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35)
마법을 품다 (35)
로딘이 심화 3 서고에서 나와 허리를 폈다. 하루 종일 포션을 제작하는 척 책을 읽었더니, 몸이 굳었다.
‘우리도 얼마 안 남았구나.’
3기가 최선임이 된 지 벌써 7개월이 흘렀다.
군대 경험을 하고 온 1기들이 있지만, 그들은 서류상으로 이미 수료식을 마친 이들. 정식으로 3기가 최선임이었다.
‘노을 참 예쁘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모습을 감상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급한 것 없이 걷는데, 주변 분위기가 이상했다.
“무슨 일이지?”
“야! 108번!”
“87번인가? 여기 분위기 왜 이래?”
“전쟁이래. 전쟁. 며칠 전에 잉그렘 제국이 예고도 없이 국경을 넘었다더라.”
87번 메리온은 전쟁 소식만 전해 주고, 내무실로 달려갔다.
로딘은 내무실과 식당 중에서 잠깐 고민하다가, 식당으로 발을 들였다.
“어이, 로딘!”
“헤들러! 랜트!”
“얘기 들었어? 전쟁이래.”
“전쟁이다. 우린 검을 들어야 해.”
전쟁 얘기가 나왔는데도, 헤들러와 랜트는 별로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적이 오면 싸우면 되지.’라는 단순한 마인드였다.
“먼저 와 있었어?”
“코리 왔구나. 일단 먹자. 먹고 올라가서 얘기하자.”
뒤늦게 코리가 나타났다. 불구덩이 속에서 훈련하다가, 뒤늦게 소식을 들은 것이다.
301호 4인방은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다. 다른 사람들이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데 급급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식사 속도가 워낙 느려서, 3기 중에선 제일 마지막으로 식사를 마쳤다. 내무실로 올라와서도 딱히 급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헤들러와 랜트는 땀에 젖은 옷을 벗고, 대충 씻고 왔다.
말 그대로 대충. 샤워는 할 생각이 없는지, 눈에 보이는 부분에 물만 끼얹었다.
코리도 불구덩이에서 훈련하느라 땀을 많이 흘렸다. 하지만 몸도 아니고 얼굴만 씻고 끝냈다.
“더러운 놈들. 진짜 씻는 걸 왜 이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네.”
“네가 과한 거야. 원래 샤워는 1년에 2번이면 된다고.”
“맞아. 우리 엄마는 한여름이 아니면 안 씻었어.”
“자랑이다.”
지금은 여름이 끝나고 살짝 가을 기운이 도는 시기였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시기는 끝났다.
동시에 동기들이 좀 깨끗했던 때도 사라졌다.
로딘은 몸 전체를 깨끗하게 씻고 내무실로 돌아왔다. 그제야 코리가 본론을 꺼냈다.
“전쟁이라는데. 우린 어떻게 될까?”
“불려 나가서 싸우라면 싸우고. 그게 전부겠지.”
“너희들. 전쟁 얘기를 누구한테 들은 거야? 교관? 위원? 아니면 조교?”
로딘은 정보의 출처가 궁금했다.
전쟁을 의심해서는 아니었다. 누구 입에서 나왔느냐에 따라 오늘 일과에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조교. 불구덩이에서 훈련하고 돌아오는데, 제국 놈들이 쳐들어왔다고 떠들더라고.”
“나도 조교한테 들었어. 조교 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던데?”
“나는 헤들러와 같이 들었다.”
정보의 시작은 동일하게 조교였다.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으니, 전쟁이 벌어진 지 시일이 꽤 지났음이 분명했다.
“교관이나 위원들이 직접 발표한 게 아니니까. 아마 공식적으로 발표하겠네.”
“아, 밖으로 부르는 거면 좀 귀찮은데.”
“나도. 다 씻었는데, 밖에서 먼지 마시긴 싫어.”
“조교들은 병사들이잖아. 왕국의 중앙에 있는 병사들이 알 정도면 전쟁이 벌어진 지 꽤 됐을 거야.”
조교들은 병사. 그중에서도 최말단이었다.
가장 낮은 계급의 병사들이 모두 알 정도라면 전쟁 소식은 왕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고 봐야 했다.
시골구석에 처박혀서 홀로 지내거나, 외부와 격리되어 어떤 장소에 수용되어 지내는 사람이 아닌 이상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훈련생은 후자에 속했다. 조교를 통하지 않으면 외부의 소식조차 들을 수 없는 이들이었다.
“교관들은 이미 알고 있었겠다.”
“그렇겠네. 그러고 보면 요즘 교관들 분위기가 좀 이상하긴 했어.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것 같았다니까.”
“아무튼 소문이 퍼졌어. 위에서도 공식적으로 발표할 수밖에 없을 거야.”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밖에는 조교가 어색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집합이다. 운동장으로.”
“아! 전쟁 발표군요.”
“나는 용건은 몰라. 시키는 일이나 하는 거지.”
