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25)
마법을 품다 (25)
노예의 인장이 새겨진 곳은 뒤통수. 그래서 훈련생들은 뒷머리를 잘 자르지 않는다. 노예 인장을 어떻게든 가리기 위해서였다.
‘저기에 노예 인장이 있겠지.’
엎드려서 팔 굽혀 펴기 중인 헤들러의 머리를 가볍게 툭 두드렸다. 마력이 미약하게 진동하는 게 예민한 감각에 포착되었다.
“헤들러.”
“잠시만. 마저 하고.”
정해진 수량이 있는 헤들러는 남은 개수를 다 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옆에서도 보였다.
“왜?”
“잠깐만 뒤로 돌아 봐.”
“왜?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니지?”
“그런 거 아니야. 잠깐만.”
헤들러가 뒤로 돌아서 앉았다. 로딘은 헤들러의 뒤통수에 손을 대고 마력에 집중했다.
‘역시 내 것보다 훨씬 선명해. 지우기 쉽지 않겠어.’
코리, 랜트의 노예 인장은 예전에 확인했다. 오늘 헤들러의 노예 인장까지 확인하면서, 자신의 것과 확실하게 비교할 수 있었다.
셋의 뒤통수에 노예 인장과 폭발 속성의 마법은 선명하고 날카로웠다. 손을 댈 엄두가 안 났다.
‘그래도 8서클까지는 아니야.’
통상 노예 인장을 지우려면 시전자가 가진 서클의 2배여야 한다고 말한다. 4서클 마법사가 새긴 노예 인장을 지우려면 8서클 마법사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로딘은 8서클이 아니어도 노예의 인장을 지울 수 있다고 봤다. 7서클. 그 정도면 가능하지 싶었다.
‘코리는 좀 쉬워 보였는데.’
코리의 번호는 107번. 자신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노예의 인장을 새겼다. 그래서인지, 노예의 인장이 그리 선명하지 않았다. 약간 위험을 감수한다면 6서클 마력으로도 노예의 인장을 지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위험을 감수할 일이 없어야겠지만.’
헤들러, 랜트, 코리. 3명 모두 7서클 마력을 이용하면 안정적으로 노예의 인장을 지울 수 있다. 굳이 무리해서 노예 인장에 손을 댈 필요는 없다.
“됐다.”
“뭐 했는데?”
“노예 인장. 확인해 봤어.”
“그래? 지울 수 있어?”
“그게 되겠냐? 그냥 확인만 한 거야.”
“그렇지? 난 또.”
로딘은 헤들러의 노예 인장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갔다 올게.”
“응.”
목적지는 도서관. 취침 1시간 전까지 책을 읽었다. 매일 해 오던 일과라, 목적지를 묻는 사람도 없었다.
* * *
마법 실습 날이 되었다.
1기부터 4기까지. 마법을 전공하는 훈련생 17명이 한자리에 집합했다.
중앙 건물 앞의 넓은 운동장은 검술 전공자들이 사용한다. 마법 전공자들에게 주어진 장소는 뒤쪽이었다.
“쟤들이 4기야?”
“흐흐흐, 귀여운 것들.”
“어리다. 어려.”
1기와 2기 훈련생들이 자기들끼리 4기 훈련생들을 품평했다. 아직 세리온 교관이 들어오지 않아,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4기에 천재 마법사가 있다던데?”
“에이, 천재는 여기 있지.”
2기 31번이 턱짓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3기 108번인 로딘이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쟤는 괴물이잖아. 원래 비교는 사람끼리 하는 거야.”
“108번은 사람이 아니고?”
“아니지. 쟤는 우리하고 다른 종일 거야. 혹시 알아? 알에서 태어났을지.”
“풋, 그거 말 된다.”
로딘은 자기 경지를 낮춰서 밝혔지만, 그것만으로도 1기와 2기의 성장 속도를 한참 웃돌았다. 경쟁심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마력 재능 최고는 4기에 있다던데?”
