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32)
마법을 품다 (132)
거대 마수를 죽인 마법사의 등장에 사람들이 잔뜩 몰렸다. 하도 많은 사람이 몰리니 귀족이고 뭐고 없었다. 서로 밀고, 밀리고 난리였다.
오랜만에 등장한 신성이었다. 로딘 이전에 대마법사가 된 사람이 프란시스 탑주이니, 10년 만에 등장한 대마법사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마탑 소속이 아니라는 게 컸다. 소속이 없다는 건 얼마든지 자신이 고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안면이라도 트기 위해, 통성명이라도 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귀족들은 새로 등장한 대마법사를 고용하기 위해 온갖 제안을 준비해 두었다.
“후우, 쉽지 않네.”
란데스 마탑의 이름값이 컸다.
마탑에 소속되었다는 말이 나오자 귀족들이 일제히 빠졌다. 란데스 마탑 소속 마법사들이 길을 열자 귀족 아닌 이들도 접근하지 못했다.
란데스 마탑에서 열어 준 길을 통해 비교적 편하게 마차로 돌아왔다.
웅성대는 사람들 사이를 걷는 것조차 몹시 신경이 쓰였지만, 직접 시달리는 것보단 나았다.
“형이 대마법사였어요?”
“이번에 됐어.”
“몰랐어요.”
“나도 몰랐어. 로딘 오빠. 최고!”
래리와 비앙카는 로딘이 1년쯤 전에 6서클 마법사가 됐다는 것도 몰랐다. 로딘이 자랑하고 다니지 않아서였다.
그들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로딘이 여전히 5서클 마법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6서클도 아니고 7서클 대마법사가 된 것이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가자. 여기서 해 떨어지면 귀찮아져.”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이곳으로 올 때처럼 제나와 매튜가 마부석에 앉아 마차를 몰았다. 마차는 느릿하게 움직여, 인파가 가득한 장소를 벗어났다.
* * *
마차가 출발한 후에도 한동안은 사람들이 따라왔다. 멀리서 ‘로딘!’ 하고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로딘은 무시했다. 일일이 반응하면 더 피곤해지는 법이다.
하루가 지나자 따라붙던 사람들이 확 줄어들었다. 또 하루가 더 지나자 더는 따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마차 2대만 한적하게 이동하고 몇 시간 후, 로딘 일행은 헤덴스 지방의 관문 도시 헤덴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헤덴스는 도시로 분류되지만, 그렇게 큰 곳은 아니었다. 유동 인구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파로마 산맥을 연구하려는 마법사와 학자들이 꽤 많이 상주하고 있었다. 서쪽의 성벽과 가까운 주택가는 전부 마법사들과 학자들의 거처라고 봐도 무방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장님.”
“아직 목적지까지는 더 가야 하지 않아요?”
“예. 맞습니다. 남쪽으로 몇 시간 더 가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마가렛이 태어난 마을은 공식적인 이름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마을에 떡갈나무가 많아서 떡갈나무 마을이라고 불렀고, 어떤 사람은 언덕에 만들어진 마을이라며 언덕 마을이라고 불렀다.
그나마 많이 쓰이는 이름은 떡갈나무 마을이었다.
“곧 해가 떨어질 것 같으니, 오늘은 헤덴스에서 묵죠. 전 용병 길드에 들러 봐야겠어요.”
“사장님 여관을 찾아볼까요?”
“번거롭게 그럴 필요 있나요? 가면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죠.”
성문을 통과해 느릿하게 마차를 몰았다.
성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여관이 잔뜩 모인 거리가 나왔다.
“형. 도시가 작다.”
“그렇지? 여관도 몇 곳 안 되네.”
여관 거리라고 불리는 곳인데도, 여관의 숫자는 고작 8곳에 불과했다. 다행히 마법사와 학자 때문인지, 절반은 고급 여관이었다.
“어디로 갈 거예요?”
“제일 큰 곳. 저기로 가자.”
여관의 별채에 여장을 풀었다. 약초 향이 강하게 풍기는 특이한 여관이었다.
“여관 분위기가 신기해.”
“이곳은 과거 베르켄 상단의 초대 상단주가 약초 상회를 차렸던 곳입니다.”
