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26)
마법을 품다 (26)
갑자기 만들어진 3기와 4기의 대련.
꽤 흥미로운 이벤트였지만 정작 1기와 2기의 훈련생들은 차분했다. 하나같이 어이없단 표정으로 155번을 바라볼 뿐이었다.
반면 4기 훈련생들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크게 소리를 질러 가며 동기의 승리를 응원했다.
“넌 저게 될 거라고 보냐?”
“되겠냐?”
“쟤는 무슨 자신감으로 108번과 싸우겠다는 거지?”
“믿는 구석이 있나 본데?”
1년 5개월 전, 108번이 처음으로 마법 대련에 참가했다. 첫날이었지만, 108번은 승리를 거뒀다.
그때부터 약 1개월이 지난 후부터 108번은 단 한 번도 맞지 않고 상대를 압살했다.
결국 1기와 2기 훈련생들이 3기인 108번과의 대련을 피하기에 이르렀다. 도저히 못 이긴다는 포기 선언이었다.
하지만 대련의 도전 권한은 108번도 가지고 있었다.
대련 때마다 108번에게 선택된 선임 기수들은 하나같이 죽을상을 하며 싸웠고, 예외 없이 박살이 났다. 심지어 혼자서 4명과 차례로 대련했을 때도 108번이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뒀다.
며칠 후, 세리온 교관이 직접 108번에게 ‘대련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1기와 2기 훈련생들에게 했던 말은 지금도 이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았다.
―내가 계속 고민해 봤는데, 너희들 실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108번을 못 이기지 싶다.
꽤 많은 전투를 경험했을 세리온 교관의 눈에는 108번과 선임 기수의 사이에 절대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게 보였다.
캐스팅 속도부터 압도적이었다. 선임들이 2분 걸리는 마법을 108번은 1분 만에 완성해 버렸다. 아무리 단단하게 방어를 굳혀도 양으로 쏟아부으니 버티질 못했다.
그러면서 마력 효율도 뛰어났다. 4명과 차례로 대련을 했는데도 마력이 조금 남았다. 당시에는 모두가 1서클이었는데도 그랬다.
“믿는 구석이라는 게 진짜 믿을 만한 구석일까?”
“근데 궁금하긴 하네. 우리도 108번하고 싸워 본 지 1년이 넘었잖아.”
“그러네. 그사이에 어떻게 변했을까?”
“혹시 실전 경험을 못 해서 감이 무뎌진 거 아닐까?”
“첫 대련에서 깨진 놈이 할 말이냐?”
1기와 2기는 108번의 승리를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한때 자신들의 공포였던 108번이 패했으면 하는 마음도 없진 않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108번이 지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방어구 착용해.”
“예.”
대련할 때는 회색으로 된 특별한 방어구를 입는다. 마법의 속성 효과를 일부 막지만, 물리적인 충격은 내부까지 그대로 전해 주는 마도구였다.
방어구를 착용한 155번이 4기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운동장 한쪽에 섰다. 로딘은 그런 155번을 힐끔 쳐다보고, 느릿하게 반대편으로 갔다.
“양쪽 준비!”
세리온 교관이 품에서 붉은색 깃발을 꺼냈다. 이 깃발을 던져 바닥에 닿는 순간에 대련이 시작된다.
“준비됐습니다. 교관님.”
“준비됐습니다.”
세리온 교관이 깃발을 위로 던졌다. 허공에 잠깐 멈추는 듯했던 깃발이 아래로 빠르게 떨어졌다.
탁!
깃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155번이 앞을 노려봤다. 108번은 깃발이 떨어짐과 동시에 운동장 주변을 뛰고 있었다.
운동장 주변을 뛴다는 건 무빙 캐스팅을 하겠다는 뜻이다. 동시에 상대에게는 정밀한 좌표 계산을 강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흥. 하즈리나 로스하 하메르…….”
155번은 깃발이 떨어지자마자 룬어를 영창했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수식을 계산했고, 동시에 마법의 결과를 이미지로 떠올렸다.
파이어 브레이크.
불 속성의 2서클 마법으로 1서클의 파이어 애로우보다 넓은 범위를 차지하고 앞으로 날아가는 마법이었다. 범위가 넓어서 정확도가 좀 떨어지더라도 상대를 맞힐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퍼억!
그때 복부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복부를 누가 후려친 듯한 통증이 뇌리를 잠식했다.
“커억!”
마법을 절반도 완성하지 못했는데, 벌써 공격받았다.
‘말도 안 돼.’
3기의 108번이 마법을 빨리 쓴다는 건 들은 적이 있었다. 자신보다 조금 빠를 것도 예상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차이가 더 컸다. 룬어 영창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마법이 날아왔다.
퍼억!
배를 부여잡고 너무 오래 있었을까. 또 한 방의 마법이 날아왔다. 이번에도 좀 전에 맞은 그 자리였다.
