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23)
마법을 품다 (123)
헤덴스 지방이 멀지 않은 곳에서 마차가 갑자기 멈췄다. 제나와 카리스가 마부석에서 뛰어내려 앞을 살폈다.
“괴물의 발자국입니다.”
“하아, 여기까지 왔나?”
로딘은 아주 느릿하게 이동했다. 상단과 함께 움직일 때의 속도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속도였다.
느리게 움직이면서 래리의 아티팩트를 만들었고, 비앙카의 마법 수련도 좀 더 집중해서 봐줬다. 덩달아 래리가 카리스와 훈련할 기회도 많이 만들 수 있었다.
로딘 일행이 아시르에 머물렀을 때, 괴물은 테비아 왕국의 국경을 넘었다.
로딘 일행이 느릿하게 이동하는 사이, 거대 괴물은 테비아 왕국을 마음껏 돌아다녔다.
고작 보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괴물은 테비아 왕국의 동쪽부터 서쪽까지 마치 중앙을 관통하듯 움직였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다. 미리 대피하고, 또 사람이 없는 곳으로 괴물을 유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대 괴물의 움직인 곳은 지형이 엉망으로 변했다.
농사는 완전히 망했고, 나무는 죄다 쓰러졌다. 멀쩡하던 물길이 막힌 곳도 많았다.
“주변이 엉망으로 변해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투가 벌어진 것 같습니다.”
“확인 좀 해 봐야겠다. 잠시 대기. 플라이.”
로디는 지토를 보내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이 근처는 직접 살피고 싶었다.
하늘로 올라가 주변을 천천히 내려다봤다.
카리스의 말대로 엉망진창이었다. 땅은 파헤쳐지고, 나무는 절반 이상이 쓰러져 있었다. 괴물이 깊숙하게 디뎠던 발자국 역시 수없이 많이 보였다.
“시체는 치웠을 테고.”
당장 시체는 보이지 않지만, 그건 싸움이 끝난 후에 이미 치워서일 터. 이 전투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었을 게 분명했다.
“방향은 대충 저쪽인가?”
남쪽으로 흔적이 이어지고 있었다. 목적지는 서쪽에 있으니 다행히 겹치진 않았다.
하지만 정반대 방향이 아닌 이상 언제 놈을 만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자다가 눈을 떴는데 놈이 내려다보고 있을 수도 있었다.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자신이 봤던 장면을 일행들에게 말해 줬다.
“놈은 어떻게 됐을까요?”
“테비아 왕국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선 모양인데. 결과를 모르겠군.”
“레녹스 왕국에선 놈을 처치하는 데 실패했다고 봐야겠네요.”
“그렇겠지. 아마 자기 영토를 벗어나자마자 손을 뗐을 거야. 싸우면 이기더라도 피해가 클 테니까.”
테비아 왕국으로선 자다가 횡액을 맞은 꼴이었다. 국경을 넘어온 괴물이 나라를 초토화하고 다닐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로딘 오빠, 어떻게 할 거야?”
“글쎄다. 너희들 생각은 어때?”
“형, 그 괴물하고 만나게 될까?”
“놈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인다면 우리하고 만날 확률은 낮아.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겠지. 하지만 테비아 왕국에서 놈을 유인한다면 우리하고 만날 확률도 없지는 않아.”
헤덴스 지방은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다. 파로마 산맥과 인접한 곳에 작은 도시 하나가 있지만, 헤덴스 지방의 넓이를 생각하면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했다.
땅은 넓고, 사람은 적은 곳. 테비아 왕국에서 괴물을 유인하기에 가장 접합한 곳이었다.
“오빠. 근처에 오면 알 수 있지?”
“응. 땅이 울릴 테니까.”
놈은 워낙 커서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동할 수 있는 마차를 타고 있는 한,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또 놈은 마력석과 관련되어 덩치가 커진 놈이었다. 마력 덩어리일 테니, 로딘의 예민한 감각이 놓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왠지 느낌이 안 좋았다. 로딘은 이상하게 놈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구덩이 메우겠습니다.”
“아니, 됐어. 그냥 날아가자. 매직 핸드.”
매직 핸드 8개를 만들어서 마차를 통째로 들었다. 말이 낯선 힘에 저항했지만, 카리스와 제나가 잘 다독였다.
구덩이를 넘어서, 다시 서쪽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자잘한 마수들의 습격 외에는 평화로운 여정이었다.
* * *
드디어 헤덴스 지방에 도착했다. 저 멀리 푸른 초목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가축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목가적이네.”
“오빠. 여긴 따뜻해.”
“그러게. 저 언덕을 기점으로 기후가 변하네.”
겨울 초입에 들어설 시기인데도, 헤덴스 지방은 따뜻했다. 이곳만 아직도 늦봄이나 초겨울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다.