조교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갔다.
조교들은 최선임 기수를 상대할 때 조심스러워한다. 자기들보다 상급자가 되기 일보 직전이니, 눈치를 보는 수밖에 없다.
301호 내무실로 들어올 때 그 조심성이 특히 커진다.
301호에는 무려 5서클 마법사가 있었다. 위원회의 위원들과 같은 경지였다.
거기다 4데나급 검사 2명에 중급 정령 둘과 계약한 정령사도 있었다.
301호 내무실 안에서 병사들이 쉽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가자.”
“아, 옷 또 입어야 돼?”
“닥치고 빨리 입어. 시간 끌지 말고.”
“쳇, 요즘 로딘이 차가워졌어. 화가 아주 많다니까.”
투덜투덜하면서도 동기들은 옷을 갈아입었다.
로딘도 좀 전에 벗어 둔 옷을 다시 입고 밖으로 나왔다.
운동장에는 이미 수료식까지 마친 1기와 수료식까지 시간이 남은 3기부터 11기까지의 훈련생들이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며 모였다.
수백 명이 모이니, 그 넓던 운동장이 복작거렸다.
“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건 처음인데?”
“1기는 오랜만이네. 어디서 뭐 하고 지냈나 몰라.”
“북쪽에 따로 훈련장 만들어 놨더라. 산 정상에 올라가면 보이거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 훈련생과 수료생이 다 모였다. 그에 맞춰, 위원회 5인이 단상에 섰다.
“소문은 들었겠지? 전쟁이 벌어졌다.”
“아!”
“허어.”
탄식과 허탈함 가득한 소리가 운동장에 울렸다.
알브레이트 위원은 소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깐 기다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알브레이트 위원은 하비뇽 위원, 켈라인 위원과 함께 기사 출신의 위원이었다. 당연히 5데나급 경지의 상급 기사였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잉그렘 제국이 기습적으로 공격을 감행했지만, 본국은 큰 피해 없이 놈들을 막아 냈다.”
“아!”
“다행이네.”
“그럼 그렇지.”
알브레이트 위원의 말에 동요하던 훈련생들이 안도했다. 특히 부대 체험이 얼마 남지 않은 3기 훈련생들의 변화가 극적이었다.
‘과연 그럴까?’
로딘은 감각이 예민했다. 알브레이트 위원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불안감을 놓치지 않았다.
번쩍!
“질문해도 됩니까?”
1기 수료생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훈련생 사이에서도 나름대로 알려진 7번이었다.
“말해라.”
“전쟁 시작은 언제였는지 알고 싶습니다.”
“잉그렘 제국군은 9일 전 새벽 4시에 전격적으로 국경을 넘었다. 더 질문 있나?”
“없습니다.”
알브레이트 위원의 대답에 로딘은 전황이 안 좋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첫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면 9일이나 숨겼을 리가 없다. 크게 알려서 훈련생들의 안심시키고, 오히려 사기를 고취했을 것이다.
“내일도 훈련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달라지는 건 없다. 너희들은 언젠가 출전하게 될 때를 대비해서 실력을 갈고닦으면 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럼 전달 사항은 끝이다. 1기를 제외한 나머지 훈련생들은 내무실로 복귀하도록. 이상.”
1기는 이미 수료식까지 끝난 이들이다. 훈련생이 아니라 십인장 이상의 군인 신분이었다.
다만 소속이 부대가 아니라 특수군 양성소일 뿐이었다.
로딘 일행은 다시 내무실로 돌아왔다.
전쟁을 걱정하는 이들은 없었다. 태연하게 휴식을 취하며, 평소처럼 장난을 치며 놀았다.
“그러고 보니까. 2기는 제국 놈들하고 이미 한판 붙었겠다.”
“그러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다 살아 있으려나? 이겼다고 하니까 큰 문제 없을 것 같기는 한데.”
“모르지. 큰 문제가 없는지. 곤란한 상황에 놓였는지.”
로딘은 침대에 비스듬하게 기댄 채, 동기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원래 말수가 적은 랜트 역시 대화에 끼지 않고, 듣기만 하는 중이었다.
“1기는 곧 출동할 것 같더라.”
“뭐, 훈련생도 아니잖아. 이젠 군인인데 당연하지.”
그 후로도 헤들러와 코리는 한참 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로딘은 둘의 대화를 들으며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굳혔다.
“얘들아.”
“오, 로딘. 어쩐 일로 오늘은 운동을 안 하고 있지?”
“1기 다음은 우리일 거야.”
로딘은 위원회가 자신을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보내진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5서클 마법사는 강한 전력이지만, 양성소에서 포션을 제작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했다.
로딘이 볼 때는 비슷한 가치인데, 위원회는 포션 제작을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전쟁에서의 가치와 함께 자기들 주머니도 채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2기는?”
“2기는 현장에 있잖아. 복귀 명령을 내리긴 어려워.”
“왜? 노예 스틱이 있는데, 그냥 부르면 되지.”
