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30)
마법을 품다 (130)
거대 마수가 죽은 자리에 사람들이 속속 모였다.
어제 낮에는 란데스 마탑의 탑주와 마법사들이 도착했고, 한밤중에는 거대 마수를 유인했던 기사들이 돌아왔다.
아침이 되자 거대 마수와 한 번이라도 부딪쳤던 용병들과 헤덴스 지방의 병사들도 모였다. 그 외에 화려한 마차를 탄 귀족들까지.
그리 넓지 않은 공터에 모인 사람만 1,000명이 넘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이니 거대한 마수를 제대로 구경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소란스럽군.”
“탑주님 나오셨습니까?”
“그래. 갑자기 왜 이리 사람이 모인 건가?”
“마수 때문 아니겠습니까? 두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괴물이 죽었으니까요.”
사람들 대부분이 마수의 사체 주변에 모여 있었다. 뒷자리에는 아예 마차 위로 올라가서 구경하는 사람도 많았다.
“쯧, 질서를 지킬 것이지.”
“사람들이 누가 저놈을 죽였는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하긴, 궁금하기도 하겠지. 오늘은 당사자가 올 테니, 머지않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알려 주게.”
로딘이 거대 마수를 죽인 건 어제 오후였다.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테비아 왕국과 레녹스 왕국은 들끓고 있었다.
번화가의 술집마다 거대 마수 얘기와 그를 잡은 영웅의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전투 장면은 본 적도 없을 누군가가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실감 나게 묘사하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한데…….”
“또 할 말이 있는가?”
“우리 마탑이 거대 마수를 잡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어찌할까요?”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단일 전력으로는 최강인 곳이 란데스 마탑이었다. 때마침 란데스 마탑의 마법사들이 이곳에 도착한 것도 어제였다.
앞뒤 정황 때문에 란데스 마탑이 거대 마수를 잡았다는 게 사실처럼 퍼지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되지 않는가? 설마 자네는 저 괴물을 잡은 공을 탐하는 건가?”
“아닙니다. 하지도 않은 공을 탐내서 뭐 하겠습니까? 진실은 금방 드러나는 것을요. 다만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니, 아는 게 없어서.”
“흐음, 이름은 로딘이라고 했네. 나이는…… 으음, 모르겠군. 젊다는 건 분명한데.”
프란시스 탑주 역시 로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리 늙지 않은 목소리였다는 것과 꽤 큰 키에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었다.
‘얼굴을 의도적으로 가린 듯한데.’
로딘이 7서클에 오르는 순간에는 카리스와 제나가 막고 있었다. 7서클에 오른 후에는 로브를 입고 후드를 푹 눌러쓴 상태였다.
‘동생들을 구하는 와중에도 로브를 입고 후드를 눌러썼지. 분명해. 얼굴을 의도적으로 가리고 있어. 범죄자인가?’
당시의 로딘은 래리와 비앙카에게 최고 속도로 날아가는 중이었다.
당연히 로브는 시간을 내서 따로 입은 게 아니었다. 지토를 불러들이니, 평소처럼 큰 후드가 달린 로브 모습으로 변했을 뿐이었다.
“다른 정보는 없는 겁니까?”
“아! 리치몬드 후작령이 집인 것 같더군.”
“리치몬드 후작령이요? 거긴 레녹스 왕국이지 않습니까? 설마 거기서부터 거대 마수를 추격해 온 겁니까?”
거대 마수가 처음 나타난 장소가 레녹스 왕국이었다. 반면 이곳은 테비아 왕국의 서쪽 끝인 헤덴스 지방. 국경을 넘어서 한참을 더 들어온 셈이었다.
거리가 만만찮은 만큼, 로딘이 거대 마수를 쫓아 왔다고 오해할 만했다.
“아니. 그런 느낌은 아니었네. 목적지가 있어서 이동하다가 거대 마수를 우연히 만난 것 같았지. 으음, 자세한 건 직접 들어 봐야 알겠지만.”
“그렇습니까? 일단 그렇게라도 알리겠습니다.”
“자네는 리치몬드 후작령으로 사람을 보내서 로딘이라는 마법사를 조사하라고 지시하게.”
얼굴을 계속 가리고 있던 부분이 프란시스 탑주의 마음에 걸렸다. 왠지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설마 슬라본이나 발리스 노바인가?’
슬라본과 발리스 노바는 비밀스러운 집단이었다. 세상에는 그저 음모론의 주제로만 알려진 곳.
하지만 4대 마탑의 탑주 정도 되면 그들에 관한 정보도 알게 모르게 들어오기 마련이었다.
