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31)
마법을 품다 (31)
똑똑!
로딘이 행정실 입구에서 문을 두드렸다. 거의 1분이 지난 후에야 ‘들어와.’ 하는 소리가 들렸다.
‘쓸데없이 기 싸움을 하고 있어.’
행정실은 자주 오지 않은 곳이라 낯설었다. 특유의 경직된 분위기도 마음에 안 들었다.
‘역시 불편해.’
안으로 들어갔더니 크루퍼 교관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다른 교관들은 보이지 않았다.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봐.”
“예?”
“저 안쪽으로 가면 위로 올라가는 계단 보일 거다. 거기로 올라가. 위원회 호출이니까.”
교관들이 부른 적도 몇 번 안 되지만, 위원회의 부름을 받는 건 처음이었다.
위원회는 이곳 양성소 최고 책임자이면서 명령권자였다.
게다가 자신과 같은 경지의 인물들. 위에서 공격받으면 위험해질 수 있었다.
‘뭔 일이지?’
불안감에 발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행정실을 나가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뭐 해? 올라가!”
“알겠습니다.”
로딘은 교관들의 경지를 진즉 넘어섰다. 마법 교관, 검술 교관 가릴 것 없이 자신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위원회는 달랐다. 같은 경지. 그런데 숫자는 상대가 더 많았다.
‘뭔 일이 벌어지진 않을 거야.’
노예 스틱을 가진 자들이었다.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 굳이 행정실로 불러서까지 자신을 죽이진 않을 터였다.
“후우.”
호흡을 몇 번 내쉬어 긴장을 털어 냈다. 그리고 크루퍼 교관이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긴 통로를 지나자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주변에 감각을 곧추세우고 천천히 올라갔다.
위로 올라가니 또 문이 나왔다. 참 더럽게 복잡한 구조였고, 쓸데없이 길기만 한 절차였다.
똑똑!
노크를 했는데 대답이 없었다.
안에 사람이 없는 게 아니었다. 있으면서 시간을 끌고 있었다.
세리온 교관 정도를 제외하면 죄다 이따위였다. 어떻게든 자기 위치가 높다는 걸 보여 주려 안간힘이었다.
헤들러에게 들었는데, 리아즈 왕국의 귀족들은 다 이렇단다. 귀족주의와 권위주의가 워낙 심해서 다른 나라에서도 한심하게 볼 정도란다.
‘언제 열리려나? 위원회 위원이니 1분은 무조건 넘을 테고.’
노크를 더 하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렸다.
대략 3분 정도가 지난 후, 작고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로딘은 안으로 들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상대가 더 위에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 주려는 태도였다.
‘크세르 위원이네.’
5서클 마법사로, 죽은 크레이트 위원장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3기 108번 훈련생입니다. 부르심받고 찾아왔습니다.”
“신분패를 반납해라.”
“예?”
행정실로 올 때만 해도 책 좀 더 사 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크세르 위원의 의도가 짐작되지 않아,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신분패를 반납하라는 말이 어렵나?”
“아닙니다.”
“오늘부로 너는 마력 연공실을 이용할 수 없다. 도서관의 심화 1 서고와 2 서고의 출입도 금한다. 두 장소는 이제 네게 허락되지 않는 장소가 되었다.”
단호한 선언이었다. ‘왜요?’ 같은 질문을 해 봐야 통할 사람도 아니었다.
로딘은 순순히 신분패를 반납했다.
한 손으로 낚아채듯 신분패를 가져간 크세르 위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수로 자주 간다지?”
“예, 머리가 복잡할 때 종종 들릅니다.”
“따라와라.”
크세르 위원이 옆의 문을 열었다. 로딘이 들어온 곳과는 다른 문이었다.
‘아놔.’
문을 여니, 밖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왔다. 굳이 행정실을 거치지 않고, 1층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었다.
‘이런 길이 있으면 처음부터 여기로 부를 것이지.’
괜히 복잡해진 절차에 욱하고 뭔가 올라왔다. 억지로 억누르고, 티 나지 않게 호흡을 골랐다.
크세르 위원의 발걸음이 호수 방향으로 향했다. 뒤따라 걷는 로딘이 답답함을 느낄 정도로 느린 걸음이었다.
항상 로딘이 앉아서 쉬는 장소가 멀리 보였다.
옆에 놓인 바위, 나무, 얼어붙은 호수까지. 모두가 익숙한 광경이었다.
크세르 위원은 호수 근처까지 와서는 방향을 틀었다. 호수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얼마 걷지 않아서 작은 건물에 도착했다. 단층이었고, 입구에는 조교 4명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으음, 여기.’
