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34)
마법을 품다 (134)
다음 날, 로딘은 떡갈나무 마을을 떠났다.
매튜와의 작별은 아쉬웠다. 마가렛을 보낸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쉬움이 더 컸다.
비앙카는 매튜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래리가 옆에서 ‘누구 죽었냐?’라고 핀잔을 줬지만 비앙카의 울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로딘은 매튜와 급하게 작별을 나누고, 마차를 출발시켜야 했다.
비앙카는 마차가 출발하고 한참 후에야 울음을 그쳤다.
가는 길에 도시 헤덴스에 들러서 용병패를 받았다. 분실하면 재발급 비용이 500골드나 되는 백금패였다.
“로딘 오빠. 이거 멋있다.”
“나도 나중에 크면 용병이 될 거예요.”
래리가 처음으로 꿈을 얘기했다.
용병.
중앙 대륙에서 활동한다면 괜찮은 직업이었다. 위험하긴 해도, 대우는 나쁘지 않았다. 또 용병을 바라보는 이곳 사람들의 인식이 좋은 편이었다.
반면 서대륙에서 용병은 갈 데까지 간 막장 인생이 선택하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정착민보다 못하고, 노예보다 좀 나은 수준이랄까.
중앙 대륙과는 대우와 인식이 천양지차였다.
“도시에 들르면 용병 심사 한번 받아 볼래?”
“벌써요? 저 아직 1급 검산데, 용병패를 받을 수 있어요?”
“용병 중에 너보다 약한 사람도 많아. 한번 도전해 봐.”
“예. 해 볼게요.”
모든 용병 길드가 용병 심사를 하는 건 아니었다. 용병 길드 중에도 규모가 있는 곳에서만 용병 심사를 진행했다.
아쉽게도 리치몬드 후작령으로 가는 길에는 용병 심사를 할 만큼 큰 도시가 몇 곳 없었다. 테비아 왕국의 도시 중에는 헤덴스와 페튼 두 도시뿐이었다.
그중 헤덴스는 이미 지나쳐서 기회가 없었다. 래리의 용병 심사를 받겠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페튼까지 가야겠네.”
“우리가 여기로 오면서 들렀던 곳이에요? 왜 기억에 없지?”
“짧게 들러서 그래. 저녁에 도착해서 잠만 자고 아침에 출발했으니까. 가서 보면 생각날 거다.”
마차는 대화하는 와중에도 계속 움직였다. 카리스와 제나는 적당한 속도로 마차를 몰며, 최대한 흔들림이 적도록 신경 썼다.
사흘 후, 로딘은 거대 마수를 잡았던 장소를 지나가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에 잔뜩 몰렸던 사람은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당연히 거대 마수도 란데스 마탑에서 거둬 간 상태였다.
“잠시. 혹시 로딘 마법사님의 마차가 맞습니까?”
마차 앞으로 6명으로 이뤄진 무리가 나타났다. 모두 같은 색깔의 로브를 입었고, 로브에는 동일한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목소리를 들은 로딘이 마차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처음 말을 걸었던 로브 차림의 남자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대마법사를 뵙습니다.”
“예. 또 뵙네요. 마법사 하렌 님 맞으시죠?”
“대마법사께서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신다니. 영광입니다.”
이미 몇 번이나 들은 이름이었다. 프란시스 탑주가 매번 제일 먼저 부른 이름이라,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데 무슨 일로.”
“거대 마수의 사체는 저희 란데스 마탑에서 연구할 예정입니다. 해서 그 값을 치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로딘이 프란시스 탑주를 처음 만났을 때, 란데스 마탑에서 거대 마수의 사체를 처리해 주기로 했다. 귀족들은 전리품으로, 마탑은 연구용으로 거대 마수의 사체를 탐낼 거라는 말도 했었다.
“빠르군요. 몇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저희 마탑이 직접 소유하기로 해서요. 멜빈.”
마법사 하렌이 길옆을 보며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멜빈이라 불린 사내가 마차를 몰고 나타났다.
로딘은 마차에서 진한 마력의 향기를 맡았다. 마나의 파동도 느껴졌다. 마력, 마나와 관련된 물건이 확실했다.
“마차에 실린 게 전부 돈은 아닐 것 같은데요.”
“예. 탑주님께서는 로딘 마법사님에게 돈은 별 의미가 없을 거라며, 아티팩트 재료를 챙겨 주라 하셨습니다. 해서 100만 골드 가치의 재료를 모아 가져왔습니다. 만약 돈을 원하신다면 말씀하십시오.”
프란시스 탑주는 단 며칠 만에 로딘의 뒷조사를 어느 정도 끝냈다. 그 정보 안에 리치몬드 후작령에서 아티팩트를 꽤 많이 팔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탑 같은 단체도 아니고 개인이 이 정도의 아티팩트를 팔았다면 어마어마한 부자일 거라는 게 프란시스 탑주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돈은 의미 없다고 보고, 아티팩트 재료를 챙겨 준 것이다.
“아니요. 돈보다는 재료가 낫죠. 프란시스 탑주님에게는 잘 받았다고 전해 주세요.”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먼 여정 무탈하게 마무리하시길 빌겠습니다. 그럼.”
