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2)
마법을 품다 (2)
식사 준비가 끝났다. 상인이 큰 목소리로 일행들을 불렀다.
“모두 모여. 식사한다.”
“이 꼬맹이는요?”
“먹여야지. 기특한 꼬마잖아.”
모포로 몸을 둘둘 감은 로딘 앞에 빵 두 덩이와 물, 수프가 놓였다. 나무 상자 안에서 로딘이 먹었던 것과 같은 메뉴였다.
모포에서 손만 빼내 빵을 찢었다. 수프에 빵을 찍는데, 건더기가 수북하게 걸렸다.
“어?”
고기 맛만 풍겼던 낮의 수프와 달랐다. 고기 건더기가 잔뜩 들어 있어서, 침이 절로 고였다.
찢은 빵 위에 건더기를 조금 올려서 입에 넣었다. 풍부한 고기 냄새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맙소사. 이런 맛이라니.’
도망 안 치기를 잘했다. 도망쳤으면 이 수프도 못 먹었을 것 아닌가.
빵을 정성 들여서 찢고, 수프에 담갔다. 건더기의 양을 눈대중으로 계산했다. 수프에 있는 고기를 다 합치면 얼추 주먹 하나 크기는 되지 싶었다.
‘내 주먹이 작긴 하지만.’
식사하는 내내 행복했다. 이런 행복을 버리고 도망친 아이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잡으러 안 가네?’
아이들 8명이 도망쳤다. 그것도 어설프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그런데도 어른들 중 누구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이들을 잡겠다고 자리를 비운 사람도 없었다.
식사를 마치니, 솔솔 졸음이 몰려왔다. 모닥불의 열기가 엄마 품보다 더 포근했다.
“야! 들어가서 자.”
“흠냐.”
“야!”
“예?”
큰 소리에 로딘의 눈이 번쩍 떠졌다. 약간 비몽사몽이라, 아직도 현실 파악이 안 되었다.
“들어가서 자라고.”
“예, 고마워요. 아저씨.”
대답을 마치고 로딘이 후다닥 나무 상자로 달려갔다. 자신이 이곳까지 타고 왔던 그 마차였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찬 바람을 막아도 내부는 여전히 추웠다. 차라리 모닥불 앞이 더 따뜻했다.
“으으으.”
두꺼운 이불 속으로 몸을 쏙 집어넣었다. 이불을 감으니, 다시 졸음이 쏟아졌다.
* * *
특별한 노예들을 모으고 있는 하르딘이 주변을 죽 둘러봤다. 부하들이 주변을 정리하며, 야영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길 먼 곳을 살폈다. 아이들 8명이 도망친 방향이었다.
“쯧.”
“단주님. 잠자리가 준비됐습니다.”
“불침번 알아서 세우고. 아! 꼬맹이는?”
돈을 주고 사 온 아이들 9명 중에서 ‘꼬맹이’라는 호칭을 쓰는 아이는 1명이었다. 아직 5살도 되지 않은 로딘. 네다섯 살 많은 아이들보다 더 어른스러운 녀석이었다.
“들어가서 잡니다. 애잖습니까.”
“그래. 애지. 나이답지 않은 녀석이기도 하고. 양성소에서도 저 아이는 눈에 띌 거야.”
“머리도 좋아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단주님이 가지고 계신 장치가 진짜로 재능을 판별할 수 있습니까?”
재능 얘기에 하르딘이 품에서 사각형 물체를 꺼냈다. 오러 예측기라고 불리는 물건이었다.
“오러에 한해서 재능을 예측할 수 있긴 하지. 그런데 애매해.”
“애매해요? 어떻게요?”
“너도 기사가 되려고 애썼던 놈이잖아. 그러면 기사들이 종사를 고를 때, 재능 점수 몇 점을 기준으로 삼는지 알지?”
“10점이죠. 10점 안 되면 쓰레기 취급이던데요? 저도 7점인가? 그거 받고 쫓겨났는데.”