“자기가 오고 싶어도 현장 부대에서 안 보내 주지. 2기가 말단 병사도 아니고. 최하 십인장에, 백인장도 있는데. 보내 줄 리가 없잖아.”
병력을 이끄는 이들이 이탈하면 아래까지 덩달아 흔들린다. 2기는 고작 34명이지만, 그들이 지닌 가치는 수백, 수천 명이었다.
“그러네. 다음은 우리 차례구나.”
“그래서 말인데.”
로딘이 침대를 옆으로 슬쩍 밀었다. 크게 힘주지 않아도 침대가 옆으로 밀려났다.
“뭐 해?”
“여기 잘 봐.”
침대로 가려진 벽에 미세한 실금이 있었다.
로딘은 그 실금에 손바닥을 대고 옆으로 밀었다. 안쪽에 두 뼘 정도 되는 공간이 나타났다.
“어?”
“뭐야?”
“이거 뭔데? 비밀 공간? 나 이런 거 무지 좋아해.”
“여기 포션이 들어 있거든. 40병 좀 넘어.”
로딘은 벽 안쪽에 숨겨져 있던 포션 병 하나를 꺼냈다. 빨간빛이 감도는 액체가 투명한 유리 안에서 찰랑였다.
“아! 너 포션 만든다더니. 몰래 빼돌린 거야?”
“응. 약간씩 남으니까. 합쳤지.”
고대의 제작법으로 만든 포션이 아니라, 실제로 위원회에 보내는 양에서 조금씩 빼돌려 만든 포션이었다.
매달 제작되는 포션의 양이 10리터보다 조금 많아서 3병에서 4병 정도 더 만들 수 있었다.
물론 벽 안에는 고대 비전으로 만든 포션도 몇 병 있긴 있었다. 초반에 만들었다가 남은 포션액을 적당히 소분해서 내무실과 심화 3서고에 나눠 보관하는 중이었다.
“이건 왜? 우리 주게?”
“만약 너희가 임무를 받으면 그때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챙겨. 다치면 아끼지 말고 사용하고. 또 만들면 되니까.”
로딘은 포션을 다시 벽 안으로 넣고, 열린 입구를 가렸다. 그리고 침대까지 틀어서, 아예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로딘. 사랑해.”
“더 다가오면 죽여 버린다.”
“헤헤헤.”
코리가 달려오려다가 로딘의 경고에 결국 멈췄다.
랜트가 헤들러와 코리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로딘은 민망해하지만 헤들러와 랜트, 코리는 로딘을 몹시 귀여워했다.
로딘이 워낙 예쁘장하게 생겨서였다. 거기다 나이가 어려서 몸집도 작으니, 껴안고 비비기 딱 좋았다.
물론 로딘은 그럴 때마다 질색했다. 발로 차고, 머리를 밀어내고. 달려들 기미만 보이면 확실하게 응징했다.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줘.”
“무슨 부탁?”
“여유가 되면 하급 마나석 하나만 사 줘. 그거면 돼.”
어떻게든 혼자서 마나석을 구하려고 해 봤는데 아무리 궁리해도 방법이 없었다.
마정석을 만드는 것? 그냥 포기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연구가 아니었다.
위원회에 부탁하는 것? 들어줄 리가 없었다. 그들은 결과 없는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마나석? 우리 돈 없는데?”
“포션 가져가서 팔면 돼. 포션이 예전에는 10골드 정도였거든. 지금은 엄청나게 올랐을 거야. 정확하게는 나도 모르는데, 2배 이상은 되지 않을까?”
“맞다. 전쟁이 벌어졌으니까 포션 가격은 엄청나게 올랐겠다. 그러면 마나석은 얼마나 하는데?”
“이전에는 20골드 정도? 아마 지금도 가격은 크게 바뀌지 않았을 거야.”
위원회를 통해 마나석을 얻는 건 포기하고, 3기의 동기들에게 기대를 걸어 보기로 했다.
양성소를 나갈 때 소지품 검사를 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1기들은 외부에서 가져온 군것질을 대놓고 먹으며 자신들이 훈련생 때와는 달라졌음을 자랑했다. 장비가 바뀐 1기들도 많았다.
“이런 거 물어도 되나? 어디에 쓸 거야?”
“연구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마나석이 필요해서.”
마나 집적 마법진을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일일이 설명하려면 연공실의 단점도 얘기해야 하는데, 그러면 설명이 너무 길어진다.
“위에 말하면 안 줘?”
“개인 연구야. 위원회에서 개인이 쓸 마나석을 사 줄 리가 없잖아.”
“하긴, 그 욕심 많은 늙은이들이 공짜로 뭔가를 줄 리가 없지.”
“그 늙은이들. 로딘 엄청나게 견제하잖아. 연공실 이용도 못 하게 막고.”
다행히 동기들은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포션을 공짜로 사용할 수 있으니, 그들에게도 나쁜 거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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