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23)
마법을 품다 (23)
다시 반년이 흘렀다.
4기 훈련생들이 들어왔다. 새로운 아이들의 등장에 전체적으로 어수선했다.
하지만 번호를 정하는 날 시끄럽게 떠들다가 10여 명이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 분위기가 변했다.
3기가 당했던 걸 4기도 똑같이 당한 셈인데, 그날부터 고요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우리도 저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의 변화가 컸다.
일부 3기 훈련생들이 4기 훈련생들이 있는 곳을 기웃거렸지만, 대부분은 무관심했다.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급해서 남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로딘도 그랬다. 여전히 도서관 죽돌이였고, 연공에 열을 올리는 마법광이었다.
로딘의 지금 경지는 2서클. 1기 훈련생 중에도 여전히 1서클이 있다는 걸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였다.
“흐음.”
오늘은 오랜만에 호수로 나왔다.
2개월 전 2서클 마법사가 된 후, 물의 정령을 항시 소환해 두고 다녔다.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마력이 충분했다.
물론 물의 정령이 큰 힘을 쓰면 마력이 확확 줄어들겠지만, 지금은 그냥 어깨에 앉아서 노는 정도였다. 이 정도는 마력 소모도 크지 않았다.
“확실히 허술해. 뭔가 잘못 새긴 거야.”
로딘은 머릿속에 있는 노예 인장을 살피고 있었다.
노예 인장은 구멍이 듬성듬성 뚫려 있고, 마력진을 이루는 마력의 끈도 너무 가늘었다.
“왜 이럴까?”
1년 전, 이름도 모르는 한 마법사를 떠올렸다.
자신의 머리에 노예 인장을 새긴 4서클 마법사. 그날 이후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당시의 모습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쳐 있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4서클 마법사가 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기도 해.”
아무튼 나쁜 일은 아니었다. 머릿속의 노예 인장이 애초에 약하게 만들어졌으니, 나중에 지우기도 쉬울 것이다.
노예 인장은 원래 3서클 마법이다. 정식 마법사가 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흔한 마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새겨진 노예 인장을 지우려면 시전자가 가진 서클의 2배여야 한다. 3서클 마법사가 새긴 노예 인장을 지우려면 6서클 마법사가, 4서클 마법사가 새긴 노예 인장을 지우려면 8서클 마법사가 필요한 셈이다.
세상에 8서클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천 년 전의 마도 제국 시절에는 8서클 마법사뿐 아니라 9서클 마법사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건 전설 같은 얘기일 뿐이다.
최근 수백 년 사이에는 8서클 마법사도 나온 적이 없었다.
“아무도 지울 수 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특수군 양성소의 훈련생들에게 노예 인장을 새길 때, 4서클 마법사를 동원했다. 8서클 마법사가 없으니, 현시대에는 누구도 지울 수 없다고 판단했을 터.
그런데 자신의 뒤통수에는 허술한 노예 인장이 새겨졌다. 이 정도면 시전자와 같은 수준만 되어도 충분히 지울 수 있었다.
“4서클이면 돼. 4서클이면 지울 수 있어. 흐음, 2년으로는 어렵겠고. 한 2년 반이면 되려나?”
2서클 마법사가 된 후, 성장 속도가 느려졌다. 아니, 정확히는 마력은 여전히 같은 양을 모으고 있는데, 서클에 필요한 마력의 양이 크게 늘었다.
아무튼 정식 마법사인 3서클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4서클 마법사가 되는 데에는 당연히 더 많은 시간이 걸릴 테고.
“수인법이 제일 힘든가?”
중급의 마력 연공법으로 첫 사이클을 돌린 후, 로딘은 3가지의 목표를 설정했다.
하나는 머릿속에 있는 노예 인장을 지우는 것.
어설픈 마법사가 새긴 덕분에 쉬워졌다. 늦어도 3년이면 충분하지 싶었다.
2번째는 수인법의 개량.
양손으로 같은 룬어를 그리는 건 처음부터 가능했다. 양손잡이라서 이득을 본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5개의 손가락. 양손인 10개의 손가락으로 각기 다른 룬어를 동시에 그리는 건 너무 어려웠다.
1년~2년으로는 어림도 없고, 적어도 10년 혹은 20년 이상은 노력해야 할 듯했다.
“위력이 전부는 아니니까. 어떻게든 하긴 해야지.”
룬어를 동시에 그리면 위력이 강해진다. 마법을 캐스팅할 때는 더 강한 마법을 쓸 수 있고, 연공에서는 더 높은 밀도의 마력으로 서클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각기 다른 룬어를 동시에 그리면 여러 마법을 동시에 쓸 수 있었다. 아직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해서 확실한 건 아니지만, 이론상으론 그랬다.
