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7)
마법을 품다 (17)
전공이 결정됐지만, 면담은 계속 이어졌다.
반년 동안 양성소에서 지냈는데 어떠했느냐? 동기들과의 관계는 어떠냐? 싸운 적이 있느냐? 괴롭힘당한 적이 있느냐? 어떤 수업이 좋았나?
여러 질문을 받았다. 로딘은 그때그때 가장 적절하다 생각되는 대답을 내놓았다.
“이거 받아. 앞으로 수업 일과표다.”
“어……, 열흘 단위로 반복되는 겁니까?”
일과표에는 딱 10일의 수업만 적혀 있었다. 그것도 반복되는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맞아. 너도 보면 알겠지만, 수학 수업이 4일이다. 룬어 수업도 4일이고. 마법 연상 수업과 마법 실습이 1일씩 있고. 이 수업을 10일 단위로 반복한다. 마법 전공 수업은 오전에 진행되니까, 절대 늦지 마라.”
“늦지 않겠습니다.”
“마법 실습은 네 위의 기수와 같은 시간에 수업을 듣는다. 못 보던 애들 있다고 놀라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세리온 교관이 손을 휘휘 저었다. 옆으로 빠지라는 뜻이었다.
로딘이 옆자리로 옮기자, 코리가 세리온 교관 앞에 앉았다. 너무 긴장해서 뻣뻣한 자세였다.
“107번. 긴장 좀 풀지?”
“긴, 긴장 안 했습니다.”
“그렇다고 치자. 네 재능은 정령술 쪽이 42점, 마력 쪽이 17점이다. 당연히 너는 정령술을 전공한다. 불만 있나?”
“없습니다. 저는 대륙 최고의 정령사가 되겠습니다.”
“그딴 거 바라는 사람 없다. 그냥 열심히만 해라.”
정령술을 전공할 거라는 건 코리도 이미 예상했다. 로딘이 그랬듯, 재능 차이가 워낙 커서 재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 후에 면담이 이어졌다.
로딘이 받은 질문과 비슷한 질문을 받았고, 코리는 더듬거리며 자기 생각을 말했다. 대체로 무난한 대답이었다.
면담이 끝나고, 코리도 일과표를 받았다.
로딘은 옆에서 코리가 받은 일과표를 힐끗 쳐다봤다.
‘어? 텅 비었네.’
코리의 일과표 역시 10일 단위였다. 그런데 9일은 아무것도 안 적혀 있고, 딱 하루만 ‘마법 실습’이라고 적혀 있었다.
“저, 교관님. 잘 이해가 안 되어서 그러는데요. 저도 마법 수업을 듣습니까?”
“마법 실습이라고 적힌 거? 너한테 마법 배우라고 적어 둔 게 아니고 마법을 보라는 뜻으로 잡아 둔 수업이다.”
“보라고요?”
“정령의 전투 방법도 마법과 상통하는 면이 꽤 있다. 그러니까 마법 전공자들이 마법을 어떤 순간에 어떻게 사용하는지 봐 두면 도움이 될 거다. 수업 참여가 아니라 수업 참관인 셈이지.”
그제야 코리가 안도했다. 머리 아픈 마법 수업을 들을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마음이 놓였다.
“그러면 비어 있는 곳은요?”
“네가 아직 정령하고 계약을 안 했으니까. 어떤 속성의 정령과 계약하느냐에 따라서 수업이 결정될 거다.”
“아하! 이해했습니다.”
세리온은 좋아하는 107번을 보며 작게 혀를 찼다.
107번은 정령사가 어떤 방식으로 수업받는지 몰랐다. 안다면 절대 좋아할 수 없을 거다.
“너. 공부 좋아하냐?”
“예, 좋아합니다.”
“그럼, 수학 수업을 좀 추가해 볼까?”
“공부 싫어합니다.”
수학 얘기가 나오자마자 코리의 말이 바뀌었다.
코리는 수학이 싫었다. 몇 달 전에 수학 수업을 듣는데, 듣는 내내 머리가 아프고 현기증이 일었다.
수학은 시험이 없었으니 다행이지, 만약 시험을 쳤다면 무조건 탈락이었다.
피식!
“기뻐해라. 정령사는 머리 쓸 일이 없어. 검사가 되려는 네 동기는 검술 동작이라도 외워야 하는데, 넌 정말 아무것도 외울 필요가 없어. 어때? 기쁘지?”
“예, 기쁩니다.”
“그렇게 계속 기뻐할 수 있으면 좋겠군.”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왠지 코리의 미래가 꽤 고단할 것만 같았다.
“오늘 너희들은 정령 계약까지 마친다. 따라와라.”
“넵. 교관님.”
로딘과 코리가 세리온 교관의 뒤를 따랐다. 이상하게 다른 조교는 붙지 않았다.
‘정령 계약이 조교들한테 비밀인가?’
지금까지 교관들은 어딜 가든 조교를 대동했다. 몸을 쓰는 일, 사람을 부르는 일 등. 사소한 것들은 전부 조교에게 시켰다. 설사 시킬 일이 없어도 조교 한 명은 꼭 따라왔다.