세상에는 오러와 마력의 재능을 측정하는 장치가 실제로 존재한다. 일정 시간 동안 직접 오러나 마력을 연공해서, 그 시간 동안 쌓인 양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정확도는 높은데, 문제는 직접 연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가는 고아들이나 버려진 아이들의 재능을 마음대로 측정하긴 어려웠다.
하르딘이 가진 예측기는 원래의 측정기에서 ‘직접 해 봐야 한다.’라는 제약을 극복한 물건이었다. 그냥 대상에게 갖다 대기만 하면 오러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예측기는 기준이 10점이 아니야. 그게 문제야.”
“그래요? 10점이 아니라면 몇 점이 기준인데요?”
“최하 점수만 아니면 무조건 빛이 들어와. 재능이 있다는 것만 알려 주지, 그 재능이 뛰어난지 아닌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게 문제야.”
하르딘은 꼬맹이가 들어간 나무 상자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자신이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명 받은 대로 오러 예측기에 빛이 들어온 아이만 데려가면 그뿐이었다.
10세 이하의 아이.
사지가 멀쩡하고 건강할 것.
지시를 이행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 능력.
오러 예측기에 빛이 맺힐 것.
이 네 가지가 본부에서 내려온 조건이었다.
“최하면 1점이잖습니까? 오러 재능이 1인 사람이 있긴 있습니까?”
“그래, 세상 아이 중 절반 이상은 1이야. 이 측정기는 그저 그 절반을 걸러 주는 도구일 뿐이지.”
겨우 절반이지만, 그것도 무시할 순 없었다. 아예 쓸모가 없는 폐품은 걸러 낼 수 있다는 거니까.
“아, 참. 요즘 잉그렘 제국은 어떻습니까? 황제가 죽었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황제가 죽은 건 사실 같더군. 황자들이 갑자기 병력을 모으고 있어.”
“오호, 그럼 내전이 벌어지는 겁니까?”
“황제가 죽은 게 사실이면 그렇게 되겠지. 딱 20년만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면 좋겠는데.”
가볍게 얘기했지만,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황태자가 확실한 지지를 받고 있지만, 그건 황실 내부일 뿐. 귀족들 사이에서는 평이 좋지 않았다. 이미 많은 귀족이 저마다 지지할 황자를 찾아 이합집산 하는 중이었다.
“차기 황제가 온건한 성향이면 전쟁을 피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리가. 제국과 우리 13국 연합의 전쟁은 필연이야. 시기가 문제일 뿐이지.”
“하여간. 제국 놈들. 땅 욕심은 왜 그리 많은지.”
부하가 잉그렘 제국을 탓했지만, 사실 언젠가 벌어질 전쟁의 원인은 13국 연합에 있었다. 리아즈 왕국 소속의 하르딘뿐 아니라 부하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차마 자기 나라 왕실을 탓할 수는 없으니, 결국 적국인 잉그렘 제국을 욕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일도 움직여야 하니, 슬슬 정리하지.”
“예. 단주님.”
하르딘이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부하들도 불침번만 남겨 두고, 흩어져서 자리를 잡았다.
* * *
아침이 되었다. 로딘은 빨갛게 변한 코를 만지며 눈을 떴다.
“으으으, 겨울 싫다.”
벽체의 나무 사이사이로 빛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왼쪽부터 빛이 들어와서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구나.’
원래 로딘이 살던 곳은 잉그렘 제국과 가까운 국경 근처였다. 정확한 거리나 방향은 로딘도 몰랐다. 어른들이 제국이 어쩌고, 국경이 어쩌고 말을 한 적이 있어서 국경 근처라고 짐작했을 뿐이었다.
‘남쪽이면 왕국 중부나 남부로 가는 건데.’
그때 문이 열렸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나와라.”
“예.”
나무 상자 밖으로 나와서 주변을 돌아봤다. 어제 도망쳤던 아이들은 아침이 됐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고생시키는 것 같은데.’
어른들이 아이들을 놓쳤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어제는 아이들이 도망치는데도 잡으러 갈 생각이 없어 보였는데, 지금도 굳이 찾으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비가 되어 있는 게 확실했다.
“제자리에서 뛰어라.”