란데스 마탑에서 나온 마법사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남은 건 말 1필이 이끄는 마차 하나뿐이었다.
“뭐가 있을지 궁금하네.”
일단은 마차에서 말을 분리해서, 기존에 타던 마차의 뒤에 묶었다. 그리고 란데스 마탑에서 보낸 마차는 통째로 아공간에 넣었다.
“공자님. 출발할까요?”
“응. 가자.”
마차는 다시 동쪽으로 움직였다. 목적지는 꽤 큰 규모의 용병 길드가 있는 페튼이었다.
* * *
도시 페튼에서 래리의 용병 심사를 받겠다는 계획은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대가 안 맞아서 어쩔 수 없었다.
도시 페튼은 한 달에 한 번만 용병 심사를 하는데, 도착했을 때가 하필이면 용병 심사 바로 다음 날이었다. 다음 심사를 받으려면 한 달을 통으로 기다려야 했다.
마차는 페튼을 뒤로하고 다시 출발했다. 목적지는 레녹스 왕국의 서쪽 도시 아시르였다.
“아시르까지 가야겠네.”
“아시르도 우리가 머물렀던 곳이죠?”
“응.”
아시르는 페튼보다 더 큰 도시였다. 용병 길드의 규모도 컸고, 정기적으로 용병 심사도 받을 수 있었다.
아시르의 용병 길드의 용병 심사는 한 달에 3번이었다. 그래서 정말 운이 안 좋아도 10일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기억이 잘 안 나네요.”
“하루도 안 머물고 떠났으니까 기억이 잘 안 날 거다. 아! 우리하고 꽤 오래 함께했던 상단주 기억나? 크라우드 상단의 다니엘 상단주.”
“에이, 형. 당연히 기억하죠.”
“로딘 오빠. 저도 기억해요.”
래리와 비앙카는 다니엘 상단주뿐 아니라 그때 함께 지낸 크라우드 상단과 용병들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함께한 시간도 길었고, 함께하면서 마력석을 삼킨 트롤도 만났었다. 큰 사건이 있었던 만큼 둘에게 남은 기억도 강렬했다.
“그럼 기억하겠네. 크라우드 상단하고 헤어진 곳이 아시르였어.”
“아! 기억났어요.”
“맞아. 거기서 남쪽으로 내려간다고 했지.”
무역 도시이자 국경 도시인 아시르에서 크라우드 상단은 남쪽으로, 로딘 일행은 서쪽으로 갈라졌다.
당시에 로딘은 크라우드 상단이 거대 마수를 만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는데, 어쩌다 보니 자신이 거대 마수를 죽이게 됐다.
“아시르는 큰 도시야.”
“도시 크기는 기억이 안 나요. 그냥 다니엘 아저씨하고 헤어진 도시라는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어요.”
“래리 오빠도 그래? 나도 그래.”
마차는 계속 움직여 어느새 국경을 통과했다. 곧 넓은 평지가 나오고 저 멀리 높게 세워진 성벽이 보였다.
아시르는 레녹스 왕국이 테비아 왕국과 사이가 안 좋을 때는 군사 도시였다. 저 높은 성벽도 그때 세워졌다.
로딘 일행은 긴 줄을 기다렸다가 아시르에 들어섰다. 전에 왔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용병 길드부터 들르자.”
“형. 저 때문에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용병 길드는 여관 가는 길에 있어. 전에 봐서 알아. 나도 용병 길드에서 알아볼 게 있으니까.”
로딘은 전에 봐 둔 용병 길드 방향을 안내했다. 로딘의 손짓에 따라 카리스와 제나가 마차를 몰았다.
“공자님. 용병 길드가 보입니다.”
“이번 기회에 너희 둘도 신분 문제를 해결하는 게 좋겠다.”
“용병 심사를 받으라는 말씀입니까?”
“응. 전력을 다하진 말고. 그냥 용병패 받을 정도만 하면 돼.”
안 그래도 새로운 백금패 용병의 등장으로 용병계가 떠들썩했다. 카리스와 제나까지 마스터 인증과 함께 백금패를 받으면, 떠들썩함이 난장판으로 바뀔 수 있었다.
하물며 백금패 셋이 함께 다닌다? 용병계를 넘어서 대륙 전체가 주목할지도 몰랐다.
로딘으로선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신분이 없는데 용병패를 받을 수 있습니까?”
“내가 보증하면 돼.”
로딘은 현재 용병계에서 신원 보증으로 확실한 백금패 용병이었다. 용병 길드에서도 두말하지 않고 용병패를 발급해 줄 터였다.
“알겠습니다. 신청하겠습니다.”
용병 길드에 붙어 있는 마구간에 마차를 맡겼다. 말이 아닌 마차라 계류 비용을 내야 했다.
“래리, 안으로 들어가면 난 일단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내 존재가 네 심사에 영향을 줘서 좋을 거 없어.”
“알아요. 형 도움 없이 용병이 될게요.”
래리는 혼자 힘으로 용병이 되기로 했다. 그러자면 용병 심사를 신청할 때부터 용병 심사를 받는 날까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는 게 좋았다.
