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19)
마법을 품다 (119)
마을에 여관이 세 곳 있었는데, 세 곳 모두 무너져 있었다.
크라우드 상단 일행과 로딘 일행은 마을 밖에서 쉬기로 했다. 피 냄새가 진동했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었다.
상행은 무작정 속도를 올리거나 내리지 않는다. 마을이나 도시에 도착하면 해가 질 무렵이 되도록 속도를 맞춘다.
크라우드 상단도 속도를 조절했다. 그 때문에 뱅스트 마을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흩어져.”
“정보만 모으고 바로 다시 집합이다.”
“예.”
다니엘 상단주와 용병들이 마을로 흩어져서 정보를 모아 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오래지 않아서 알 수 있었다.
“괴성을 질렀던 그 괴물 짓인 것 같습니다.”
“허어, 그 괴물이 마을 하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니.”
용병들의 리더 데릭의 보고에 다니엘 상단주가 탄식을 흘렸다.
그 괴물이 사고를 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니었다. 모두가 외면했지만, 모두가 속으로는 ‘누군가가 죽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괴물이 하필이면 상단의 이동 경로에 있는 마을을 덮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또, 엄청난 피해 상황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될 줄도 몰랐다.
‘무리해서라도 놈을 잡았어야 했을까?’
로딘은 지토의 눈으로 괴물을 봤을 때를 떠올렸다.
강한 놈이었다. 마스터 검사 둘과 6서클 마법사인 자신이 나서더라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후우. 답답하네.’
지토가 워낙 빨라서 그렇지, 괴물과의 거리는 꽤 멀었다. 직접 왕복하는 시간, 전투 시간까지 합치면 대여섯 시간은 허비했어야 했다.
시간을 따져 봐도, 승산으로 봐도 나서지 않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자신이 잘못되면 자신만이 아니라 래리와 비앙카도 다시 외톨이가 될 터였다.
“그 괴물은 어떻게 한답니까?”
“다행히 왕국에서 나선다고 합니다.”
“대체 어쩌다가 그런 괴물이 등장한 겁니까? 마치 천 년 전의 마왕이 재림한 것만 같습니다.”
마왕까진 아니었다. 마왕은 대륙 절반을 피로 물들인 괴물이면서 악(惡) 그 자체였다. 마왕하고 비교하기엔 덩치 큰 미노타우로스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왕국에서 나선다면? 정규 기사단이 출격하는 겁니까?”
“왕궁 근위 기사단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는 영지의 기사들이 시간을 끌고요.”
중앙 대륙은 성격상 어지간한 일에는 왕궁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 영지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게 안 되면 친분이 있는 다른 영지에 도움을 청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거대 미노타우로스 사태는 달랐다.
이 괴물은 어느 한 영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면서 마구 부수고 죽이면서 손에 잡히는 것들을 먹고 있었다.
“피해가 크답니까?”
“예. 뱅스트처럼 무너진 마을이 10곳도 넘는다고 합니다.”
“피해가 어마어마하겠군요.”
“다행히 이놈은 숨어 있는 사람까지 찾아서 죽이진 않는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손을 대는 거죠.”
애초에 이 괴물 녀석은 인간을 죽일 목적으로 떠돌아다니는 게 아니었다. 아무 이유 없이, 목적 없이 그냥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눈에 보이는 걸 먹었다. 거슬리는 게 있으면 부수고 죽였다.
“중요한 건 놈이 어디에 있느냐는 겁니다. 혹시 아는 게 있습니까?”
“일단은 서쪽으로 간 것 같답니다.”
“설마 아시르는 아니겠지요?”
아시르는 크라우드 상단의 경유지이기도 하지만, 로딘 역시 거쳐 가야 하는 곳이었다.
도시 아시르는 테비아 왕국과의 국경 근처에 세워진 도시였다.
과거 테비아 왕국과 사이가 안 좋을 때는 군사 도시였지만, 사이가 좋아진 지금은 무역이 발달한 상업 도시로 변모한 상태였다.
“놈은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당장은 서쪽으로 갔지만 어느 도시에 닿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거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네요.”
“갑자기 우리 쪽으로 오면 곤란해지지 않습니까?”
용병대의 리더 데릭이 질문을 던지며 로딘을 쳐다봤다. 상단주 다니엘도 로딘을 보고 있었다.
놈이 접근하면 알아차릴 수 있느냐는 질문이 담은 눈빛이었다.
“여러분들은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네요.”
“예?”
“그놈은 신장이 20미터가 넘어요. 몸무게도 어마어마하죠. 놈이 걸으면,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진동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놈은 사람 키의 10배가 넘었다. 길이가 10배면 넓이는 100배가 되고, 부피는 1,000배로 늘어난다.
재질이 같다고 했을 때, 부피가 1,000배면 무게도 1,000배였다.
2미터 인간의 몸무게를 100kg이라고 가정하면, 그놈의 몸무게는 무려 100,000kg이다. 놈의 움직임을 못 느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었다.
“아! 그렇군요. 그 생각을 못 했습니다.”