“예?”
“운동을 하란 말이다. 식사는 1시간 후에 준비된다. 그때까지 몸이 굳지 않도록 계속 움직여라.”
“아!”
식사만 챙겨 주는 게 아니라, 운동까지 신경 쓰는 모습이 신기했다. 좀 당황하긴 했지만, 시키는 대로 몸을 풀었다.
제자리에서 뛰다가 주변을 가볍게 걸었다. 허리도 숙이고 팔다리도 이리저리 휘둘렀다.
되게 성의 없는 자세였지만,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어른들은 힐끗 보기만 하고 신경을 껐다.
‘이 정도면 되는 건가?’
1시간가량 흐르자, 식사 준비가 끝났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빵 두 덩이와 물, 수프였다.
하지만 어제 먹은 수프와는 맛이 조금 달랐다. 다른 종류의 고기를 쓴 듯했다.
“30분이다. 다시 움직여라.”
“예?”
“체할 수 있으니, 몸을 풀라는 말이다.”
“아, 예.”
로딘은 식사 전에 했던 동작을 다시 반복했다. 가볍게 뛰고,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살짝 고단하다 싶을 즈음, 30대 남자가 다가왔다.
“들어가라.”
“예.”
다시 나무 상자로 들어갔다. 방석에 앉아서 벽에 등을 기댔다. 이불로 하체와 배를 가리니 그럭저럭 추위가 가셨다.
식사는 시간에 맞춰서 나왔다.
아침을 먹고 대략 5시간이 흐르니, 천장이 열리고 점심이 제공되었다. 점심을 먹고 대략 6시간. 나무 상자가 열리고 저녁 식사를 제공했다.
아침 식사 때처럼 저녁 먹기 전의 1시간, 식사 후의 30분 동안 운동을 해야 했다.
어제는 너무 지쳐서 바로 잠들었는데, 오늘부터는 운동이 의무였다.
오직 점심시간에만 운동이 없었다.
이틀이 흘렀다.
첫날 도망쳤던 8명을 숲을 관통하는 길가에서 찾아냈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덜덜 떨던 아이들은 노예 상인 일행을 보자마자 살려 달라고 빌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받아 줬다. 아이들이 울면서 연신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8명의 도주는 뒤끝이 꽤 길었다. 아이들에게 음식은 제공되었지만, 질이 확 떨어졌다.
말랑말랑하던 밀빵은 딱딱하고 맛없는 흑빵으로 바뀌었다. 수프에는 고기가 사라졌고, 색깔도 희멀겋게 변했다.
물론 로딘은 예외였다. 여전히 하얀 색깔의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빵이 나왔다. 수프에도 고깃덩어리가 잔뜩 들어 있었다.
‘나는 적이구나.’
아이들은 비록 실패했지만, ‘함께’ 도망쳤고 ‘함께’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였다. 그래서인지 그들 8명은 자기들만의 동료애로 똘똘 뭉쳤다.
반면 로딘은 홀로 남아서 맛있는 식사와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받았다.
8명과 길이 갈라진 것.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식사 중에도 로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자기들끼리만 쑥덕대며, 철저하게 로딘을 따돌렸다.
‘어쩔 수 없지.’
억지로 저들의 울타리에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울타리는 높그 튼튼한 게 전부가 아니었다. 울타리 안이 안전하고 풍족해야 했다. 울타리 안에서의 생활이 바깥보다 못하다면, 굳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로딘은 저들의 울타리 내부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어린아이들만의 모임.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봐야 대화 상대가 생긴다는 것 외에는 변하는 게 없었다.
* * *
13일을 더 이동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겨울도 서서히 끝나고,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땅을 뚫고 올라왔다.
9명의 아이를 실은 마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커다란 운동장 같은 곳에 마차가 차례차례 멈췄고, 곧 나무 상자의 문이 열렸다.
“나와라.”
지금까지처럼 수염 많은 아저씨가 명령했다. 로딘은 이불을 정리하고, 나무 상자에서 나왔다.
‘아! 겨울이 끝났구나.’