비앙카의 반응에, 별채를 안내한 직원이 여관의 역사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익숙한 이름이 나와서, 로딘도 관심을 가졌다.
“베르켄 상단이요? 중앙 대륙 3대 상단 중 1곳이라는 그 상단 말입니까?”
“예. 맞습니다. 600년 전, 이 여관 자리에 약초 상점을 차렸죠. 지금은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그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별채 곳곳에 장식처럼 늘어놓은 기구들을 볼 수 있었다. 약초를 말릴 때 사용하는 오래된 골동품이었다.
“베르켄 상단의 초대 상단주라면 레이놀즈 베르켄 맞습니까?”
“오!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레이놀즈 베르켄은 헤덴스 지방 출신입니다. 이곳에서 불과 사흘 떨어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지요.”
“이곳에서 약초를 팔고, 다른 나라로 진출한 거군요.”
“맞습니다. 이곳에서 벌어들인 자금으로 중앙 대륙 최고의 상단을 키워 냈죠.”
그 후에도 도시 헤덴스에 남은 베르켄의 흔적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해 줬다.
헤덴스 광장 중앙에 있는 커다란 탑은 베르켄 상단에서 300년 전에 만들어 준 구조물이었다. 남북으로 이어진 11킬로미터가량의 넓은 길 역시 500년 전 베르켄 상단에서 돈을 들여서 놓아 준 도로였다.
“좋은 얘기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랜만에 레이놀즈 베르켄 님에 관해 아는 사람을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별채를 안내한 직원이 사라졌다. 로딘 일행도 우르르 여관을 나왔다.
로딘은 래리, 비앙카, 제나와 함께 상업 지구로 향했다. 매튜는 알아볼 게 있다며, 따로 사라졌다.
“대장간부터 가자.”
“좋은 걸 사야겠어요.”
래리는 세드리아 마탑의 마법사들과 싸우면서 방패가 망가졌다. 벌써 2년째 쓰고 있는 무기와 갑옷, 방패라 이번 기회에 싹 다 바꾸기로 했다.
“좋은 것보다 이것저것 사용해 보면서 네 손에 맞는 걸 찾아라. 나중에 아티팩트로 만들어 줄게.”
“알았어요. 형.”
대장간에서 래리는 여러 무기와 방패를 들어 봤다. 갑옷도 10벌 정도 입고 벗었다.
“이게 좋겠어요.”
“이렇게 주세요.”
“예. 손님.”
마음에 드는 방패와 무기, 갑옷을 선택했다. 무기는 전보다 가벼워졌고, 방패는 커졌다. 갑옷은 두껍고 무거워졌다.
그간 익숙해졌던 모든 걸 바꿨다. 당장 장비에 적응하는 것부터 관건이었다.
하지만 래리가 익힌 방어 중심의 검술에 맞는 장비였다.
래리의 장비를 바꾸고, 로딘은 마법 물품 상점을 들렀다.
“하급 마나석 500개 있나요?”
“500개요? 그만큼은 없고, 잠시만요. 어디 보자. 100개 있는데. 뭘 할 생각인데 이렇게 많이 사쇼?”
대도시보다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다. 마나석이면 마법 재료 중에서 쓰임새가 많은 재료인데도, 500개를 한 번에 사기가 힘들었다.
“연구 좀 해 보려고요.”
“아하, 연구. 그러면 말이 되지. 이거라도 사시겠소?”
“예. 주세요.”
“연구 성공하길 빌겠수.”
로딘은 다섯 군데의 마법 물품 상점을 더 돌아서, 하급 마나석 500개를 샀다. 이 동네 물량을 거의 싹 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스릴도 좀 필요한데, 주괴로 들어온 게 있나요?”
“있지. 작은 주괴가 딱 두 개 있는데. 어떻게…… 둘 다 사실 거?”
“예. 둘 다 주세요.”
필요한 재료를 다 사고, 마법 물품 상점을 나왔다.
로딘은 마정석 연구를 어느 정도 마쳤다. 지하 유적지에서 가져온 마도 제국의 서적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완성은 아니었다. 이제는 직접 만들어 보면서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로딘 오빠!”