짤랑!
문을 밀고 들어가자 어서 오라는 듯이 방울 소리가 울렸다. 로딘이 먼저 앞장서서 카운터 직원에게 다가갔다.
“정보가 필요해서 왔습니다.”
“예. 정보 제공을 바라시는군요. 용병패를 주시겠어요?”
“여기요.”
“허업! 백…….”
“사일런트.”
로딘은 카운터 직원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사일런트로 차단했다.
시작부터 시선을 끌고 싶진 않았다. 카리스와 제나의 신분 보증과 해리의 용병 심사 날까지 되도록 조용히 지낼 생각이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괜찮습니다.”
“응접실로 가시겠습니까? 귀한 분을 위해 준비된 곳이 있습니다.”
“으음, 그러죠.”
로딘은 카리스와 제나 쪽을 힐끔 바라봤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래리와 거리를 두기 위해서 자리를 비우기로 했다. 이제 남은 일은 래리의 몫이었다.
응접실로 들어가서 잠깐 기다렸다. 한 5분 정도. 짧은 시간이 지나고, 지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후다닥 들어왔다.
“아시르 용병 길드의 지부장 셀라예요. 백금패를 뵈어요.”
“예. 반갑습니다. 굳이 지부장까지 나오지 않으셔도 되는데.”
“제가 좋아서 나온 거랍니다.”
아시르 용병 길드의 지부장은 상당히 젊은 여자였다. 아무리 높게 봐도 30살은 안 되어 보였다.
펑퍼짐한 엉덩이에 순둥순둥한 눈을 가진 옆집 아줌마 같은 인상이었다. 몸에 무기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몸속에 담긴 기운은 상당했다. 겉으로 드러난 살 속에도 꽉 압축된 근육이 있을 것만 같았다.
‘상당한 강자네. 5급? 그 정도 되려나?’
20대 후반에 5급 검사면 어마어마한 재능이었다. 잉그렘 제국에서 차기 마스터감이라 불렸던 페리오스 백작 못지않은 성장 속도였다.
“예. 그러시다면.”
“어떤 게 알고 싶어서 찾아오셨나요?”
“리치몬드 후작령에 관해서 알고 싶습니다. 특히 영지전에 관한 얘기요.”
“영지전은 다음 달 말일로 날짜가 잡혔어요.”
오늘이 15일이니, 영지전까지는 대략 45일 정도 남았다. 리치몬드 후작령까지 느긋하게 움직여도 10일이면 충분하니, 아직 여유가 있었다.
“혹시 로튼 후작가가 노리는 게 뭔지 알고 계십니까?”
“그건 알 수 없어요. 우린 정보 길드가 아니라서.”
“새로 등장한 백금패의 주인인 벤슨 타이크가 로튼 후작가에 가세한 건 아닌가요?”
로튼 후작가는 영지전 얘기가 나온 후 배상금 액수를 최대치로 올렸다. 그건 승리할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로딘은 로튼 후작가가 가진 패가 벤슨 타이크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6급 검사인 현 리치몬드 후작을 확실히 꺾을 무기는 마스터뿐이었다.
“예? 아하, 로튼 후작가가 배상금을 올리는 것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셨군요. 아닙니다. 백금패의 신상과 거취는 용병 길드 내에서 극비이긴 한데…… 뭐, 벤슨에 관해선 말해도 되겠죠.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아는 정보니까. 2대 백금패의 주인 벤슨은 서대륙에 있어요. 지금은 잉그렘 제국에 고용되어서 란데르트 왕국과 싸우고 있답니다.”
“잉그렘 제국에 고용됐다고요? 벤슨 타이크가?”
벤슨 타이크는 원래 란데르트 왕국의 공작이었다. 전쟁이 벌어진 후에는 최전방에서 잉그렘 제국과 치열하게 싸웠다. 당연히 잉그렘 제국과는 원수지간이었다.
그런데 이젠 잉그렘 제국 편에 서서 고국인 란데르트 왕국과 싸우고 있다니.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란데르트 왕국의 왕실과 벤슨 타이크 공작의 사이가 틀어질 만한 어떤 일이 벌어졌다. 그 일이 뭔진 모르지만, 벤슨 타이크는 칼을 거꾸로 잡을 정도로 란데르트 왕국의 왕실에 분노하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재미있는 상황이죠.”
“당사자는 재미있지 않을 것 같은데.”
왠지 벤슨 타이크가 불쌍했다. 자기 나라를 상대로 싸우겠다고 결정할 정도면 엄청난 배신을 당했을 터. 지금은 하루하루가 지옥에 사는 기분이지 않을까.
“오호호, 그거야 그렇겠죠. 또 필요한 정보가 있나요?”
“아니요. 됐습니다.”
“아시르 용병 길드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리치몬드 후작령에 원인 모를 전염병이 돌고 있습니다.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전염병? 흐음. 알겠습니다.”
로딘은 전염병이라는 말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이미 전염병처럼 보였던 쇠약의 저주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리치몬드 후작령에서.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진 건 자연스럽지 않았다. 어차피 로튼 후작가가 이미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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