그런데 지금은 교관 혼자였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고 있던 조교들도 근처로는 오지 않았다.
“정령 계약은 속성에 따라서 환경이 다르다. 속성에 맞는 환경을 갖춰 놓은 곳에서 계약을 시도하는 게 당연히 성공률이 높다.”
“지금 가는 곳이 환경이 갖춰진 곳입니까?”
“맞다. 먼저 불의 정령부터 시도한다.”
가는 방향이 점점 외진 곳으로 변했다. 고개를 아무리 돌려도 조교 1명 보이지 않는 외딴곳이었다.
이동에만 거의 30분이 걸렸다. 예전에는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
“어?”
“음?”
한참 구석으로 가다 보니,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공터가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사방에 용광로처럼 불이 치솟았고, 그 중앙에는 돌로 만든 평평한 단상이 놓여 있었다.
‘누구지?’
활활 타오르는 불길 건너편에 잠깐씩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키는 별로 크지 않아서, 코리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44번! 44번 있나!”
“예! 저 여기 있습니다.”
불길의 반대편에 있던 누군가가 후다닥 달려왔다. 군청색 옷을 입은 2기 훈련생이었다. 가슴에는 2-44라는 번호가 적혀 있었다.
“뭐 하고 있었나?”
“그냥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쪽은…….”
“정령술 재능이 10 이상인 녀석들이다. 서로 인사들 나눠라. 이쪽은 2기 정령술 전공자 44번. 여기 둘은 3기 107번, 108번.”
“오, 이번에는 2명이나 되는군요. 반갑다. 2기 정령술 전공자 44번이다. 이름은…… 나중에 기회 되면 나누자고.”
2기 선임인 44번은 왜소한 몸집이었다. 키도 코리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작았다.
“반갑습니다. 3기 107번입니다.”
“반갑습니다. 108번입니다.”
“그런데 정령사 특징입니까? 우린 왜 다 작죠?”
딱히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세리온 교관 역시 가볍게 웃고 넘겼다.
“저…… 44번 선배님.”
“응? 말해. 뭐?”
“정령이 어디…….”
코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44번을 빤히 쳐다봤다. 정령이 보고 싶다는 몸짓이었다.
코리와 다르게 로딘은 정령의 존재를 인지했다. 44번 선임의 왼쪽 어깨 위. 그곳에 열기가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 그게…….”
“정령은 눈에 보이지 않아.”
“예? 그러면 정령이 있는 건 어떻게 알아요?”
“자기 정령은 정령사 눈에는 보이지. 그리고 음…… 실체화던가? 44번.”
“실체화 맞습니다.”
“그래. 정령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실체화라는 걸 할 수는 있는데, 마력 소모가 커. 저 녀석은 아직 그 정도 마력이 없어서 못 하는 거야.”
정령사는 정령의 실체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마력 소모도 큰 데다가, 정령이 자기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령은 오직 정령사하고만 공유하는 기억, 정령의 귀에만 들리는 목소리, 오직 둘만 아는 비밀. 이런 것들을 좋아했다.
어떻게 보면 질투 같기도 했는데, 그래서 자칫 정령을 잘못 키운 경우 정령사가 정령에게 휘둘리는 일도 있었다.
“민망하네. 열심히 마력 모으고 나중에 실체화해서 보여 줄게.”
“아, 아니에요. 그냥…… 그냥 물어본 거예요.”
“정령은 직접 계약해서 보도록 하고. 107번, 108번. 정령 소환 룬어다. 보고 외워라.”
세리온 교관이 종이 2장을 꺼내 로딘과 코리에게 내밀었다. 얼핏 봐도 적힌 룬어 주문의 길이가 상당히 길었다.
“어제 했던 방법은요?”
“그건 하급 중의 하급이다. 그런 하찮은 방법으로는 통로 일부분만 살짝 여는 게 한계다.”
“이게 제대로 된 정령술 소환법이군요.”
로딘과 코리가 그 자리에 앉아서 소환법을 잡고 외웠다. 로딘은 한 번 읽고 다 외웠지만, 열심히 외우는 척했다.
소환 주문은 꽤 길었다. 어제 사용했던 정령술 재능 측정 룬어의 5배는 가뿐하게 넘을 정도로 길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외우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코리의 머리라면 며칠은 여유 시간을 줘야 했다.
하지만 단기 기억은 어렵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면 다 까먹겠지만, 당장 써먹을 정도로 외우는 데에는 수십 분이면 충분했다.
코리는 40분 정도 만에 다 외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외웠습니다.”
“그럼, 저 안으로 들어가라.”
“예? 저, 저기요?”
“그래. 저기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곳 중앙에 있는 넓적한 바위 위로 가서 앉아.”
세리온 교관의 팔이 불길로 향했다. 단호한 표정. 타협 따위는 없다는 태도였다.
코리는 멀리까지 열기가 느껴지는 불길과 세리온 교관의 얼굴을 연신 번갈아 봤다. 불신의 기운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저…… 교관님. 농담……이시죠?”