“나왔다.”
“때린 데 또 때리기.”
“108번. 저 잔인한 놈.”
“아! 트라우마. 오랜만에 108번을 꿈에서 볼 것 같다. 제기랄.”
1기와 2기는 이미 예전에 155번과 같은 경험을 했다.
맞은 데 또 맞고, 또 맞고, 또 맞고. 그러다 토하면서 끝나는 게 1년 몇 개월 전 그들의 모습이었다.
퍼억!
또 한 방의 마법이 복부에 작렬했다. 손으로 복부를 막았더니, 손가락 사이의 작은 틈에 마법이 꽂혔다.
퍼억!
또 한 방을 더 맞았다. 꿈틀거리는 155번을 보던 모든 이들이 몸을 움찔했다.
로딘은 3서클 마법사였지만, 대외적으로는 2서클 마법사로 알려졌다. 그래서 2서클 마법사처럼 싸웠다.
룬어를 충실하게 영창했고, 수식 계산도 꼬박꼬박했다. 3서클 마법을 안 썼음은 물론이었다.
퍼억!
또 한 번의 타격. 155번이 급히 손을 들었다.
“이, 이건 반칙…… 쿨럭! 반칙이에요! 이건 아닙니다!”
반칙이라는 말에 주변을 달리던 로딘이 자리에 멈췄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무슨 반칙 말이지?”
“저, 저는 무빙 캐스팅을 오늘 처음 배웠습니다. 동등한 조건에서 싸워야 합니다.”
“하아, 참 나.”
“저는 괜찮습니다.”
세리온 교관은 155번의 유치한 행태에 어이가 없었다. 놀러 왔냐고 한 소리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반대쪽에서 108번이 괜찮다고 해서, 그냥 물러났다. 아무래도 108번은 오늘 155번을 제대로 교육할 생각인 듯했다.
‘한 번쯤 당해 보는 것도 좋지.’
“좋다. 다시 자리로. 108번은 제자리에서 마법을 쓰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잠시 후, 다시 마법 대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55번은 전보다 더 심각하게 두들겨 맞았다.
로딘이 무빙 캐스팅을 했을 때도 155번보다 마법을 완성하는 속도가 빨랐다. 가만히 서서 마법을 사용하니, 그 차이가 더 벌어졌다.
155번은 그 자리에서 마법 캔슬만 여러 번 경험하다 무너졌다. 마법 캔슬은 충격으로 집중력을 잃어서 마법이 취소된 걸 의미했다.
“그만. 155번, 만족하나?”
“납득……할…… 수 없습니다.”
155번은 복부를 잡고 끙끙 앓았다.
마법의 위력을 상당수 막아 주는 방어구가 없었다면, 혹은 108번이 방어구가 막지 못하는 부위를 노렸다면. 155번은 1서클 마법에 맞아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오호, 그래? 근성은 있네. 뭐가 문제야?”
“저……는 마법을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법을 꼭 써 보고 싶다는 건가?”
“예, 제 마법은 특별합니다.”
155번의 도전에 세리온 교관이 108번을 쳐다봤다. 108번은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세리온 교관은 1기와 2기가 108번에게 연신 깨지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의 108번은 차례로 4명을 모두 꺾고 한 대도 맞지 않았다.
오늘 오랜만에 108번이 마법을 쓰는 모습을 봤다. 전보다 캐스팅 속도가 더 빨라졌다. 위력이 좀 약하다는 단점은 여전했지만, 그 외의 모든 면에서 성장한 모습이었다.
“155번이 먼저 마법을 쓰고, 저는 나중에 사용하겠습니다.”
“그러면 자리로 가. 바로 시……, 아니다. 10분만 쉬고 진행하지.”
4기의 155번은 아직 정상이 아니었다. 회복을 위해 시간을 좀 주기로 했다.
10분이 아니라 20분을 쉬고, 155번과 로딘이 마주 섰다. 거리는 좀 전과 마찬가지로 약 30미터였다.
“155번. 먼저 마법 사용해.”
한 명이 마법을 먼저 쓰기로 했으니, 깃발을 던지는 건 의미가 없었다.
세리온 교관은 직접 지시를 내리며, 대련 시작을 알렸다.
“파이어 애로우!”
약 2분의 캐스팅 후, 155번이 마법을 날렸다.
파이어 애로우.
1서클의 애로우 계열 마법 중에 위력이 가장 강하고, 마력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마법이었다.
155번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파이어 애로우가 로딘에게 빠르게 날아갔다. 로딘은 날아오는 화살의 궤적을 읽고 작게 룬어를 영창했다.
마법 캐스팅은 순식간에 끝났다. 로딘의 손끝에서 탁한 빛깔의 작은 공이 형성되었다.
“음?”
“저게 뭐지?”
