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58)
마법을 품다 158화(158/158)
마법을 품다 (158)
말로는 아라미아 백작가가 알아서 할 거라고 했지만 로딘은 거대 와이번은 그냥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언제나 기준은 눈에 보이느냐 아니냐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무슨 짓을 저지르든 알 바 아니었다. ‘못 봤다.’ 혹은 ‘몰랐다.’라는 한마디면 충분한 변명이 되니까.
하지만 지금 머무는 아라미아 백작령에 나타난 이상, 놈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죽이든 쫓아내든 어떻게든 놈을 눈 앞에서 치워야 했다.
‘아이들도 위험하고.’
인간의 무서움을 알게 된 거대 와이번의 다음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인간을 포기하고 다른 먹이를 찾거나, 만만한 아이와 노인을 노리거나.
노인은 그냥 있을 땐 성인 남성과 구분이 잘 안 된다. 특히 저 높은 곳에서 보면 더더욱 비슷해 보인다.
놈이 여전히 인간을 먹이로 본다면, 결국 노릴 대상은 아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거대 와이번 때문에 사냥도 포기하고 돌아온 거야?”
“아니요. 리자드맨이 안 와서요.”
“저와 카리스가 리자드맨 서식지로 갔던 게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그때 이후로 저와 카리스가 있는 곳만은 리자드맨이 피하고 있습니다.”
“으음, 잘됐네. 안 그래도 머리 좀 식히고 싶었는데.”
텔레포트 마법을 구현해 냈지만, 아직 완성은 아니었다. 그런데 완성을 목표로 계속 텔레포트 마법만 계속 파자니, 좀 지겨운 느낌이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투명화 마법이나 환영 마법이면 되잖아.”
“형. 투명화 마법하고 환영 마법은 좀 고서클 마법 아니에요? 아티팩트로 만들 수 있어요?”
“응. 있어. 투명화 마법이 담긴 아티팩트는 예전에 본 적이 있거든. 환영 마법은 뭐 원래 그리 어렵지 않고.”
그렇게 예전은 아니었다. 투명화 아티팩트가 사용된 걸 본 지는 1년이 넘었지만, 아티팩트를 직접 확인해 본 건 리치몬드 후작가의 저주를 해결하던 날이었다.
그날 해리슨 공자의 벽장에 있던 아티팩트를 모두 확인하면서, 투명화 마법이 담긴 아티팩트도 함께 분석했다.
“쉽게 만들 수 있어요?”
“이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까진 만들 수 있을 거야.”
“와! 형은 아티팩트를 엄청 쉽게 만드네요.”
“맞아. 로딘 오빠 대단해. 아티팩트도 마법 물품 상점에서 보기 어려운 것들만 만들어.”
비앙카는 질병 치유 포션을 만들면서 마법 물품 상점을 종종 드나들게 됐다.
완성된 질병 치유 포션을 파는 일도 직접 했고, 다시 질병 치유 포션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사는 일도 혼자서 잘만 해냈다.
그러면서 다른 마탑에서 만든 아티팩트를 종종 보게 됐는데, 로딘이 만든 것보다 나은 건 하나도 없었다. 담긴 마법의 수준도 그렇고, 위력이나 사용 횟수도 비교가 안 되었다.
“아무튼 오늘 용건은 끝났지?”
“사냥을 포기했으니, 전 훈련 좀 할게요.”
“난 마법 연습.”
래리와 비앙카 별채의 공터로 나갔다. 서로 적당히 떨어져서, 각자 자기 훈련을 시작했다.
* * *
로딘은 응접실 창가에 앉아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투명한 창 너머로 하늘 높이 뜬 검은 점이 보였다.
“왜?”
“공자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 제나한테 한 말 아니야. 지토한테 한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지토가 하늘에 있는 검은 점을 본 순간부터 계속 움찔거리고 있었다. 10여 일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오늘 유독 심하게 칭얼댔다.
