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27)
마법을 품다 (27)
다음 날 오전, 수업이 없는 시간이라 도서관으로 왔다.
요즘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연공법을 만드는 것. 아직은 큰 성과가 없었다. 아무래도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룬어가 필요할 듯했다.
“흐음, 그냥 책이나 읽을까?”
철컥!
그때, 문고리가 돌아가며 작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도서관 심화 코너에 사람이 찾아오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1년 반 전에 룬어 책을 세리온 교관이 가져온 이후로 처음이었다.
‘도서관에 나 말고 사람이 오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한숨을 쉬었다.
어제 대련에서 박살 났던 155번이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건너편에 앉았다.
‘굳이 아는 척할 필요 없겠지.’
시비를 걸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대충 봐도 기가 팍 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로딘은 무시하고 책에 집중했다. 앞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고개를 들고 아는 척하진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선배님.”
“선배는 아니…… 아, 됐고. 사과는 받을게. 그럼 끝.”
단호하게 대답하고 다시 책에 집중했다. 그런데 여전히 앞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거슬리네.’
평소처럼 매섭게 노려보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니,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저런 눈빛에 화를 내자니 냉혈한처럼 보일 것 같았다. 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건 더 이상했다.
그날은 일찍 책을 덮고 도서관을 벗어났다. 앞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통 집중할 수가 없었다.
10일이 흘렀다. 155번은 여전히 도서관의 심화 서고로 찾아와 맞은편에 앉았다. 간절하고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도 여전했다.
‘계속 모른 척해야 하나?’
연공법 연구가 막혀도 로딘은 짜증을 내지 않았다. 지금은 비록 답답하지만, 노력하면 언젠가는 결실을 볼 거라 믿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지운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바라보는 155번은 답이 없었다. 그냥 두면 미래에도 계속 거슬릴 것 같았다.
“하아, 뭐가 문제야?”
결국 로딘이 먼저 말을 걸었다. 10일이나 이어 온 짜증 나는 거슬림을 오늘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고요한 곳에서 울린 목소리에 155번이 몸을 움찔 떨었다. 그러고는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연신 벙긋거렸다.
“여기 계속 찾아오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뭐야? 뭐가 문제야?”
“도와주십시오.”
“뭘 도와? 누가 괴롭혀?”
“마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선배님.”
가르침을 청한다? 좀 어이없는 소리였다. 지금까지 자기가 최고라며 시비를 걸었던 그놈이 맞나 싶었다.
“마법은 교관님한테 배워야지. 왜 나한테 와서 이래? 교관님 찾아가 봐.”
“세리온 교관님이 권한 일입니다. 108번 선배님한테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크루퍼 교관님도 수학은 선배님에게 배우는 게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관님들이?”
크루퍼 교관이면 모를까, 세리온 교관이 개입했다면 로딘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수학 수업이 사라지면서 크루퍼 교관은 어차피 만날 일이 없었다. 오가며 한 번씩 보지만, 인사만 나눌 뿐. 사적인 친분을 나눌 정도로 길게 대화해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세리온 교관은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룬어 수업, 마법 연상 수업, 마법 실습까지. 10일 중에서 6일을 만나야 했다.
“예, 세리온 교관님이 제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108번 선배님이 자신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흐음.”
생각해 보면 155번과 세리온 교관의 마법 스타일은 상당히 흡사했다. 둘 다 치밀한 좌표 계산보다 경험과 감각에 의지해서 마법을 사용하는 편이었다.
‘단점마저 닮아서 자신은 도울 수 없다는 건가?’
로딘은 155번의 마법 스타일을 하나하나 되새겨 봤다. 장점은 확실하지만, 단점도 명확했다.
“넌 네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
“수학입니다. 계산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렇지. 넌 마법의 정확도가 떨어지고, 캐스팅 시간도 너무 길어. 반으로 줄이지 못하면 전장에선 아무것도 못 하고 당할 거다.”
“외우는 건 잘하는데 계산은 아무리 노력해도 늘지 않습니다.”
그럴 리가. 노력을 안 했으니까 안 느는 거다. 어려우니까, 잘 안 풀리니까. 몇 번 해 보고 쉽게 포기했을 게 뻔했다.
“또?”
“예?”
“네 단점이 수학 하나뿐이야?”
“그…… 세리온 교관님은 마법 연상도 못한다고…… 이미지가 명확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딘이 생각했던 155번의 단점 두 가지가 다 나왔다.
연산과 연상.
