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30)
마법을 품다 (30)
중앙 건물 지하의 비밀 창고는 대외적으로 아는 사람조차 위원들뿐이었다. 교관들은 지하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그걸로 부족해서 3중의 잠금장치를 설치했다. 마법 잠금과 물리적인 잠금을 섞어서, 어느 한 분야의 지식만으로는 들어갈 수 없게 해 뒀다.
“잠금장치가…….”
“지금은 가능하겠죠. 아직 108번은 5서클 마법사니까요. 제가 걱정하는 건 108번이 6서클 마법사가 된 이훕니다. 힘으로 지하를 부수고 들어가면 누가 6서클 마법사를 막을 수 있습니까?”
“흐음.”
“크흠.”
불편한 진실이었다.
그들은 훈련생들을 강하게 만들려고 애쓰지만, 필요 이상으로 강해지길 바라지 않았다. 애국심, 충성심이 아니라 노예 인장으로 상대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노예 스틱은 ‘죽기 싫으면 시키는 대로 해.’라고 명령할 수 있는 무기였다. 협박할 때 휘두르는 칼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협박은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상대로 휘두를 때나 통한다.
강자와 약자가 뒤바뀌면 협박이란 무기는 가치가 떨어진다.
“넉넉하게 10년 후라고 예상해 봅시다. 108번이 노예 스틱을 강탈한다면, 자기 것만 챙기겠습니까? 아니죠. 모든 노예 스틱을 다 챙겨서, 우리가 애써 키운 훈련생들을 자기 뜻대로 부리려 할 겁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죽이기라도 할까요?”
“그럴 순 없지요. 힘들게 키웠는데, 그건 안 될 말이죠. 우선 108번의 신분패를 회수할 생각입니다.”
“신분패?”
“신분패를요? 흐음, 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특수군 양성소 내에서 신분패의 역할은 2가지였다.
연공실을 이용하는 신분증. 그리고 도서관의 심화 서고로 들어가는 열쇠.
신분패 회수는 도서관 출입을 금하고, 연공실 이용을 막겠다는 뜻이었다.
“진짜 목적은 연공실 이용을 막겠다는 말이군요. 연공실 이용을 못 하면 성장 속도가 족히 서너 배는 느려지니.”
“맞습니다. 연공실 이용을 막는 것만으로 짧게는 15년에서 길게 40년까지. 108번의 6서클 성장을 막을 수 있습니다.”
다른 위원들도 신분패 회수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 정도면 108번의 성장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터였다.
“그런데 마냥 금지하기만 하면 보기가 안 좋은데요. 남들이 연공실을 이용할 때 멍하게 시간만 보내라는 말이잖습니까? 다른 훈련생들도 그렇고. 교관들도 의아하게 여길 겁니다.”
“다른 일을 시키면 되죠. 딱 좋은 게 있습니다.”
“어떤 일 말입니까?”
“심화 3 서고를 108번에게 제공할 생각입니다. 거기서 아티팩트 제작을 맡기는 거죠. 물론 연구가 필요하긴 하겠지만.”
핵심은 ‘연구가 필요하긴 하겠지만’이라는 대목이었다.
심화 3 서고에 있는 책은 2가지였다.
가장 많은 건 아티팩트 제작과 관련된 책.
전체 서고의 2/3가 아티팩트에 관한 책인데, 연구가 덜 끝난 자료였다. 나머지 연구를 마무리해야 포션이든 아티팩트든 제작할 수 있었다.
심화 3 서고의 1/3은 훼손된 서적이었다.
앞부분 절반이 날아간 책도 있고, 뒷부분이 통째로 뜯겨 나간 책도 많았다. 불에 타서 아래쪽이 전부 타 버린 책, 도저히 어디서 사용된 글자인지 알 수 없어서 번역을 포기한 책도 있었다.
“아티팩트라…… 108번이 연구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요?”
“머리는 좋다더군요.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린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크레이트 위원장님이 돌아가신 후, 왕실의 지원금이 너무 많이 줄었어요. 다른 쪽으로라도 재정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왕실의 지원이 줄어든 건 크레이트 위원정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잉그렘 제국과 13국 연합 사이에 전운이 감도는 게 진짜 이유였다.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누구라도 느낄 정도로 전쟁의 기운이 강했다.
왕실에선 당연히 전쟁을 대비해 병사를 징집했다.
병력이 늘면 그들이 사용할 무기, 방어구가 필요했다. 기본적인 장구류부터 막사, 수송을 위한 마차와 말도 추가로 구입해야 했다.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돈이었다. 왕실은 특수군 양성소로 돈을 안 보내는 게 아니라 못 보내는 거였다.