“어쩌라고?”
―꾸에에엥!
옷으로 있던 지토가 본체로 돌아오더니, 로딘을 쏘아봤다. 뭔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뭐라는 거야?”
―꾸엥! 꾸엥! 꾸에에엥!
지토가 앞발과 뒷발, 날개까지 휘둘러 가며 로딘에게 뭔가를 설명했다.
상당히 직관적인 설명이라, 로딘은 바로 알아들었다.
설사 동작이 없더라도 지토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이해했을 것이다. 지토하고는 정신이 연결된 상태라, 어지간히 복잡한 의미가 아닌 이상은 그냥 알 수 있었다.
“안 돼.”
―꾸엥! 꾸에엥!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아는데, 안 돼. 싸움도 못 하는 게 뭘 하겠다고.”
지토의 동작은 자신이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거대 와이번과 싸우겠다는 의미였다. 거기에 더해서, 자기가 멋지게 활약하는 모습이나 지켜보라는 의미도 덧붙었다.
―꾸에엥! 꾸엥! 꾸엥.
“힘자랑 좀 하지 마.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넌 전투에 적합한 환수가 아니라고.”
―꾸엥! 꾸에엥! 꾸엥!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 때문인지, 지토가 갑자기 팔다리를 부풀렸다. 마치 근육질의 남자가 자기 근육을 자랑할 때 보이는 동작과 흡사했다.
“근육도 없는 게 근육 자랑을 왜 하냐?”
―꾸에엣!
“아, 안 돼. 너 다친다니까.”
―꾸엥! 꾸에에에엥!
계속 거절하자, 지토가 머리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양발로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잡더니 마구 잡아당겼다.
“야! 그만해. 머리는 놓고 얘기해. 알았어, 네 말 알겠고. 싸우게 해 줄게.”
―꾸엥?
“알았다니까.”
툭툭!
그제야 지토가 머리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창문을 앞발로 두드렸다.
“지금은 안 돼. 밤에 하자. 밤에.”
―꾸엥?
“약속은 지켜. 그러니까 기다려. 어두워지면 그때 움직이자. 알았지?”
―꾸.
지토가 한참 고민하는 척하더니 인심 쓴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로딘은 지토의 황당한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
로딘이 아는 환수는 절대 환수 소환사의 지시를 어기지 못한다. 환수 소환사의 몸에 작은 위해(危害)도 끼칠 수 없고, 환수 소환사가 안 된다고 한 일을 하게 해 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그런데 지토는 환수가 안 한다는 행동을 죄다 하고 있었다. 특히 머리카락을 양발로 잡아당길 때는 어이가 없었다.
통증보다는 ‘이게 가능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운다인도 비슷한데.’
계약한 둘 전부 말을 지지리도 안 들었다. 자신이 계약자가 맞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 * *
해가 진 후부터 지토가 창 앞을 어슬렁거렸다. 자기가 산중의 왕이라도 되는 듯, 어깨를 잔뜩 부풀린 모습이었다.
―꾸엥?
“기다려. 자정까지.”
―꾸엥.
지토의 어깨가 푹 꺼졌다. 맥이 빠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10분 정도가 흐르자, 또다시 산중의 왕처럼 어깨를 치켜올렸다. 어슬렁거리는 모양새가 먹이를 앞에 둔 포식자 같았다.
“아직 아니라니까.”
―꾸엥!
“보채지 좀 마. 에혀, 내가 키우는 애들이 2명인 줄 알았는데, 3명이었…….”
―히히힛.
“그래, 넷이었구나.”
운다인이 옆에서 지토의 동작을 따라 하고 있었다.
어깨를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는데 거기에 심통이 난 지토가 꼬리로 운다인을 후려쳤다.
철썩!
하지만 물로 만들어진 운다인은 지토의 공격에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다.
적이라면 모를까, 소환의 주체가 로딘으로 같은 사람인 이상 둘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힘들었다.