호수를 오가며 본 적이 있는 건물이었다. 대체 뭐 하는 곳인지 꽤 오래전부터 궁금했다.
‘대답을 못 들었는데.’
조교들에게 뭐 하는 곳인지 물은 적이 있는데 넌 자격이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몇 번 더 묻는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 일찌감치 포기했었다.
“열어라.”
“예, 크세르 위원님.”
조교들이 좌우로 갈라섰다. 크세르 위원이 닫힌 문에 열쇠 하나를 꽂았다. 철컥 소리가 들리고 잠금장치가 풀렸다.
“열어라.”
“예.”
로딘이 힘을 주어서 문을 밀었다. 철로 만든 묵직한 문이 서서히 열렸다.
크세르 위원은 무거운 문을 직접 열기 싫어서 로딘에게 시켰다.
직접 밀어 보니, 상당한 무게였다. 입소 초기부터 꾸준하게 운동하지 않았다면 문을 못 열 뻔했다.
‘랜트라면 문을 뽑아서 던질 수도 있겠지만.’
열린 문을 통해 크세르 위원이 들어갔다. 로딘도 그 뒤를 따랐다.
팟!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오른쪽에 마법등이 있었다.
크세르 위원이 손을 대자마자 불이 밝혀졌다. 상당히 많은 양의 책이 서고에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적어도 5천 권은 된다.’
제목을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지금까지 본 책이 아닌 건 분명했다. 도서관에 있는 책과 같다면 외딴곳에 따로 보관할 이유가 없었다.
“이 아래로는 연구실이 있다.”
“연구실이요?”
“따라와라. 보여 주지.”
반대쪽에 있는 문을 열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크세르 위원이 라이트 마법을 사용해 주변을 밝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아!”
“여기가 연구실이고, 제작실이다.”
“연구실, 제작실.”
“앞으로 넌 매일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침 식사 후에 이곳으로 오고, 취침 2시간 전까지 이곳에 머무른다. 점심과 저녁 식사도 좀 전에 본 조교들이 시간 맞춰 제공할 것이다.”
새로운 책에 대한 반가움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 정도면 반쯤 감금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잠만 내무실에서 자라는 거니까.
“이곳에서 할 일이 있습니까?”
“1층에서 책을 봤지? 거기엔 아티팩트 제작에 관련된 서적과 훼손이 심한 서적들이 섞여 있다. 정리도 안 되어 있지. 거기 책들을 읽고. 포션 제작법을 연구해라.”
“포션 제작이요? 책만 보고요?”
“필요한 재료는 밖의 조교들에게 말하면 보내 줄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곧 전쟁이 벌어질 터. 포션 수급은 이 나라와 양성소의 존립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가둬 놓고 포션만 만들도록 하겠다는 말이었다. 이 정도면 죄수 혹은 노예와 다르지 않았다.
‘아, 나 노예였지.’
노예 인장을 새겼지만, 실제로 노예 취급을 받은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훌륭한 군인 예정자이면서 뛰어난 마법사 지망생으로 대우받았다.
“포션 제작법이 필요합니까? 아니면 포션까지 만들어서 제공해야 합니까?”
“당연히 포션까지 만들어야 한다.”
이런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전투 마법사들에게 애초에 뭘 기대한 적도 없었다.
전투하는 법 외에는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않는 이들이 마법 병단 소속의 전투 마법사였다. 부수고 불태우는 건 전문가지만, 무언가를 제작하고 고치는 능력은 젬병이었다.
“기한은 어떻게 됩니까?”
“내일 아침 식사를 마친 후부터 이곳으로 온다. 기한은 정해 두지 않았다. 내가 따로 말하기 전까지 너는 1층의 책을 읽고 포션 제작법부터 만들어 낸다. 다음 지시는 상황 봐서 내리겠다.”
“알겠습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생각 같아서는 확 마법으로 들이받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 보고,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
1층에 있는 책이 궁금했다. 아티팩트 제작 역시 원래부터 관심을 가졌던 분야였다. 도서관에서는 본 적이 없는 책이라 더 흥미가 갔다.
* * *
내무실로 돌아가 헤들러, 랜트, 코리에게 오늘 받은 명령을 설명해 줬다.
앞으로 점심, 저녁은 함께 먹을 수 없으니 미리 말을 해 둬야 했다.
셋 모두 화냈지만, 특히 헤들러의 분노가 컸다. 로딘의 처지가 죄수와 다를 바 없음을 바로 깨달은 것이다.
로딘은 열심히 동기들을 달랬다. 단순히 진정하라는 수준이 아니라, 동기들의 몸속에서 진짜로 화를 지워 버리려 애썼다.
