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21)
마법을 품다 (21)
마탑의 마법사는 매일 연구하고 궁리한다. 그게 그들의 일상이었다. 평생 마법을 연구해서 기존의 마법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마법을 개발하는 게 그들의 평생 숙명이었다.
반면 왕국에 소속된 마법사들은 연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기존에 있던 위력적인 마법을 능숙하게 익히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오직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이다.
“대륙 4대 마법 정도 되면 최상급 연공법을 가지고 있을 거다. 당연히 그들만의 비전이라, 외부에는 절대 공개하지 않지. 뛰어난 재능의 제자가 들어오면 은밀하게 불러서 몰래몰래 비전을 전수하고.”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연공법으로 모은 마력은 밀도가 몹시 높다. 같은 방법으로 같은 마법을 사용해도 하급 연공법을 익힌 마법사가 쓴 마법보다 족히 2배는 강하지.”
비전은 4대 마탑이 수백 년 동안 그 자리를 유지해 온 원동력이었다. 마법의 위력 차이 때문에 다른 마탑은 감히 4대 마탑의 자리를 넘보지 못했다.
“절대적인 차이입니까? 절대 넘을 수 없는?”
“맞다. 연공법의 차이는 넘을 수 없다. 그래서 많은 마학자들이 뛰어난 연공법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지. 실제로 중급 수준의 마력 연공법은 꽤 많이 만들기도 했고. 하지만 최상급은 논외다. 아무튼 마법의 위력에 관여하는 연공법은 우리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럼 남은 건?”
“마력의 양, 영창. 두 가집니다.”
“마력의 양은 간단해. 같은 마법에 마력을 10배쯤 때려 박으면 위력은 강해진다는 거지. 10배까진 아니고 2배쯤은 강해지니까. 하지만 효율은 꽝이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그딴 짓은 안 하는 게 좋아.”
10배의 마력으로 고작 2배의 위력이면 엄청난 손해였다.
세리온 교관의 말대로 효율이 형편없어서, 전투 지속력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방법이었다.
“마지막이 영창이다. 정확한 룬어 발음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만으로 마법의 위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러자면 룬어를 제대로 알아야겠지. 조교! 가져와.”
룬어의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사실 세리온 교관은 룬어를 잘 몰랐다. 마법을 익히기 위해 주문에 사용되는 발음만 공부했을 뿐, 룬어의 의미를 깊이 있게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른다고, ‘룬어는 중요하지 않아’하고 넘어갈 순 없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 ‘교관’이라는 직함으로 선 이상, 자신이 못 하는 것도 가르쳐야 했다.
드르륵!
앞쪽의 문이 열렸다. 그곳을 통해서 10여 명의 조교가 엄청난 두께의 책을 들고 들어왔다.
‘5권?’
두께는 내무실에 있는 단어 사전과 흡사했다. 그런 책이 무려 5권이었다.
“그게 룬어가 적힌 책입니까?”
“정확해. 이 책에 기록된 룬어는 7,800자가 조금 넘는다. 우리 리아즈 왕국이 알고 있는 룬어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역사가 오래된 마탑은 10,000자 이상의 룬어를 알 수도 있는데, 아까 말했듯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건 무시하자고.”
조교들이 바쁘게 교실을 나갔다. 세리온 교관은 조교가 완전히 나간 후에야 설명을 이었다.
“아까 연공법을 만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책에 적혀 있는 룬어를 사용하는 겁니까?”
“맞아. 여기 적힌 룬어를 조합해서 만들지. 물론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 과정에서 죽는 사람도 많고. 아! 깜빡할 뻔했군.”
세리온 교관이 교탁 아래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서 건넸다. 로딘은 종이에 적힌 내용을 보고 바로 정체를 파악했다.
“연공법 맞습니까?”
“맞아. 4대 마탑의 최상급 연공법보단 못하지만, 꽤 쓸 만한 거다. 중급 연공법이니까.”
“아! 감사합니다.”
“크레이트 위원장님께서 10여 년을 투자해 직접 만든 연공법이다. 크레이트 위원장님은 이 양성소에서 유일하게 마탑 출신이지.”
크레이트 위원장이 배운 연공법은 상급이었다. 마탑에 있을 때 배운 것으로, 4대 마탑 정도를 제외하면 어디에도 꿀리지 않는 뛰어난 연공법이었다.
하지만 마탑의 비전이라, 외부 공개는 불가였다. 방침을 어기고 타인에게 전수했다가는 자칫 리아즈 왕국이 마탑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크레이트 위원장은 장시간 연구를 통해 직접 연공법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익히고 있던 연공법을 꽤 많이 참고했지만, 겉으로 봐서는 유사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제가 이걸 익히는 겁니까?”
“그러라고 준 거다. 기한은 5일이다. 5일 안에 다 외우고 행정실로 반납하도록. 아!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선 보지 마라. 3기 중에선 너와 107번에게만 공개된 연공법이다.”
“알겠습니다.”
