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29)
마법을 품다 (129)
캔드릭 장로는 고개를 숙이고 빌면서, 이 정도로 마무리되길 바랐다. 그 바람대로 왠지 프란시스 탑주가 넘어가 줄 것만 같았다.
사실 로딘이 아티팩트 제작을 못 하게 할 목적만으로 아이들을 잡은 건 아니었다. 로딘이 가진 아티팩트 지식까지 탐내고 저지른 짓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 얘기가 나오면 자신은 끝장이었다.
과잉 충성이 아니라 탐욕과 이기심으로 저지른 일이 되면 자신은 마탑 내에서도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에잉. 쯧쯧쯧.”
탁! 탁!
그때 일단의 무리가 프란시스 탑주 곁으로 달려왔다. 프란시스 탑주와 함께 출발했던 란데스 마탑의 마법사들이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그들은 중간에 프란시스 탑주를 놓쳤다. 그들의 실력으로 전력으로 비행하는 7서클 대마법사를 따라붙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로딘은 일직선으로 이동했고, 그를 따라온 프란시스 탑주도 마찬가지였다. 그 덕에 란데스 마탑의 마법사들은 길을 잃지 않고 따라올 수 있었다.
“탑주님을 뵙습니다.”
“숨부터 돌리게나.”
“예. 탑주님.”
휘하 마법사들을 잠깐 돌아본 프란시스 탑주의 시선이 다시 캔드릭 장로에게 향했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나.”
프란시스 탑주가 느릿하게 움직였다. 캔드릭 장로가 있는 방향이었다.
캔드릭 장로는 다가오는 프란시스 탑주의 모습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표정을 보니 크게 화가 난 것 같진 않았다.
‘살았구나.’
그렇게 마음을 놓을 찰나, 프란시스 탑주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익스플로전! 중첩!”
퍼엉!
“크아악!”
프란시스 탑주는 캔드릭 장로의 팔을 날려 버렸다. 아무런 경고도, 아무런 전조도 없는 행동이었다.
“이, 이게 무슨!”
“탑주님!”
“장로님!”
뒤늦게 도착해 상황을 모르는 란데스 마탑 마법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갑자기 자기 탑주가 화가 난 건지, 팔이 날아간 자는 무슨 죄를 지었는지 궁금한 것투성이였다.
반면 이대로 넘어가리라 생각했던 세드리아 마탑의 마법사들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프란시스 탑주가 화가 났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자기네 탑주와 인연이 있다고 하니,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넘어갈 줄 알았다.
“자네는 마법사가 될 자격이 없네. 생각 같아서는 목숨을 거두고 싶으나 자네 탑주와의 인연 때문에 참는 걸세. 하나, 다시 한번 악심을 품는다면 그땐 자네뿐 아니라 자네가 속한 마탑까지 세상에서 지워질 걸세.”
“크으으……, 예.”
“어떤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자네가 알아서 해도 좋네.”
프란시스 탑주의 눈이 이번에는 로딘에게 향했다. 이 정도 처벌로 만족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일단 저도 이 정도로 참겠습니다. 하지만 두 번은 없습니다.”
“내 상황을 이해해 줘서 고맙네.”
“이제 꼴 보기 싫은 작자가 제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하는데요.”
로딘은 캔드릭 장로와 휘하의 마법사들이 떠나라는 뜻을 전했다.
일이 일단락되었다. 이젠 세드리아 마탑과 관련된 건 그게 뭐가 됐든 보기가 싫었다.
“들었는가? 당장 마탑으로 돌아가게.”
“알……겠습니다. 돌아간다.”
“예. 장로님.”
캔드릭 장로가 휘하 마법사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상황을 모르는 란데스 마탑의 마법사들만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탑주님. 무슨 일인지…….”
“설명은 나중에 해 주겠네. 자네는 어쩔 생각인가?”
“이곳에서 하루 쉴 생각입니다.”
마침 이곳은 꽤 넓은 공터였다. 야영지를 꾸리기에 적합한 지형이었다.
“야영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듯한데.”
“준비해 둔 게 있습니다.”
아공간에서 마차도 꺼내야 하고, 세드리아 마탑이 두고 간 말도 수습해야 했다. 래리와 비앙카 역시 완벽히 치료된 게 아니니, 좀 쉴 필요가 있었다.
“알겠네. 자네들이 잡은 마수 사체는 어찌할 생각인가?”
“글쎄요.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잡은 게 아니라서요.”
“그러면 우리가 처분해도 되겠는가? 사체의 가격은 충분히 계산해서 주겠네.”
“돈이 되는 마수입니까?”
마수라고 다 돈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로딘도 이곳으로 오면서 잡은 마수를 다 챙겼을 것이다.
소형 마수는 돈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냥한 마수의 사체는 화장하거나 땅에 묻어서 처리하는 게 최선이었다.