화를 쌓아 두고 있다가, 자칫 교관들 앞에서 티가 날 수 있었다.
아직 양성소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벌써 교관들의 눈 밖에 나는 건 두고두고 문제가 될 터였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호숫가의 서고로 들어갔다. 조교를 통해 이곳을 심화 3 서고라고 부른다는 얘길 들었다.
“심화 서고라고 보기엔 책 상태가 너무 안 좋은데.”
호숫가는 습도가 높은 곳이다. 책을 보관하기에 좋은 위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심화 3 서고를 이런 장소에 만든 건 습도를 조절할 자신이 있어서였다.
“저거네.”
1층의 천장 부분에 습도를 낮추는 아티팩트가 장착되어 있었다.
아티팩트 내부에 흐르는 마력의 움직임을 읽으니 어떤 기능인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일단 포션 관련 책부터 찾아야겠지.”
책장 옆을 걸으며 책 제목을 빠르게 읽었다.
주제의 통일 없이 중구난방으로 꽂혀 있어서, 원하는 책을 찾기 힘들었다.
답답했지만, 일단 책 제목부터 전부 확인하고 기억했다.
제목이 없는 책도 있었고, 해져서 제목을 알아볼 수 없는 책도 많았다. 그런 책은 ‘미지정’이라는 키워드로 머릿속에 기억했다.
모든 책 제목을 머릿속에 담으니,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책 정리는 할 필요 없겠지.’
누구 좋으라고 정리를 하나. 자신은 이미 어떤 책이 어디 있는지 다 알았다. 제목이 없어서 ‘미지정’으로 기억하는 책 정도만 따로 빼 두면 된다.
굳이 정리까지 해서 다음에 이곳으로 올 누군가, 가령 교관이나 위원들을 위해 수고를 들이긴 싫었다.
‘일단 포션부터.’
책장을 천천히 살피는 동안 바깥에 있던 조교들이 내부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는 듯했다.
‘위원회의 지시겠지.’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소리가 나가지 못하게 신경 썼다.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았다.
‘이거하고, 이거.’
도서관에서 그랬듯, 책은 책장 옆에 서서 읽었다. 책상까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로딘이 심화 3 서고에 처박혀 있는 동안 1기 훈련생들은 특수군 양성소를 떠났다.
1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면 다시 돌아와 수료식을 치를 예정이었다.
1기가 사라지면서, 2기가 최고참 훈련생이 되었다. 그리고 3기는 이제 특수군 양성소에서 두 번째로 높은 기수였다.
로딘은 6일 만에 포션 제작법을 복원했다. 여기저기 조금씩 적혀 있던 내용을 합치고, 알고 있던 룬어 지식을 총동원한 결과였다.
‘미리 공개할 필요는 없지.’
위원회는 포션 제작법의 복원을 금방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몇 달은 여유가 있을 테니, 그 시간을 이용해 여유롭게 책이나 읽기로 했다.
일단 포션 제작법을 복원했다고 보고하면 자신은 그날부터 포션 제작에 매달려야 했다. 덩달아 개인 시간이 확 줄어들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티팩트는 서두를 필요 없지. 기회는 많으니까. 먼저 정체불명의 책부터.’
위원회에서 포션으로 만족할 리가 없었다. 욕심 많은 그들은 다른 아티팩트 역시 만들라고 지시할 것이다. 그때 아티팩트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 된다.
‘으음, 이건 쓰레기고.’
제목이 없는 책이라 ‘혹시 귀한 책 아냐?’ 하면서 기대를 많이 했다.
고대의 잊힌 마법이라도 발견하면 이곳에 가둔 위원회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하나씩 확인하고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정체 모를 누군가가 적은 연애 소설은 왜 이리 많은지. 제목 없는 책의 절반 정도는 연애질하는 내용이었다.
자기가 얼마나 잘난 놈인지 자랑하는 책도 있었다. 또 억울한 일을 당했다며 복수해 달라는 내용도 보였다.
‘뭔 야설을 이따위로 적어 놨어?’
시작 부분이 거창해서 기대했는데, 야한 이야기로 빠졌다. 이런 책을 볼 때마다 이곳에 자신을 가둔 위원회 놈들에게 분노가 쌓였다.
‘음?’
물론 모든 책이 쓰레기는 아니었다.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책도 있었고, 감탄이 절로 나오는 책도 많았다.
‘아!’
고대에 사용된 마법에 관련된 책이었다.
마법 주문 같은 건 나오지 않았지만, 대신 기존에 몰랐던 룬어가 꽤 많이 등장했다.
‘여기서 이런 보물을 건지다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