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24)
마법을 품다 (124)
헤덴스 지방의 작은 도시 헤덴스까지 도착을 하루 앞두고, 로딘은 야영을 결정했다.
괴물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곳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밤새 이동하는 것보단 안전한 곳에서 쉬는 게 나았다.
저녁 식사는 매튜가 준비했다.
역시나 매튜의 요리는 만족스러웠다. 마가렛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자, 래리는 곧장 카리스와 대련을 시작했다. 한쪽에선 쉬지 않고 기합 소리와 금속음이 들려왔다.
그 시간에 로딘은 비앙카에게 마법을 가르쳤다. 주로 수학과 룬어 중심의 교육이었지만, 가끔은 마법 연상에 대한 가르침도 해 줬다.
로딘 일행은 낮보다 밤이 더 바빴다. 그러다 보니, 취침 시간은 항상 자정 전후가 되었다.
어둑어둑한 새벽.
아직 래리조차 깨지 않은 시간에 로딘은 조용히 눈을 떴다.
로딘이 일어나자, 불침번을 서고 있던 카리스와 제나가 다가왔다.
“공자님. 너무 일찍 일어나셨습니다.”
“좀 더 주무세요. 공자님.”
“으음, 뭔가 느낌이 안 좋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찝찝함이 느껴졌다. 악몽을 꾼 것도 아닌데, 엄청난 불쾌함이 몸을 잠식했다.
“돌아보시겠습니까?”
“그래야지. 확인을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지토.”
―꾸엥.
옷 형태로 있던 지토가 어느새 본체로 돌아갔다. 그러자 제나가 마차 안에서 모포를 가져와 로딘에게 건넸다.
“고마워.”
“별말씀을요.”
로딘은 모포를 걸치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가 뜨지 않았지만, 다행히 오늘은 달이 크고 밝았다.
“지토, 주변 정찰 좀 해 줘.”
―꾸엥.
쏜 화살처럼 날아오른 지토가 주변을 크게 1바퀴 돌았다. 로딘은 감각을 공유해서, 지토의 시야를 확인했다.
“젠장.”
“왜 그러십니까? 공자님.”
“거대 마수가 있어. 그리 멀진 않아.”
넓은 평지에 괴물이 누워 있었다. 땅을 적당히 파서 등을 기댄 모습인데 근심·걱정 없는 느긋한 자세였다.
“아! 거대 마수입니까? 거리가 얼마나?”
“잠시만. 지토, 이쪽부터 보다가 거대 마수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봐.”
지토의 시선이 야영지가 있는 쪽에서 천천히 거대 마수 쪽으로 옮겨 갔다.
산과 숲을 지나서 거대 마수가 누워 있는 모습까지. 전체를 확인하니,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대충 계산할 수 있었다.
“내가 전력으로 움직이면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야.”
“그 정도면 가까운 거리는 아닙니다. 충분히 피해 갈 수 있겠습니다.”
“응. 다행이야. 더 가까웠으면 곤란할 뻔했어.”
거대 마수는 마력 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로딘이라면 조금만 더 가까워졌어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달랐다. 훨씬 가벼워서 미리 눈치를 못 챌 수도 있었다.
거대 마수를 잡겠다고 혹은 구경하겠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그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들쑤시고 다니면 자칫 로딘 일행이 전투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그 큰 덩치가 어떻게 이렇게 가까이 왔을까요? 진동 같은 것도 못 느꼈는데.”
“놈이 온 게 아니라, 놈이 쉬고 있는 곳으로 우리가 들어온 것 같아.”
지토의 눈에 거대 마수의 몸에 난 상처가 보였다. 작게 그을린 상처부터 꽤 큰 화상까지. 상처의 숫자가 수십 곳이었다.
하지만 치명상이라고 부를 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저 정도는 괴물이 아니라 로딘이 당했어도 가볍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정도였다.
“쉰 지 오래된 겁니까?”
“상처가 좀 있어. 그 때문에 자리 잡고 쉬는 듯해. 그런데…… 어? 주변에 사람이 많은데?”
거대 마수를 좀 더 멀리서 살피니, 거대 마수를 포위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거대 마수와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숫자는 수천 명이나 되었다.
“사람들이 거대 마수 주변에 있어. 대략 1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쪽 상황은 더 안 좋네. 부상자도 많고.”
“이미 한바탕했군요.”
“대략 사나흘은 된 것 같네.”
치열하게 싸우다가 서로 물러난 모양새였다.
거대 마수는 그냥 쉬고 싶었던 것 같고, 거대 마수를 포위한 사람들은 더 버티지 못해서 물러난 듯 보였다.
“다시 붙을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인간 진영 쪽은 싸울 준비를 아예 안 하는 것 같거든. 그런데 거대 마수의 몸에 칼에 베인 상처가 거의 안 보이는데?”