맨살에 와닿는 바람이 제법 포근했다. 여전히 오래 서 있으면 춥지만, 적당히 움직이면 버틸 수 있을 정도의 기온이었다.
“대기! 대기!”
대기 명령을 받고 대략 20분이 흘렀다. 어딘가로 사라졌던 상인이 어깨를 으쓱하며 나타났다.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한 것 같군.”
“그래요? 서너 번째일 줄 알았는데.”
“그러게 말이야. 서관 7호실이다. 이동해.”
“예, 단주.”
어른들이 아이들을 인솔해 왼쪽에 있는 커다란 건물로 들어갔다. 곧이어 어른들은 2층으로 올라갔다. 아이들도 아무 말 없이 어른들을 따랐다.
2층에는 족히 100명은 머물러도 될 정도로 넓은 방이 있었다. 방의 왼쪽에는 5개의 문도 있었다.
“이곳에서 대기한다. 왼쪽 문은 화장실이다. 볼일을 보거나 씻을 사람은 저곳으로 들어가면 된다. 식사는 1층이고. 조교들이 시간 맞춰 올라오면 따라가서 식사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예, 옙.”
“그, 그럴게요.”
아이들의 대답은 중구난방이었다. 그런데도 상인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질문?”
“나가도 되나요?”
“너희들끼리는 안 된다. 여기 머물다가 조교가 와서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도록. 다른 질문?”
상인이 다시 질문이 있는지 물었지만, 질문하는 아이는 없었다. 몸을 움찔움찔하며 뭔가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끝끝내 입을 열진 않았다.
“그럼 우린 나가지.”
“예. 단주.”
단주라 불린 상인이 나갔다. 주변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으음.’
로딘은 작게 침음을 흘리고, 구석으로 이동했다.
주변 분위기가 영 안 좋았다. 오는 내내 울타리 밖으로 밀어냈던 아이들이 불편한 얼굴로 자신을 살피고 있었다.
‘괜찮을 거야.’
로딘의 예상대로 아이들은 눈으로만 욕을 해 댈 뿐, 말을 걸거나 건드리진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이 큰 방에는 어른들이 없지만, 근처에 다른 어른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아이들의 싸움을 허용할지 안 할지 지금은 알 수 없었다.
확실하지 않으니, 아이들도 섣부르게 시비를 걸지 못했다. 자칫 찍혀서 밖으로 쫓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뭘 하지?’
가만히 있으니 가슴이 답답했다. 뭔가 하라고 지시라도 하면 좋으련만, 갑자기 주어진 자유 시간은 엄청난 불안함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불안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략 2시간이 흘렀을 때, 본 적이 없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도착했다.
아이들의 숫자는 11명이었다. 전부 자신보다는 나이가 많았다.
‘10살이 기준일까?’
로딘이 보기에 자신을 제외하곤 대체로 비슷한 나이였다. 키와 덩치는 제각각이었지만, 얼굴로 보이는 나이는 10살 혹은 그보다 한두 살 아래였다.
어른들이 사라지자, 새로 들어온 아이 중 1명이 일어섰다.
“안녕! 난 드록이야.”
지금까지 모인 20명의 아이 중에서는 키가 가장 컸다. 잘 먹고 살이 붙으면 힘깨나 쓸 몸뚱이였다.
“아, 안녕. 나는…… 메리온. 나이는 9살이야.”
“나, 나는…….”
드록이라는 아이가 자기소개를 하자, 다른 아이들도 말문이 트였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다 자기소개를 한 건 아니었다. 로딘도 그렇고, 다른 아이 중에서도 절반 정도는 눈치만 살폈다.
‘번거로워.’
로딘이 자기소개를 안 한 건, 이름을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싫어서였다.
지금 분위기로 보면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이 들어올 터. 그때마다 자기소개를 앵무새처럼 떠들어 대는 건 너무 귀찮았다.
“너희들은? 너희들은 이름 말 안 해?”
“…….”
“…….”
누군가의 추궁이 이어졌지만, 자기소개를 안 했던 아이들은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로딘 역시 구석에서 가만히 분위기만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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