“마력만 그런 거지. 마법이 마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
“하긴, 108번 녀석 좌표 계산하는 속도 보면 말이 되나 싶긴 하더라.”
“그래도 위력은 좀 떨어지잖아.”
로딘이 일부러 만들어 낸 약점이었다.
자신은 캐스팅도 빠르고, 정확하며, 마력 소모가 적다. 하지만 마법의 위력은 좀 떨어진다.
이런 식으로 자기 마법에 단점을 만들었다. 그래야 남들에게 위화감을 덜 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로딘은 실습 중에 절대 수인을 사용하지 않았다. 마법의 위력에 관여하는 룬어를 영창할 땐 발음을 최대한 뭉갰다.
“아무리 위력이 약해도 낮은 서클 마법사보단 강하잖아. 저 정도면 전투 마법사로 충분하지.”
“하긴, 저런 단점이라도 있으니 인간적이지. 근데 쟤는 아까부터 왜 저렇게 노려보냐?”
4기 155번은 이곳에 등장한 순간부터 한 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눈빛이 향한 곳은 3기 108번 로딘이 앉은 방향이었다.
“경쟁심. 그런 건가?”
“쯧, 너무 큰 나무를 올려다보는 것 같은데.”
“혹시 모르지. 마력 재능뿐 아니라, 다른 쪽도 뛰어날지.”
“글쎄다. 아무리 생각해도 108번 같은 괴물이 또 있을 것 같진 않은데.”
1기와 2기 훈련생들이 잡담을 나누는 것처럼 4기 역시 자기들끼리 속닥대고 있었다. 상위 기수와의 차이는 목소리가 좀 더 작다는 것 정도였다.
“오늘 내가 저 녀석 박살 낸다. 두고 봐라.”
“될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로딘에게 승리를 확신하는 훈련생은 당연히 155번이었다. 자기가 패한다는 걱정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당당한 태도였다.
반면 155번과 같은 내무실을 쓰는 132번은 마법을 1년이나 더 배운 선배와의 대련이 걱정스러웠다. 155번과 달리 신중한 성격이라, 어제부터 계속 155번을 말리고 있었다.
“나도 2서클인데 못 할 게 뭐 있어? 잘 봐라. 저 꼬맹이를 확실하게 밟아 줄 테니까.”
“그래도.”
“이미 2서클 마법을 3개나 배웠거든. 그거면 충분해.”
2서클 마법을 속성으로 배워서 깊이가 없기는 했다. 캐스팅 시간도 꽤 긴 편이고, 최적화가 안 되어서 마력 소모도 상당히 컸다.
그래도 2서클 마법은 2서클 마법이었다. 1서클 마법보다 훨씬 강한 위력이라, 맞히기만 하면 승리는 확실했다.
“저 사람은 1년 전에 2서클이 됐다고. 너보다 쓸 수 있는 마법도 더 많을 거야.”
“넌 누구 편이야? 설마 내가 진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아,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
“흥, 무조건 이길 테니까. 넌 날 존경할 준비나 하라고.”
155번의 성격은 마법사와 거리가 멀었다. 신중함이 부족하고, ‘변수’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친구인 132번은 155번의 저런 성격이 언젠가 문제를 일으키리라고 생각했다. 그게 제발 오늘이 아니기를 바랐다.
“대체 108번을 왜 싫어하는 거야?”
“별것도 아닌 게 잘난 척하잖아.”
“저 사람이 언제 잘난 척했는데? 얼굴 보기도 힘든 사람인데.”
“아, 몰라. 그냥 싫어. 얼굴만 봐도 화가 치밀……, 온다.”
멀리서 세리온 교관이 특유의 푸른 로브를 입고 나타났다. 왼손에는 오랜만에 스태프까지 꺼내 쥐었다.
“다들 모였나?”
“예, 교관님.”
“오늘도 이전처럼 움직이면서 마법을 사용하는 연습을 진행한다. 4기는 무빙 캐스팅이 처음일 테니 옆으로 빠지고. 나머진 알아서 연습해.”