“왜? 사고 싶은 거 있어?”
“나 책 좀 샀으면 하는데.”
“그래? 서점이 아까 이쪽에 있었는데.”
비앙카는 서점에서 10권이 넘는 책을 샀다. 그런데 책이 죄다 시집이었다.
“갑자기 시집?”
“시가 쓰고 싶어졌어.”
“광장에서 본 것 때문에?”
“응. 멋있어.”
상업 지구로 오는 길에 광장에서 음유 시인들의 공연을 보게 됐다. 헤덴스 출신이라는 레이놀즈 베르켄의 이야기였는데, 꽤 실감 나는 목소리 연기였다.
로딘도 처음 보는 장면이라, 5분 정도 넋을 놓고 공연을 봤다.
그때 장면이 인상 깊었던지 비앙카가 시에 꽂혔다. 오래 가진 않겠지만 한동안은 시인이 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뭐든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오빠. 이제 여관으로 돌아가는 거야?”
“너희들은 돌아가. 난 용병 길드에 들러야겠어.”
리치몬드 후작령의 소식도 궁금하고 자신에 대해 돌고 있을 소문도 알고 싶었다. 지금 로딘이 소문을 듣기 가장 좋은 곳은 용병 길드였다.
“응. 난 시 읽고 쓸 거야.”
“저도 몸 좀 풀어야겠어요.”
“가자.”
일행을 여관에 두고 로딘은 혼자 나왔다. 만일을 생각해서 제나도 래리와 비앙카 곁에 두었다.
“제나. 애들 잘 부탁해.”
“걱정하지 마세요. 마스터.”
제나는 평소 장난도 잘 치고 가벼운 성격 같지만, 자기가 전투 인형이며 호위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았다. 그래서 마스터인 로딘을 혼자 두는 걸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았다. 거의 회복이 됐을 카리스가 로딘의 목걸이 수납공간에 대기하고 있어서였다.
싸울 일이 생기면 로딘은 언제든지 카리스를 소환할 수 있었다. 즉, 혼자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카리스와 함께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로딘은 물어물어 용병 길드를 찾아갔다.
용병 길드는 건물도 컸고 내부에 사람도 많았다. 거대 마수 때문에 모인 용병들이 아직 흩어지지 않고 남아,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실례합니다.”
“예. 용병이신가요?”
“예. 정보가 필요해서 왔습니다.”
용병 길드는 용병에게 정보를 팔거나 제공한다. 엄청난 기밀을 알려 주는 건 아니고, 각 나라 각 지방의 용병 길드 내에서 도는 소문을 모아서 알려 주는 정도였다.
“용병패를 주시겠어요?”
“여기요.”
“예. 용병패 받았습니다. 로……, 어? 설마…… 저기 혹시 거대 마수…… 맞습니까?”
카운터 직원이 용병패와 로딘을 계속 번갈아 쳐다봤다. 얼굴에는 믿을 수 없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예. 맞을 겁니다.”
“앗!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직원이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채 3분도 지나지 않아서, 40대 정도 되는 남자가 후다닥 달려 나왔다.
“대마법사를 뵙습니다. 헤덴스의 용병 길드 지부장 아르켄입니다.”
아르켄이라는 용병 길드의 지부장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모습에 용병 길드 안에 있던 용병들의 시선이 쏠렸다.
“대마법사?”
“거대 마수 잡은 그 마법사?”
“진짜? 용병이었다고?”
사람들의 놀람 가득한 소리가 로딘의 귀를 파고들었다.
로딘은 한숨을 쉬며 가볍게 혀를 찼다. 로딘은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아르켄 지부장의 호들갑 때문에 주변이 너무 소란스러워졌다. 아르켄 지부장의 과도한 예의도 부담스러웠다.
“예. 반갑습니다.”
“여긴 어쩐 일로…….”
“리치몬드 후작령에 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로딘은 자신에 관한 소문을 묻겠다는 생각은 버렸다. 이곳에 있던 용병들의 반응만 봐도 어떤 수준인지 알 만했다.
“제가 아는 건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궁금한 건 영지전 상황입니다. 리치몬드 후작가가 로튼 후작와 영지전을 치른다는 얘길 들어서요.”