“108번이 포션이라도 제작할 수 있어야 하는군요.”
“그게 아니면 당장 우리 봉급부터 줄여야겠죠.”
왕실의 지원이 줄어든 시기는 크레이트 위원장이 죽은 시기와 겹쳤다.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자, 양성소 내에서는 훈련생의 식사부터 건드렸다.
고기의 크기는 유지됐지만, 질은 떨어졌다. 하얗고 부드러운 빵은 보기 힘들어졌다.
옷 역시 질이 떨어졌다. 매끈하고 부드럽던 천이 거칠고 빳빳한 천으로 바뀌었다.
물론 위원회 위원이나 교관들의 봉급은 건드리지 않았다. 차라리 연공실에 박힌 마나석을 팔지언정, 자기들 봉급은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공격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으면…… 흐음, 과한 기대인가요?”
“발동형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는 곳은 마탑과 유서 깊은 제작소뿐입니다. 그조차 몇 군데 안 되죠.”
양성소 안에 있는 발동형 아티팩트는 딱 하나였다.
마력등.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말 1필을 팔아도 마력등 1개도 사기 힘들었다.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마력등을 만들 수 있는 마탑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가격이 확 내려갔다. 지금은 괜찮은 말 1필 가격으로 마력등 100개는 살 수 있었다.
“몇 달 전에 매직 애로우가 담긴 아티팩트를 봤는데, 가격이 500골드더군요. 20개만 팔면 왕실 지원금은 없어도 그만인데.”
“너무 나가셨네요. 발동형 아티팩트는 욕심이죠. 108번은 겨우 12살입니다. 한 20년쯤 연구하면 모를까. 지금은 무리예요. 우선은 포션이죠. 잉그렘 제국과의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게 포션이에요.”
“아! 포션. 만들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자, 이제 정리합시다. 108번의 신분패 회수. 심화 3 서고 제공. 아티팩트, 포션 제작 지시. 모두 동의하시는 거죠?”
“예, 동의합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크세르 위원의 뜻대로 로딘의 처우가 결정되었다. 한 명의 미래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했지만, 미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로딘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을 보며, 호수로 왔다. 3년 전 이곳에서 만났던 크레이트 위원장의 마지막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게 마지막 모습일 줄은 몰랐는데.”
로딘이 기억하는 크레이트 위원장은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늙은 마법사였다. 13국 연합과 거기에 속한 리아즈 왕국을 과대평가하는 늙은 정치인이기도 했다.
“전쟁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3년 전부터 잉그렘 제국은 전쟁을 준비했다. 그리고 황태자가 긴 내전에서 승리하고 황위에 오른 후부터 전쟁 준비의 속도는 더 빨라졌다.
“제국의 내전이 치열해서 다행이라고 했었지? 과연 그럴까?”
잉그렘 제국은 내전으로 많은 전력을 잃었다. 가장 피해가 큰 동부군은 전력이 반토막 나 버렸다.
하지만 살아남은 이들은 하나같이 실전을 경험한 정예병으로 거듭났다. 다수의 베테랑과 새로 징집한 신입이 조화를 이룬 것이다.
“13국 연합에는 안 됐지만, 내 입장에선 다행이긴 하지.”
잉그렘 제국의 긴 내전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5서클. 흐음, 6서클도 머지않았는데.”
원래는 6서클 마법사가 된 후에 5서클이 되었음을 밝힐 생각이었다. 숨겨 둔 1개의 서클 정도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구명줄이 되어 줄 터였다.
그런데 이틀 전에 5서클이 되었음을 밝혀 버렸다. 아직 6서클까지는 한참 남았는데도 그냥 보고했다.
“너무 즉흥적이었어.”
도서관에 더는 읽을 책이 없었다. 일반 서고뿐 아니라 심화 서고에 있는 책도 다 읽었다.
오러와 검술 관련 책이 보관된 서고도 있지만, 그곳은 애초에 자신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게 답답해서 자신도 모르게 저질러 버렸다.
“괜한 짓이었나? 그래도 마음은 편했는데.”
5서클이면서 4서클인 척하고, 4서클일 때는 3서클인 척했다. 항상 실력의 일정 부분을 숨기고 다녔다. 생존을 위해서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은근히 정신적인 압박이 심했던 모양이다.
막상 5서클 마법사가 됐음을 밝히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몇 년 만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꼈다.
“이제 뭘 하지?”
도서관에선 읽을 책이 없었다. 새로운 연공법을 만드는 일은 사실상 멈춘 지 오래였고, 노예 인장은 4서클에 오르자마자 바로 지웠다.