세리온 교관의 지시에 훈련생들이 주변 운동장을 달렸다. 그리고 운동장 중앙에 준비해 둔 허수아비를 향해, 기본적인 마법을 날렸다.
무빙 캐스팅은 최근 3개월 동안 마법 실습 시간에 진행해 온 수업이었다.
무빙 캐스팅은 마력 재능과 하등 관계가 없었다. 마력 재능이 뛰어나도 움직이기만 하면 룬어를 틀리거나 수식 계산이 엉망이 되는 사람이 많았다.
로딘은 이 부분에서 적당히 평균적인 능력을 보여 줬다. 이미 수식 계산이 끝났음에도 시간을 끌었고, 다 아는 룬어를 일부러 틀려서 캐스팅에 실패하기도 했다.
1기, 2기, 3기가 운동장을 뛰며 마법을 사용하는 사이에 세리온 교관은 4기 훈련생에게 무빙 캐스팅을 가르쳤다.
무빙 캐스팅의 핵심은 빠른 수식 계산과 집중력, 차분함이었다.
이 중에서 수식 계산은 반복하는 것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당장 마법이 사방으로 튀더라도, 수십 또는 수백 번을 반복하면 감각적으로 얼추 비슷한 답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신적인 부분인 집중력과 차분함은 한계가 명확했다. 가르친다고 나아지는 부분이 아니었다.
천성적으로 산만하고 덤벙대는 성격은 절대 무빙 캐스팅을 할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1기, 2기, 3기는 모두 합격이었다. 엄청나게 빨리 무빙 캐스팅을 배운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속도로 어떻게든 해내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번호대로 달리면서 왼쪽에 있는 표적에 매직 애로우를 사용한다.”
세리온 교관은 팔짱을 끼고 훈련생들이 마법을 쓰는 모습을 지켜봤다.
1기, 2기, 3기는 딱히 지적할 게 없었다. 조금 느리지만, 이 정도는 익숙함의 문제일 뿐이다. 계속 반복해서 감이 잡히면 훨씬 빨라질 것이다.
눈을 돌려 4기 훈련생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쪽도 나쁘지 않네.”
특수군 양성소는 아이들을 사 올 때부터 ‘정신적으로 성숙할 것’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 덕인지, 아이들은 대체로 집중력이 좋았다.
“그런데 155번. 후우, 좀 아쉽군.”
세리온 교관의 시선이 4기의 155번에 고정되었다. 다른 동기들보다 조금 버벅거리면서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이 보였다.
“장단점이 이렇게 극명하게 갈릴 수가 있나? 이거야, 원.”
155번의 장점은 많았다.
전 기수 최고의 마력 재능, 놀라운 전투 감각, 뛰어난 암기력. 장점만 보면 미래가 기대되는 인재가 분명했다.
문제는 단점도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느리다 못해 속이 터지는 수준의 수식 계산, 엉망진창인 마법 연상 능력.
캐스팅의 3요소 중 2가지가 엉망이었다.
“108번 같은 경우가 또 나오길 바라는 건 욕심인가?”
108번은 딱히 약점이 없었다. 마법의 위력이 떨어진다는 걸 유일한 약점으로 보는데, 다른 이들의 마법 위력과 차이가 큰 것도 아니었다.
108번이 사용하는 마법은 다른 기수가 사용하는 마법의 대략 80% 정도의 위력이었다. 이 정도 손해는 빠른 캐스팅 속도와 정확도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었다.
“155번이 가진 단점을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
155번의 압도적인 마력 재능은 빠른 서클 상승을 이끌었다. 3기의 108번 정도를 제외하고, 훈련생 중 가장 높은 경지를 계속 유지할 게 분명했다.
또 전투 감각이 놀라운 수준이라, 대련 중에 공격할 때와 방어할 때를 귀신같이 포착해 냈다. 전투하는 모습만 보면 전투 마법사로 10년쯤 구른 마법사 같았다.