―꾸에에엥!
“아직 아니라고.”
지토는 어깨를 부풀렸다 꺼뜨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동안 로딘은 프루발의 환영 수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꾸에에엥!
“음? 자정인가?”
―꾸엥!
“그래. 나간다. 나가. 지토, 넌 그냥 본체로 있어라.”
옷으로 변하려는 지토를 말리고, 로딘은 적당한 로브를 꺼내 입었다. 어둠에 걸맞은 짙은 갈색의 로브였다.
“인비져빌리티. 플라이. 가자.”
―꾸엥.
투명화한 상태로 아라미아 백작령의 성벽을 훌쩍 넘었다. 로딘을 알아차린 사람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아라미아 백작령은 원래도 검문이 심하지 않았던 곳이다. 야간 경계도 마찬가지로 허술했다.
“어디 있는지 찾아봐.”
―꾸엥!
성벽을 나서자마자 지토를 하늘로 날렸다.
지토는 주변을 크게 돌더니 한동안 한자리에 머물렀다. 찾기가 힘든 모양이다.
로딘은 가까운 나무에 등을 기대고 차분하게 기다렸다.
한참 후, 지토에게 신호가 왔다. 로딘은 시야를 공유하고 지토가 보는 곳을 함께 확인했다.
“바위산인가?”
아라미아 백작령의 남쪽에 있는 작은 산에 거대 와이번이 쉬고 있었다.
놈은 커다란 바위를 이용해서, 절묘하게 몸을 숨겼다. 야간이라 어둡기까지 해서 집중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것 같았다.
“저 커다란 놈이 저렇게 숨다니. 주변 확인 좀 해보자.”
지토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바위산은 아람 강과 멀지 않았다. 아람 강의 주변에는 경계병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들키지 않고 싸우는 건 힘들겠네.”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싸우다 들릴 굉음이 전해지기에는 충분한 거리였다.
“가자.”
로딘은 거대 와이번이 있는 방향으로 비행했다. 거리가 꽤 있어서, 가는 데 10여 분은 걸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토는 거대 와이번 주변에 잠깐 머물더니, 이내 아래로 내려꽂혔다. 로딘이 오는 걸 기다리지도 않고 전투를 시작한 것이다.
“누굴 닮아서 저렇게 성격이 급하지?”
로딘도 속도를 올렸다. 빠르게 날아가는 동안 바위산 쪽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굉음은 적막을 깨고 주변으로 퍼졌다. 아라미아 백작령에서도 그 소리를 들었다.
땡땡땡!
타종이 울리고, 어둠에 잠겼던 아라미아 백작령이 깨어났다.
경계병들은 자기가 들은 소음을 보고했고, 자고 있던 기사들은 장비를 갖추고 나왔다.
그 시간에도 지토와 거대 와이번은 계속 싸우고 있었다. 어느새 로딘도 둘이 전투를 벌이는 현장에 도착했다.
“하아, 저런 식으로 싸우나?”
지토의 전투는 속도로 시작해 속도로 끝났다.
거대 와이번보다 훨씬 빠른 움직임으로 모든 공격을 다 피했다. 그러면서 화살보다 더 빠르게 쏘아져, 거대 와이번의 기다란 목 정중앙만 노렸다.
“한 점만 노리네.”
반면 거대 와이번은 힘과 덩치로 지토를 압살하려 들었다. 어떻게든 구석으로 몰아서, 딱 한 방을 제대로 때리는 게 놈의 목적이었다.
“빠르네.”
지토는 거대 와이번의 모든 공격을 여유롭게 피했다. 로딘이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속도 차이가 컸다.
“흐음.”
―꾸엥!
―카아아악!
서로 괴성을 지르면서 싸웠지만, 지토의 포효는 그냥 귀여웠다. 차라리 소리를 안 내느니만 못했다.
“이기긴 하겠다.”