프란시스 탑주 역시 슬라본과 발리스 노바에 관해 알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실존하는 조직이며 가진 힘도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프란시스 탑주는 로딘이 그들 조직과 관련된 이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의심 가는 부분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건 아직 모르네. 확실해지면 말해 주겠네.”
“알겠습니다.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레녹스 왕국이면 세드리아 마탑의 영향이 짙은 곳이었다. 다른 마탑이 활동하려면 세드리아 마탑의 양해를 구하는 게 예의였다.
하지만 란데스 마탑은 예외였다. 그곳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생각이라면 미리 알리겠지만, 정보 조사 정도는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었다.
* * *
매튜는 새벽 새소리에 눈을 떴다. 어제 겪은 끔찍한 일이 떠올랐지만 맑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곧 정신을 차렸다.
“아! 몸이…… 아주 좋구나.”
일상을 살다 보면, 조금씩 피로가 쌓이고 근육의 자잘한 상처가 누적되기 마련이다. 이런 피로와 상처는 몸을 찌뿌둥하고 뻐근하게 만든다.
그런데 어제 로딘이 준 포션을 마시고 치유 마법을 받으면서 사소한 문제까지 다 해결되었다. 몸은 멀쩡하다 못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처럼 개운했다.
“매튜 씨, 일어났군요.”
“아! 제나 기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예. 좋은 아침이네요. 식사를 준비할 생각이에요?”
“물론입니다. 그게 제 일이니까요.”
매튜가 본능적으로 조리 도구를 살폈다. 그리고 옆 천막에 누워 있는 래리와 비앙카도 확인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다 나았으니까.”
“아! 그렇군요. 한데 사장님은?”
“아침 연공이요.”
제나가 마차 뒤쪽을 가리켰다. 마차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로딘이 아침 연공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카리스 기사님이 안 보이는데요?”
“잠깐 어딜 좀 갔어요. 며칠 후에 돌아올 거예요.”
“어제 다친 것 같았는데.”
매튜는 어제 카리스의 팔이 덜렁거리는 걸 봤다. 제나의 몸에도 자잘한 상처가 많았다. 래리와 비앙카는 말할 것도 없었고.
매튜는 순박한 얼굴과 다르게 눈썰미가 상당히 좋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빨리 배우는 편이었다.
“그것도 다 나았어요.”
“다행이군요. 모든 게 원래 자리로 돌아와서. 아! 저는 아침 식사 준비 좀 하겠습니다.”
매튜는 바쁘게 움직여 아침 준비를 끝냈다. 어제의 사고를 고려해서, 아침 식사의 양은 평소보다 많았다.
냄새에 이끌린 듯, 래리와 비앙카가 눈을 떴다. 눈을 비비며 나오던 비앙카가 매튜를 쳐다봤다.
“매튜 아저씨.”
“잘 잤어?”
“예. 헤헤.”
식사는 즐거웠다. 어제의 일 때문에 일부러 더 밝은 척하는 게 보였지만, 그래도 거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동을 위해 마차를 타자 평소와 달라진 게 보였다. 특히 비앙카가 달라졌다.
래리는 원래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단 1분이라도 훈련을 더 해야 직성이 풀리는 훈련광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마차에서 팔 굽혀 펴기 한다거나, 눈을 감고 검술을 떠올리는 모습은 이전 모습과 같았다.
하지만 비앙카는 마차만 타면 조잘조잘 떠들어 대는 아이였다. 마부석에 앉은 제나에게 쉬지 않고 말을 걸고, 주변에 보이는 모든 풍경에 감탄사를 늘어놓는 게 평소의 모습이었다.
어제 받은 충격이 심경에 변화를 준 걸까? 예전의 시끄럽고 가볍던 모습이 싹 사라졌다.
마차에 타자마자 비앙카는 룬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말을 걸어도 알아듣지 못했다. 제대로 집중한 모습이었다.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네.’
마차는 제나와 매튜가 각각 1대씩 맡아서 몰았다. 로딘은 비앙카와 함께 제나가 모는 마차에 타고, 아티팩트를 궁리하고 있었다.
‘래리가 쓸 아티팩트는 카리스와 제나가 가지고 다니는 장비를 참고하면 될 것 같은데. 비앙카가 문제네.’
평범한 아티팩트를 사서 주고 싶진 않았다. 비앙카에게 맞는 스태프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직 1서클이라…… 마법의 성향을 몰라.’
3서클, 정식 마법사가 되면 마법사의 성향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전투 마법 유독에 강한 마법사, 치유 마법에 특화된 마법사, 지원형 마법이 잘 맞는 마법사처럼.
