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33)
마법을 품다 (133)
여관으로 돌아오니, 비앙카는 시를 쓰고 있었다. 옆에 시집을 두고 잠깐 읽고 떠오르는 걸 쓰고. 그러고는 한껏 무게를 잡고 시를 읊었다.
“……걸음걸음 남긴 흔적. 그 안에 담긴 사랑이라. 로딘 오빠. 어때?”
“그래. 열심히 해라.”
역시나 애는 애였다. 캔드릭 장로 때문에 죽을 뻔하고, 한동안 말수가 줄어들었는데 며칠이나 지났다고 그새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카리스가 돌아왔다. 정확히는 로딘이 목걸이의 보관소에 있던 카리스를 소환했다.
“몸은 좀 어때?”
“다 나았습니다.”
“아직 좀 남은 것 같은데.”
“이 정도는 지내다 보면 저절로 사라집니다.”
카리스가 마부석에 앉았다. 제나도 마부석에 앉자, 매튜가 마차를 몰 필요가 없어졌다.
“매튜, 어땠어요?”
“남부는 화장하고 가루를 가까운 강에 뿌리고, 북부는 가루를 나무에 묻는다고 합니다.”
어제 외출한 매튜는 헤덴스 지방의 장례 풍습을 조사하고 다녔다.
똑같은 헤덴스 지방인데도, 북부와 남부의 장례 풍습이 달랐다. 마가렛의 고향은 도시 헤덴스의 남쪽이니 화장 후 뼛가루를 강에 뿌리면 되었다.
“화장은 해야겠네요. 카리스, 제나 일단 출발하자.”
“예. 공자님.”
마차가 출발했다. 성문 근처에서 로딘이 잠깐 마차를 세웠다.
“헤덴스가 말이 싸다고 하던데. 몇 필 살까?”
“공자님, 말이 더 필요하십니까?”
“비앙카한테 기마 훈련 좀 제대로 시켜 보려고.”
지금도 래리는 말을 탈 줄 알았다. 나이는 어린데 상당히 수준급의 기마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비앙카는 기마술을 처음 배울 때 몇 번 낙마한 후, 지금은 포기한 상태였다. 억지로 훈련을 시키지도 않았고, 비앙카도 기마술에 별 흥미가 없었다.
“나? 말 무서워.”
“내가 잡아 주면 되잖아.”
“그래도 싫어.”
비앙카는 여전히 말을 무서워했다. 로딘이 매직 핸드로 추락할 때마다 잡아 줬는데도, 그때의 아찔했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사장님. 말은 여기보다 어머니 고향이 더 쌀 겁니다. 여기 있는 말 중에서 상급 말은 전부 어머니 고향에서 온 거랍니다.”
“그래요?”
“원래 말을 잘 키우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합니다.”
“잘됐네요. 거기서 말 좀 사면 되겠어요. 지금 말도 바꿀 수 있으면 바꾸고.”
다시 마차를 출발시켰다. 성문의 줄이 길지 않아서, 금세 도시 헤덴스를 나올 수 있었다.
겨울 같지 않게 날씨가 화창했다. 햇볕도 제법 따뜻해서, 마치 봄에 여행을 나온 것 같았다.
“해가 진다. 아! 붉은 노을. 그 아름다운…….”
“비앙카, 뭐 해?”
“시 쓰고 있어.”
“또?”
고작 몇 시간도 안 됐는데, 비앙카는 벌써 8번째 시를 쓰고 있었다. 한데 완성한 시는 없고 죄다 조금 쓰다 그만둔 미완성뿐이었다.
“영감이 탁 떠올랐다고.”
“아직 해도 안 떨어졌는데 노을이 왜 나와?”
“래리 오빠는 감성이 메말랐어.”
오늘, 이 대화도 벌써 3번째였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듣고 있자니, 로딘도 슬슬 지겨웠다.
“공자님, 저 마을 같습니다.”
“후우, 카리스가 날 살렸다.”
지겹던 시와 래리, 비앙카의 싸움을 끝내는 목소리였다.
로딘은 누가 말릴세라 마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뒤이어 마차도 차례로 멈춰 섰다.
마차는 언덕을 넘어가는 길 위에 있었다. 그 언덕 아래로 그림처럼 아름다운 초록빛 들판이 펼쳐졌다.
“와! 로딘 오빠! 멋지다.”
“그러게.”
“시상이 떠오른다. 푸른 꽃, 그 아름다운…….”
“에혀. 비앙카, 아름다움 좀 그만 찾고. 제나! 카리스, 내려가자.”
비앙카의 시는 항상 ‘아름다움’이 어쩌고로 이어진다. 하도 들었더니 이젠 비앙카보다 먼저 시를 읊을 수도 있었다.