거대 와이번의 목덜미에는 이미 꽤 깊은 상처가 있었다. 지토가 첫 기습으로 꽤 큰 상처를 만들었고, 그 후에도 같은 곳을 몇 번씩 반복 공격해서 상처 부위가 더 깊어졌다.
목은 급소.
작든 크든 일정 깊이 이상의 상처가 생기면, 거대 와이번은 죽은 목숨이었다.
―카아아악!
―꾸에에엑!
“지토야, 울음소리는 따라 하지 말자. 민망하다.”
―켕!
둘은 한참 동안 싸웠다. 주변의 바위가 부서지고, 굉음이 밤하늘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근데 쟤들은 멀쩡한 날개 놔두고 왜 바닥에서 싸우지?”
날개를 아예 안 쓰는 건 아니었다. 지토와 거대 와이번 둘 다 쇄도할 때는 날갯짓을 했다. 바람을 밀어서 속도를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저 넓은 하늘에서 싸우는 것보다 제약이 심했다. 주변의 바위가 다 큼직큼직해서, 바닥에서 움직이다 부딪히는 일도 잦았다.
“전투가 길어지네. 지토! 좀 도와줘?”
―꾸에엥!
“알았다. 1 대 1 실컷 해라.”
로딘은 아예 가까운 바위에 앉아서, 싸움을 관람했다. 지토가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아서, 마음 놓고 구경할 수 있었다.
* * *
동쪽 지평선이 조금씩 밝아졌다. 어느새 아침이 오고 있었다.
“슬슬 끝나 가네.”
지토와 거대 와이번의 전투가 드디어 마무리될 기미가 보였다.
거대 와이번의 목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흘렀다. 지토가 기어이 거대 와이번의 목을 꽤 깊게 뚫어서 치명상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출혈을 막으려고 거대 와이번이 목을 움츠렸지만, 의미 없는 짓이었다.
지토는 그 틈을 노리고, 거대 와이번의 다리를 공략하고 있었다.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상처를 낼 목적이 아니었다. 계속 때리고 때려서 거대 와이번을 쓰러뜨릴 목적이었다.
“낭만적인 1 대 1 아주 자~알 봤다.”
―꾸에엥!
거대 와이번은 출혈에 신경 쓰느라 자세가 불편해졌다. 그사이에 집요하게 다리를 노린 지토에 의해 결국 중심을 잃었다.
쿵!
거대 와이번이 쓰러지면서, 목이 크게 흔들렸다.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지토. 고생했다.”
―꾸에엥!
아직 거대 와이번이 죽은 건 아니었다. 쓰러진 채로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하지만 지토가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남은 건 그저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로딘이 쓰러진 거대 와이번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지토는 거대 와이번의 머리 쪽으로 가더니,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발로 밟……지는 못했다. 다리가 짧아서 엉성한 자세가 만들어졌다.
“뭐 하냐?”
―꾸엥.
지토가 거대 와이번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날갯짓을 시작했다.
파닥거리는 모습이 지렁이를 본 닭 같았다.
“넌 참~ 한결같이 멋이 안 사는구나.”
―꾸에에에엥!
“알았다. 나와. 마무리하게.”
거대 와이번이 죽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다. 벌써 해가 뜨는 중이었다.
지금쯤이면 아라미아 백작령에서도 병력이 출발했을 것이다. 시간을 더 끌면 그들과 불편한 충돌을 일으킬 수 있었다.
―꾸엥.
“매직 핸드.”
로딘은 거대 와이번의 몸에 다른 상처를 내기보다 이미 있는 상처를 벌리는 선택을 내렸다.
마법의 손이 목을 양쪽으로 잡고 당겼다. 마력을 잔뜩 주입하자, 거대 와이번의 목에 생긴 상처가 크게 벌어졌다. 그 사이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곧이어 거대 와이번의 숨이 끊어졌다. 사인은 과다 출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