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20)
마법을 품다 (120)
로딘이 밤새 한 일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마력이 아니라 마나로 만든 돔 형태의 실드라, 마법사 베트너도 마법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카리스와 제나는 로딘이 한 일을 알고 있었다. 또 당사자인 로딘도 알았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 일은 아니었다. 처음 마나를 자극할 때부터 돔 형태의 실드가 만들어질 때까지 다 합해서 20분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로딘은 뭔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자신의 행위가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 머릿속으로 구상만 했던 마법을 한 번에 성공했다는 점, 마력이 아닌 마나로 직접 마법을 행했다는 놀라움까지.
뭔가 부족했던 것이 채워진 듯했다.
* * *
몇 차례의 마수 습격을 제외하면 별문제 없는 상행이 이어졌다. 다음 날은 비도 그쳐서, 한결 수월한 이동이었다.
뱅스트를 출발하고 5일 만에 경유지인 국경 도시 아시르에 도착했다.
“다행히 여긴 마수의 공격을 받지 않았네요.”
“그런데 기사들이 많이 보이는데요?”
“혹시 괴물이 올 수 있으니까요.”
국경 아시르로 들어가면서 간단한 검문을 받았다. 거대 마수에 정신이 팔렸는지, 까다롭게 굴진 않았다.
“로딘 마법사님은 언제 떠나십니까?”
“하루만 쉬고 이동할 생각입니다.”
“아쉽군요. 좀 더 함께 지내고 싶었는데.”
국경을 넘으면 그때부터 크라우드 상단과 로딘 일행의 행로가 달라진다.
크라우드 상단은 남쪽으로 이동해서 항구 도시 하손으로 갈 예정이었다. 예상 일정은 대략 15일이었다.
반면 로딘은 국경을 넘은 후에도 계속 서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예상 일정은 20일 정도였다.
마가렛의 고향인 헤덴스 지방은 테비아 왕국에서도 서쪽 끝에 있었다. 서대륙과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파로마 산맥과 인접한 곳이었다.
“다음에 또 연이 닿겠지요.”
“또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크라우드 상단과는 그렇게 헤어졌다. 아시르에 사흘을 머문다고 하니, 더는 볼 일이 없었다.
“로딘 오빠! 어디 묵을 거야?”
“좋은 곳. 편한 곳.”
리치몬드 후작령을 출발한 후, 적당한 규모의 마을에 머문 적은 몇 번 있었다. 벵스트처럼 아예 폐허가 된 곳도 있지만, 보통은 마을 여관에 숙박했다.
하지만 도시 규모에 머무는 건 처음이었다. 기왕 묵게 된 거, 로딘은 좀 좋은 곳에서 쉬고 싶었다.
아시르는 리치몬드 후작령보다 작지만, 레녹스 왕국 서부에선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무역 도시답게 부족한 게 거의 없었다.
로딘은 눈에 보이는 가장 좋은 여관의 별채를 하루 쓰기로 했다. 상당히 비쌌지만, 그 정도는 부담스럽지 않았다.
“나갈까?”
“그래도 돼?”
“안 될 거 없지.”
훈련하겠다는 래리와 그를 지키기 위한 카리스를 두고, 로딘은 여관을 나섰다. 제나와 비앙카만 대동한 채였다.
“살 거 있어?”
“응. 질병 치료 포션이 거의 완성됐어.”
“그런 것 같더라. 포션 병 사야겠네.”
“응. 내 돈으로 살 거야.”
로딘은 래리와 비앙카에게 한 달에 한 번 용돈을 준다. 마가렛과 매튜에게 월급을 주는 날짜와 같았다.
용돈의 액수는 나이에 맞췄다. 올해 14살인 래리는 14골드, 올해 12살이 된 비앙카는 12골드였다.
“그래라.”
비앙카는 포션을 담기 위한 용기 400병을 샀고, 로딘은 마나석과 미스릴, 이 도시 특산물이라는 향신료를 구입했다.
미스릴 덩어리의 가격을 들은 제나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왜? 비싸?”
“아니요. 싸서요.”
“얼마나 차이가 나는데?”
“100분의 1 수준인데요?”
현시대의 미스릴 가격이 마도 제국 시절보다 훨씬 쌌다. 쓰임새가 많고 적음의 차이였다.
“아마 쓰는 곳이 별로 없어서일 거야.”
“제가 마법은 잘 모르지만, 마법 아티팩트에 많이 사용된 걸로 아는데요.”
“지금은 금속을 단단하게 하는 용도 외에는 안 쓰거든.”