캐스팅의 3요소 중 두 가지였다. 룬어 영창만 잘한다는 의미였다.
“마법 연상은 고민할 필요 없어. 연산 문제만 해결하면 연상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거야.”
“그렇습니까?”
“네가 구현되는 마법의 이미지가 명확하지 않은 건 머리가 바빠서 그래. 좌표 계산하느라 머리가 복잡한데, 이미지를 제대로 그릴 수나 있겠어? 그러니까 좌표 계산이 빨라지면, 마법 연상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거다.”
“아! 그렇습니까?”
로딘은 심화 서고를 나가서 도서관 일반 코너로 갔다. 거기서 수학 관련 책 10여 권을 챙겨서 심화 서고로 돌아왔다.
“일단 네 수준이 어떤지 확인 좀 해 보자.”
“감,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님 소리 좀 그만하고. 일단 문제 좀 내 볼게.”
로딘은 이미 다 외운 책이지만, 일부러 책을 펼쳤다. 책을 보고 문제를 내는 척하기 위해서였다.
20개의 문제를 즉석에서 만들었다. 기초 수준의 문제부터 조금은 난이도가 있는 문제까지. 골고루 섞었다.
“한 시간. 풀어 봐.”
“예, 선배님.”
“문제 풀이는 반드시 옆에 적어. 모르는 걸 찍어서 쓰지도 말고.”
“예. 아는 것만 적겠습니다.”
155번에게 문제를 건네고, 로딘은 다시 책에 집중했다. 그리고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난 후, 공책을 회수했다.
“흐음, 최선을 다해서 푼 게 맞아?”
“예. 아는 건 다 풀었습니다.”
“흐음.”
155번은 정확히 7개의 문제를 풀었다. 13개의 문제는 손도 대지 못했다.
그런데 풀었다는 7개의 문제 중 3개의 문제를 틀렸다. 제대로 풀어서 답까지 맞힌 건 고작 4개였다.
‘20개 중에서 4개를 맞혔다고? 이 머리로 어떻게 마법사가 되겠다는 거지?’
다행히 풀이 과정은 시킨 대로 옆에 잘 적어 놨다.
로딘은 풀이 과정을 보면서 155번의 수학적인 장단점을 파악했다.
“너! 단순 계산 외에는 다 못하는구나.”
“그, 그 정도는 아닌데.”
“그 정도가 맞아. 이거…… 흐음.”
제대로 하려면 기초부터 새로 가르쳐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몇 달씩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치긴 싫었다.
‘해결책이라…… 세리온 교관님 방식이면 될 것 같은데.’
꼼수이면서 편법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노하우일 수도 있었다.
맨입에 가르치기에는 아까웠다. 특별한 사이도 아닌데, 너무 많이 퍼 주는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아, 좋아. 3가지 조건만 약속하면 네가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지.”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첫째. 어디 가서 나한테 뭐 배우고 있다고 떠들고 다니지 말 것.”
“예, 알겠습니다.”
또 다른 수학 바보가 찾아올까 걱정되었다. 그런 일을 막으려면 둘 사이를 비밀로 하는 게 좋았다.
“둘째, 어제처럼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는 짓은 하지 말 것.”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로딘은 어제 했던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진 않았다.
어제도 마법 실습이 있었다. 열흘 전에 대련하고 두 번째 실습이었다.
그런데 실습을 진행하는 내내 155번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당사자인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알아챌 정도로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세 번째. 도서관이 아닌 곳에서 날 마주치더라도 모른 척할 것.”
“아! 그…….”
“3가지 조건이라고 했지만, 결국 한 가지 조건이나 마찬가지야. 우린 공식적으로 모르는 사이다. 이해했어?”
“이해……했습니다.”
억지로 대답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한번 인연을 맺었다고 계속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제2, 제3의 155번이 나타날 수 있었다. 독서를 방해받는 건 한 번이면 족했다.
“으음, 시간이 됐군. 내일 와.”
“예?”
“식사 시간이잖아. 끼니는 거르면 안 되지.”
“아니, 한 끼 거르면 되는…….”
“안 돼.”
로딘은 책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반 코너에 꺼내 왔던 수학책도 다 꽂아 놓고 식당으로 갔다.
* * *
다음 날도 어김없이 로딘은 도서관의 심화 서고에 들어갔다. 책을 읽기 위해 책장에서 책을 고르자마자, 155번이 들어왔다.
“선배님.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응, 거기 잠깐 기다려.”