“농담 아니다. 사방에 불길을 두고, 열기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정령을 소환한다. 그게 불의 정령을 수월하게 소환하는 방법이다.”
코리는 한참 불길과 세리온 교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들어가자니 타 죽을까 무섭고, 안 들어가자니 세리온 교관의 엄한 눈빛이 무서웠다.
양쪽 다 두려우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으아아앙!”
정신적인 압박감에 결국 코리가 울음을 터트렸다. 울음을 터트리면 어떤 문제든 해결된다고 믿는 아이들의 태도였다.
하지만 세리온 교관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2기 44번 역시 팔짱을 낀 채로 코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코리. 죽지 않아. 절대 죽지 않을 거야. 믿고 들어가.”
“로, 로딘…… 으아앙! 무서워. 무섭다고.”
“날 믿어. 교관님을 믿어. 아무 일 없을 거야. 넌 할 수 있어. 대륙 제일의 정령사가 될 몸이잖아.”
로딘이 코리를 위로했다.
코리는 로딘의 몸을 잡고 한참을 버티다가, 이내 발을 뗐다.
“흐윽, 흑흑.”
코리는 울면서 불길 안으로 들어갔다. 양팔로 얼굴을 가린 채로 간신히 불길 속의 돌 위에 앉았다.
그러다 밖으로 후다닥 튀어나왔다.
“왜?”
“까먹었어. 으아앙.”
“아!”
로딘이 한숨을 쉬며 코리의 등을 토닥였다.
코리는 한바탕 울음을 터트리면서 정령 소환 주문을 잊어 먹었다. 옆에서 44번 선임이 커억 하고 웃었다가 억지로 표정을 굳히는 게 느껴졌다.
“108번. 너부터 할래?”
“예, 알겠습니다.”
로딘은 두려움 따위 모르는 듯이 불길로 들어갔다.
열기가 확 덮쳐 왔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습도가 낮아 입이 마르는 게 더 불편했다.
로딘은 평평한 바위에 앉아서 룬어를 읊조렸다. 최대한 작게,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고 오직 정령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소곤댔다.
‘흐음.’
정령계와의 통로가 열리긴 했다. 어제보다는 검은색이 훨씬 크고 진했다.
하지만 정령은 소환되지 않았다. 될 듯 안 된 아쉬운 수준이 아니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안 되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들어갈 때와 반대로 주변의 찬 기운이 확 몰아쳤다. 몸이 저절로 으슬으슬 떨렸다.
“실패 같습니다.”
“불 속성과 친화력이 떨어지는 모양이군. 옆에서 대기.”
“예.”
로딘은 불의 정령을 소환하는 데 실패했다.
별로 아쉽진 않았다. 되면 좋지만,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그런 마음이었다.
로딘이 먼저 시도하자, 코리도 용기를 냈다.
입을 꾹 다물고,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뜨거운지 양팔로 얼굴을 가리긴 했지만, 물러나진 않았다.
“힘내!”
“응.”
불길 너머에서 코리의 다부진 음성이 들렸다.
코리는 넓은 바위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정령사가 천직인지, 금세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으음.’
로딘은 코리의 모습을 보면서 감각을 더 예리하게 가다듬었다. 정령 소환 과정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알고 싶었다.
‘훨씬 큰 것 같은데.’
정령술 재능의 차이가 컸다. 자신이 했을 때보다 훨씬 크고 짙은 검은색의 통로가 열렸다. 불길 밖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실팬가? 아! 아니다.’
검은색 점만 유심히 봤는데, 실수였다.
실제로 정령계와의 통로가 열리는 곳은 코리의 심상. 겉으로 보이는 검은색은 그저 외부에 투영된 허상에 불과했다.
코리의 뇌라고 할까, 머리라고 할까. 그곳에 희미한 존재감이 생겼다. 44번 선임의 어깨를 차지한 무언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정령이 소환되었다. 코리가 손가락 하나를 앞으로 내밀자, 밖에서 보고 있던 세리온의 표정이 밝아졌다.
“성공인가?”
잠시 후, 코리가 밝지만 걱정스러운 얼굴로 돌아왔다. 얼굴이 후끈하게 익어서 빨갛게 변한 채였다.
“성공인가?”
“예, 계약했습니다. 했는데요. 저기 혹시…… 혹시…… 아까 본 일과표에 비어 있는 수업이요. 혹시 여기 들어오는 건가요?”
“오호, 눈치가 없진 않구나.”
“아!”
수업 일과표에서 정령사인 코리는 10일 중 단 1일만 채워져 있었다. 나머지 9일이 비어 있었는데, 바로 계약한 정령의 속성과 가까이하는 것이었다.
코리는 불의 정령과 계약했다. 좋든 싫든 이곳으로 와서 불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반가워. 흐흐흐, 앞으로 덜 심심하겠구나.”
“으으으, 예.”
코리의 어깨가 축 처졌다. 로딘이 힘내라며 어깨를 두드렸는데도 도통 펴질 줄 몰랐다.
‘하긴.’
자신도 매일 이곳 불길 속으로 들어가라면 끔찍할 것 같았다. 그 짓을 해야 하는 코리가 왠지 불쌍해 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