1,000년 전, 마왕의 강림은 세상에 많은 문제를 만들었다. 동대륙과 중앙 대륙을 나누는 이스코 강도 그때 생겼고 수많은 마법적인 기술 역시 사라졌다.
하지만 로딘은 본질적인 문제가 5,000년 마도 제국의 멸망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마도 제국은 갑작스럽게 멸망했다. 그 때문에 너무 많은 마법 지식이 사라졌고 덩달아 인류는 엄청나게 퇴보하고 말았다.
마도 제국 시절이었다면 마왕 강림 정도로 대륙 절반이 피에 잠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9서클 마법사만 해도 마왕과 거의 필적할 만한 강자였다. 그런 강자가 마도 제국 시절에는 꽤 많았다.
그러니 마왕 정도는 제국이 나설 것도 없이 지방의 강자들만 모아도 충분히 처치할 수 있었다.
‘대체 왜 멸망했을까?’
엘라네리엔 황녀는 멸망을 대비한 듯한데, 정작 멸망을 예견한 이유에 대해서는 적어 놓지 않았다. 대체로 두루뭉술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짐작도 어려웠다.
‘프루발도 멸망을 예상한 것 같단 말이지.’
프루발의 환영 수업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종말, 멸망 같은 얘기가 직접 언급된 건 아니었다.
대신 ‘폐허가 된 세상에 필요한 교육’이라는 말이 몇 번 나왔다. 대부분이 어떤 일로 죽고, 세상이 폐허가 될 거라고 예상한 것이다.
“이해가 안 됩니다. 미스릴의 쓰임새는 훨씬 다양할 텐데요.”
“미스릴은 마력 전도성이 뛰어난데, 그건 특별한 처리를 했을 때의 얘기거든. 그런데 지금은…….”
“그 방법을 모르는군요.”
“맞아. 결국 기술적인 문제지.”
상점가를 돌면서 필요한 물건을 다 샀다.
로딘은 제나, 비앙카와 함께 가까운 식당을 들렀다. 카리스와 래리는 여관에서 주는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다.
“오호.”
로딘 일행이 들어서자 구석에 있던 누군가가 비릿하게 웃었다. 거슬리는 목소리라 로딘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흐음.”
“애송이가 둥지를 박차고 나왔군. 용기도 가상하지.”
로딘에게 시비를 거는 상대는 세드리아 마탑의 로브를 입고 있었다.
경지는 4서클. 리치몬드 후작령에서 세드리아 마탑과 말다툼이 벌어졌을 때, 캔드릭 장로의 뒤에 서 있던 마법사 중 1명이었다.
‘이름이 홀튼이었지.’
로딘은 상대를 무시하고, 빈자리에 앉았다.
제나가 분위기를 파악하고 상대와 로딘 사이에 자리 잡았다.
상황을 모르는 비앙카는 맞은편에 앉아서 메뉴판만 보고 있었다.
“로딘 오빠! 이거.”
“나도 같은 걸로 먹어야겠다.”
음식은 주문하고 얼마 안 되어서 나왔다. 회전율이 높으니, 몇 가지 음식은 계속 만드는 듯했다.
로딘 일행이 식사를 기다리는 사이에 세드리아 마탑의 홀튼은 식당에서 사라졌다. 마탑에 로딘의 존재를 보고하기 위해 숙소로 돌아간 것이다.
‘귀찮은 일은 질색이지만.’
기왕 벌어질 일이라면 확실하게 처리해야 했다. 각오를 다지고 식사를 마무리했다.
* * *
숙소로 돌아간 홀튼은 통신 구슬을 꺼냈다. 통신 파장은 이미 세드리아 마탑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따로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통신 구슬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리고 룬어를 읊으며, 마탑과 통신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어? 이거 왜 이래?”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반대쪽에서 소식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이나 반복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통신 구슬이 깨졌나?”
통신 구슬을 눈앞으로 들어 올리고 세세하게 살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실금 하나 보이지 않았다.
홀튼은 4서클 마법사. 통신 마법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경지였다.
“이거 왜 이렇지?”
다시 통신 구슬에 마력을 주입했다. 여전히 반대쪽과 연결되지 않았다.
“하아, 돌겠네.”
홀튼은 모르지만, 이 일대와 세드리아 마탑 사이는 통신이 안 되는 상태였다. 레녹스 왕국의 기사들과 함께 온 수십 명의 마법사들이 통신 파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괴물을 잡기 위해 레녹스 왕국에선 무려 500명의 기사를 보냈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법 병단 소속 마법사 100명 전체를 파견했다.
이들은 괴물을 잡기 위해 넓게 포진했는데, 원활한 통신을 위해서는 통신 파장을 하나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사용하는 통신 파장을 제외한 모든 통신 파장을 차단해 버렸다.