마차는 언덕을 내려가 마을로 접어들었다. 100가구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낯선 마차의 등장 탓인지 마을 사람들이 집에서 나와 마차를 구경했다. 마차의 뒤를 졸졸 따라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좋은 곳이네.”
“예. 사장님. 평화로운 분위깁니다.”
“여관은 없을 것 같은데.”
“말을 사러 온 상인들이 묵는 곳이 있답니다. 숙박료를 지불하면 묵을 수 있을 겁니다.”
매튜의 말대로 얼마 가지 않아서 넓은 공터를 끼고 있는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집 앞에는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환영합니다. 떡갈나무 마을의 촌장 레아스라고 합니다. 상인입니까?”
“상인은 아닙니다. 이곳 출신인 분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려고 왔습니다.”
“우리 마을 출신이요?”
“예. 마가렛이라고 몇 달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고향에서 장례를 치르길 바라서,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촌장 레아스는 ‘마가렛’이라는 말을 몇 번 읊조렸다.
기억에 없는 이름이었다. 마을에 아주 잠깐 머문 사람이거나, 아주 오래전 사람인 듯했다.
“저희 마을 장례는 땅을 쓰지 않습니다.”
“예. 들었습니다. 화장 후에 강으로 흘려보낸다고요.”
“예. 강은 저 너머에 있습니다. 화장 절차는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다만.”
“당연히 수고비는 드려야죠.”
마법으로 화장해도 되지만, 로딘은 사람을 쓰기로 했다. 낯설고 이질적인 마법보다는 고향의 방식으로 마가렛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면, 오늘은 이곳에 묵으십시오. 숙박료는 하루에 10골드입니다. 식사는 따로 계산하셔야 합니다.”
숙박료는 사람 숫자가 아니라, 이 장소를 통째로 빌리는 비용이었다. 사람 숫자가 적든 많든, 가격은 같았다.
“알겠습니다.”
로딘은 바로 숙박료를 건넸다. 그리고 마차를 숙소 앞의 공터에 댔다.
“화장은 빠르게 하는 게 좋겠죠? 내일 오전 중으로 진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했더니, 마음이 풀어진 모양이다. 로딘은 평소보다 훨씬 일찍 잠이 들었다.
장례는 무사히 끝났다. 화장에 하루가 걸렸고, 다음 날 매튜가 직접 마가렛의 뼛가루를 강에 뿌렸다.
비앙카는 마가렛의 시신을 보자마자 울더니, 뼛가루를 뿌릴 때는 대성통곡을 해 댔다. 옆에서 로딘과 래리가 달래도 소용없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4일이 흘렀다. 매튜가 로딘을 찾아왔다.
“매튜.”
“죄송합니다. 사장님.”
“그렇게 결정한 겁니까?”
“예. 제가 있을 곳은 여기인 것 같습니다.”
4일간 고심하던 매튜는 이곳 떡갈나무 마을에 남기로 했다. 로딘으로선 아쉬운 결정이었다.
“알았어요. 그동안 저와 동생들을 도와줘서 고마웠어요.”
“아닙니다. 제가 한 것보다 더 많은 대가를 받았습니다. 사장님께는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매튜는 떡갈나무 마을에서 말을 돌보는 일을 할 예정이었다. 리치몬드 후작령에서부터 말을 관리하는 법을 배웠는데, 이곳은 훨씬 전문적이었다.
떡갈나무 마을은 기후와 식생 등 모든 면에서 말을 키우기 최적의 장소였다. 이곳에서 키우는 말의 숫자가 수천 마리인데, 상등품 아닌 말이 없었다.
특히나 전투마를 전문적으로 키우는 작은 목장이 있는데, 이곳의 말은 중앙 대륙에서 최고로 인정받았다.
매튜를 보내고, 로딘은 래리와 비앙카를 불렀다. 그리고 매튜가 이곳에 남기로 했음을 알렸다.
“그러면 우리는요?”
“어?”
“로딘 오빠, 리치몬드 후작령에 있을 때 난 집 밖으로도 잘 안 나갔는데. 여기하고 차이도 없잖아.”
“형,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굳이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갈 필요가 있나 싶어요.”
도심지에 있어야 하는 사람은 래리와 비앙카가 아니라 로딘이었다. 그때그때 필요한 물품을 사기에는 시골보다 도시가 나았다.
“여기 남고 싶다고?”
“형은 어때요? 형이 가겠다면 따라가고요.”
“흐음, 잠깐만 생각 좀 해 보자.”
로딘은 떡갈나무 마을과 도시 헤덴스를 머릿속에 그렸다.
마차를 타고 한나절이지만, 작정하고 움직이면 3~4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헤덴스는 너무 작은 도시야.’
헤덴스는 파로마 산맥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마법사들이 꽤 모이는 곳이었다. 이들은 거의 헤덴스의 거주하면서 자기 연구를 이어 가고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전부 학자 성향의 마법사라는 점이다. 아티팩트 제작과 관계없는 이들이라, 아티팩트 재료의 유통량이 많지 않았다.
