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3)
마법을 품다 (3)
2일이 지났다. 키가 아주 작은 아저씨가 한 아이를 데려왔다.
‘우와.’
로딘은 새로 등장한 아이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정말 엄청난 덩치였다.
첫날 만난 ‘드록’이라는 아이도 키가 컸다. 지난 2일 동안 나타난 아이 중 드록이 가장 큰 키였다.
그런데 방금 등장한 아이는 드록보다도 키가 반 뼘은 더 컸다. 게다가 삐쩍 마른 드록과 다르게 덩치도 컸다. 절대 못 먹고 자란 아이가 아니었다.
‘10살이 넘는 건가?’
큰 덩치의 아이가 방 안을 죽 훑었다. 그러다 사람이 가장 적은 방향으로 향했다.
‘이쪽이네.’
로딘은 누구와도 친밀하게 대화하지 않았다. 친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로딘의 주변만 횅했다.
털썩!
덩치 큰 아이가 앉아서 로딘을 힐끗 쳐다봤다. 하지만 따로 말을 붙이진 않고, 눈을 감아 버렸다.
로딘도 새로 등장한 아이의 몸을 한번 살펴봤을 뿐, 먼저 입을 열진 않았다.
1시간 정도 흐른 후,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저녁 식사 시간에 아이들을 인솔하는 조교였다.
짝짝!
“식사 시간이다.”
조교는 가볍게 손뼉을 치더니 아이들을 불렀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목소리의 톤도 부드러워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식사 시간이 다가왔다는 걸 알고 이미 기다리고 있던 상태. 조교가 등장하자마자 거의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로딘도 자리에서 일어나 조교를 따라갔다. 그러다 멈칫하고 뒤를 돌아봤다.
“음?”
좀 전에 들어왔던 덩치 큰 아이가 여전히 앉아 있었다. 고개를 반대로 돌린 상태라 자는 건지 아닌지 확인이 안 되었다.
‘흐음.’
잠깐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그러다 다시 걸음을 세우고 뒤를 돌아봤다.
“에휴.”
덩치 큰 아이에게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볍게 흔들자,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
“식사 시간이래.”
“아! 고마워.”
아무래도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덩치 큰 아이와 나란히 방을 나갔다. 저 앞에서 아이들이 줄 맞춰 식당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식사는 어때?”
덩치 큰 아이의 질문에 로딘이 아이를 빤히 쳐다봤다. 덩치에 비해 앳된 목소리였다.
“좋아. 맛은 그저 그런데. 좋아.”
“그게 무슨 말이야? 맛은 그저 그런데 좋다니?”
로딘은 지금까지 먹은 식사에 불만이 없었다.
간이 어떻고, 조리가 어떻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걸로 만족한다는 뜻이야.”
“아하. 하긴. 나도 들었어. 평민들은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는 경우가 많다며?”
“음?”
아이의 입에서 나온 ‘평민’이라는 단어가 귀에 꽂혔다. 저 말은 자신은 평민이 아니라는 뜻과 같았다.
“귀족이야?”
“이젠 아니야. 아버지가 죄를 지었거든.”
“리아즈 왕국?”
“아니. 베로스 왕국.”
베로스 왕국은 이곳 리아즈 왕국의 동쪽에 있는 국가였다. 같은 13국 연합 소속이었고, 마찬가지로 잉그렘 제국과 맞서고 있는 동맹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빠가 말했어. 살아 있으면 길이 생긴다고.”
“그래.”
“아, 참! 내 이름은 헤들러야. 헤들러 이케이스.”
갑작스러운 자기소개에 로딘은 한숨을 쉬었다.
매일 몇 번씩 듣는 게 자기소개였다. 이미 자기소개를 했던 아이도 새로운 아이가 나타나면 했던 자기소개를 또 하곤 했다.
몇 번씩 반복해서 듣다 보니, 자기소개가 지긋지긋할 지경이었다.
“로딘.”
“반가워. 친하게 지내자.”
헤들러가 환하게 웃었다.
헤들러의 첫인상은 과묵 그 자체였는데, 막상 대화해 보니 정반대였다. 가문이 풍비박산 났는데도 아이다운 밝은 면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곧 식당에 도착했다. 입구에 놓인 식판을 들고 배식대 쪽으로 걸어갔다.
차근차근 움직이면서 음식을 받았다. 수프, 샐러드, 스테이크, 빵 순이었다.
마차를 타고 올 때와 달리, 스테이크와 샐러드가 추가되었다. 스테이크는 성인 손바닥만 한 크기의 고깃덩어리에 소스를 뿌려주는데, 맛은 그저 그랬다.
“그걸로 돼?”
“음? 뭐가?”
“고작 그거 먹고. 배 안 고플까?”
헤들러의 걱정스러운 말에 로딘은 식판과 헤들러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무래도 헤들러의 덩치에는 좀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배식받을 때 더 달라고 해. 스테이크는 안 되는데, 빵하고 수프는 더 달라면 더 준다.”