“마을은…….”
“마을은 움직일 수 없으니까요. 우린 움직일 수 있고요.”
“그렇군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제가 새 한 마리 띄워 놓겠습니다.”
로딘은 지토가 아니라 파밀리어 마법을 쓸 생각이었다. 생명체와 감각을 공유하는 마법인데 5서클이었다.
“감사합니다. 로딘 마법사님.”
“그런데 이번 일에 마탑은 나서지 않는 겁니까?”
“트라시아 마탑은 무립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로딘은 트라시아 마탑을 생각하고 꺼낸 얘기가 아니었다.
트라시아 마탑은 중앙 대륙의 동쪽에 있는 마탑. 중앙 대륙에서도 서쪽인 레녹스 왕국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세드리아 마탑이 있지 않습니까? 아시르하고 하루거리에 세드리아 마탑이 있을 텐데요.”
“글쎄요. 세드리아 마탑은 원래 피해가 클 것 같은 일에는 잘 나서지 않는 편이라서.”
“흐음, 알겠습니다.”
마탑이 위험한 일에 꼭 나서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짧은 회의가 끝나고, 로딘은 다니엘 상단주의 마차에서 나왔다. 이미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로딘을 따라서 마법사 베트너도 나왔다. 물어볼 게 있는 얼굴이었다.
“로딘 마법사님.”
“예. 말씀하세요.”
“이것 말입니다. 그 괴물하고 관계가 있겠죠?”
베트너가 꺼낸 물건은 검은색 돌멩이 마력석이었다. 어찌나 만지작거렸는지, 마력석의 겉면에 광택이 돌았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저는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거…… 인위적으로 만든 것 같은데. 최근에 만들어진 걸까요? 아니면 과거에 만들어진 걸까요?”
최근이라는 말은 누군가가 일부러 퍼트렸느냐는 뜻이었다. 누군지 밝혀지면 죗값을 치러야 하리라.
반대로 과거라면 고대의 어느 시대를 의미한다. 지각 변동이든 누군가의 실수든 유적지가 열렸고, 그 안에 마수에게 영향을 주는 무언가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건 모르죠.”
“로딘 마법사님 생각은요?”
“이건 정말 모르겠네요. 그래도 제 생각을 말하라면, 과거에 만들어졌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고대의 어느 시대요.”
로딘은 꺼내 놓았던 마력석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 불길한 돌멩이를 봐서 좋을 게 없었다.
베트너 역시도 주머니에 넣어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했다.
“이유가 있습니까?”
“시간적인 이유죠. 이 마력석은 자연 상태의 마나를 흡수해서 마력으로 변환해 저장한 돌멩이잖아요. 1년, 2년 마나를 흡수해서는 이 정도 마력석에 담긴 마력만큼 변환할 수가 없어요. 적어도 100년 이상 마나를 흡수해야 이만큼의 마력을 모을 수 있어요.”
“아!”
베트너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돌멩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위적으로 마나를 흡수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흡수된 마나만 마력석으로 바꿀 수 있었다.
당연히 짧은 시간에 이만큼의 마력을 응집하는 건 불가능했다.
로딘은 100년을 얘기했지만, 그 이상일 확률이 높았다. 수백 년 혹은 1,000년 이상 마나를 흡수했을 것이다.
‘이유는 하나 더 있지만.’
로딘이 고대의 물건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최근에 만들어진 거라면, 제작한 자들은 중앙 대륙 최악의 범죄자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죽은 사람이 벌써 네 자릿수였고, 조금 더 지나면 다섯 자리가 될 게 확실했다. 이 정도 범죄면 역사서에 기록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최근은 아닐 거야.’
기술 수준이 맞지 않았다.
마나를 마력으로 변환하는 마법은 마정석을 연구하다 보면 당연히 알 수밖에 없었다. 마정석을 오래 연구해 온 몇몇 마탑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나를 흡수하는 과정이 포함된 게 문제였다. 지금의 마법 수준으로 구현해 낼 수 없는 마법이었다.
‘나는 가능하지만.’
물론 로딘은 당장이라도 마력석을 만들 수 있었다.
로딘은 이미 12살 때, 마나 집적 마법진을 만들어서 사용한 경험이 있었다. 지금도 마차에는 마나 직접 마법진이 연공에 필요한 변환 마법진과 복합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마나 집적과 마나 흡수는 비슷한 방식이었다. 약간만 변형하면 마나 집적을 마나 흡수로 바꿀 수 있다.
“조언 감사합니다.”
“아니요.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네요.”
베트너를 보내고, 로딘은 생각에 잠겼다.
괴물 사태는 생각 이상으로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레녹스 왕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국경 쪽으로 이동 중이니, 테비아 왕국도 안전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 * *
장례식장 같던 마을 외곽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 일찍 출발했다. 오늘만큼은 아침 식사도 육포와 건량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마을을 출발하고 두어 시간이 흘렀을 때, 일행은 자연스럽게 행렬을 세웠다. 지형에 문제가 생겨서 마차를 몰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용병의 리더 데릭이 앞으로 나서서 지형을 확인했다.