“연공법도 문젠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중급의 연공법을 개량하는 게 3번째 목표였다.
이 역시 급하게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어쩌면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일지도 몰랐다.
“새로운 룬어를 좀 더 알았으면 좋겠는데.”
세리온 교관이 준 룬어의 개수는 정확히 7,816자였다.
많은 글자이긴 하지만, 로딘이 보기엔 부족했다. 더 많은 룬어가 필요했다.
“4대 마탑은 더 많이 알고 있겠지? 흐음?”
뒤쪽 멀리서 누군가 달려왔다. 로딘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코리라는 걸 알아챘다. 옷으로 변신한 지토가 알려 줬기 때문이다.
환수인 지토의 붉은 눈은 여전히 입고 있는 체육복 앞뒤에 하나씩 있었다. 그러다 보니, 평상시에도 앞과 뒤를 항상 감시 중인 상태였다.
게다가 지토는 정찰용 환수답게 시력이 어마어마하게 좋았다. 시야를 공유하면 수 킬로미터 밖에 걸어 다니는 사람의 얼굴도 확인할 수 있었다.
“로딘!”
“왔어?”
“쳇, 놀라지도 않아.”
코리에게 자리를 내주면서도 로딘의 양손은 계속 움직였다. 수인법 연습이었다.
털썩!
코리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상에서 바람을 맞고 온 듯, 머리가 한쪽으로 크게 쏠려 있었다.
“머리 정리 좀 해.”
“흐흐흐, 이것도 멋이라고.”
코리는 바람이 몰아치는 정상에서 속성 훈련을 하는 날 종종 호수가 있는 이곳으로 내려오곤 했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방문이 아니라, 단순히 휴식을 위해서였다.
“훈련은 다 했어?”
“오늘은, 아! 좋다. 난 여기가 너무 좋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기분이야. 며칠 전에는 사슴이 바로 요기까지 왔다니까. 만질 수 있었는데. 크으.”
아쉬운지, 코리가 연신 사슴이 나타난 방향을 바라봤다. 멀리서 너구리처럼 작은 동물 몇 마리가 기웃거리다, 후다닥 사라졌다.
“사슴은 좀…… 부담스러운데.”
“사슴이 왜?”
“뿔에 치이면 아파. 뒷발에 차여도 아프고.”
“흥, 겁쟁이.”
로딘은 코리를 힐끗 보고 피식 웃었다.
코리는 마법 실습 때마다 참관하는데,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가장 호들갑을 떠는 사람이었다. 누가 피라도 흘리면 자기가 피를 흘리는 듯이 하루 종일 끙끙거렸다.
“용감해서 좋겠다.”
“훗, 나야 대륙 최고의 정령사가 될 몸이니까. 그런데 물에는 안 들어가? 너 물의 정령하고 계약했잖아.”
“그냥 쉬러 온 거야. 정령술 훈련은 따로 안 해.”
친화력이 낮아서인지, 훈련을 게을리한 탓인지.
로딘과 계약한 물의 정령은 처음 그대로였다. 성장하려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마력은 많아서, 정령을 항시 소환하고 다니는 사람은 로딘뿐이었다.
코리나 2기 44번 선배는 하루에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서너 시간 정도였다.
“넌 네가 정령사라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당연히 난 마법사지. 정령은 그냥 친구? 아, 참. 랜트. 대판 깨졌다며?”
“응, 그 녀석. 그럴 줄 알았어.”
마법 전공자가 실습 시간이 있듯, 검술 전공자들도 10일에 1일은 대련 수업을 진행한다.
반년 전 첫 대련 수업에서 랜트가 3기 중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오러가 거의 없던 시기라 오직 육체만으로 싸웠는데, 누구도 랜트의 힘을 감당해 내지 못했다. 당시 랜트의 별명이 괴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압도적이었던 랜트의 위치가 차츰 흔들렸다. 3기 생들이 오러 연공법으로 오러를 쌓으면서 육체의 부족함을 대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2개월 전쯤, 장기간 이어 온 랜트의 독주 체제가 무너졌다. 압도적 승리가 아슬아슬한 승리, 혹은 아슬아슬한 패배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제는 헤들러가 아예 랜트를 압살했다. 랜트가 아예 손도 못 쓰고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들었다.
“랜트가 오러 연공을 잘 안 하지?”
“응, 지루하다고. 난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매일 땀 흘리는 건 그렇게 좋아하면서 어떻게 오러 연공을 지루하게 여길 수가 있지?”
