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29)
마법을 품다 (29)
굳이 겪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는 법. 잉그렘 제국과의 전쟁이 그런 경우였다.
로딘은 전쟁이 벌어지면 100% 확률로 패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왕국의 명맥이라도 유지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자칫하면 13국 연합에 속한 몇 개의 국가는 아예 병합될지도 몰랐다.
“잉그렘 제국의 내전이 드디어 끝났다네. 곧 새로운 황제가 황위에 오를 거야.”
“이미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조교들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바로 전쟁을 벌이진 못하네. 내전이 꽤 길었고, 병력 손실이 컸거든. 병력의 수는 징병으로 채울 수 있겠지만, 그들을 정예병으로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하네. 13국 연합은 그에 맞춰 철저하게 준비할 걸세.”
13국 연합의 전력도 만만치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너무 긍정적인 생각이 아닌가 싶었지만, 굳이 딴지를 걸진 않았다.
“비등한 상황에서 숨겨진 전력인 자네들이 나선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네.”
전력? 비슷할 수도 있다. 13국 연합이 준비한 무기가 뭔지 고작 훈련생인 자신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잉그렘 제국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결과는 예상할 수 있었다.
잉그렘 제국은 특수군 양성소의 일개 훈련생과 달리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전쟁을 자신 있게 준비한다는 건 승리할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비슷한 전력이면 지휘권이 일원화된 잉그렘 제국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잉그렘 제국과 중구난방으로 움직이는 13국 연합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예. 우리가 더 노력해야겠네요.”
“자넨 양성소 내에서 가장 기대받고 있는 인재일세.”
“저도 알고 있습니다.”
로딘보다 마력 재능 점수가 높은 훈련생은 있지만, 실제 마법 대련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1기와 2기에도 로딘과 엇비슷하게 싸울 수 있는 훈련생이 없었다.
“잉그렘 제국과의 전쟁에서 자네가 큰 역할을 해 줄 거라 기대하네. 자네라면 잉그렘 제국을 찌르는 숨은 칼이 될 수 있을 걸세.”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숨은 칼이라는 말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끝까지 숨기겠다는 말이었고, 영광을 다른 이들이 홀라당 빼먹겠다는 뜻이었다.
“난 전쟁 이후를 걱정하고 있다네. 아마 전쟁에 승리하더라도 본국의 국력은 많이 쇠했을 걸세. 그럴 때 다른 세력이 등장하면 위험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른 세력이요? 혹시 13국 연합끼리의 전쟁을 걱정하는 겁니까?”
“흐음, 자네 혹시 슬라본이라는 단어를 들어 본 적 있는가?”
“아니요. 처음 듣는 단언데. 고위 마법입니까?”
낯선 단어였다. 도서관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룬어 중에서 슬라본과 비슷한 발음이 있었다.
‘따르다’, ‘이어받다’라는 뜻의 룬어였다.
“그럼 발리스 노바라는 말은 아는가?”
“그것도 잘…… 새로운 별을 낳았다는 의미 같은데. 마법 이름으로는 좀 이상합니다만.”
발리스 역시 룬어에 비슷한 발음이 있었다.
발리스는 아기를 낳거나, 새로운 보물을 만들어 후세에 남겼을 때 사용하는 단어였다. 노바는 신성이라는 뜻이었고.
“당연히 마법이 아닐세. 슬라본, 발리스 노바는 조직의 이름일세. 고대 마도 제국 시절의 유산을 좇는 이들이지.”
“둘이 같은 조직입니까?”
“다른 조직일세.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두 조직 모두 존재하는지조차 확실치 않은 조직이거든. 위원회의 위원들이나 교관들도 뒷골목에 떠도는 음모론 정도로 취급하고 있지.”
음모론은 숱하게 많다. 로딘은 뒷골목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음에도 알고 있는 음모론이 몇 개 있었다.
인간의 전쟁은 마왕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든지. 4대 마탑의 뒤에 드래곤이 있다든지. 심지어 그 강대했던 마도 제국을 단 1인이 무너뜨렸다는 얘기까지.
별의별 음모론이 다 있었다. 당연히 신빙성 없는 얘기였다.
“위원장님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나는 봤거든. 7서클 마법사 3명이 6서클 마법사 수십 명을 대동하고 만나는 장면을. 그들은 대화 중에 자기들 입으로 슬라본을 언급했네.”
“흐음.”
다른 위원들이 믿지 않는다는 게 로딘은 더 신기했다.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얘기 아닌가 싶었다.
자신도 고대 마도 제국과 관련된 내용을 책으로 읽고는 그들의 마법을, 그들의 유산을 찾고 싶었다.
이곳에 묶여 있지 않았다면, 혹은 믿을 만한 명확한 근거가 있다면. 마도 제국의 흔적을 찾아갔을 것이다.