“고위 기사가 없는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지토 시야로만 봐선 검사들 경지를 알아보기 어려워서. 그래도 수천 명이 모였는데, 고위 기사도 당연히 있겠지. 아! 지토, 그쪽 좀 더 자세히 확인해 봐.”
지토의 시야로 주변을 느릿하게 훑던 로딘이 급하게 지토를 세웠다. 그리고 한쪽을 뚫어지게 보도록 지시했다.
기사들이 적어도 100명 이상은 모여 있었다. 지토의 시야를 좀 더 돌려 보니, 다른 쪽에도 100명이 넘는 기사들이 보였다.
“이상하군. 기사가 저렇게 많은데 왜 아직도 저 마수를 처치하지 못한 거지?”
“어찌하시겠습니까?”
“좀 돌아가더라도, 피하는 게 낫겠지.”
로딘은 싸움을 피하기로 했다.
무턱대고 싸우기에는 거대 마수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놈일지도 몰랐다.
또 거대 마수와의 싸움에 도움이 안 되는 일행이 3명이나 있었다. 자칫 싸움에 휘말렸다가는 누구 하나 다쳐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게 좋겠습니다.”
“지토, 돌아와.”
지토가 순식간에 돌아왔다. 모포를 벗자, 금세 몸에 달라붙어서 옷으로 변했다.
로딘은 운다인의 도움을 받아 씻고, 새벽 연공을 마쳤다. 그즈음 래리와 매튜가 일어났다.
래리와 함께 검술을 수련하면서 땀을 흘렸다. 매튜는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할 말이 있다.”
식사를 마치고, 셋을 불러 모았다.
로딘은 멀지 않은 곳에 거대 마수가 있음을 알렸다. 싸움을 피하기 위해 좀 돌아갈 거라는 말도 전했다.
“전 로딘 오빠가 하자는 대로 할게요.”
“저도 형 뜻에 따를게요. 안전한 게 낫죠.”
“저도 괜찮습니다. 사장님.”
모두가 로딘의 선택을 이해해 줬다.
아침 일정을 마치고 마차의 방향을 틀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지만 감수하기로 했다.
* * *
한참을 돌아서 이동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됐는데도 목적지와 별로 가까워지지 못했다.
“멈춰!”
그때 로딘이 크게 소리치며, 마차를 뛰쳐나왔다. 놀란 제나와 카리스가 고삐를 당겨 마차를 세웠다.
“공자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잠깐. 플라이!”
로딘은 대답 대신 마법을 써서 날아올랐다. 무성한 나무가 작게 내려다보일 정도 높이로 올라서자,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거대 마수와의 거리가 꽤 좁혀졌다. 이전에는 전력으로 움직여서 2시간 거리였다면, 지금은 30분 정도 거리였다.
문제는 저 괴물을 끌고 오는 무리였다. 하필이면 방향이 마차가 있는 쪽이었다.
“하아, 이쪽이라니.”
로딘은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기다렸다는 듯, 래리와 비앙카가 달라붙었다.
“로딘 오빠! 무슨 일이에요?”
“마수가 오고 있다.”
“여기로요?”
“기사들이 거대 마수를 이쪽으로 유인하고 있어.”
로딘은 싸움을 피하려고 인적이 드문 쪽으로 멀리 돌아서 움직였다. 그게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사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
마탑에서 지원이 올 예정이지만, 그때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어떻게든 거대 마수를 데리고 시간을 끌어야 하는데, 그러자니 인적이 드문 곳으로 유인하는 길밖에 없었다.
“왜 이쪽으로?”
“그건 나중에 물어보고.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아.”
적당한 속도로 움직이는 거대 마수가 아니었다. 기사들을 쫓느라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는 놈이었다.
놈의 다리 길이를 생각하면, 이곳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마차를 돌려 도망치기엔 너무 늦었다.
“사장님, 어떻게 하죠?”
“일단 말을 풀어. 래리, 말 탈 줄 알지?”
“물론이죠.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데.”
리치몬드 후작령에 있을 때, 시간을 내서 래리에게 기마술을 가르쳤다. 비앙카에게도 가르치고 싶었는데, 말 위에서 통 버티질 못해서 포기했다.
“매튜도 탈 수 있죠?”
“예. 제가 마구간에서 말 훈련을 담당했으니까요.”
매튜는 말 훈련을 제대로 배우겠다며 말을 훈련하는 목장까지 갔었다. 그곳에서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주면서 몇 달 동안 일을 도왔다. 말을 타는 법 정도는 당연히 배웠다.
“래리, 비앙카 태우고 아까 아침에 쉬었던 곳 알지? 거기로 도망쳐. 매튜. 아이들 좀 부탁할게요.”
“알겠습니다.”
“제가 비앙카 챙길게요.”
“저도 래리 오빠 잘 따라다닐게요.”