“매튜, 여기 기억 안 나죠?”
“예. 사장님. 저는 갓난아기일 때 여길 떠났으니까요.”
매튜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기억도 안 나는 고향인데도 정신적으로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 품처럼 포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죠.”
“으음, 이곳. 공자님.”
마부석에 있던 카리스가 조심스럽게 로딘을 불렀다. 그러자 별말이 없었음에도 매튜는 제나가 모는 마차로 건너갔다.
이제 마차에는 카리스와 로딘 둘만 남았다.
“말해. 무슨 일인데?”
“공자님. 대륙 지도를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지도? 잠깐만.”
팔찌의 아공간을 열어서 대륙 지도를 꺼내 줬다. 1장이 아니라 50여 장으로 이뤄진 지도책이었다.
로딘이 가진 지도는 꽤 세밀했다. 지형과 지명뿐 아니라 도시의 이름, 국경선까지 그려져 있었다. 군사용 지도를 합쳐 대륙 수준으로 키운 지도였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런 지도를 살 수 없었다. 로딘도 꽤 큰돈을 주고 주문한 후, 몇 달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카리스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지도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지도 한 장을 보고 한참을 갸웃거리고, 또 새로운 지도를 꺼내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자님. 대륙 지도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마도 제국 시절하곤 다를 거야. 너희는 저 멀리 서쪽까지 모두 통치했던 것 같은데, 지금 인간은 동쪽만 사용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로딘은 프루발 환영 수업 중에 나온 대륙 전체 지도를 떠올렸다. 그리고 카리스가 볼 수 있도록 간략하게 지도를 그렸다.
“아! 맞습니다. 제가 아는 지도가 이런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대륙은 여기서 동쪽만이거든. 중앙 부분하고 서쪽은 인간이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야.”
“그러면 여기는 어떤 곳입니까?”
“전에 말한 적이 있을 거야. 그곳은 지금 우리가 서대륙이라고 부르는 곳이야. 내 고향이기도 하고. 마도 제국 기준으로는 거기도 동쪽이겠지만.”
당시 마도 제국이 통치하던 지역이 워낙 넓었다. 지금 ‘대륙’이라고 부르는 ‘서대륙, 중앙 대륙, 동대륙’을 다 합쳐서, 마도 제국 시절에는 동부 지역에 속했다.
“여기는 어떤 곳입니까?”
“여기도 전에 말했을 거야. 마수림. 나도 직접 가 본 적은 없어. 마수가 워낙 많아서, 엄청나게 위험하다고 듣긴 했지만.”
과거에 대륙의 형태에 대해 카리스, 제나와 대화한 적이 있었다.
다만 그때는 지도를 펼쳐 놓고 대화하지는 않았다. 마도 제국 시절의 수도를 언급하면서 현재의 대륙 형태를 가볍게 설명한 게 전부였다.
“혹시 헤덴스 지방은 이쪽입니까?”
“응. 여기 일대를 부르는 지명이야.”
카리스는 지도를 다시 하나하나 살폈다. 그러다 헤덴스 지방을 포함해서 파로마 산맥과 인접한 지도만 따로 빼놨다. 모두 4장이었다.
“여기가 파로마 산맥이 맞습니까?”
“맞아.”
“아!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 것 같습니다.”
카리스가 찍은 곳은 파로마 산맥이었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이 산맥이 중앙 대륙과 서대륙을 나누는 경계였다.
“파로마 산맥. 알려진 게 아무것도 없는 곳인데.”
“그렇습니까?”
파로마 산맥.
신비하고 위험한 땅이다. 세상 누구도 파로만 산맥 내부가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 몰랐다. 들어갔던 모든 사람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마수림은 위험하긴 해도 생존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토벌대도 꾸려진 적이 있고, 마수림의 외곽 지역은 지도도 만들어졌고 길잡이도 있었다.
하지만 파로만 산맥은 달랐다. 모험가, 기사, 마법사, 심지어 정령사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을 아무 말 없이 집어삼키기만 했다.
생환자 0명.
마수림과 다른 의미로 무서운 곳이었다.
“뭐 하던 곳인데?”
“수련장이었습니다. 오직 황실에서 사용하는 수련장이요.”
“저 넓은 곳이 전부 다?”
파로마 산맥은 북에서 남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 길이가 무려 2,000km가 넘었다. 폭도 100km가 넘는 걸로 추정하고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곳을 황가에서 독점한다니. 마법사의 수련에 이 정도로 넓은 땅은 필요 없었다.
“으음, 원래 제국 황실에서도 저곳을 특별하게 관리했습니다. 산맥의 특정 지형에서 마력이나 오러의 성장이 유독 빨랐거든요. 하지만 왜 그곳에서만 성장이 빠른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아! 마나구나.”