“난 자네가 어떻게든 7서클 마법사가 됐으면 하네. 그래서 슬라본이나 발리스 노바가 리아즈 왕국을 만만치 않은 곳으로 여겼으면 하네.”
“7서클은 위원장님이 먼저 되실 것 같은데요?”
“아니네. 나는 이미 늦었어.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도통 보이지 않는군.”
3서클, 5서클, 7서클은 마법사에게도 특별한 단계였다. 단순히 마력만 쌓는다고 오를 수 없고, 깨달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평범할 수도, 특별할 수도 있었다.
이웃과의 정겨운 대화일 수도, 책을 봐야 알 수 있는 지식일 수도 있었다. 인간에 관한 깊이 있는 통찰이나 세상에 대한 관조가 깨달음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요즘 크레이트 위원장은 놓아 줌으로써 깨달음을 찾으려 하는 중이었다. 욕심을 내려놓으려 애쓰고, 가진 것들을 세상에 돌려주려고 애썼다.
로딘도 그런 설명을 크레이트 위원장에게 들었다. 속으로 ‘바보 같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로딘은 깨달음을 위해 뭔가를 하는 행위가 집착처럼 느껴졌다.
놓아 주려 ‘애쓰는 행위’, 세상에 돌려주려고 ‘애쓰는 행위’가 오히려 깨달음을 멀리 보내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내가 틀릴 수도 있고.’
로딘은 자기 생각을 크레이트 위원장에게 말하진 않았다. 고작 3서클 마법사가 6서클 마법사에게 충고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힘내십시오. 위원장님은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허허허, 그러길 바라네. 해가 지는군. 식사 시간이지?”
“예.”
“그만 가세나. 오늘 대화도 즐거웠네.”
전혀 즐겁지 않았다. 대부분 크레이트 위원장 혼자 말하고, 짧게 짧게 대답만 했다. 이건 대화가 아니라 설교였다.
크레이트 위원장이 느릿하게 걸어서 사라졌다.
그 순간이 로딘이 본 크레이트 위원장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크레이트 위원장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죽었다는 날짜가 자신을 만난 그날이었다.
교관들은 소문이 돌고 며칠 후, 크레이트 위원장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노화로 인한 자연사였다. 평소처럼 지내다가 밤에 잠이 들었고, 다음 날 눈을 뜨지 못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긴 했다. 무려 87세. 아무리 마법사라도 이 정도면 오래 산 셈이었다.
왕실에서도 정식으로 조문단을 보냈다. 특수군 양성소의 위원들도 신분을 숨기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 * *
위원회 5인이 중앙 건물의 최상층에 모였다. 위원회를 이끌어 가던 크레이트 위원장은 보이지 않았다.
“하아, 몇 년이 지났는데도 위원장님의 빈자리가 크군요.”
“저도요. 뭔가 허전합니다.”
크레이트 위원장은 3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위원회는 새로운 위원장을 선출하지 않았다. 크레이트 위원장이 해 온 역할을 전담하려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긴, 저도 오래 살았지요.”
크레이트 위원장의 나이와 다른 위원들의 나이는 대략 20년 정도 차이였다. 그 말은 곧 위원들 역시 20년을 더 버티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아쉽습니다. 위원장님은 한 걸음만 남으셨었는데.”
“그 한 걸음이 어렵죠. 뭐, 우린 그보다 더 부족하긴 합니다만.”
7서클에 올라서 대마법사가 되면 신체가 재구성된다. 이 경지에 오르면 100세를 넘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크레이트 위원장은 6서클의 경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단 한 단계를 더 넘어서기 위해 많은 걸 버리고 포기했지만, 결국 거기가 크레이트 위원장에게 주어진 마지막이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1기 훈련생들의 전군이 불과 닷새 남았습니다. 배속될 곳은 다 정해졌죠?”
“예, 모두 결정되었습니다. 대부분 북부로 가지만, 일부는 탈레흐 왕국과의 접경 지역에 배치될 예정입니다.”
특수군 양성소의 훈련 기간은 총 10년.
1기 훈련생들은 이미 9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남은 1년은 군에 배속되어서 군 생활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보직은요?”
“22명 중 20명은 십인장으로 시작합니다.”
“어이가 없군요. 9년 동안 공들여 가르쳤는데, 겨우 십인장이라니. 십인장이나 만들자고 이렇게 고생한 게 아닌데.”
보통 병사가 십인장으로 진급하는 데 3년에서 5년 정도가 걸린다. 특별한 투자도, 교육도 없이 걸리는 시간이 그랬다.
그런데 몇 배나 더 많은 금액과 시간을 투자하고 같은 결과라니. 사실상 교육의 실패로 봐도 무방했다.
“그래도 정식 기사가 둘이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하아, 7번과 8번 말이군요.”