“그래? 지금 받으러 가면…….”
“안 돼. 식사는 항상 한 번에 원하는 만큼 받아야 해. 음식은 절대 남기면 안 되고. 입구에서 검사하니까.”
“그래? 쳇.”
로딘은 스테이크와 빵, 샐러드를 번갈아 가면서 먹었다. 작은 조각 하나를 먹어도 수십 번씩 씹어서, 식사 시간도 오래 걸렸다.
로딘이 스테이크를 1/3쯤 먹었을 때, 헤들러는 이미 식사를 끝냈다.
헤들러는 침을 꼴깍 삼키면서 로딘의 남은 음식을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안 되지.’
헤들러의 바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로딘도 식사를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로딘에게 식사는 생존 행위 중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음식을 양보하는 건 자기 생명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로딘은 헤들러의 바람을 애써 외면하고, 식사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남은 수프를 싹 긁어 먹자, 헤들러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에휴.”
“나가자.”
나가면서 식수대의 물을 마셨다. 그리고 입구에서 음식을 남겼는지를 검사받고, 설거지를 끝낸 후 다시 식판 검사를 받았다.
“이제 끝?”
“응. 올라가서 쉬면 돼.”
“아! 배고프다.”
식사가 끝난 지 5분 만에 ‘배고프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뭔가 이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 * *
열흘이 흘렀다. 그사이에 아이들이 종종 추가되었다.
11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꺼번에 들어온 건 첫날이 유일했다. 보통은 2명에서 3명 정도의 아이를 어른들이 데려왔다.
‘52명.’
로딘은 자신을 포함한 숫자를 세고 낮게 한숨을 쉬었다.
100명은 너끈히 수용할 수 있는 방이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30명을 넘어서니, 방이 복작거렸다.
어찌나 뛰어다니는지. 누워 있다가 밟힌 적이 10번도 넘었다. 저들끼리 뛰어다니다 부딪쳐서 자신 쪽으로 넘어진 적도 많았다.
밤에는 또 어찌나 시끄러운지.
해가 완전히 떨어졌는데도 대놓고 떠드는 애들이 태반이었다.
그래도 지난 열흘이 마냥 나쁘진 않았다. 식사는 맛있었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샤워는 환상적이었다.
지금까지는 어머니가 몸을 씻겨 줬었다. 그것도 대충 손으로 한 번 훔치면 끝이었다. 직접 몸을 씻는 건 여기 와서 처음 경험했다.
너무 좋았다. 고기를 먹었을 때의 감동에 비견될 만했다. 등까지 손이 안 닿는 건 좀 아쉽지만.
‘이 좋은 걸 왜 안 하지?’
아이들은 샤워실이 있어도 씻지 않았다. 옆에서 냄새난다고 눈치를 줘도 못 알아듣는 건지, 모르는 체하는 건지.
지난 열흘 동안 한 번이라도 씻은 아이가 고작 10여 명에 불과했다.
그 덕에 샤워실을 항상 편하게 쓸 수 있으니 나쁘진 않았다. 기다릴 필요가 없어서, 하루에 2번 샤워하는 때도 있었다.
드르륵!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로딘이 고개를 홱 돌려 문을 쳐다봤다.
아이들은 절대 문을 강하게 열지 않는다. 식사 때마다 등장하는 조교라는 사람도 문을 열 때는 조심스러웠다.
“모두 주목!”
역시나 이번에 등장한 사람은 조교가 아니었다. 4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어깨가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로딘은 ‘주목’ 소리를 듣자마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어딘가로 이동할 듯한 예감이었다.
로딘이 일어나자, 옆에 있던 헤들러도 눈치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이동한다. 따라와라.”
교관을 따라서 1층으로 내려갔다. 로딘과 헤들러도 발을 빠르게 놀려 아이들의 뒤에 따라붙었다.
우르르 몰려 운동장까지 나온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오른쪽으로 향했다. 로딘과 헤들러도 마찬가지로 오른쪽으로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어? 누구지?”
웅성대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일부 아이들은 장난치듯 손을 흔들기도 했는데, 교관은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운동장으로 52명의 아이가 모두 모였다.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한쪽을 힐끔거렸다. 눈길이 가는 곳에는 다른 무리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가로가 4줄이니까. 22명, 34명인데.’
맨 왼쪽에 있는 무리는 통일된 군청색 옷을 입고 있었다. 숫자는 34명이었고, 로딘 일행 52명보다 키와 덩치가 조금 컸다.
그 옆으로는 회색의 통일된 옷을 입은 아이들이 바른 자세로 서 있었다. 모두 22명. 군청색 옷을 입은 아이들보다 더 커서, 나이가 가장 많다는 걸 짐작게 했다.
“선배들인가 봐.”
“선배?”
헤들러의 말에 로딘이 다시 옆을 힐끔 쳐다봤다.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헤들러의 말대로라면 회색 옷을 입은 이들이 가장 선배, 군청색 옷을 입은 이들이 그다음일 터였다.
