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31)
마법을 품다 (131)
로딘은 제나를 따라가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대부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몇 명은 얼굴이 익숙했지만 어제 프란시스 탑주의 뒤를 따라온 마법사일 뿐이었다.
“저들이야?”
“맞는 것 같은데.”
“젊은 사람이라던데.”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나이를 모르겠네.”
로딘 일행을 보며 주변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로딘은 자기 얘기라는 걸 눈치를 챘지만 못 들은 척했다.
처음에는 란데스 마탑에서 잡았다느니, 테비아 왕국의 중앙 기사단이 잡았다느니 명확하지 않은 소문이 중구난방 떠돌았다. 심지어 자기가 사냥했다며 나섰던 용병단도 있었다.
하지만 란데스 마탑에서 젊은 마법사가 거대 마수를 잡았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4대 마탑 중 1곳의 선언에, 근거 없는 소문은 싹 사그라들었다.
대신 젊은 마법사의 존재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특히 귀족들은 자기 진영으로 포섭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거대 마수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저기…….”
“더 다가오면 베겠습니다.”
한 귀족의 접근을 제나가 막아섰다. 단호한 태도에 귀족들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로딘은 눈길만 슬쩍 줬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관심이 없다는 표시였다.
“이곳입니다. 공자님.”
“수고했어, 제나.”
제나를 따라 이동하기를 한참.
거대 마수가 있는 곳에서 적당히 떨어진 공터에 도착했다. 줄 맞춰 수십 개의 천막이 세워져 있었고, 그 주변으로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멈추시오! 이곳은 란데스 마탑이 자리 잡은 곳입니다.”
“프란시스 탑주를 뵈러 왔습니다. 어제 만난 마법사라고 알려 주세요.”
“어제?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란데스 마탑의 마법사들이 로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곧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하필 로딘의 앞을 막았던 마법사는 어제 그 자리에 없었던 마법사였다. 당연히 로딘의 소개가 있기 전까진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마법사 대부분은 어제 로딘과 일행들을 봤던 마법사들이었다. 후드를 푹 눌러쓴 로딘과 아름다운 외모의 여자 호위. 흔히 볼 수 있는 조합이 아니었다.
* * *
잠시 후, 로딘 일행은 천막 가장 안쪽으로 안내되었다.
로딘이 움직일 때마다 주변 마법사들이 힐끔거렸다. 로딘이 7서클 대마법사라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다.
대마법사는 모든 마법사가 바라 마지않는 꿈의 경지였다. 이 자리에 있는 마법사 전부가 어린 시절 대마법사를 꿈꾸고 마탑에 들어왔다.
비록 일부는 현실을 깨닫고 대마법사가 되길 포기했지만, 여전히 많은 마법사는 아직도 대마법사가 되기 위해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어서 오게.”
어제 봤던 프란시스 탑주가 웃으며 로딘 일행을 맞았다. 가식이 느껴지지 않는 미소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어제 복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비앙카와 래리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매튜는 어색하게 서 있다가, 함께 감사를 표했다.
“복수를 대신 해 줬다? 허허허. 자네가 그리 말한 건가?”
“틀린 말은 아니잖습니까.”
“글쎄. 난 자네가 할 복수를 내가 뺏은 게 아닌지 걱정했는데.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네. 여기 앉게.”
프란시스 탑주가 자리를 권했다. 푹신한 의자가 마주 보는 형태로 놓여 있었다.
로딘은 의자를 잠깐 보다가,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들은 이 자리가 불편할 것 같은데요.”
“흐음, 밖에 아이들이 놀 만한 곳이 있을지 모르겠군.”
“그냥 두면 잘 놀 겁니다.”
“그런가? 하렌.”
프란시스 탑주의 부름에 어제 본 적이 있는 마법사가 들어왔다. 6서클 마법사로 50대 후반 혹은 6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이였다.
“부르셨습니까?”
“둘이 얘기를 좀 하려고 하네. 자네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 주겠나?”
“예. 탑주님.”
“흐음, 제나. 아이들 데리고 밖에서 기다려 줘.”
제나도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제나가 있으니, 아이들의 안전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차를 좀 준비해 봤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군.”
“잘 마시겠습니다.”
로딘은 준비된 차를 딱 한 모금만 마시고 내려놨다.
취향이 아니었다. 어지간하면 참고 마시려고 했는데 너무 쓰고, 텁텁했다.
“입맛에 안 맞는 모양이구먼.”
“죄송합니다. 성의를 무시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건 너무 맛이 없네요.”
로딘은 입에 넣는 거라면 ‘맛’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식사든 간식이든 혹은 음료가 됐든. 맛이 없으면 입에도 대기 싫었다.
