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17)
마법을 품다 (117)
다행히 밤사이에 아무런 사건도 벌어지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서 잠든 비앙카가 늦잠을 잤지만, 사건이라 하긴 어려웠다.
아침 식사도 크라우드 상단에서 준비했다. 다니엘 상단주가 신경 쓴 식사였다. 고기가 많고, 장식도 화려했다.
하지만 매튜의 음식보다 못했다. 늦게 일어난 비앙카는 입맛이 없는지 반도 먹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이들은 먹긴 다 먹었다.
로딘, 래리, 매튜는 애초에 음식을 남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먹지 않고 보관해 뒀다가 버리는 카리스와 제나는 말할 것도 없었다.
“실례합니다.”
“예, 베트너 마법사님. 무슨 일이죠?”
다니엘 상단주의 친구라는 4서클 마법사 베트너가 찾아왔다. 몹시 조심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로딘은 베트너가 왜 찾아왔는지 짐작했다.
베트너의 주머니 속에서 마력 덩어리가 느껴졌다. 마력석이었다. 아마 그에 대한 궁금증 해소가 용건일 것이다.
“잠시만 시간을 내 주실 수 있습니까?”
“예. 출발할 때까지는 따로 할 일은 없네요. 무슨 일인지?”
“오늘 아침에 다니엘에 이걸 주더군요. 어제 트롤 배 속에서 꺼냈다면서요.”
“예. 저도 몇 개 가지고 있죠.”
베트너가 주머니에서 꺼낸 건 예상대로 로딘이 ‘마력석’이라고 이름을 붙인 검은색 돌멩이였다. 베트너는 호두알 크기의 마력석 5개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로딘도 주머니에서 마력석을 꺼내 보여 줬다. 모두 3개였다.
어제 로딘이 직접 꺼낸 마력석 1개와 카리스가 목을 베어 죽인 트롤의 배 속에서 꺼낸 마력석 2개였다.
“이 물건은 대체 뭡니까?”
“저도 모릅니다. 짐작만 할 뿐이죠.”
“짐작도 괜찮습니다. 마탑에 보고하려고 하는데, 아는 게 없어서요.”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상 현상에 관해서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 보고하지 않는다고 불이익을 받진 않지만, 보통은 이 의무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베트너 님도 이 돌멩이에서 느껴지는 게 있으시죠?”
“예. 마력이 들어차 있군요.”
“베트너 님도 세상은 마나로 가득 차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보셨죠?”
“예. 마법을 배울 때 듣는 내용이죠.”
마나를 못 느끼는 다른 마법사들도 마나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마나가 없으면 애초에 연공실의 존재도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돌멩이, 저는 마력석이라고 부릅니다. 아! 어제 붙인 이름이니, 개의치 마십시오. 아무튼 마력석은 세상에 가득한 마나를 흡수해서 마력으로 저장합니다.”
“어……, 그러니까 주변 마나를 흡수해서 마력이 가득 담긴 돌멩이가 된다면…… 이거…… 마정석보다 좋은 거 아닙니까?”
“예?”
뜬금없는 소리에 로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력만 가득 담긴 돌멩이와 마정석을 비교하는 게 로딘으로서는 이해가 안 되었다.
비슷하다고 해도 어이가 없을 지경인데, 마력석이 더 좋다고 말하다니.
베트너가 마력석이나 마정석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정석이라는 게 마나석을 마력이 담긴 돌멩이로 만드는 것 아닙니까? 그때 마나석이 가진 마나만큼만 마력으로 변환하죠. 그런데 이건 주변 마나를 끌어모아서 마력으로 변환해서 저장하는 거니까 마정석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요.”
“베트너 님. 마정석이 뭔지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틀렸다는 말입니까?”
“예. 틀렸습니다. 마정석의 핵심은 ‘정제’에 있습니다.”
마정석을 잘 모르는 건 베트너만이 아니었다. 이 시대의 마법사들 전부가 마나를 마력으로 바꾼 돌멩이를 마정석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정제요?”
“자연에 존재하는 마나든, 마나석 안에 있는 마나든. 순수하게 마나만 담겨 있는 게 아니에요. 마나에 온갖 불순물이 다 섞여 있죠. 그래서 고대에는 마정석이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마나석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그걸 다루기 편한 마력으로 바꿔 응축한 거죠.”
사실 로딘은 작정하고 연구하면, 몇 달 안에 마정석을 만들어 낼 자신이 있었다.
아직 연구하지 않은 이유는 시간이 부족해서였다. 또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프루발의 환영 수업에 매일 투자하는 시간만 5시간 이상이었다.
