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18)
마법을 품다 (118)
상단을 공격하기 위해 기다린 마수는 고블린이었다. 항상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약한 녀석인데, 꽤 영악해서 함정을 파거나 도구를 사용하는 일도 있었다.
놈들은 포위망을 짰지만, 상단은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곳에 마차와 수레를 세우고, 방어 진형을 갖췄다.
고블린으로선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조금 더 들어오는 걸 기다렸다가 공격할지, 아니면 그냥 뛰쳐나가야 할지 쉽게 결정을 못 하고 시간만 보냈다.
“괴물의 영향이라면 서식지가 바뀐 겁니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마수들이 원래 인간을 자주 공격하지만, 자기 서식지는 인간이 살거나 지나가는 곳과 거리가 멉니다. 사냥이 필요할 때만 인간을 습격하는 편이죠. 그런데.”
“이젠 인간이 다니는 길이 마수들의 서식지가 됐다는 말이군요.”
“예. 배가 고플 때 사냥하는 것과 아예 서식지가 된 건 다르니까요.”
데릭의 의견은 그럴듯했다. 지토와 시야를 공유해서 봤던 그 괴물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놈은 정말 거대했고,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느껴지는 근육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놈이라면 단순히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마수들의 영역 전체를 엉망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마수를 만나겠군요.”
“그 괴물이 이동한 방향으로 간다면 그럴 겁니다. 다행히 우리는 국경 도시 아시르를 지나면 남쪽으로 꺾을 예정입니다. 로딘 마법사님은?”
“저희는 계속 서쪽으로 갑니다. 그 괴물의 이동 경로하고 겹치진 않지만, 영향은 받겠네요.”
키야야!
고블린들이 전방에서 반원 형태를 그리며 공격해 왔다. 더 기다려 봐야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크리야!
―크리야!
뜻을 알 수 없는 괴성에 비앙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곧바로 룬어 영창에 들어갔다.
“오호. 파이어 월.”
로딘은 4서클 마법 파이어 월로 불로 이루어진 벽 3개를 세웠다. 한쪽을 완전히 틀어막는 위치였다.
어마어마한 열기에 용병들이 뒤를 힐끔 돌아봤다.
“이쪽은 제가 막을게요.”
꾸벅!
용병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다른 쪽 지원에 나섰다. 그사이에 비앙카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스트렝스!”
비앙카는 공격 마법이 아니라 지원 형태의 마법을 사용했다. 대상의 근력을 증가시키는 마법인데, 용병 중 1명에게 마법이 적용되었다.
갑자기 늘어난 힘에 용병이 순간 비틀거렸다. 중심을 잃었던 것.
하지만 금세 다시 균형을 잡더니 고블린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동패 용병인데도 마치 은패 용병이라도 된 것처럼 고블린을 압도했다.
“지원 형태의 마법을 쓸 거면 상대한테 미리 말해 줬어야지.”
“히잉. 다음에는 그럴게요.”
비앙카가 민망한 듯 혀를 내밀었다. 하지만 곧 표정을 굳히더니, 고블린들을 노려봤다.
“다른 마법도 계속 써 봐.”
“알았어요.”
“형, 저도 나서도 돼요?”
“그래. 너도 이번 기회에 전투를 경험해 보는 게 좋겠지.”
로딘이 있고, 카리스와 제나가 있었다. 래리와 비앙카가 다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숫자를 좀 줄이긴 해야겠네.”
“제가 나설까요?”
“아니. 나도 마법 좀 써 봐야겠어.”
로딘이 6서클 마법을 위해 룬어를 영창했다. 긴 소매로 보이진 않지만, 양손의 손가락도 열심히 수인을 맺고 있었다.
“플레임 스트라이크.”
피슈우웅! 콰아아앙!
고블린 무리가 모여 있던 곳에 거대한 불의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에 휘말린 고블린만 30마리가 넘었고, 사방으로 튄 불꽃에 닿아 화상을 입은 고블린 숫자도 20마리가 넘었다.
“스트렝스!”
비앙카가 다시 마법을 사용했다. 이번에도 대상의 힘을 올려 주는 1서클 마법 스트렝스였다.
“공격 마법을 별로 안 좋아해?”
“아직…… 못 하겠어요.”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나중에는 너도 아무렇지 않게 마법을 쓸 수 있을 거다.”
“래리 오빠는 잘 싸우는데.”
래리는 이미 고블린 3마리를 상대로 치열한 접전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간 해 온 훈련이 헛되지 않았다. 래리는 계속 고블린을 밀어붙이다가, 이내 1마리의 목을 절반쯤 베어 냈다.