로딘은 손짓으로 셋을 바로 보냈다. 매튜가 마차에 있는 말을 풀어서 나눴다.
마차 2대에 묶인 말은 모두 4필. 매튜와 래리가 각각 2마리씩 끌고 떠났다.
남은 마차는 로딘이 아공간에 수납했다. 이제 마스터에 이르는 검사 2명과 로딘만 남았다.
“후우.”
“긴장되십니까?”
“응. 위험한 전투는 별로 해 보질 못했거든.”
이곳에서 거대 마수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죽이지 못하면 최소한 이곳에 묶어 두기라도 해야 했다.
뒤로 보내면 래리와 비앙카가 도망친 곳이었다. 놈을 그곳까지 보낼 수는 없었다.
“자리를 옮기심이 어떠십니까?”
“아니. 이 정도면 괜찮아. 난 장애물에 크게 구애받는 편이 아니라서.”
“하긴, 공자님은 마법을 정말 정확하게 쓰시니까요.”
“그리고 그놈이 워낙 크잖아. 어차피 대충 쏘면 맞게 되어 있어.”
이곳은 마법사들이 좋아할 만한 지형은 아니었다. 울창하진 않지만, 나무가 꽤 많았다. 땅 위에 자리 잡은 모든 것들이 시야를 가리고 마법을 막는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로딘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좌표 계산은 자신 있었다. 실수로 나무를 맞힐 일은 없었다. 게다가 듬성듬성 자란 나무는 몸을 숨기기에 나쁘지 않았다.
“누가 옵니다.”
“기사들이야. 유인조 같아.”
잠깐 대화하는 사이 눈앞으로 낯선 이들이 나타났다. 거대 마수를 유인하고 있는 기사들이었다.
“너희들은 뭐냐!”
“지나가는 사람. 마수를 유인해 온 게 그쪽이죠?”
“그, 그…….”
“사람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했어야죠.”
쿵! 쿵! 쿵!
땅의 진동이 점점 강해졌다. 놈이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증거였다.
“지금이라도 도망쳐라.”
“놈을 이 뒤로 보내면 안 되는 처지라서. 방해하지 말고 비켜 주시죠. 플라이.”
로딘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너무 높은 위치까지 오르진 않았다. 대략 10미터 정도 높이를 유지하고, 마수가 나타날 방향을 노려봤다.
“마법사?”
“방해하지 말고 꺼져라.”
기사들이 떠나지 않고 주저하자, 카리스가 기사들을 옆으로 밀었다. 확 밀린 기사들 둘이 나자빠졌다.
“이놈!”
“감히.”
“방해하면 죽인다.”
카리스가 등에 멘 창을 뽑았다. 창에서 유형화된 시퍼런 날이 자라났다. 마스터의 상징인 오러 블레이드였다.
“마, 마스터.”
“방금 카리스가 한 말 못 들었나요? 방해되면 죽인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제나가 나섰다. 역시나 검에서 뻗어 나온 건 오러 블레이드였다.
둘이 굳이 오러 블레이드를 보여 준 건 걸리적거리지 말고 떠나라는 의미였다. 너희들은 도움이 안 된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마스터!”
“독이다!”
허공에 있던 로딘이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카리스와 제나에게 마법을 사용했다.
“레지스트 포이즌!”
독 저항력을 높여 주는 마법이었다. 완벽한 면역은 아니라서, 오랜 시간 독과 접촉하는 건 위험했다.
‘이래서였구나.’
괴물의 몸에는 검을 벤 상처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독 때문에 접근을 못 한 거였다.
아직 거리가 있는데도 지독한 독기가 느껴졌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기사는 근처에 가기도 전에 중독되어 죽는다. 마스터에 이른 검사도 고위 마법사의 도움이 없으면 싸움을 포기해야 했다.
‘호흡기로 들어오는 독이면 괜찮을 텐데, 하필이면 접촉식이야.’
전투 인형은 숨을 쉬는 척만 할 뿐, 실제로 호흡하진 않는다. 호흡으로 몸을 파고 드는 독이었다면, 무시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거대 마수 주변에 가득한 독은 접촉식. 몸에 닿는 모든 것을 상하게 하는 독기였다. 전투 인형도 이런 독은 조심해야 했다.
쿵쿵쿵!
“옵니다!”
“우, 우리는 계속 이동한다! 달려!”
“달려라!”
나무 너머로 거대 괴수의 뿔이 슬쩍 보였다. 뿔은 어느새 머리로 바뀌더니, 곧 눈까지 드러났다.
그제야 마수를 유인했던 기사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오러까지 사용해서 달리는데도 거대 마수가 가까워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쿵쿵쿵쿵! 쩌저적! 쯔억!
놈이 달려오는 소리와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마구 뒤섞였다. 그리고 잠시 후, 놈이 도착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