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8)
마법을 품다 (18)
그때, 코리의 어깨에 있던 뜨거운 존재감이 사라졌다. 갑자기 정령이 사라지자, 코리도 어리둥절했다.
“저, 교관님. 정령이…… 사라졌습니다. 이, 이거 왜 이러죠?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마력이 없어서 그래.”
대답은 44번 선임에게 나왔다.
환수와 다르게 정령은 소환해 두는 내내 마력이 소모된다. 정령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정령사의 마력이 소모되고, 격렬하게 움직이거나 속성 능력을 사용하면 훨씬 많은 양의 마력이 소모된다.
물론 정령이 가만히 있기만 할 때는 소모되는 마력의 양이 극히 적었다. 44번 훈련생이 몇 시간씩 정령을 소환해 둬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코리가 가진 마력은 미미한 마력 소모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어제의 마력 연공법으로 모은 개미 눈물보다 적은 양의 마력으로는 정령 소환을 단 몇 분도 유지할 수 없었다.
“아! 마력.”
마력은 마법뿐 아니라 정령술의 기본이기도 했다.
어제는 마력 재능이 일정 이상인 로딘과 코리만 불러서 정령 재능을 측정했다. 마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령과 계약을 했든 어떻든 의미가 없어서였다.
다음 정령 계약을 위해 이동했다. 코리가 불의 정령과 계약한 곳과 1km 이상 떨어진 곳이었다.
“왜 이렇게 먼 곳에서 정령 계약을 하는 건가요?”
“속성이 섞일 수 있어서다.”
세리온 교관의 말에 의하면 불의 정령과 계약했던 장소 주변 1km 이내에는 물웅덩이도 없다고 한다. 물 속성이 섞일 수 있어서 수시로 점검한다고.
“아! 그러고 보니 바람이 안 드는 곳이었군요.”
“맞다. 바람 속성이 섞일 수 있으니 최대한 주변을 막아 둔 거다. 바닥에 평평한 바위를 깔아 둔 것도 같은 이유다.”
바위 역시도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히 불의 기운을 어느 정도 침범하긴 할 거다.
하지만 그래도 땅 기운이 직접 올라오는 것보단 나았다. 괜히 4대 속성이라고 묶어 부르는 게 아니었다.
땅, 바람, 물, 불 속성의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것들만 막아도 정령 계약이 훨씬 수월해진다.
“아! 이번에는 생매장이네요.”
“하하하, 생매장. 틀린 말은 아니지. 이곳은 땅의 정령과 계약하기 위해 마련해 둔 곳이다. 물론 주변은 바람이 불지 않고, 불도 없고 물도 없지.”
도착한 곳에는 어린아이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땅 속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예 정령사를 파묻을 준비를 해 둔 것이다.
“이걸 물고 들어간다. 누가 먼저 들어갈래?”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코리가 용감하게 나섰다. 땅속에 파묻힌다는 생각에 두려웠지만, 간신히 용기를 냈다.
이번만큼은 로딘의 도움 없이 해내고 싶었다. 항상 로딘의 뒤만 따라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은 대륙 최고의 정령사가 될 몸이니까.
“이걸 물어라.”
세리온 교관이 파이프 같은 걸 내밀었다. ㄱ 자 형태로 꺾인 관으로, 땅속에서도 숨을 쉬는 데 필요한 도구였다.
코리가 구덩이로 들어가 파이프를 물었다. 파이프는 위로 삐죽 올라와 지면보다 30cm 위쯤까지 닿았다.
“자, 우린 파묻자.”
“예.”
다른 사람이 없으니, 묻는 것도 세리온 교관과 로딘의 몫이었다.
로딘은 세리온 교관과 함께 열심히 삽질해서 코리를 완전히 묻었다.
최근 꾸준히 해 온 운동이 도움이 됐다. 꽤 오래 몸을 움직였는데도 생각만큼 지치지 않았다. 땀도 거의 흘리지 않아, 얼굴이 뽀송뽀송했다.
반면 운동을 거의 하지 않은 세리온 교관은 완전히 땀 범벅이었다. 작게 ‘마법 쓸걸.’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마법으로도 해결할 방법이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기다리나요?”
“불구덩이에서 대략 10분이었지? 흐음, 계약 중간에 방해할 수도 있으니까. 15분쯤 후에 꺼내지.”
“알겠습니다.”
15분 후, 코리를 꺼냈다. 세리온 교관이 기대감을 갖고 쳐다보자, 코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다. 108번. 준비해라.”
“예.”
다음은 로딘 차례. 역시나 시간은 15분이었고, 코리와 마찬가지로 계약에 실패했다.
“이동한다.”