마도 제국의 서적도 매일 3~4시간은 읽었다.
마법 수련도 해야 했다.
지금은 마차에 마법진도 새기고 있고, 새벽에 래리와 함께하는 육체 단련도 빼먹을 수 없었다.
“불순물이 있는 걸 그대로 쓰면 어떻게 되죠?”
“마나석에는 불순물이 좀 섞여도 돼요. 원래 그런 것들이거든요. 베트너 님이 속한 트라시아 마탑의 충격 흡수 마차를 생각해 보세요. 아티팩트를 제작하면 효율이 좀 떨어지고, 수명이 짧아지는 정도죠.”
트라시아 마탑의 충격 흡수 마차를 비하하는 말이었다. 그래도 베트너는 부정하지 못했다.
마탑에서 아티팩트 제작하면서 마법사들 사이에서 계속 나오는 말이었다.
마나석의 힘을 온전히 못 쓰는 것 같다.
의미 없이 힘이 낭비되는 것 같다.
이런 대화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심지어 베트너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의 아티팩트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잖아요.”
“고질적이지만, 마나석으로도 아티팩트는 어쨌든 만들고 있잖아요. 마나가 원래 자연계에서 존재하는 녀석이라, 위험도가 낮아요.”
마나석과 마정석의 차이는 문헌 같은 곳에 잘 기록되어 있었다.
마나석을 그대로 쓰면 아티팩트 제작 성공률이 떨어지고, 위력이 낮아진다. 또 에너지 효율이 높지 못해서, 아티팩트의 수명도 짧았다.
“마력은 인위적이라 위험하다는 겁니까?”
“그렇죠. 마력에 불순물이 섞이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아! 그거 아시죠? 마법사가 무리해서 서클을 올릴 때 생길 수 있는 문제.”
“마력 폭주 말입니까?”
“예. 그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마력이 통제되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죠.”
베트너는 살면서 ‘정제’에 관해 들은 게 오늘이 처음이었다. 로딘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단순히 마력만 모아 놓은 돌멩이를 마정석으로 알았을 터였다.
“어제의 트롤들은?”
“걔들은 폭주한 건 아니었어요. 몸속에 불편한 에너지 덩어리가 계속 머물러 있으니까 예민하고 난폭해진 거죠.”
“마력석은 정제만 하면 쓸 수 있는 거군요.”
“그렇죠. 정제. 그게 문제죠.”
마탑은 마나를 마력으로 변환하는 방법을 진즉에 알아냈다. 4대 마탑을 포함해서 대략 수십 곳은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불순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몰랐다. 연구를 거듭하고 있는데도 통 진척이 없었다.
“정제…… 어렵겠죠?”
“연공을 예로 들면 됩니다. 마법사는 몸속에 정제된 마력을 쌓죠. 사람 몸으로 마나를 받아들이면서 불순물을 걸러 내는 겁니다.”
“사람이 하는 일을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거군요.”
“그래서 어렵죠.”
베트너와 대화하는 사이에 상단의 출발 준비가 끝났다.
상단주 다니엘은 로딘과 베트너만 쳐다보며,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소중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별말씀을.”
대화가 끝났다. 베트너는 상단주의 마차로 돌아갔고, 로딘 역시 제나가 모는 마차에 들어갔다.
* * *
이틀.
평온한 여정이었다. 몬스터의 습격이 한 번 더 있었지만, 소형 마수였다. 숫자도 많지 않아서, 용병만으로 가볍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사이에 로딘은 제나가 모는 마차를 마력 연공실로 바꾸었다. 카리스가 모는 마차와 마찬가지로, 마나 집적 마법진도 결합해 놓았다.
“흐음.”
할 일 하나가 끝나서일까. 괜한 상념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마정석에 대한 호기심이 특히나 강했다.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았어.”
로딘은 특수군 양성소에서 포션을 만들 때, 큰 실수를 저질렀다. 한 번의 실패 없이 매달 포션을 제공한 게 문제였다.
포션을 포함한 모든 아티팩트 제작에 성공률이 있다는 걸 당시에는 몰랐다. 세상에 나와 마법 물품의 상인들과 대화하면서 알게 됐다.
다행히 아티팩트의 성공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마법 물품을 파는 상인 중에도 큰 상점에서 많은 물품을 받아 본 이들만 아는 정도였다.
그들에게 듣기를, 포션의 성공률은 70% 정도라고 한다. 낮은 것 같지만, 사실 포션 정도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했다.