7번과 8번 훈련생은 1기에서 가장 큰 기대를 받았던 인재였다. 꽤 빠른 시간에 2데나급 검사가 되면서 정식 기사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결국 7번과 8번 훈련생이 정식 기사의 경지인 3데나급 검사가 되긴 했다. 결과만 보면 실패는 아니었다.
하지만 3데나급 검사가 되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
7번 훈련생은 불과 6개월 전에, 8번은 고작 1개월 전에 3데나급 경지에 올랐다.
위원회와 교관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느린 성장이었다.
“그들도 자리가 정해졌겠죠?”
“예, 마찬가지로 잉그렘 제국과의 접경 지역에 배치될 예정입니다.”
“7번과 8번을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7번과 8번의 교육을 위해 교관들이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최근 1년은 아예 제자를 키우듯 곁에 데리고 다니며 가르쳤다.
그런 노력이 아니었다면 자칫 2데나급 검사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쉬워해 봐야 뭐 합니까? 여기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다 끝났는데. 아! 보직은요?”
“백인장으로 시작하게 될 겁니다.”
“하아, 기사단은 역시 안 되는군요.”
“노예니까요. 기사들이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고 싶어 할 리가 없지요.”
3데나급 검사는 정식 기사가 될 수 있는 경지였다. 지방의 작은 영지로 가면 2데나급 검사가 기사인 경우도 수두룩했다.
그런데 1기 2명은 3데나급 검사가 됐음에도 기사단에 들어갈 수 없었다. 기사단의 기사들이 강하게 반발해서였다.
“차질 없이 준비하면 되겠네요. 그런데 크세르 위원. 이런 얘기를 하려고 우릴 부른 겁니까? 이미 며칠 전에 다 했던 얘기잖습니까?”
“물론 진짜 용건은 따로 있습니다. 흐음, 108번. 다들 모르지 않으시죠?”
“물론이죠.”
“108번은 마법 교관뿐 아니라 검술 교관도 다 알더군요. 워낙 특출한 인재니까요.”
로딘은 첫 입소식 때부터 유명했다. 가장 어린 나이에 가장 작은 체구라 눈에 안 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대륙 공용어 시험에서 1등, 예법 시험도 1등이었다. 기마 시험은 1등이 아니었지만, 꽤 상위권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마력 재능 측정에서도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
나중에 4기에서 그 이상의 재능이 등장했지만, 그렇다고 108번의 가치가 떨어진 건 아니었다.
“이틀 전에 세리온 교관이 급히 보고할 게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불렀더니, 108번이 5서클 마법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 축하할 일이군요.”
“경삽니다. 경사. 1기는 3데나급 검사도 아슬아슬했는데, 3기는 벌써 5서클 마법사라니. 놀랍군요.”
다른 위원들이 감탄을 늘어놓는 동안 크세르 위원은 침묵을 지켰다.
길어진 침묵에 주변이 곧 조용해졌다.
“여러분들은 양성소의 존재 이유를 잘못 알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여긴 재능 있는 아이를 잘난 사람으로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잉그렘 제국의 허를 찌를 비수를 벼리는 곳이죠.”
“그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만.”
“아니요. 여러분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린 칼이 필요하지, 상전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그걸 생각해야 합니다.”
크세르 위원은 이틀 전 108번이 5서클 마법사가 되었다고 했을 때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혹시나 자기 위로 올라가서, 오히려 자신들을 휘두르려 할까 봐 잠도 설칠 정도였다.
“크세르 위원. 말씀을 이상하게 하십니다. 108번이 우리 상전이 된다는 말은 우리가 그 밑이라는 뜻입니까?”
“맞습니다. 크세르 위원, 108번이 5서클 마법사라고요? 여긴 상급 기사가 3명이고 5서클 마법사가 2명입니다. 같은 5서클 마법사에게 휘둘릴 우리가 아닙니다.”
상급 기사는 5데나급 검사를 말한다. 5서클 마법사와 같은 경지였다. 108번과 같은 경지가 무려 5명인데 걱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었다.
“여러분들은 108번의 나이를 잊으셨습니까? 이제 12살입니다. 고작 12살에 5서클 마법사가 된 겁니다. 그게 끝일까요? 빠르면 5년, 길어도 10년 안에는 6서클 마법사가 되겠지요. 돌아가신 크레이트 위원장님과 같은 경지가 된다는 말입니다.”
“굳이 걱정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래 봐야 노예잖습니까? 우리가 언제든지 통제할 수 있어요.”
“108번이 지하에 보관된 노예 스틱을 힘으로 강탈하면 막을 수는 있고요?”
노예 스틱을 왕실에서 보관한다고 훈련생들 앞에서 알렸지만, 실제로는 중앙 건물 지하에 보관하고 있었다. 크레이트 위원장의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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