“예.”
둘 중 누구도 땅의 정령과 계약하지 못했다. 아쉬움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이번에는 산행이었다.
평지보다 훨씬 힘들어서, 코리가 죽을 것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아니, 코리‘만’ 힘들어했다.
로딘은 계속 운동을 해 온 덕에 이 정도는 할 만했다. 삽질보다 땀이 많이 났지만, 속도는 그들 중에서 가장 빨랐다.
세리온 교관은 아예 마법을 써서 둥둥 날아다녔다.
객기로 고생하는 건 한 번이면 족했다. 앞서서 직접 삽질했다가 그 고생을 했는데,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
정상에 도착했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다.
환경만 봐도 이곳에서 어떤 정령과 계약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교…… 교관님. 허억. 허억. 여기…… 허억.”
“숨 좀 돌리고 말하는 게 어떤가?”
“알…… 허억, 허억. 알겠습니다.”
코리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한참 동안 숨을 골랐다. 몇 분이 흐르자, 거칠었던 호흡이 차츰 정리되었다.
이에 비해 로딘은 주변을 천천히 돌면서 몸을 풀었다.
눕지 말라고, 멈추지 말고 계속 걸으면서 근육을 풀라고 했던 예전에 조교에게 들은 조언을 잊지 않았다.
“교관님.”
“말해라.”
“여기서 정령하고 계약하면, 매일 여기 올라와야 하는 겁니까?”
“속성과 가까이 지내야 하니 그렇겠지.”
“아오! 차라리 여기선 계약을 안 하는 게 낫겠다.”
코리는 한참 아래에 보이는 특수군 양성소 건물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시작하지. 107번?”
“예, 제가 가겠습니다.”
코리가 먼저 나섰다. 세리온 교관이 커다란 나무와 연결된 쇠사슬을 건넸다.
“이건……?”
“너희들처럼 작은 몸집은 바람에 날아갈 수도 있다.”
“아!”
쇠사슬을 허리에 감고, 코리가 앞으로 갔다.
정상에 가까이 갈수록 바람이 거세졌다. 세리온 교관의 말처럼 강풍에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중심을 잡기 힘들어서, 몇 번이나 주저앉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거의 기다시피 정상으로 갔고, 준비된 커다란 바위 위에 앉는 데 성공했다.
“근성은 있군.”
세리온은 어린 녀석들의 노력이 가상했다.
이곳이 군인을 키우는 곳이 아니었다면, 저 아이들이 노예가 아니었다면 직접 데려다 차근차근 키웠을지도 모른다.
‘전쟁이 벌어지지 않으면 좋겠지만.’
세리온이 상념을 이어 가는 동안 코리는 정령 소환에 집중했다. 강풍을 버티기 위해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정령 소환 룬어를 읊조렸다.
‘오호, 듀얼?’
대략 10여 분.
코리의 몸 주변에 새로운 존재감이 느껴졌다. 로딘은 상쾌하고 기분 좋은 기운이 코리의 어깨에 내려앉은 걸 느끼며 슬쩍 웃었다.
‘축하해.’
로딘은 정령의 기운을 느꼈지만, 세리온은 아니었다. 로딘만큼 감각이 예민하지도 않았고, 정령 친화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됐나?”
“성공했습니다.”
정상까지 갈 때의 코리는 강풍을 버텨야 했다. 결국 기다시피 해서 정상까지 힘들게 갔다.
그런데 지금의 코리는 몸을 완전히 세우고도 멀쩡했다. 거세게 몰아치던 바람이 코리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고 지나갔다.
“하하, 듀얼이군. 축하한다.”
“제가 축하를…… 저기, 교관님. 그럼 앞으로 매일 불에 뛰어들고, 산에 오르고 그렇게 해야 하나요?”
“매일 그렇게 해도 되고,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해도 된다. 특수군 양성소에는 정령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교관이 없다. 물론 나도 정령사가 아니고.”
“아! 그…… 렇죠.”
특수군 양성소에 정령사가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이곳에 만들어 둔 환경, 세리온 교관이 알려 주는 것들은 전부 책에서 얻은 지식이었다.
“그리 걱정할 필요 없다. 아는 정령사를 통해서 이미 검증은 끝냈다. 부족한 건 있을지언정, 잘못된 건 없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냥 여기 올라오는 게 걱정이죠.”
“바로 진행하지. 108번.”
“예, 가겠습니다.”
로딘이 정상까지 힘겹게 올라갔다.
바람이 정말 강했다. 코리처럼 바닥을 기진 않았지만, 도통 속도를 낼 수 없었다.