얼마 전에도 헤덴스에서 하급 마나석 500개를 한 번에 사지 못해서, 여러 군데의 마법 물품 상점을 돌아야 했다. 이런 곳에선 그때그때 필요한 재료를 수급하기 어려웠다.
‘텔레포트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좋은데.’
7서클 마법인 텔레포트는 공간을 이동하는 마법. 사용할 수만 있다면, 헤덴스가 아니라 더 번화한 도심을 오가면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7서클 마법인 텔레포트는 비전이었다. 4대 탑 중에서도 단 2곳. 크로노아 마탑과 넬라 마탑만 텔레포트 마법의 주문을 알고 있었다.
프란시스 탑주가 있는 란데스 마탑도 텔레포트 마법의 주문을 몰랐다.
자기 마탑의 비전을 남에게 알려 주는 곳은 없다. 텔레포트 마법의 주문을 아는 크로노아 마탑과 넬라 마탑 역시 비전 마법의 외부 유출을 철저하게 통제한다.
‘결국 혼자서 연구해야 한다는 건데.’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는 룬어가 이미 20,000자를 넘긴 지 오래였다. 프루발의 환영 수업을 들으며, 룬어를 조합하는 방법도 배우고 있었다.
‘당장 쓸 수는 없다는 거지.’
텔레포트는 공격 마법과 궤가 달랐다. 이런 지원 형태의 마법은 써 보지 않은 사람에겐 낯설어서, 좀 더 많은 시행착오를 각오해야 했다.
‘공간이라……, 공간.’
쉽지 않겠지만, 도전해 볼 만했다. 아니, 어떻게든 텔레포트 마법은 쓸 수 있어야 했다.
텔레포트 마법을 쓰면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건 곧 길에서 헛되이 버리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목숨을 구하는 회심의 한 수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리치몬드 후작령을 가긴 가야 하는데.”
리치몬드 후작령에서 2년 가까운 시간을 살았다. 리치몬드 후작가와 딱히 엮인 건 없지만 영지민으로도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 했다.
게다가 화산 폭발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잘못한 게 있으니 어느 정도는 보답해야 마음이 놓였다.
로딘은 그 도리를 영지전 승리라고 생각했다. 2년 가까이 신세를 지고 화산까지 터졌으니, 떠나기 전에 마지막 선물은 해 주고 싶었다.
“혼자 고민할 필요 없지.”
로딘은 바로 래리와 비앙카를 불렀다. 그리고 리치몬드 후작령으로 돌아갈 것임을 전했다.
“그럼 떠날 준비 하면 돼요?”
“너희들은 여기 남아도 돼. 리치몬드 후작령이 영지전을 치르는데, 거기에만 참가하고 떠날 생각이다.”
리치몬드 후작령을 떠난다는 말에 래리와 비앙카의 표정이 밝아졌다.
둘은 리치몬드 후작령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은 너무 많고 어딜 가든 복작거렸다. 시골 마을에서 살았던 둘에게는 불편한 환경이었다.
“그럼 로딘 오빠, 여기로 돌아오는 거예요?”
“너희들이 여기 남으면 그래야지.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로딘은 텔레포트 마법을 완성하기 전까진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이곳은 너무 시골이라, 이래저래 불편한 게 너무 많았다. 아공간 팔찌가 있다지만 만능의 도구는 아니었다.
아공간은 결국 보관을 위한 마법. 필요한 물건이 들어 있어야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미래에 어떤 재료가 필요할지 지금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다 아공간 팔찌에 넣어 두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아! 그건 좋아요. 그런데 저도 영지전은 보고 싶은데.”
“여기는 영지전이 안 벌어져요?”
“헤덴스 지방은 왕실의 직할령이야. 영지전이 벌어질 확률은 거의 없어.”
왕국 법에는 왕실 직할령도 영지전이 가능하긴 했다. 왕권을 노리고 있다면, 충분히 벌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테비아 왕국은 왕실의 힘이 상당한 강한 나라였다. 귀족들의 힘으로 왕실과 힘 싸움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저도 가요. 형.”
“나도 갈래.”
“괜찮겠어? 그냥 여기 남아 있어도 되는데.”
로딘은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강요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곳에 남든 함께 떠나든 래리와 비앙카의 선택이라면 존중할 생각이었다.
“영지전도 보고 싶고 아직은 형하고 헤어질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나도. 로딘 오빠한테 배울 것도 많은데, 가긴 어딜 가요?”
“그래. 그러면 슬슬 정리해라. 내일 떠날 거다.”
“예.”
잠깐의 소란이 있었지만 결국 매튜만 남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비앙카는 이곳의 풍경을 보며 많이 아쉬워했지만, 남겠다고 말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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