룬어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재능 측정을 위해 외운 연공법보다 족히 10배는 길었다.
“여기 있는 룬어 책은 도서관으로 옮겨 놓겠다. 물론 심화 2 서고 쪽이다. 네가 도서관을 자주 찾으니, 그곳에서 읽으면 될 거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다음 수업은 모레지?”
“예.”
내일은 수학 수업이 있었다.
룬어, 수학, 룬어, 수학 순으로 8일 동안 2개의 수업이 반복된다. 그러다 9일째는 마법 연상, 10일째는 마법 실습이었다.
그렇게 10일 과정이 끝나면, 다시 룬어, 수학 수업 순이었다.
“그러면 그때 보자고.”
“고생하셨습니다.”
오전 수업이 끝났다. 오후는 연공실 이용이라, 사실상 자유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심화 서고로 들어가서 룬어가 빽빽하게 적힌 중급 연공법부터 읽었다.
연공법을 한창 외우고 있는데, 세리온 교관이 조교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조교들 품에는 커다란 룬어 책 5권이 들려 있었다.
“도서관에 자주 나타난다더니, 역시나 여기 있었구나.”
“세리온 교관님 오셨습니까?”
“그래. 흐음, 이렇게 생겼지. 몇 년 만에 왔더니 어색한데.”
세리온은 도서관이 낯설었다.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덩그러니 선 느낌이었다.
처음 도서관을 만들고 몇 번 들렀지만, 그게 벌써 3년 전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어지간해선 이곳에 올 일이 없을 터였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됐어. 바로 나갈 거야. 조교들. 책은 저쪽 책상 위에 올려놓도록.”
“예.”
조교들은 책상 위에 룬어 책을 나란히 놓은 후, 재빠르게 사라졌다. 세리온 교관 역시 오래 머무르지 않고 서고를 나갔다.
“흐음, 룬어라…….”
대륙 공용어는 훨씬 단어가 많았지만, 금방 외웠다. 룬어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 믿었다.
‘외우는 건 자신 있으니까.’
로딘은 중급의 마력 연공법을 순식간에 다 외웠다. 고작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력 연공실로 바로 가지는 않았다. 룬어부터 다 외운 후에 가기로 했다.
세리온 교관이 준 연공법에는 룬어가 적혀 있지 않았다. 룬어를 공용어 발음으로 바꿔서 적어 놨다.
한 단계를 더 거치는 만큼 실제 룬어의 발음과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
도서관에 앉아서,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룬어 책부터 펼쳤다.
* * *
다음 날, 수학 수업을 위해 중앙 건물로 들어갔다. 몇 달 전에 봤던 교관이 칠판에 뭔가를 잔뜩 적어 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제가 늦었습니까?”
“아니다. 내가 일찍 온 거다. 앉아라.”
“예, 교관님.”
로딘이 자리에 앉아 공책을 펼쳤다. 쓸 일이 있든 없든 공책 정도는 펴 주는 게 예의였다.
‘흐음.’
칠판에 적어 둔 걸 살폈다. 수학 문제였다.
‘7이군.’
로딘은 순식간에 답을 찾아냈다. 공책에 작은 필기 하나 하지 않았다.
“내 얼굴 알지?”
“예. 몇 달 전에 교관님께 수학을 배웠습니다.”
“반갑다, 108번. 내 이름은 아드리안 크루퍼. 크루퍼 교관이라고 부르면 된다.”
“예, 크루퍼 교관님.”
로딘은 크루퍼 교관의 이름을 오늘 처음 들었다. 이전에는 2개월 동안 함께 수업했음에도 자기 이름을 알려 주지 않았다.
“왜 이제 내 이름을 알려 줄까?”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좀 지나면 안 볼 테니까. 지금도 봐라. 3기가 52명인데, 내 앞에는 너밖에 없잖아. 이러니 내가 이름을 알려 주고 싶겠어?”
2개월 정도의 인연은 가치가 없다는 말이었다. 아마 크루퍼 교관뿐 아니라 다른 교관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래서 이름을 안 알려 줬군.’
이곳에서 지낸 지 벌써 6개월. 그동안 많은 교관들을 만났는데, 이름을 아는 교관은 세리온 교관뿐이었다. 오늘 크루퍼 교관이 추가되어서 딱 2명이었다.
“나는 3서클 마법사이면서 수학자다. 마법보다는 수학을 먼저 배웠고, 늦은 나이에 인연이 닿아 마법에 입문했지. 내가 수학을 담당하게 된 이유도 여기 있다.”
크루퍼 교관의 말은 자신이 마법보다는 수학을 더 잘한다는 얘기였다. 덩달아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니 존경심을 보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예전에도 나한테 수학을 배웠을 텐데, 당시의 수학은 사실 수학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들만 추려 낸 기초 중의 기초였지. 진짜 수학은 이런 거다.”
크루퍼 교관이 칠판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분필을 쥐고 열심히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저걸 왜 저렇게 풀지?’