뒤통수의 머리카락을 깎으면 아직 노예 인장이 보인다. 겉으로 보면 노예 인장이 멀쩡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장이 품고 있던 폭발 속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겉으로만 노예 인장이지, 평범한 문신과 다를 바 없었다.
“양성소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하나?”
노예 스틱의 영향을 벗어났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곳에 남은 건 빼먹을 게 있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는 읽지 않은 책이 남아 있었고, 마력 연공실도 밖으로 나가면 이용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양성소에 남은 이유 중 1가지가 사라졌다.
‘룬어를 좀 더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제부터 도망칠까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었다.
로딘은 연공실 이용보다 도서관과 책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실제로 연공실 이용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 눈이 있어서 매일 연공실은 들르지만, 중급의 마력 연공법을 행하는 건 보통 2사이클 정도였다. 아예 안 할 때도 많았다.
연공실은 만능이 아니었다. 마력을 모으는 속도를 올려 주지만, 단점도 있었다.
‘헤들러, 랜트, 코리. 이 녀석들만 아니면 그냥 가는 건데. 하아, 답답하…….’
그때 지토가 누군가의 접근을 알려 왔다. 시야를 공유해 보니 코리였다.
“쟤가 무슨 일이지?”
“로딘! 로오오오오디이이이이인!”
“이런 걸 동네 망신이라고 하는 건가?”
코리는 저 멀리서부터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팔은 또 왜 저렇게 팔랑거리는 건지.
참 내놓기 부끄러운 동기였다.
“로! 딘!”
“알았어. 알았으니까. 작게 얘기해.”
“헉억, 허억. 힘들다.”
숨을 한참 몰아쉬던 코리였지만, 금세 진정되었다. 이 정도 달리기는 코리에게 큰 무리가 아니었다.
코리는 전공이 결정된 후부터 아침 운동에 불참했다. 이틀에 한 번꼴로 등산까지 해야 하니, 구보 정도는 건너뛰어도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랬던 코리가 2년 전부터 아침 운동에 다시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걸로 부족해서, 억지로 시간을 만들어서 몸을 혹사했다.
“얼마나 달렸다고 힘들대.”
“너하고 나하고 같냐? 난 운동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고.”
“내가 하지 말랬나? 네가 안 한 거지.”
검술 전공자인 헤들러와 랜트는 당연히 몸이 좋았다. 랜트는 몸 자체가 무기였고, 헤들러도 균형 잡힌 몸매와 조각 같은 근육을 자랑했다.
로딘도 만만치 않았다. 아직 어려서 확 태가 나진 않지만, 몸 전체가 근육 덩어리라는 건 같이 사는 내무실 동기들이 가장 잘 알았다.
301호 내무실 동기 중에서 코리 혼자만 볼품없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자존심 상했던 모양이다.
“쳇, 아직 키는 내가 더 크거든.”
“여기서 키 얘기가 왜 나와? 그래서 여긴 무슨 일인데?”
“무슨 일이냐니. 나 원래 호수로 자주 나오거든?”
“따뜻할 때만 나오잖아. 오늘은 엄청나게 추운 날이고.”
“그러게. 드럽게 춥네.”
땀이 식으면서 추위가 훅 다가왔다. 코리는 몸을 움츠리고 으슬으슬 떨었다.
“쯧, 그러게. 여길 왜 나왔냐?”
“추위 따위. 흥. 나와라. 셀리스트.”
코리가 중급의 불의 정령을 소환하더니, 그 열기를 이용해 몸을 데웠다. 덜덜 떨던 몸이 차츰 진정되었다.
“정령을 소환할 정도로 춥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난 불의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라고. 추위하곤 안 맞아.”
“코리 넌 바람의 정령하고도 계약했잖아.”
“내 바람은 따뜻해. 온몸을 데워 주는 따뜻한 온풍이야. 그리고 아직 하급이라고. 난 불이 더 체질에 맞아.”
코리는 몇 달 전에 불의 하급 정령을 중급으로 성장시켰다. 마법사로 보면 3서클과 같은 수준에 오른 것이다.
거기다 바람의 하급 정령은 승급이 멀지 않았다. 코리 말에 의하면 늦어도 1년 안에, 중급으로 성장할 거라고 한다.
“아직 말 안 했다. 여기 왜 온 거야?”
“아! 깜빡했다. 행정실에서 너 오래.”
“행정실에서? 무슨 일이지?”
로딘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땅히 할 일도 없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행정실에 가면 책 좀 더 들여 달라고 말해야겠다.
“바로 가게?”
“응, 바로 오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긴 했는데. 너 원래 그렇게 착한 아이였어?”
“맞기 싫으면 바로 가야지.”
로딘이 움직이니, 어쩔 수 없이 코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에는 가기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더 쉬다 오든가.”
“됐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