“그 괴물의 발자국 같습니다.”
“발자국이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마차 앞쪽을 살폈다. 길쭉한 타원형의 말발굽 모양으로 된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크기가 거의 3미터였다.
“와! 이렇게 보니까 놈이 얼마나 큰지 알겠네.”
“밟히면 끝장나겠네.”
“무시무시하네.”
“그래도 바닥이 완전히 굳은 상태야. 여길 지나간 지 하루 이상 지났어.”
괴물과 거리가 있다는 말에 모두가 안도했다. 로딘도 내심 놈과는 안 만났으면 했다.
“로딘 오빠, 괴물은 없는 거야?”
“이 근처에는 없는 것 같다.”
놈은 마력석 때문에 거대해진 놈이었다. 근처에 있다면 로딘의 예민한 감각으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용병들이 동원되어서 놈이 남긴 발자국을 메웠다. 30명의 용병이 동원되니, 발자국이 메워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발자국을 다 메우고 다시 이동할 즈음,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사방에 습기가 가득하니, 운다인이 좋다고 떠들어 댔다.
―히히히.
‘그만 좀 웃어.’
―히히히.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더니 어느새 쏟아붓는 수준으로 물 폭탄을 내렸다. 산 위에서 내려오던 냇물은 어느새 급류가 되고, 절벽 부근은 산사태를 조심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상행은 계속 이어졌다. 로딘도 굳이 멈춰서 쉴 생각은 없었다.
상행은 해가 완전히 떨어진 후에야 멈췄다. 야영하기 좋은 넓은 지역이었다.
“다니엘 상단주는 이런 곳이 있는 줄 아셨나 봐요?”
“저야 매년 여기를 오가니까요.”
상행이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진 이유였다. 예정된 시간, 원하는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쉬는 시간도 계획대로 해야 했다.
“위치가 좋네요. 지대가 높아서 물에 휩쓸릴 걱정도 없고.”
“그래도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모닥불이 버텨 줄지 모르겠습니다.”
비만 많이 오는 게 아니라, 바람도 꽤 거세게 불었다. 아무래도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선 모양이었다.
“모닥불이 꺼지면 어떻게 합니까?”
“추위에 떨어야겠지요.”
지금이 겨울은 아니지만, 여름도 아니었다. 비에 젖으면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시기였다.
“용병들이 고생하겠네요.”
“불침번의 역할에는 모닥불을 지키는 것도 포함됩니다.”
“장작 정도는 제가 말려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그건 베트너가 해 주기로 했습니다.”
야영 준비가 끝났다. 천막마다 5명의 용병이 쉬는데, 그 앞에 하나씩의 모닥불을 피웠다.
유난히 잠들기 힘든 밤이었다. 바람은 거세게 불어 잠든 사람의 귀를 파고들었고 세찬 바람에 천막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용병들은 모닥불을 살리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 했다. 장작을 수시로 넣고, 바람을 막기 위해 커다란 물건도 모닥불 주위에 가져다 놓았다.
모닥불이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이러다 오래 못 버티겠다 싶을 즈음, 로딘이 마차에서 나왔다.
“나오셨습니까?”
“응. 고생하네.”
“아닙니다.”
잠이 필요 없는 카리스와 제나가 로딘을 맞았다. 세찬 비바람에 고생하는 둘이 안쓰러웠다.
마부석에도 짧은 지붕은 있지만, 바람에 휘날리는 빗물을 다 막기에는 부족했다. 둘의 옷은 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젖어 있었다.
‘안 되겠군.’
로딘은 주변을 돌며 야영지의 규모를 가늠했다. 그리고 야영지 전체를 둘러싸는 돔 형태의 실드를 머릿속으로 그려 나갔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마법이었다. 방식도 자다가 깨어나 즉흥적으로 떠올렸다.
‘해 보자고.’
처음 해 보는 일이지만, 어느 정도의 자신은 있었다.
4대 마탑이 대략 10,000자가량의 룬어를 안다고 하는데, 지금 로딘은 그 2배에 달하는 룬어를 알고 있었다. 프루발 환영 수업을 들으며 룬어를 조합하는 법에 대해서도 배웠다.
무엇보다 로딘은 마나를 다룰 수 있었다.
마나를 이용하는 마법은 첫 시동에 마력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일단 발동한 후에는 주변 마나를 흡수해 저절로 유지되도록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스크레프 나도라 이비에크 하시으…….”
로딘은 룬어를 읋으며 마나를 먼저 자극했다. 녀석들은 미리 자극해 놓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니까.
마나를 이용한 아티팩트의 첫 시동에도 유독 많은 마나석이 소모된다. 마나가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과정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됐고.’
마나를 충분히 자극했다. 예열이 끝난 마나를 역시나 룬어 조합을 통해 주변에 늘어놓았다.
“세상을 지키는 힘. 돔 실드.”
로딘의 입에서 마법이 발현되었다. 룬어에 자극받은 마나가 움직였고, 곧 야영지를 넓게 둘러싸는 커다란 막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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