“마수는 돈이 되는 녀석도 있고, 아닌 녀석도 있지. 자네가 죽인 녀석은 당연히 돈이 된다네.”
“쓰임새가 있습니까?”
“하하, 그건 모르지. 설사 쓰임새가 없어도 사려는 이들은 많을 걸세.”
거대 마수는 마왕 강림 직전에 나타난 이후 무려 1,000여 년 만의 등장이었다. 마탑뿐 아니라 왕실이나 귀족들도 탐낼 만큼 의미가 있는 마수였다.
“편할 대로 하십시오.”
“우린 마수 사체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네. 사나흘 정도 머물 예정인데 혹 저 아이들이 회복되면, 나와 대화 좀 할 수 있겠는가?”
“동생들이 회복되면 찾아가겠습니다.”
로딘도 7서클 대마법사와 대화를 해 보고 싶었다.
뭔가를 묻고 대답을 들으려는 건 아니었다. 그저 7서클 대마법사라는 존재 자체가 궁금했다. 가볍게 대화해 보면 어떤 느낌이 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 기다리겠네. 하렌, 우린 돌아가세.”
“알겠습니다. 돌아간다.”
란데스 마탑에서 나온 이들도 빠르게 사라졌다. 이제 원래 로딘 일행만 남았다.
* * *
로딘은 아공간 팔찌에서 마차를 꺼냈다. 그동안 제나는 원래 매튜와 래리, 비앙카가 타고 떠났던 말들을 찾아왔다.
“매튜, 쉬어요.”
“예?”
“피곤할 텐데 한숨 자요. 식사는 제가 준비할게요.”
“그러지 않으셔…….”
매튜은 하던 말을 마치지도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로딘이 마법으로 매튜를 재운 것이다.
“카리스, 들어가서 쉬어.”
“예.”
카리스를 목걸이의 수납공간에 넣었다.
제나는 자잘한 생채기 정도라, 굳이 수납공간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카리스의 팔은 여전히 부러져서 덜렁거렸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서 치유 마법도 통하지 않았다.
목걸이의 수납공간에 들어가서 육체를 복원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로딘은 제나와 함께 주변을 야영장으로 바꿨다.
마차에서 천막을 꺼내 공터의 한쪽에 펼쳤다.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와서 모닥불을 피우고,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수프도 끓였다.
여전히 의식이 없는 래리와 비앙카는 천막의 모포 위에 눕혔다. 억지로 재운 매튜에게도 천막 하나를 배정했다.
모닥불 타는 소리만 나는 조용한 야영장.
로딘은 오늘 벌어진 일들을 생각했다. 단 하루지만,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거대 마수와 싸웠고 의외로 쉽게 꺾었다. 카리스와 제나가 앞에서 마수를 막아 준 게 컸다. 비록 카리스는 다쳤지만, 예상보다 훨씬 수월한 싸움이었다.
그 과정에서 마법을 무리하게 만드느라,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전화위복이 되어서 7서클의 경지에 오를 수 있지만, 자칫 서클이 깨질 뻔한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다쳤지.’
래리와 비앙카가 착용 중인 팔찌에는 일종의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마법을 새겨 놨다.
래리는 팔찌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팔찌를 주고 벌써 1년 하고 반이나 흘렀다. 그사이에 팔찌를 쓸 일이 없었으니, 잊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행히 비앙카가 팔찌의 존재를 기억하고 마력을 주입했다. 그 덕분에 구조 신호가 무사히 로딘에게 전해졌다.
한데 정작 로딘이 신체를 재구성하는 중이라 구조 신호를 너무 늦게 봤다.
‘래리 장비부터 손을 봐야겠어.’
마정석에 관한 연구는 일단 중지하기로 했다. 당장 급한 게 아니니, 우선은 래리의 장비부터 손볼 생각이었다.
‘비앙카가 쓸 스태프도 제작해야겠는데.’
아쉽게도 로딘은 스태프가 익숙지 않았다.
엘로브 위원을 잡고 아로바인 재질의 스태프를 얻었지만, 이런저런 용도로 다 써 버렸다. 서대륙에서 엘리스의 스태프를 살펴본 적이 있지만 고작 며칠이었다.
“공자님,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그냥 이런저런 생각 좀 했어. 몸은 좀 어때?”
“저는 크게 다친 게 아니라서 괜찮습니다.”
제나의 몸에 있던 자잘한 상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장비도 이미 복원이 끝나서, 전투를 치르기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카리스가 완쾌되는 데 얼마나 걸릴까?”
“그 정도 부상이라면 5일 정도면 될 겁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구나.”
“치료가 아니라 복원이니까요. 그 정도가 한계입니다.”
전투 인형은 생명체가 아니었다. 제나의 자잘한 상처가 치료된 것도 엄밀히 말하면 치료가 아니라 복원이 된 것에 불과했다.
