수림을 넘어가겠다고 명확하게 말해 주지 않았지만, 로딘도 관심이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으으, 발 시려. 오래 담그고 있었더니 발이 얼 것 같아요.”
“너무 늦었다. 가자.”
“예.”
숲을 통과해 야영지로 돌아왔다. 여전히 적막하고, 고요한 분위기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