“공자님.”
“응, 카리스. 왜?”
“래리가 제게 검술을 봐 달라고 했습니다.”
어젯밤 래리가 카리스를 찾아갔다. 로딘도 그 장면은 봤다.
하지만 둘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몰랐다. 거리가 멀었고, 소리가 너무 작았다.
“검술을? 지금 익힌 검술이 마음에 안 드는 건가?”
“아닙니다. 반대로 자기가 익힌 검술을 가다듬고 싶다는 의미 같았습니다.”
래리는 리치몬드 후작령에서 자신을 괴롭힌 도리안 일행과 싸우면서 검술 자체에는 확신하게 됐다. 로딘이 가르쳐 준 검술은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검술이었다.
그런데 과연 자신이 뛰어난 검술을 소화할 수 있는가. 자신이 제대로 익히고 있는 건가.
이런 부분에서는 불안함을 떨치지 못했다.
“하긴, 래리한테는 너와 제나만큼 좋은 스승도 없겠네.”
불안하다면 확인해 보면 된다. 때마침 옆에는 엄청난 실력의 강자가 2명이나 있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래리는 직접 카리스를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실전처럼 굴려 달라고.
그게 어제 있었던 일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공자님이 하지 말라면 하지 않겠습니다.”
“봐주고 싶으면 봐줘.”
“저는 남을 가르치는 방법을 모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대련뿐인데…… 래리가 다칠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아. 죽이지만 않으면 돼. 내가 살려 놓을 테니까.”
로딘의 승낙이 떨어졌다.
카리스는 래리의 싸움을 보며 어느 정도 수준으로 대련해 줄지를 가늠했다.
“하압!”
서걱!
래리의 검이 또다시 고블린 하나를 베었다. 이번에는 옆구리였다.
꽤 길게 베인 상처에 고블린이 후다닥 도망쳤다. 아쉽게도 래리는 따라가서 마무리하지 못했다.
래리가 배운 검술의 한계였다.
프루발 환영이 가르쳐 준 검술은 마법사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수많은 검형 중에도 공격은 극히 적었다.
그래서 강한 적을 상대로는 상상 이상의 위력을 보이지만, 약한 적을 상대로는 시간을 질질 끄는 경향이 있었다. 확실한 기회가 아니면 아예 공격을 안 해서였다.
“스트렝스!”
비앙카는 스트렝스만 쓰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계속 같은 마법만 반복해서 사용했고, 그때마다 용병 중 1명이 2명분의 몫을 해냈다.
‘이것도 나쁘지 않지.’
마법사가 세상 모든 마법을 다 잘할 필요는 없다. 지원, 보조 계열이 적성에 맞으면, 그쪽에 집중하는 것도 괜찮았다.
‘2서클로 빨리 성장해야겠네.’
2서클 마법에는 속도를 올리는 헤이스트와 피부를 단단하게 만드는 스톤 스킨이 있었다. 비앙카의 성향과 잘 맞는 마법이었다.
“흐음, 조금 더 도와야 하나? 체인 라이트닝.”
체인 라이트닝은 4서클 마법이라 주문도 필요 없었다. 시동어만으로 허공에 생긴 번개가 아래로 내리꽂혔다.
직격당한 고블린은 그대로 타 죽었다. 옆으로 번진 뇌전에 당한 고블린은 사지를 부르르 떨더니 쓰러졌다.
거기서 다시 옆으로, 또 옆으로 5~6번 퍼져 나간 뇌전 다발이 10여 마리의 고블린을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다.
“이 정도면 되겠네.”
로딘이 숫자를 꽤 줄였다. 용병들도 잘 싸우고 있었다. 베트너도 마차 위에서 열심히 마법을 날리며 고블린을 죽여 나갔다.
20여 분이 더 흐르고, 전투가 끝났다.
이번에도 용병 중에는 사망자가 없었다. 로딘이 그렇게 되도록 고블린의 숫자를 조절했다.
대신 부상자는 참 많이 나왔다. 거의 절반이 넘는 용병들이 부상자를 위한 마차로 옮겨지고 있었다.
“으차!”
로딘이 나설 차례였다.
로딘은 부상자들의 상태에 맞게 적절한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가벼운 부상자는 2서클 마법 힐링 정도면 충분했다.
조금 더 심한 부상자에게는 3서클 마법 리스토어와 바이탈 사인을 사용했다.
팔이 반쯤 뜯겨 나간 부상자에게는 6서클 마법 리커버리를 사용해서 사지를 제대로 붙여 놓았다.
“감사합니다. 로딘 마법사님.”
“감사합니다.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꼭 기억하겠습니다. 꼭이요.”