“오늘 고생했다.”
“아닙니다. 큰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둘 덕분에 마음 놓고 큰 마법만 썼다.”
거대 마수와 싸울 때 자잘한 마법은 아예 쓰지도 않았다. 급하게 회피하고 방어할 일이 없으니, 작정하고 위력에 집중할 수 있었다.
“으으으. 오빠! 안 돼!”
부상 정도가 조금 덜했던 비앙카가 먼저 의식을 되찾았다. 악몽을 꾸는지 잠깐 안타까운 소리를 내뱉더니, 이내 눈을 번쩍 떴다.
“깼어?”
“로……딘 오빠! 으아아앙!”
“잘 견뎌 줬다.”
로딘은 비앙카를 안아 줬다. 비앙카가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으으으.”
그 소리가 컸을까.
래리 역시 조금씩 뒤척이기 시작했다. 인상을 찡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다 곧 눈을 번쩍 뜨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너도 깼구나.”
“래리 오빠! 으아아앙! 죽은 줄 알았잖아. 으아앙!”
로딘의 품에 있던 비앙카가 래리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래리를 꼭 안더니,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형. 언제…….”
“몇 시간 됐다.”
“그 사람은요?”
‘그 사람’이라는 단어가 래리의 입에서 나왔다. 비앙카도 알고 싶은지, 로딘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캔드릭 장로는 세드리아 마탑으로 돌아갔다. 외팔이가 됐지만, 어쨌든 살아서 돌아갔어.”
“팔……을 잘랐어요?”
“자른 건 아니고 터트렸지. 내가 한 건 아니야. 프란시스라고 다른 할아버지가 벌을 내렸어.”
캔드릭 장로는 4대 마탑의 탑주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프란시스는 마냥 자상하고 선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소속된 마법사의 숫자만 1,000명을 가뿐히 넘기는 곳이 4대 마탑이었다. 란데스 마탑은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다.
이런 거대한 곳에서 탑주라는 위치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정적을 짓밟고 올라서야 했다. 정치질을 경험해 본 시간만 수십 년이요, 모함과 거짓 앞에 몰린 적도 수백 번이 넘었다.
캔드릭 장로의 허술한 거짓말이 산전수전 다 겪은 프란시스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프란시스는 캔드릭 장로가 숨기고 있던 내용이 뭔지는 몰랐지만,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건 진즉에 눈치챘다.
“그 할아버지가 왜요?”
“글쎄. 왜일까? 안 그래도 만나면 물어볼 생각이야.”
“어디 있어요?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래리와 비앙카를 보며 로딘이 피식 웃었다.
로딘은 래리와 비앙카의 가정 교육을 거의 하지 않았다. 글을 가르치고, 마법을 알려 줬을 뿐. 예의, 예절 교육은 해 본 적도 없었다.
한데도 아이들은 바르게 잘 자랐다. 죽은 둘의 부모가 잘 가르친 덕일 것이다.
“지금은 너무 늦었다. 내일 찾아가 보자.”
“앗! 제나 언니. 고마워요.”
“나? 내가 왜?”
“몰라요. 그냥 언니가 도와줬을 것 같아서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캔드릭 장로 앞에 쓰러져 있던 래리와 비앙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 사람이 카리스와 제나였다.
“난 한 거 없어. 다 공자님이 하셨지.”
“그래도요.”
“어? 카리스 아저씨는요?”
“어? 카리스 아저씨가 없어요. 설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비앙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에 로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제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멀쩡해. 정찰 중이야.”
“정찰이요?”
“응. 혹시 몰라서 앞으로 보냈어. 헤덴스라는 도시에서 만나기로 했어.”
로딘은 제나가 말한 치료. 아니, 복원 기간과 이동 시간을 대강 맞췄다. 대략 3일에서 4일이면 헤덴스 지방의 도시 헤덴스에 도착할 것 같았다.
그제야 비앙카가 안도했다. 래리도 마음이 놓이는지 표정이 좋아졌다.
“아! 형, 지금 몇 시예요?”
“자정이 좀 넘었어.”
“형! 나 오늘 연공 안 했는데.”
“로딘 오빠. 나도.”
래리와 비앙카 둘 다 해가 진 후 연공 효율이 높은 체질이었다. 점심 무렵에 캔드릭 장로에게 사로잡혔으니, 연공을 할 시간이 없었다.
“하려면 해. 회복에도 도움이 될 거다.”
“저도……. 으으, 아프다.”
“나도.”
맞아서 생긴 상처는 이미 사라졌다. 지금은 뼈마디가 욱신거리거나, 머리가 띵한 증상만 남았다.
“연공해. 그럼 좀 나을 거야.”
“예.”
둘을 마차로 들여보냈다. 각각 마력 연공실과 오러 연공실로 바꿔 놓은 곳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