1기와 2기 훈련생들은 물론 세리온 교관조차 로딘이 만든 마법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익숙한데, 정체 파악이 안 되는 마법이었다.
155번이 날린 마법은 로딘이 만든 공 모양의 마력 덩어리와 부딪쳤다. 그리고 두 개의 마법이 모두 허공에서 사라졌다.
“마법을 막은 건가?”
“뭔가, 간단한 마법을 사용해서 막은 듯한 느낌인데?”
한 번 마법이 막혔지만, 155번은 포기하지 않았다.
눈을 반개한 채로 좀 더 오래 마법을 캐스팅했다. 거의 5분이나 걸려서, 꽤 많은 마력이 담긴 마법을 완성해 냈다.
“윈드 스피어!”
바람이 압축되어 만들어진 창이 로딘을 향해 날아갔다. 애로우 계열 마법의 상위 마법이었다.
애로우 계열과 흡사한 속도. 그런데 담긴 마력은 훨씬 많았다. 위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마력을 추가로 담기까지 했다.
“흐음.”
로딘은 좀 전에 사용했던 탁한 빛깔의 공을 또 만들었다. 날아온 윈드 스피어는 탁한 공에 부딪히더니 옆으로 밀려서 사라졌다.
“어?”
“뭐야? 저게 어떻게 되지?”
마법을 막거나 상쇄하려면 같은 서클의 마법이어야 했다. 하위 서클의 마법은 상위 서클 마법에 닿으면 부서지거나 뚫리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2서클인 윈드 스피어를 정말 간단하게 만든 탁한 구슬이 막아 냈다. 그들이 배운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저게 상쇄가 되나? 저 칙칙한 공이 2서클 마법이었다고?”
“아니다. 1서클이다. 그리고 공격을 막거나 상쇄한 것도 아니고. 비껴가게 한 거다.”
대련을 집중해서 봤던 세리온 교관이 1기와 2기의 의문을 풀어 주었다.
“비껴가게 해요?”
“공 모양의 바깥으로 비스듬하게 흘려서 윈드 스피어가 빗나가게 만든 거야. 너희들도 좀 전에 본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봐라. 공에 부딪혔을 때는 윈드 스피어가 사라지지 않았다. 경로가 살짝만 틀어졌고, 108번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난 후에야 사라졌지.”
로딘이 바꾼 각도는 아주 조금이었다. 원래부터 정확도가 떨어져서 옆구리 끝에 살짝 맞는 각도였고, 그걸 아주 조금 더 틀어서 허리 옆으로 비껴가게 만든 것이다.
“윈드 스피어!”
계속 막기만 하던 로딘이 마법을 사용했다. 충격으로 굳었던 155번은 피하지도 못하고 마법을 얻어맞았다.
“크아악!”
로딘이 처음으로 2서클 마법을 사용했다. 155번이 사용한 것과 같은 마법이었다.
1서클 마법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력이 155번의 복부를 강타했다.
155번은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까무룩 의식도 사라진 상태였다.
게거품을 물고 부들부들 떠는 모습에 세리온이 4기 훈련생들이 있는 방향으로 손을 까딱거렸다. 155번은 알아서 챙기라는 뜻의 몸짓이었다.
어차피 크게 다친 건 아니었다. 충격으로 내부가 진탕되었을 뿐이니, 하루 이틀 휴식하면 저절로 나을 터였다.
“계속합니까?”
“됐다. 수고했어. 그런데 아까 그 회색 공은 뭐지? 익숙한데 낯설어.”
“라이트에서 빛을 뺀 겁니다.”
라이트 마법은 4개의 룬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1서클 마법 중에서도 가장 간단한 마법이었다.
로딘은 거기에서 빛을 담당하는 룬어를 빼 버렸다. 고작 3개의 룬어로 이루어진 초간단 마법을 만든 것이다.
“하아! 고작 룬어 3개짜리 마법으로 2서클 마법을 막았다고? 하하하, 웃음밖에 안 나오네.”
“감사합니다.”
1기와 2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래 괴물인 건 알고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저런 놈을 이겨 보겠다고 덤벼들었던 155번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4기가 받은 충격은 더 했다.
155번은 4기 마법 전공자들의 희망이었다. 전 기수 중 최고의 마력 재능에 마법 습득력도 뛰어났다.
언젠가는 155번이 특수군 양성소 최고의 마법사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믿음이 단 한 번의 대련으로 와장창 깨졌다. 다시 싸워도 155번이 108번을 이기진 못할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새로운 전투를 아무리 돌려 봐도, 결과는 항상 108번의 압승이었다.
“모두 수고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 쉬어라.”
“수고하셨습니다.”
수업이 끝났다. 아직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한 시간이나 남은 상태였다.
4기 훈련생들이 155번을 챙겨 내무실로 향했다.
로딘은 멀어지는 155번을 힐끗 쳐다보고,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