“괜찮아요. 할 수 있어서 하는 거니까.”
치료를 마치고 마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차 지붕으로 올라가 바닥에 앉았다.
로딘은 아직 고민이 끝나지 않았다. 마정석을 제대로 연구할지 말지, 오늘 안으로 결정해야 했다.
* * *
그날 밤, 로딘은 마정석을 제대로 파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 챙길 것과 미룰 것을 결정해야 했다.
한 분야를 연구하면, 다른 일정에 영향이 간다. 단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아쉽게도 시간적인 제약은 로딘도 피해 갈 수 없었다.
프루발의 환영 수업은 절대 빼먹을 수 없었다. 로딘은 최근 마법 지식에 있어서 크게 진보했는데, 그 밑바탕에 프루발의 환영 수업이 있었다.
마법 수련도 절대 미루면 안 되었다. 7서클에 오르기 위해서 6서클 마법의 수련은 필수였다.
‘아침 운동도 빼먹을 수 없지.’
연구든 마법 수련이든 체력이 받쳐 주지 않으면 힘들었다. 새벽에 1시간씩 하는 운동 덕분에 나머지 시간의 연구와 수련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마차 개조는 일단 미루는 수밖에 없겠군.’
마차 외부에 새기기로 한 방어, 강화 마법을 포기하기로 했다. 설사 누군가가 마차를 공격하더라도 마법으로 마차를 보호할 수 있었다.
로딘은 본격적으로 마정석 연구를 시작했다.
마정석은 고대, 그중에서도 마도 제국에선 기본 중에서도 기본에 속하는 기술이었다. 그래서 로딘도 주로 마도 제국의 서적을 참고했다.
“이건?”
“가루라는 뜻입니다.”
“가루를 낸다는 건데. 액체를 가루로 만든다는 게 이해가 잘 안 가네.”
책을 보며 제나에게 모르는 단어를 물었다. 그러면서 발음까지 함께 공부했다.
언어적인 문제 때문에 카리스와 제나가 있는 마부석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둘은 마법을 몰랐지만, 마도 제국의 글자와 언어는 잘 알고 있었다.
“저도 마정석 제작 과정을 본 적은 없어서. 죄송합니다. 공자님.”
“아니.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
제나가 자책했지만, 가볍게 만류했다. 전투 인형에게 과한 걸 바랄 순 없었다.
“뱅스트까지 1시간!”
“곧 뱅스트다!”
“곧 뱅스트에 도착합니다.”
그때 상단주 다니엘과 용병들의 음성이 크게 울렸다. 용병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뱅스트? 도시 이름입니까?”
“도시는 아니지만, 마을치고는 좀 큰 곳입니다. 400가구 이상이 사는 곳이거든요.”
“역시.”
도시라면 로딘이 모를 리가 없었다. 지도를 보며 나와 있는 모든 도시와 지형을 외운 지 오래였다.
“곧 도착할 겁니다.”
“전부 표정이 좋네요.”
“오랜만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까요.”
다니엘 상단주마저 밝은 얼굴이었다.
그간 트롤의 습격과 괴물의 괴성으로 인한 공포, 잦은 마수의 공격에 지친 상태였다. 단 하루지만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으로 간다는 생각에 모두가 즐거워했다.
로딘도 오랜만의 마을이 반가웠다. 그래서 즐겁게 이동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로딘의 표정이 굳었다.
“피 냄새.”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니엘 상단주의 의문을 대충 얼버무렸지만, 로딘의 표정은 조금도 펴지지 않았다.
아직 10분 이상 더 가야 하는 나오는 마을에서 여기까지 피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단체로 가축을 도축한 게 아닌 이상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불길해.’
로딘의 불길함은 현실이 됐다. 언덕을 넘어 마을이 보일 때부터 용병들도 표정이 이상해졌다.
“어, 어…… 뭐지?”
“그러게. 뭔가 이상한데.”
당연히 있어야 할 목책이 완전히 부서진 상태였다. 부서진 목책 너머로 보이는 집들도 절반쯤은 정상이 아니었다.
“이게 대체 무슨.”
가까이 다가가니, 마을의 처참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온통 부서진 것들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잔해를 치우고 있는데, 언제 끝날지 계산이 안 설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거기다 흙바닥에서 풍기는 악취는 피 냄새였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적어도 백 단위 이상이 피를 흘려야 이 정도로 짙은 피 냄새를 풍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가득한 상실감과 슬픔이 너무 컸다. 섣부르게 말을 걸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도대체 이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이 마을이 어쩌다가…….”
모두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마차는 느릿하게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