크루퍼 교관이 선택한 방법도 틀린 건 아니었다. 저렇게 풀어도 답은 나온다.
하지만 빙빙 돌아가는 방식의 풀이였다. 스스로 문제 난이도를 높이는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자! 답 나왔군. 7이다. 어때?”
“예?”
“봐도 모르겠지? 이런 게 진짜 수학이다. 하지만 안심해라. 마법사에게 필요한 수학은 이 수준이 아니니까. 훨씬 쉽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넌 모르겠지만.”
말 하나하나에 자기 자랑이 섞여 있었다.
몇 달 전에도 이미 경험했던 말투라, 딱히 놀랍진 않았다.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리는 게 속 편했다.
“자, 깊이 있는 수학은 제외하고. 마법에 왜 수학이 필요할까? 수학을 잘하면 어떤 점이 나아질까? 108번.”
“마법의 시전 속도, 정확도에 영향을 줍니다. 또 정확한 계산으로 마력 소모를 줄일 수 있습니다.”
“오호, 예습 좀 했나 보네. 맞다. 시전 속도와 정확도에 영향을 주고, 상황이 맞으면 마력 소모가 줄기도 한다.”
크루퍼 교수가 또 뒤를 돌더니 뭔가를 그렸다. 로딘은 칠판을 보고, 뭘 그리는지 알아챘다.
‘좌표 얘기가 나오겠군.’
탁!
“자, 그림에서 왼쪽이 마법을 시전하는 사람이다. 좌표는 0, 0, 0으로…….”
간단한 2차원 좌표를 정하는 법과 직선 형태의 마법 경로를 설정하는 법을 설명했다. 그리고 오른쪽에 다시 그림을 그리더니, 이번에는 높낮이를 포함한 3차원 좌표 설정을 가르쳤다.
“좌표를 설정하고, 마법의 경로를 설정한다. 마법에서의 수학은 이게 전부다. 물론 이게 전부라고 쉬운 건 아니다. 1의 단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상대와의 거리를 어떻게 파악하느냐. 이런 모든 것들을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서는, 정확한 수 계산이 필수다.”
로딘은 지금의 수업이 지루했다.
이미 도서관에서 다 봤고, 이해까지 했던 내용이었다. 직접 설명하라면, 크루퍼 교관보다 더 잘할 자신도 있었다.
“1의 기준은 어떻게 정하는가? 현실에서의 1m와는 다르다. 마법에서 일은 마법의 한 단위를…….”
크루퍼 교관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오전 시간을 거의 다 쓰면서, 다 아는 내용을 또 들어야 했다.
“그럼, 문제 하나 내겠다. 네 손끝과 서클이 있는 심장까지의 거리가 66이고. 상대와의 거리는 대략 2,442. 거기다 상대는 너보다 198 높은 곳에 있다. 마법을 매직 애로우에 맞게 상대 좌표를 구해라.”
“문제에 마력의 파동이 빠져 있습니다.”
“12라고 가정하지.”
“33, 18, 421입니다.”
로딘은 순식간에 답을 구했다. 문제를 파악하고 답을 도출해 내는 데 채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음?”
괴상한 소리를 낸 크루퍼 교관이 직접 칠판을 보며 계산했다. 마력의 파동 수치를 넣고 몇 분간 애쓰더니, 결국 33, 18, 421이라는 답을 찾아냈다.
“아! 어떻게 알았지?”
“그냥 암산으로 했습니다.”
“암산으로? 이걸?”
“예.”
크루퍼 교관의 수학 실력이 형편없는 건 아니었다. 마법사 중에서는 분명히 상위의 실력이었다.
하지만 로딘은 단순한 상위 이상이었다. 심지어 지금 가르치는 공식은 로딘이 단 10일 만에 마스터한 부분이었다. 응용문제를 직접 내라고 해도 낼 수 있었다.
“너. 수학 잘하는구나?”
“좋아합니다.”
“모레부터는 오전에 수학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다.”
“예?”
“넌 모레부터 오후 수업에 참석해라. 1기, 2기와 같이 수업을 들어도 충분하겠어.”
“아! 알겠습니다.”
크루퍼 교관은 로딘의 실력을 인정했다. 정확한 실력은 모르지만, 기초나 깨작대고 있을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아! 계산이 빠르다고 해서, 마법의 시전 속도가 마냥 빨라지는 건 아니다. 마법 캐스팅의 3대 요수 전부가 끝나야만 마법이 발현된다.”
“예, 들었습니다. 영창, 연산, 연상이라고.”
“맞다. 수식 계산이 끝나도 영창이 안 끝나면 마법도 시전되지 않는다. 모든 게 다 끝나야 마법이…… 아니다. 됐다.”
크루퍼 교관은 괜한 설명을 덧붙이다가 말을 끊었다.
계산이 빠른 게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를 하려다 보니 괜스레 궁색해졌다. 질투하는 것 같은 뉘앙스라 부끄러움마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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