“아! 지금은 배상금 결정 때문에 협의 중입니다.”
두 영지는 거리가 가깝지 않았다. 영지전의 승자가 땅, 광산 같은 걸 얻어 봐야 거리 때문에 경영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번 영지전에는 오직 돈만 걸기로 했다. 배상금 액수 책정에 있어서 양측의 의견은 크게 갈렸다.
의외로 로튼 후작가에서 최대한의 배상금을 책정하길 바랐다. 그 금액이 무려 5,000만 골드. 패하면 족히 10년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에 비해 리치몬드 후작가에서 바라는 배상금은 500만 골드였다. 적당한 금액을 책정해서 무난하게 승리한 후, 조용히 마무리하는 게 리치몬드 후작가의 목적이었다.
“차이가 10배면 꽤 크군요. 리치몬드 후작가에서는 패배를 염두에 둔 겁니까?”
“그렇게 보진 않습니다. 대외적으로 오히려 리치몬드 후작가가 우세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한데 리치몬드 후작가에서는 이런 일로 시끄러워지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군요.”
“이번 일의 발단은…….”
로딘은 이번 영지전이 쇠약의 저주 때문에 벌어졌다는 걸 알게 됐다. 막연하게 예상하던 일이었다.
“결국 피해자인 리치몬드 후작가는 조용히 수습하길 바라고 가해자인 로튼 후작가는 일을 크게 키우는 거군요.”
“예. 아직 이유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흐음, 승리할 자신이 있는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정보 감사합니다.”
감사를 표하고 로딘이 손을 내밀었다. 신분 확인을 위해 건넸던 용병패를 돌려 달라는 의미였다.
“아! 잠시만요. 로딘 마법사님.”
“제게 볼일이라도 있나요?”
“대마법사님 용병패 갱신 문제 때문에 그런데.”
“갱신이요? 기간이 다 된 건가요?”
로딘이 알기로 용병패의 갱신 기간은 10년이었다. 용병패를 받은 지 이제 2년 정도밖에 안 된 자신은 갱신 대상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백금패로 올리는 문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백금패는 용병패 중에서 제일 높은 등급 아닌가요?”
“맞습니다. 현재는 2명뿐이고, 대마법사님이 백금패를 받으면 3번째 백금패의 주인이 됩니다.”
로딘이 아는 백금패의 주인은 1명뿐이었다. 주로 동대륙에서 활동한다는 검사였는데, 그사이에 1명이 늘었나 보다.
“제가 백금패의 조건이 되나요?”
“백금패의 조건은 간단합니다. 초인이면서 용병일 것. 이것뿐입니다.”
7서클 마법사이거나 마스터에 이른 검사가 용병이면 백금패를 받을 수 있었다. 간단하지만, 아무나 달성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아! 그렇군요. 그럼 2번째 백금패의 주인도 최근에 초인이 된 거군요.”
“아닙니다. 그분은 원래 마스터에 이른 검사였습니다. 벤슨이라는 용병인데, 용병계에 들어온 게 대략 1년 전입니다.”
“벤슨? 벤슨 타이크 말입니까?”
“예. 아시는군요. 서대륙에서 꽤 유명한 기사였다고 합니다.”
아르켄 지부장의 말대로 벤슨 타이크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로딘이 서대륙에 있을 때, 서대륙에 단 2명뿐이었던 마스터 검사였다.
국적은 란데르트 왕국으로, 작위는 무려 공작이었다. 용병이 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전쟁 때문인가?’
원래 전쟁은 당연한 일을 당연하지 않게 만들고, 말도 안 되는 일을 당연하게 만드는 요물이다. 벤슨 타이크 공작이 용병이 된 것도 그런 일 중 하나일 뿐이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용병패가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나요?”
“예. 열흘. 아니, 닷새만 시간을 주시면 됩니다.”
“제가 일이 있어서 내일 헤덴스를 떠납니다. 며칠 안으로 다시 들를 테니, 그때 용병패를 받겠습니다.”
“예. 백금패 준비해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동패를 돌려받고, 용병 길드를 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움직이는 경로에 따라 계속 따라붙었다.
‘불편하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