“예. 전대 마스터인 엘라네리엔 황녀가 그 이유를 알아내셨습니다.”
“그렇지. 마나를 느낄 수 있는 체질이었으니까, 파로마 산맥이 특별하다는 걸 알았겠네. 마나가 많이 모이는 지점도 알아낼 수 있을 테고.”
그제야 마도 제국의 황가에서 산맥 전체를 독점한 이유를 알겠다.
마도 제국의 황가는 파로마 산맥의 어떤 지형이 마력이나 오러 성장에 좋은지 몰랐다. 정확하게 모르니, 산맥 전체를 황가의 영역으로 지정했던 게 분명했다.
그러다 엘라네리엔 황녀가 정확한 이유와 함께 성장에 좋은 지점을 정확하게 찾아낸 것이다.
“맞습니다. 전대 마스터께선 그곳을 마나 집중점이라고 불렀습니다.”
“마나 집중점. 말 되네. 대체 얼마나 되기에 ‘집중점’이라는 이름까지 붙였지?”
“엘라네리엔 황녀는 수천 배라고 했습니다.”
“말도 안 돼. 수천 배라니. 그건 불가능해.”
로딘은 마력뿐 아니라 마나도 느끼는 체질이다. 엘라네리엔 황녀보다 더 예민한 감각이었다.
서대륙에서, 또 바다를 건너 중앙 대륙으로 와서 항상 마나와 마력을 느꼈다. 굳이 애쓸 필요도 없었다. 가까이 있으면 그냥 알 수 있었으니까.
그간 본 세상의 마나의 농도는 거의 균일했다. 지형에 따라 조금 더 마나의 농도가 높은 곳도 있지만, 그래 봐야 2~3배 차이였다.
유일한 예외가 지하 유적지인데, 그곳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것도 무려 5,000여 년 전에.
지하 유적지는 항상 외부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화산이 생긴 이후에는 용암의 압력과 열을 견뎌야 했고, 그전에는 땅의 무게를 오랫동안 버텨 왔다. 긴 시간과도 싸움도 무시할 수 없었다.
지하 유적지는 5,0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엄청난 공격을 벽에 새겨진 마법진으로 버텼다. 그러기 위해서 마나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마법진을 새겨 둔 것이다.
외부와 싸우고도 남은 힘은 지하 유적지의 벽에 저장되어 있었다. 세상의 일상적인 마나 농도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로딘은 그 힘을 일시에 깨뜨려서 엄청나게 많은 마력을 얻었다.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전대 마스터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나 농도 수천 배라니……, 대체 거기서 수련하면 성장이 얼마나 빠르다는 거야?”
마나 농도가 짙으면 짙을수록 마력이나 오러로 변환되는 양도 늘어난다. 하지만 마나의 농도가 10배쯤 높아진다고 성장 속도가 10배가 되는 건 아니었다.
마나는 마력이나 오러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상당수가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이는 평범한 방법으로 붙잡거나 강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나 농도가 10배쯤 되더라도, 실제로 성장 속도는 2배 정도가 될 뿐이다. 재능이 특출한 사람이라면 좀 낫지만, 그래 봐야 3배를 넘긴 어려웠다.
마나 농도가 100배쯤 되면 성장 속도는 5~6배 정도 될 거다. 마나 농도가 1,000배 정도 되면 성장 속도는 6~7배 정도 될 테고.
‘수천 배의 마나 농도면 성장 속도가 10배는 될 텐데.’
로딘보단 래리와 비앙카에게 필요한 장소였다.
로딘은 이미 성장이 막힌 상태였다. 깨달음을 얻어서 7서클에 오르지 않는 이상, 마력만 모으는 건 의미가 없었다.
“어쩌면 그게 마도 제국의 비밀이 아니겠습니까?”
“글쎄다. 마도 제국 시절은 마력만 특출한 게 아니라서. 마법적인 지식 자체가 현재하곤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수천 배라……, 한번 가 봐야겠는데. 좀 무섭네.”
파로마 산맥은 수많은 사람을 집어삼킨 곳이다. 누구도 돌아오지 못한 곳이라 선뜻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위험한 곳이 된 겁니까?”
“나도 잘 몰라. 아니, 아무도 모르지. 파로마 산맥으로 들어갔다가 살아나온 사람이 한 명도 없거든.”
“아! 제가 괜한 말을 한 것 같습니다. 굳이 위험한 곳을 찾아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야. 잘 얘기해 줬어. 난 모르고 당하는 게 제일 싫거든. 그리고 일단 파로마 산맥 외곽을 좀 조사해 봐야겠어. 안으로 들어갈지 말지는 그다음에 선택하고.”
로딘은 파로마 산맥에 호기심이 생겼다. 뭔가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느낌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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