“허허허. 차가 입에 안 맞을 수는 있지. 그런데 자네 리치몬드 후작령에서 왔다고 했지?”
“예. 리치몬드 후작령이 집입니다.”
어제 캔드릭 장로와의 악연을 얘기하면서 리치몬드 후작령을 언급했다. 굳이 숨길 일도 아니라서 솔직하게 털어놨다.
“영지전을 피해 온 건가?”
“영지전이요? 리치몬드 후작령이 영지전을 치릅니까?”
“몰랐나? 로튼 후작가와 영지전이 예정되어 있네. 2달 후라네.”
로딘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리치몬드 후작령을 떠날 때만 해도 그런 분위기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물론 알았다고 해서 일정에 변화가 생길 일은 없었을 것이다. 리치몬드 후작가의 영지전보다 마가렛을 고향 땅에 묻는 게 로딘에겐 더 중요했다.
“전혀 몰랐습니다. 영지전이라……, 그런데 상대가 로튼 후작가라고요? 거기는 메이븐 왕국 귀족 아닙니까?”
“맞네. 메이븐 왕국의 귀족이지. 리치몬드 후작가는 레녹스 왕국의 귀족이고. 아주 골치 아픈 영지전이 성사됐다네.”
“다른 나라 귀족하고도 영지전을 치를 수 있습니까?”
“그래서 골치 아프다고 말한 걸세.”
로딘은 다른 나라의 귀족끼리 영지전이 벌어졌다는 얘기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프란시스 탑주의 반응을 보면 이런 일 자체가 처음이거나 희귀한 일인 듯했다.
“신기하네요.”
“자넨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구먼.”
이번 영지전은 흑마법의 저주가 시발점이었다. 로튼 후작가가 준 선물로 비롯된 분쟁이 자칫 왕국끼리의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중재하기 위해 몇 곳의 마탑이 나섰고, 결국 두 후작가의 영지전으로 이어졌다. 양측도 찬성한 일이었다.
이 영지전에는 두 후작가의 명예와 자존심 외에 막대한 배상금도 걸려 있었다. 누구든 패한 쪽은 족히 3년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지금 돌아가서 영지전에 손을 보태긴 힘들어서요.”
“하긴, 영지전이 아닌데 이곳으로 왔다면 용건이 있는 거겠지.”
별 관심을 안 보이니, 프란시스 탑주도 자세히 설명하길 포기했다. 대신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예. 헤덴스로 가야 합니다.”
“헤덴스 지방의 헤덴스 말이군. 파로마 산맥이 목적지인가?”
“아닙니다. 헤덴스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이 목적지입니다. 마을 이름이 떡갈나무 마을이라고 하더군요.”
헤덴스에는 지방의 이름을 딴 헤덴스란 도시가 있었다. 대도시는 아니지만, 이 근처에서는 가장 큰 도시였다.
마가렛의 고향은 헤덴스에서 남쪽으로 반나절 정도 가면 나오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이곳에서는 4일 정도 거리였다.
“혹시 자네, 슬라본 소속인가?”
“슬라본이요? 뒷골목에서나 나도는 음모론 말입니까? 고대 어쩌고 하는…….”
“아닐세. 그냥 해 본 말일세.”
프란시스 탑주의 갑작스러운 물음에도 로딘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왜 이런 걸 물어보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마저 완벽했다.
로딘은 연기를 잘했다. 능청스럽게 흘려 넘기고, 시치미를 떼는 데에는 도가 텄다.
“슬라본이 실존한다면, 그들은 고대 마법에 능하겠군요.”
“아닐세. 그냥 해 본 말이니 개의치 말게. 그보다 으음…….”
프란시스 탑주는 말을 멈추고 잠시 로딘을 바라봤다. 푹 눌러쓴 후드 때문에 턱만 간신히 보였다.
‘젊어.’
목과 턱을 보면 늙은 마법사는 분명 아니었다. 자신은 60세에 대마법사가 됐는데, 눈앞의 로딘이라는 자는 아무리 많이 쳐줘도 30대였다.
‘동생들도 어렸지.’
10대 초, 중반으로 보이는 아이 2명을 자식이 아니라 동생이라고 칭했다. 동생들하고 나이 차이가 20년씩 나진 않을 것이다.
‘얼굴이 보고 싶은데.’
정말 궁금하지만 당장 궁금증을 풀 방법이 없었다. 아쉽게도 후드를 벗어 달라는 요구도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금기였다.
‘목소리도 신기하고.’
로딘이라는 젊은 마법사의 목소리는 묘한 부분이 있었다.