암기력이 뛰어나 룬어도 잘 외웠다. 마법 영창에 필요한 룬어 습득이 빠르다는 건 마법을 빨리 배운다는 뜻과 같았다.
“이미지를 그리는 건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거겠지. 나이를 먹으면 나아질 거야.”
막상 155번을 생각하니, 108번이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155번보다 훨씬 어린데, 마법의 형체는 놀라울 정도로 일정하고 선명했다.
구현될 마법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정확하게 오차 없이 그려야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수학이 문젠가? 하아, 과거의 나하고 비슷한 건가?”
세리온 역시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도 싫어하지만, 마법을 처음 배웠던 어린 시절에는 정말 끔찍하게 싫어했다.
“크루퍼 교관에게 말해 둬야겠군. 닦달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1기, 2기, 3기 훈련생들이 운동장을 5바퀴째 돌았다. 4기는 이제 3바퀴째였다.
“허억, 허억!”
4기 훈련생 중 제일 뒤로 처진 1명이 연신 숨을 몰아쉬었다. 체력이 한계에 달해 다리도 후들거렸다.
“155번의 단점이 하나 더 있었군.”
지쳐 쓰러지기 직전인 4기 훈련생은 155번이었다. 언젠가부터 마법도 날리지 못하고 있었다.
“흐음, 저건 당장 손을 써야겠군.”
마법사도 육체 능력이 어느 정도는 필요했다. 검사만큼 근육을 키울 필요는 없지만, 검사들의 발목을 잡을 정도로 약골이어선 곤란했다.
“아침 운동에 참여하는 마법 전공자가 거의 없다고 듣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전공이 결정되면 아침 훈련에 참여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아침에 유독 연공법 효율이 높은 사람도 있어서 스스로 결정하도록 선택권을 준 것이다.
검술 전공자들은 대부분 아침 훈련에 참여한다. 정말 극단적으로 아침의 연공 효율이 높은 훈련생이 아닌 이상 아침 훈련 참여는 필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마법이나 정령술 전공자 중에는 아침 훈련에 참여하는 훈련생이 거의 없었다.
1기와 2기는 전멸, 3기는 로딘만 참여한다. 특히 로딘은 단 한 번도 아침 훈련을 빼먹은 적이 없었다.
4기는 아침 훈련에 몇 명 참여하지만, 매일은 아니었다. 어쩌다 일찍 일어나면 참여하고, 아니면 불참하는 식이었다.
“자! 그만. 모두 집합.”
지쳐 가는 훈련생들을 보며, 세리온이 훈련을 중단했다.
세리온의 선언에 일찍부터 달린 1기와 2기 훈련생들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비칠거리며 세리온 앞으로 다가왔다.
달린 거리가 짧은 4기 훈련생들은 그나마 멀쩡했다.
155번을 포함한 몇 명만 곧 죽을 것처럼 하얗게 질려 있을 뿐. 대부분은 정상적인 걸음으로 모였다.
“남은 시간은 마법 토의…….”
“교, 교관님. 허억. 허억.”
“말해라. 155번.”
“대, 대련은 안 합니까?”
숨을 헐떡이면서 155번은 로딘을 계속 노려봤다.
세리온 교관도 155번의 눈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대련이라…… 오늘은 대련이 예정되어 있지 않지만, 굳이 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는다. 단! 조건은 알지?”
“자기보다 경지가 낮은 이들에겐 도전하지 않는다. 알고 있습니다.”
상위 마법사는 하위 마법사에게 도전할 수 없었다. 자기보다 약한 이들을 괴롭히는 용도로 사용될 수 있어서였다. 대신 그 반대는 가능했다.
“그래. 누굴 선택할 거지?”
“108번 선배와 싸우고 싶습니다.”
“오호, 너보다 1년이나 마법을 더 배웠는데?”
“꼭 붙어 보고 싶습니다.”
4기 155번의 눈빛이 뜨거웠다. 4기의 다른 훈련생들은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도저히 말릴 분위기가 아니었다.
“108번?”
“알겠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