“아! 대체 왜! 왜! 보고 좀 하려고 했는데, 왜 안 되는 거냐고!”
절규해 봐야 소용없었다. 아무리 마력을 쏟아부어도 마탑과는 통신이 연결되지 않았다.
“그 버릇 없는 놈.”
홀튼은 식당에서 봤던 녀석을 떠올리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사실 홀튼은 로딘을 알아보지 못했다.
후드를 푹 눌러쓴 상태라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로브의 형태가 비슷하다고 동일인이라 생각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로딘 옆에 있던 계집애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의 언쟁 이후로, 로딘의 집과 그 주변을 꽤 오래 조사했기 때문이다.
그 집에 몇 명이 사는지, 이름이 뭔지, 어떻게 생겼는지.
조사를 끝낸 지 오래였다. 그래서 로딘이 얼굴을 가려도 주변 인물을 통해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운도 좋지.”
홀튼은 로딘과 혼자 싸울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화만 낼 뿐, 직접 찾아가진 않았다.
캔드릭 장로는 로딘을 4서클 마법사라고 말했다. 자신도 같은 4서클 마법사. 진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긴다고 확신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마탑에 보고하려던 건데, 하필 통신이 안 되다니. 일이 꼬이는 느낌이었다.
* * *
다음 날, 로딘은 바로 아시르를 출발했다. 1시간 후에는 국경을 건너, 테비아 왕국에 들어섰다.
그 후로는 순탄했다.
예상했던 세드리아 마탑의 공격도 없었다. 괴물과 마주치지도 않았다.
대신 한 마을에서 레녹스 왕국의 기사들이 괴물을 처치하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 기사들을 물리친 괴물이 테비아 왕국으로 들어섰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희한하네.”
올 줄 알았던 세드리아 마탑은 조용한데, 뜬금없이 괴물과 거리가 가까워졌다. 이러다가 이동 중에 만날지도 모르겠다.
“공자님.”
“응.”
제나가 마부석에서 뒤를 보며 물었다.
로딘은 책을 잠시 내려놓고, 마부석 쪽을 쳐다봤다.
“괴물이 나타나면 어쩌실 겁니까?”
“상황에 따라 다르지. 민간인이 공격당하고 있다면, 싸울 수밖에 없잖아.”
멀리서 괴물의 접근을 알아챘다면 당연히 자리를 피하는 게 나았다.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싸움에 목숨을 거는 건 로딘의 성향이 아니었다.
“역시 공자님은 좋은 사람입니다.”
“내가? 그럴 리가. 난 나쁜 놈까진 아니지만, 좋은 사람도 아니야.”
“그래도 민간인을 지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숭고한 희생정신 같은 게 아니야. 옆 동네 길에 떨어진 돌부리는 무시할 수 있지만, 내 집 앞에 있는 돌부리는 치워야지. 눈에 거슬리잖아.”
로딘은 착한 일을 굳이 찾아서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먼 곳에서 어떤 악인이 나쁜 짓을 저지르더라도, 자기 일이 아니라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 악인이 코앞에서 알짱대면 그냥 둘 수 없었다. 눈에 거슬렸다. 자칫 아는 사람이 다칠 수도 있었고.
“그 정도도 안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뭐, 승산이 없는 건 아니니까.”
아무리 눈앞에서 알짱대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강자라면, 로딘은 기꺼이 웃으면서 참을 자신이 있었다.
특수군 양성소에서도 상대적 약자일 때, 시킨 일을 거부한 적이 없었다. 항상 묵묵하게 훈련생이자 노예의 의무를 다했다.
“제가 최선을 다해서 지키겠습니다.”
“최선은 싸우지 않는 거지.”
“그건 그렇지요.”
“마수다. 숫자는 30마리 정도.”
로딘의 말에 제나가 카리스를 불렀다. 그리고 동시에 2대의 마차가 멈췄다.
“로딘 오빠! 또 마수야?”
“응. 유독 자주 만나네.”
아시르를 떠나고 고작 3일밖에 안 지났다. 그런데 마수를 만나는 건 이번이 4번째였다.
“저희가 다 처리할까요?”
“잠깐만. 래리, 어떻게 할래?”
“싸우겠습니다.”
마수가 나타날 때마다 래리는 실전을 경험했다. 비앙카는 래리에게 스트렝스 한 번 써 보더니, 그냥 포기해 버렸다.
래리의 검술 특성상, 힘이 강해진다고 실력이 확 뛰진 않았다. 강자를 상대할 때라면 모를까. 고만고만한 상대와 싸울 때는 스트렝스가 있든 없든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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