랜트는 땀 흘리는 걸 좋아했다. 매일 뛰고, 무거운 걸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운동을 찾아서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것, 굶는 것, 머리 쓰는 것.
이 3가지를 극도로 싫어했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듣지 않았다.
“이제 좀 바뀌려나?”
“그럴걸. 아까도 연공실로 뛰어가더라.”
“푸하하. 지금이라도 정신 차렸으면 됐지. 아직 어리잖아.”
“제일 어린 네가 그런 소리를 하냐? 참 나.”
코리와 대화하면서도 로딘은 계속 손가락을 움직였다.
검지로 ‘바람’을 뜻하는 룬어를, 중지로 ‘앞’을 뜻하는 룬어를, 약지로는 ‘둥글다’를 뜻하는 룬어를, 새끼손가락으로는 ‘멈추다’를 뜻하는 룬어를, 엄지로는 ‘단단함’을 뜻하는 룬어를 쉼 없이 그렸다.
그렇게 1시간쯤 하면 룬어를 바꿨다.
수인법 연습은 한시도 쉴 수 없었다. 워낙 난이도가 높아서 하루만 쉬어도 손가락이 굳어 버렸다.
“슬슬 돌아갈까?”
“어? 벌써?”
“지금 돌아가야 저녁 시간에 안 늦어.”
“한 끼 굶으면 되…… 아니다.”
로딘은 랜트처럼 많이 먹진 않지만, 웬만하면 식사를 거르지 않았다. 아직 한창 성장할 때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키도 많이 컸다. 매일 혹사에 가까운 운동을 한 덕에 몸도 탄탄했다.
그래도 여전히 3기 훈련생 중에서는 최단신이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동기들과 무려 4년에서 5년이나 차이가 나니까.
* * *
1년 하고 6개월이 흘렀다. 그사이에 4기 훈련생의 전공이 결정되었고, 5기 훈련생 전공 결정 역시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흐음.”
로딘은 드넓은 호수를 바라보며, 머리를 비웠다. 손은 여전히 룬어를 그리고 있지만, 의식한 행동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해 오던 일이라,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여긴 여전히 좋네.’
오늘은 5기생들이 마력 재능을 측정하는 날이었다. 5기가 마력 연공실을 독식하기 때문에 연공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
작년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얼마 전에 연공실 공사가 끝났다. 마력 연공실이 모두 18개로 늘었다.
하지만 5기 훈련생의 숫자는 100명이 넘었다. 3기와 4기의 성공적인 결과로 훈련생들의 숫자를 대폭 늘린 것이다. 그 때문에 오늘 마력 연공실은 하루 종일 5기 훈련생에게 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음?”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아직 거리가 꽤 멀지만, 지토 덕분에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지?”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이곳은 정령 계약자에게만 허락된 장소였다.
불의 정령과 계약한 2기 44번 훈련생은 올 수 있지만, 정령과 계약하지 못한 훈련생은 절대 와선 안 되었다.
“못 보던 훈련생인데. 새로운 정령 전공자가 맞나?”
5기는 어차피 마력 측정도 안 끝났을 테니, 정령 전공자가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4기만 남는다.
로딘은 4기 훈련생에 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별로 관심을 가지지도 않아서, 정령 계약자가 있는지도 몰랐다.
“여어, 여기 있었네.”
“날 아나?”
“3기 108번. 유명하더구먼. 최고의 마법 재능이라고. 물론 내가 오기 전의 얘기지.”
“아!”
로딘은 상대가 누군지 알아챘다. 재능 얘길 하니 떠오르는 훈련생이 1명 있었다.
작년 이 시기쯤, 4기 훈련생 중 1명의 마력 재능이 59점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로딘의 마력 재능이 58점이니, 그보다 딱 1점이 더 높았다.
하지만 같이 듣는 수업이 없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오늘이 첫 대면이었다.
“나 누군지 알지?”
“들은 적 있네. 59점.”
“흐흐흐. 3기 108번. 네가 나보다 1년 먼저 와서 지금은 나보다 강하겠지만, 얼마 안 남았어. 내가 금방 따라잡을 테니까.”
상대가 반말을 했지만, 로딘은 개의치 않았다.
기수는 자신이 빨라도, 나이는 상대가 많을 것이다. 적어도 3년 어쩌면 4년이나 차이가 날 텐데, 서열이 높니 낮니 다투긴 싫었다.
“그러든가.”
“흥, 지금은 여유 부리지만. 금방 생각이 바뀔걸.”
“그래.”
로딘은 상대 가슴팍의 숫자를 확인했다.
4-155번.
숫자만 기억해 두고, 바로 관심을 껐다. 두고두고 관심을 가질 만큼 가치 있는 녀석은 아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