지속형 아티팩트의 제작 성공률은 약 30%. 발동형 아티팩트의 제작 성공률은 20%에 불과했다. 이조차 1서클의 간단한 마법일 때의 일이었다.
고위 마법은 성공률이 더 떨어진다.
트라시아 마탑의 충격 흡수 마차는 10번 시도하면 완성품은 하나쯤 만들어진다. 최근 제작하기 시작한 냉동 마차는 20번 시도에서 3번 정도 성공하는 수준이었다.
성공률에서 차이가 벌어지는 이유가 마정석의 부재였다.
“별 필요 없는 줄 알았는데.”
로딘에게 아티팩트 제작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법진이나 룬어 조합을 잘못해서 실패한 적은 있지만, 마나석 때문에 실패한 적은 없었다.
실수가 없으면 항상 성공했기에 마정석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틀 전 베트너와 얘기하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마정석을 만들어서 제대로 된 아티팩트를 한 번은 만들고 싶었다.
‘진짜 마정석으로 만든 아티팩트와 마나석으로 만든 아티팩트. 성능의 차이가 얼마나 날까?’
베트너에게는 마정석을 쓰느냐 마나석을 쓰느냐의 차이를 성공률, 효율, 수명으로 설명했다.
로딘은 이 중에서 성공률 부분이 의미가 없었기에 그간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이다.
“수명은 별 의미가 없어.”
수백 년을 이어서 대대손손 사용할 아티팩트를 만들 것도 아니고. 어차피 몇 년 쓸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수명이 다 되면 다시 만들면 되니까. 수명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효율이 높아지면 위력도 높아지는데. 이게 얼마나 차이가 말까? 그간 내가 마정석을 너무 가벼이 본 게 아닐까?’
어쩌면 마정석의 효과는 예상보다 훨씬 대단할지도 몰랐다. 위력이 20% 정도만 높아져도 연구할 가치가 있었다.
‘아니야. 10%만 해도 커.’
로딘은 바닥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하는 건 아니었다.
프루발 환영에서는 가볍게 언급만 하고 지나가지만, 마도 제국의 책에는 마정석의 제작 원리에 관해 꽤 많은 자료가 있었다.
‘처음부터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해 볼 만해.’
마정석의 핵심은 마나를 마력으로 바꾸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
이 중에서 마나를 마력으로 바꾸는 건 의외로 간단했다. 마탑에서도 오래전에 성공한 부분이기도 했고, 로딘도 머릿속으로 몇 가지 방법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연구에 좀 더 집중해야겠다.”
막 연구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상황이 모두 뜻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멈춰.”
상단의 옆을 지나갈 즈음, 로딘이 급하게 외쳤다. 제나가 마차의 고삐를 당겼고, 카리스 역시 마차를 세웠다.
“왜 그러십니까?”
“귀찮은 일이 벌어지겠네. 포위됐어. 하아, 그냥 보내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인데.”
“카리스.”
“알았다.”
카리스가 마차를 왼쪽으로 옮겼다. 상단의 마차와 제나가 탄 마차의 사이에 둬서 매튜와 래리, 비앙카를 보호하기 위한 진형을 만들었다.
로딘의 말에 의문은 품지 않았다.
로딘은 전대 마스터보다 실력은 떨어지지만, 감각을 포함한 몇 가지 부분은 오히려 월등한 수준이었다. 그런 로딘이 포위됐다고 말했으니, 포위됐을 거다.
“로딘 마법사님 무슨 일입니까?”
“마수 같아요. 숫자는 대략 200. 소형 마수 같은데, 이미 포위됐어요.”
“마수다! 방어 대형을 갖춰라!”
“마수다!”
대형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사람이 탄 마차는 안으로, 수레는 바깥에 원형을 만들었다. 용병들은 수레와 수레 사이에 섰고, 마법사 베트너는 마차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로딘 오빠! 또 마수야?”
“응. 숫자는 좀 많은데. 별 위험은 없을 거야. 걱정할 필요 없어.”
“마수가 원래 이렇게 많아?”
“그러게. 나도 궁금하네.”
비앙카에게 대답해 주던 로딘의 시선이 다니엘 상단주에게 돌아갔다. 아는 게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자주 만나는 건 저희도 처음입니다. 보통은 10일에 1번 정도 마수를 만납니다.”
“혹시 전에 들은 괴물 소리하고 관계가 있을까요?”
“예. 그럴 겁니다.”
마지막 대답을 해 준 사람은 용병들의 인솔자인 데릭이었다. 은패 용병으로, 트롤과 혼자 싸워서 꽤 긴 시간을 버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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