로딘은 책을 한쪽으로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딘이 일어나자 155번도 어정쩡하게 있다가 일어섰다.
“너한테 수학을 기초부터 가르치는 건 말도 안 돼. 나한테 그 정도로 시간이 남지도 않고, 너한테 그만큼 공을 들일 생각도 없어.”
“그러면 방법이 없습니까?”
“있어. 저쪽으로 가서 날 보고 서 봐.”
“예, 선배님.”
로딘과 155번이 나란히 섰다. 거리는 대략 2m.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아도 소리가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넌 단순 계산 외에는 다 못해. 계산이 조금만 복잡해져도 계산 과정이 엉망진창으로 꼬여.”
“그렇습니다. 복잡해지면 뭐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간단하게 만들면 되지. 마법 수학이라는 건 결국 좌표 계산이야. 그 정도는 알지?”
“예, 제가 있는 곳의 좌표를 0, 0, 0으로 두고 목표하는 곳의 좌표를 찾아내는 게 마법에서의 수학이라고 들었습니다.”
155번이라고 마법 수학 수업을 안 들은 게 아니었다. 수업 때마다 나름대로 집중해서 들었고, 배운 대로 수식 계산을 할 줄도 알았다.
다만 매우 느리고, 틀리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조금만 복잡해지면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맞아. 자, 네가 나한테 마법을 쓴다고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린 정확하게 마주 보고 있어. 높이도 같지?”
“예, 그렇습니다.”
155번이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수업을 받는 태도는 나쁘지 않은 듯했다.
“계산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몇 가지 가정을 해 보자고. 1의 단위. 그러니까 네 서클이 있는 심장과 네 손끝의 거리를 1m로 가정하자고. 또 우리 사이의 거리도 100m라고 생각하고. 네가 가진 마력의 파동값은…… 대략 0.3 정도 되겠지만, 이것도 1이라고 가정해. 네가 매직 애로우를 사용한다면 좌표는 어떻게 나올까?”
“계산해 보겠습니다.”
계산해 보겠다는 말에 로딘이 얕은 한숨을 쉬었다.
이건 계산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괜히 쉬운 숫자를 가정했던 게 아니었다. 답을 쉽게 도출하기 위해서 1 혹은 100이라는 숫자를 쓴 거였다.
머리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목표 지점의 좌표를 즉각적으로 뽑아낼 수 있어야 했다.
‘암기력은 뛰어나다고 했나? 그러면 눈치가 부족한 건데. 수리 계산 능력도 떨어지고.’
쉬운 숫자 덕인지, 155번은 금세 목표 좌표를 뽑아냈다. 자기도 민망한지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0, 100, 0입니다.”
“맞아. 첫 좌표는 좌우의 방향, 두 번째 좌표는 거리, 세 번째 좌표는 높이야. 첫 번째와 세 번째가 같으니까, 답은 쉽게 나오지.”
정면을 보고 있으니, 맨 앞의 좌표는 계산할 필요가 없었다. 높이 차이도 없으니, 세 번째 좌표도 0인 게 당연했다.
“죄송합니다. 바로 알아챘어야 하는데.”
“자, 여기서 내가 이렇게 움직여. 그러면 어떤 좌표가 변할까?”
로딘이 옆으로 1m 정도 이동했다. 155번이 바라본 곳에서 옆으로 벗어났다.
“방향이 바뀌니 첫 번째 좌표가 변합니다.”
“만약 첫 번째 좌표를 0으로 만들고 싶다면?”
로딘이 슬쩍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155번은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입을 뻥긋거리기만 했다.
“간단하잖아. 네가 날 정면으로 보면 되지. 네 정면에 내가 있으면 첫 번째 좌표는 0이 될 수밖에 없다고.”
“아! 맞습니다.”
155번의 몸이 옆으로 틀어졌다. 다시 로딘을 정면에서 보는 자세였다.
“쉽게 말해서 상대를 정면으로 보기만 하면 첫 번째 좌표는 계산할 필요가 없어. 다른 사람에게 마법을 쓰고 싶다고? 정확히 대상에게 몸을 고정하는 것으로 좌표 계산식은 한결 간단해져. 이해했지?”
끄덕끄덕!
155번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첫 좌표를 이렇게 쉽게 건너뛸 수 있다니.
단순하게 좌표 하나가 사라진 수준이 아니었다. 좌표 계산의 난이도가 훨씬 내려가고, 그만큼 계산 속도가 빨라진다는 의미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