목소리의 톤은 부드러운데 소리가 정말 또렷하게 들렸다. 읊조리듯 작게 얘기해도, 내용이 귀에 팍팍 박혔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탑주님.”
“내 말이 잔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네. 하지만 나 역시 대마법사가 됐을 때, 알리어스에게 같은 얘기를 들었네. 그저 후배 대마법사에게 해 주는 얘기라 생각하게.”
알리어스라는 이름은 로딘도 들은 적이 있었다. 4대 마탑 중 1곳인 넬라 마탑의 전대 탑주로,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사인은 노화. 100세 이상을 살았던 그는 자기 마탑에서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시는지……, 무서운데요.”
“하아, 무서운 얘긴 아닐세. 으음, 자네는 막 대마법사가 됐지. 아마 세상 전부가 만만하게 보일 거야. 못 할 것도 없다고 느끼겠지.”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지금 제 눈앞에 계신 프란시스 탑주님만 해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아닙니까?”
“맞네. 아무튼 내가 하려는 말은 세상은 정말 넓다는 걸세. 자네가 아는 것보다 무서운 강자들도 많으니, 항상 조심하게.”
로딘은 프란시스 탑주의 걱정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 슬라본과 발리스 노바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함부로 설치고 다니다가는 슬라본, 발리스 노바를 만날 수 있다는 충고였다.
로딘은 의미를 이해했지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였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자네 얼굴을 보여 달라고 하진 않겠네. 가렸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대신 이건 물어봐야겠네. 자네 혹시 범죄자인가?”
“살면서 죄를 지은 적이 없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수배가 되어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그런가? 알겠네.”
그 정도면 됐다. 프란시스 탑주는 눈앞의 젊은 마법사 로딘에게 더는 잔소리하지 않기로 했다.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물어보게.”
“4대 마탑이 알고 있는 룬어는 몇 자나 되는 겁니까?”
“허어.”
로딘의 질문에 프란시스 탑주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전혀 예상을 못 한 질문이었다. 살면서 들어 본 적이 없는 질문이고, 들을 거라고 예상조차 해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금기는 아니었다. 룬어를 하나하나 물어보는 거라면 모를까, 마탑에 보관된 룬어가 몇 개인지 정도는 비밀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무리한 질문입니까?”
“아닐세. 짐작하고 있는 이들도 많을 테니, 딱히 숨길 이유도 없네. 10,000자가 조금 넘는다네.”
대답을 들은 로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것과 비슷했다. 동시에 자신이 아는 룬어가 4대 마탑이 아는 룬어를 오래전에 추월했음을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더는 없는가?”
“예. 그 정도면 됩니다.”
사실 로딘은 4대 마탑이 룬어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크게 궁금했던 건 아니다. 4대 마탑이 아는 룬어가 10,000자 정도일 거라는 건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괜히 왔나?’
프란시스 탑주의 초청을 받아들여 이곳에 왔으니, 뭔가 하나쯤은 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평소에 생각했던 걸 슬쩍 물어봤을 뿐이었다.
그 외에는 용건이 없었다. 유일한 수확이라면 프란시스 탑주에게 슬라본, 발리스 노바에 관한 정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정도였다.
“이제 차나 들……, 허허. 식사는 했는가?”
“아직 점심 전입니다.”
“그럼, 나가서 같이 식사나 하세. 자네 동생들도 부르고.”
“예.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가니, 때마침 식사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로딘은 제나와 매튜, 동생들을 불러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 맛있는 식사는 아니었다. 란데스 마탑 근처에는 소금을 파는 곳이 없는지, 모든 음식이 다 싱거웠다.
“좋은 얘기 감사합니다.”
“아닐세. 잔소리하는 늙은이가 된 게 아닌지 걱정이구먼.”
“아닙니다. 부탁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게. 내 재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주겠네.”
“오늘 하루만 란데스 마탑 소속이 되면 안 되겠습니까?”
로딘의 부탁에 프란시스 탑주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 주변에 잔뜩 몰린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람이 불편한가 보구먼.”
“뚫고 지나갈 자신이 없네요. 다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루 말고 1년은 어떤가? 그 정도는 있어야 사람들이 잠잠해질 듯한데.”
“감사합니다.”
로딘은 주변에 잔뜩 몰린 사람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모였다. 그들 전부가 자신을 보고 있는데, 식사하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좋군. 오늘부터 1년 동안 자넨 우리 란데스 마탑 소속일세. 하렌, 다이스. 우리의 신입을 위해 길을 열어 주게.”
“알겠습니다. 탑주님.”
“그럼 가 보시게. 인연이 닿으면 또 보겠지.”
프란시스 탑주와의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란데스 마탑의 야영지 주변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는 일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