특수군 양성소의 교관들은 전부 전투 마법에만 능했다. 치료소에는 치유 마법사가 따로 있었지만 그들은 교관이 아니었다.
‘난 특별한 성향이 없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습만 보면 비앙카는 전투 마법사 체질은 아니었다. 전투 마법보다 지원 형태의 마법을 더 편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하지만 마법 성향은 정식 마법사가 될 때까지 계속 바뀐다. 3서클 마법사가 되기 전에는 어떤 마법사가 될지 예단할 수 없었다.
“공자님, 어제 싸웠던 곳입니다.”
“그래?”
“한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그러게. 많네.”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도 많아서 마차를 댈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마차는 저쪽으로 빼자.”
“예. 공자님.”
거대 마수를 죽인 곳과 한참 떨어진 곳에 마차를 세웠다. 제나가 마차를 세우자 매튜도 옆에 마차를 붙였다.
“사장님. 사람들이…….”
“거대 마수를 보러 온 모양이야.”
“아!”
로딘이 마차 밖으로 나왔다. 래리와 비앙카도 따라붙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형. 마수는요?”
“저쪽에…… 근데 다 타서 볼 게 없을 텐데.”
시커멓게 타긴 했지만 거대한 형체를 몰라볼 정도는 아니었다. 직접 싸운 로딘에겐 의미가 없어도, 래리와 비앙카에게는 괜찮은 경험이 될 터였다.
“형이 죽였어요?”
“카리스하고 제나 도움을 많이 받았어. 볼래?”
“그래도 돼요?”
“안 될 건 뭐야? 가자.”
로딘이 래리와 비앙카를 이끌었다. 제나는 당연히 로딘의 옆에서 호위에 들어갔다.
매튜는 살짝 고민하더니, 후다닥 따라붙었다. 매튜도 거대 마수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거대 마수를 보는 건 쉽지 않았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었다.
“에혀. 답답하네. 모여 봐.”
“여기로요?”
“이쪽으로. 매튜도 여기로 모이세요.”
로딘은 제나까지 모두 똘똘 뭉치게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로 손도 잡도록 했다.
“오빠. 이상해.”
“잠깐만. 플라이.”
로딘은 자신을 포함한 일행 전부를 하늘로 띄워 올렸다. 7서클 마법사가 되면서 가능해진 일종의 잡기였다.
“어? 어…….”
“오, 오빠!”
“형!”
“넘어지지는 않을 거야.”
매직 핸드를 미리 준비해 뒀다. 혹시나 넘어지거나 떨어지더라도, 큰 부상으로 이어질 일은 없었다.
로딘 일행은 거대 마수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훌쩍 넘어서, 거대 마수 바로 위에 멈췄다.
갑자기 등장한 로딘 일행을 보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거대 마수의 사체를 지키고 있던 란데스 마탑의 마법사도 놀란 얼굴로 로딘 일행을 쳐다봤다.
“우와! 형! 엄청나게 커요.”
“오빠. 댑따 크다. 이걸 오빠가 잡았다고?”
래리와 비앙카는 시커멓고 거대한 마수의 사체를 보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크다, 크다 말만 들었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너무 커서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마수가 아니라 거대한 성채처럼 보였다.
“말했잖아. 카리스하고 제나 도움을 많이 받았다니까.”
“아닙니다. 죽이는 건 공자님 혼자 하신 거나 다름없습니다.”
“겸손은.”
일행은 한참이나 거대 마수의 사체를 구경했다.
그렇게 10여 분.
한참 구경하던 비앙카가 로딘의 소매를 슬쩍 당겼다.
“왜?”
“마법으로 태운 거지?”
“응. 그렇지.”
“나도 언젠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열심히 해. 불가능한 건 없으니까.”
구경은 할 만큼 했다. 슬슬 돌아갈 때가 되었다. 래리와 매튜도 공중에 떠 있는 게 불편한 눈치였다.
“이제 내려가자. 난 프란시스 탑주를 보러 갈 생각인데 너희들은 어떻게 할래?”
“같이 봬요, 형.”
“로딘 오빠. 나도. 감사하다고 인사해야 해.”
“저는 그냥 따르겠습니다. 사장님.”
뜻이 하나로 모였다. 로딘은 마력을 움직여, 일행을 사람들이 없는 곳에 내렸다.
“제나. 안내 좀 해 줘.”
“예.”
제나는 어제 란데스 마탑이 어느 쪽에 야영지를 꾸렸는지 봤다. 그곳으로 로딘을 이끌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