간신히 정상의 바위에 앉아서 정령 소환을 시도했다. 그리고 깔끔하게 실패했다. 이번에도 정령들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교관님.”
“아직 물 속성이 남았다. 이동하지.”
“예.”
산에서 내려가는 내내 코리는 싱글벙글했다.
무려 두 가지 속성의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가 됐다. 성장 속도가 중요하다는 세리온 교관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산하는 길은 등산하는 길과 달랐다. 옆으로 비스듬하게 돌아서 내려왔는데, 일부러 빙빙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방향이 달라서일 뿐, 일부러 돈 건 아니었다. 나중에 내무실에서 올 때는 훨씬 빠르게 오는 길이 따로 있었다.
“와!”
“으음.”
지상에 도착하자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절경이 펼쳐졌다.
끝없이 넓은 호수와 주변에 빼곡하게 심어진 나무, 바닥을 융단처럼 덮고 있는 풀. 모든 광경이 마치 책에서 말하는 이상향 같았다.
“어? 저거 사슴 맞죠?”
“여긴 동물이 많지. 의도적으로 야생 동물을 방치하고 있거든. 그래야 물이 깨끗하게 유지되니까.”
물은 자연 상태 그대로일 때 가장 깨끗하다.
특수군 양성소가 오래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 자연을 유지하기 위해 야생 동물을 풀고, 사람의 출입을 막았다.
“와, 여기는 매일 와도 좋겠다.”
“멋진 곳이지. 교관들도 종종 이곳으로 와서 휴식을 취한다. 위원회 위원분들도 가끔 들르고. 보기엔 이래도 너희들 내무실하고도 그리 멀지 않거든.”
아닌 게 아니라, 막상 내려와서 보니 멀리 중앙 건물 옆에 있는 세워진 시계탑이 보였다. 눈대중으로 거리를 가늠해 보면 최대로 잡아도 3km 정도였다.
“방법은 물속으로 들어가는 거다. 여기 파이프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누구부터 할래?”
“저부터 하겠습니다.”
“그래. 가라.”
이번에도 코리가 먼저 나섰다. 상의를 벗어 던지더니, 신난 표정으로 물에 발을 담갔다.
“야압!”
익숙하게 파이프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약 10분. 코리는 실망을 가득 안고 물에서 나왔다.
“실패했군.”
“예, 죄송합니다.”
코리는 땅 속성 정령과 계약에 실패했을 때보다 더 우울했다. 이 경치 좋은 곳을 자주 오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기회가 사라졌다.
“이미 넌 두 가지 속성의 정령과 계약했다. 그 정도면 충분해.”
“감사합니다.”
“다음은 108번.”
“예. 108번 훈련생.”
로딘은 상의를 벗고, 호숫가에 발을 담갔다.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미 3번을 시도해서 계약에 실패했다. 4대 속성 중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후우.’
파이프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미약하게 흔들리는 물결의 느낌이 피부에 와닿았다.
점점 깊이 들어갔다. 성인이라면 허리까지 올까 싶은 깊이였지만, 로딘이 앉으니 머리 위가 한참 남았다.
눈을 감고, 룬어를 읊조렸다. 물과 소리가 섞여서 으르르 하는 소리만 들렸다.
파이프를 통해 길게 숨을 들이켜고, 룬어를 이어 갔다. 점점 심상과 정령계가 연결되는 느낌이 왔다.
‘흐음.’
통로 건너편에 뭔가의 존재가 느껴졌다. 청량하고 맑은 존재의 기척이었다.
하지만 눈치를 살피는지, 통로로 발을 디디진 않았다. 기웃기웃 넘어올까 말까 고민하는 몸짓이었다.
‘와라. 제발.’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다. 통로 건너편에 있던 존재가 슬쩍 건너왔다. 그리고 얼굴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녕.’
로딘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혹시나 갑작스러운 동작에 놀랄까.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정령은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손끝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됐다.’
계약에 성공했다. 환수인 지토와 계약할 때처럼 서로 영혼이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저 멀리 높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지토의 존재감도 더 선명해졌다. 정령 계약과 환수 계약이 서로 기운을 북돋아 상승효과를 내고 있었다.
쏴악!
물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상체를 최대한 세웠는데도 입과 코는 여전히 물속이었다.
파이프로 숨을 쉬려다가, 이내 마음을 바꿨다.
‘될까?’
파이프를 입에서 살짝 떼고, 숨을 쉬었다. 정령이 자연스럽게 바깥과 입 사이의 통로를 이어서 호흡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좋구나. 이런 느낌.’
절대 배신하지 않는 친구가 생겼다. 지토에 이어 두 번째였다.
물살을 헤치고 밖으로 나왔다. 기분 좋은 충만감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