“모두 주목.”
“저…… 교관님.”
“뭐지?”
“저, 저쪽 형들은 선배들인가요?”
드록이라는 아이가 마치 52명의 대표라도 된 듯이 질문을 던졌다. 헤들러와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교관은 아이들을 쭉 훑어보다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맞다. 그들은 너희 선배들이다. 이곳에서는 너희들의 상급자이니, 깍듯하게 대해야 할 것이다.”
“아!”
“선배라고?”
교관의 설명에 아이들의 웅성거림은 더 커졌다. 상급자라는 단어가 어린아이들에게 통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이곳에 관해 설명하지. 너희들이 모인 이 장소는 자랑스러운 리아즈 왕국의 특수군 양성소다. 너희들은 특수군 훈련생으로 장시간 훈련을 받게 된다.”
“특수군?”
“군대야? 군대라고?”
웅성거리는 아이들의 음성에 공포가 담겼다.
로딘도 특수‘군’이라는 단어에 미간을 좁혔다. 옆에 있던 헤들러 역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전쟁을 위한 조직.’
로딘을 포함한 아이들에게 전쟁은 낯선 단어가 아니었다. 불과 25년 전에 잉그렘 제국과 전쟁을 치렀고, 그 상흔이 외지의 시골 마을에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로딘이 사는 마을도 다르지 않았다. 랑코 아저씨는 전쟁 중에 다친 부상으로 팔꿈치 아래를 잘라야 했고, 베기안 아저씨는 눈 한쪽을 잃어서 안대를 차고 다녔다.
“모두 조용. 조용!”
교관의 목소리가 커졌다. 웅성거리던 아이들도 차츰 이성을 되찾고 교관에게 집중했다.
“너희들은 그저 우리가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하면 된다. 그렇게만 하면 저 간악한 제국 놈들을 충분히 무찌를 수 있다. 알겠나?”
“아, 예.”
“목소리가 작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아이들의 큰 목소리에 교관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아직 목소리의 크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전히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군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1기와 2기가 그랬듯, 굴리고 또 굴리다 보면 군기는 저절로 생기게 될 터였다.
“키가 가장 큰 아이는 왼쪽, 키가 가장 작은 아이는 오른쪽. 키 순서대로 정렬한다. 실시!”
“키?”
“나! 나 키 커.”
“나는 이쯤.”
아이들이 두서없이 떠들며 움직였다. 자기 위치를 찾기 위해 옆의 아이들과 키를 대 보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헤들러와 로딘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누가 봐도 키가 가장 큰 헤들러. 나이가 어려서 키가 가장 작은 로딘.
둘은 키 순서대로 서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라졌다.
“나중에 보자.”
“그래.”
헤들러의 인사를 받아 주고, 로딘은 오른쪽 끝으로 걸어갔다. 군청색 옷을 입은 선임과 불과 3걸음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이고.’
노인처럼 허리를 두드리고 서 있으니, 옆에 다른 아이가 다가왔다. 로딘보다 반 뼘 정도 큰, 하지만 다른 아이들보단 확연히 작은 아이였다.
“안녕. 나는 무시프 마을에서 온 코리라고 해.”
“음? 어, 그래.”
로딘의 대답은 짧았다. 머릿속으로 특수‘군’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느라, 대답에 성의가 없었다.
“어? 어…… 나는 무시프 마을에서 온 코리……인데……, 어…….”
“아! 소개? 로딘이야.”
“응. 반가워.”
코리라는 이름의 아이가 환하게 웃었다. 환한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를 가진 귀여운 아이였다.
‘어떻게든 될 거야.’
‘군’이라는 단어에 너무 겁을 집어먹었다. 애써 군대라는 생각을 버리고, 주변을 살폈다.
키를 재고 소란을 피우느라 여전히 난장판이었다. 일찌감치 자기 자리를 찾은 아이들조차 남들의 키 재기에 훈수를 두며 소란을 부추겼다.
“빨리 끝내는 게 좋을 텐데.”
옆에서 들린 작은 목소리. 군청색 옷을 입은 선임이었다.
“이유가 있나요?”
“쉿!”
말을 걸었던 아이가 앞을 바라봤다. 마치 옆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군청색 옷을 입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몸이 딱딱했다. 회색 옷을 입은 선임들은 더 심해서, 마치 22명이 같은 순간에 숨을 쉰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양성소 분위기가 만만치 않아.’
로딘은 선임들의 모습을 눈여겨봤다.
자신들도 나중에 저런 모습이 될 터. 만만찮게 엄한 훈련을 받았다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거의 30분이 다 흘러서야 소란이 잦아들었다. 자기 키에 불만인지, 몇 명은 여전히 투덜거리고 있었다.
“줄 다 섰나?”
“예.”
“정확히 33분 걸렸군. 전원 운동장 33바퀴. 뛰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