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37)
마법을 품다 (37)
알브레이트 위원은 약속 시간보다 20분이나 늦게 나타났다. 머리는 산발에 복장도 정돈되지 않았다. 어디서 잠이라도 자다가 급하게 나온 모양새였다.
‘자기가 늦지 말라고 해 놓고. 제일 늦네.’
헤들러는 위원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301호 4인방은 전부 위원회를 싫어했다.
로딘을 서고에 처박은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재정에 문제가 생기자마자 식사부터 건드린 행태에도 불만이 많았다.
“커험. 모두 승마한다. 사용할 말은 왼쪽이다.”
“예. 위원님.”
알브레이트 위원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따로 빼놓은 검은색 말에 멋들어지게 올라타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뒤늦게 와서 분위기 잡기는.’
알브레이트 위원의 뒤를 이에 교관들이 먼저 말을 골랐다. 훈련생은 교관들 다음이었다.
헤들러와 랜트는 왼쪽으로 빼놓은 말 중 적당한 놈으로 골라 탔다. 드록, 토리, 대런도 뒤이어 말을 한 필씩 골랐다.
“우린 지금부터 특수군이다. 번호도 버린다. 이름을 물으면 번호 빼고 너희들 이름을 대라. 노예인 티도 내지 마라. 이 시간부터 우린 특수군이다. 계급이 없을 뿐, 군인이라는 말이다. 알아들었나?”
“예.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한다. 뒤처지지 마라. 처지는 놈은 버리고 간다. 이럇!”
“이럇!”
* * *
알브레이트 위원이 이끄는 특수군은 2시간을 내리 달려, 왕성의 동문 근처에 도착했다.
일단의 무리들이 특수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알브레이트입니다. 백작 각하.”
“오호, 이거 정말 오랜만입니다. 알브레이트 경. 20년 만인가요?”
어둠 속에 서 있던 이들 중 1명이 앞으로 나왔다. 왕궁의 근위 기사단 단장인 프레이스 백작이었다.
프레이스 백작은 6데나급 상급 기사였다. 거기다 작위도 백작. 준귀족 작위만 가지고 있는 알브레이트 위원보다 모든 면에서 위였다.
하지만 나이가 고작 40대 초반으로, 알브레이트 위원보다 많이 어렸다. 또 프레이스 백작이 막 기사가 된 풋내기이던 시절에 만난 인연도 있어서, 예의를 지켜 주었다.
“예,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백작 각하.”
“과한 예의는 접어 두지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그나저나 이들입니까?”
“예. 이쪽은 교관들로 전투 경험이 많은 4데나급 기사들입니다. 이쪽은 마찬가지로 4데나급 경지에 올랐지만, 아직 실전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이고요.”
“흐음, 믿음직하네요.”
소개는 그렇게 끝났다. 프레이스 백작은 교관들의 경력이 어떤지, 훈련생들의 이름이 뭔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 아직 목표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흐음, 지금 말하지요. 모두 집합.”
프레이스 백작의 목소리는 작았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 목소리에 반응해 왕궁 근위 기사단 전원이 후다닥 달려와 줄을 섰다. 4열 종대로 맞추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우선 우리에 대해 알려 주는 게 먼저겠지. 우린 위대한 리아즈 왕국의 왕궁 근위 기사단이다.”
“아!”
“역시.”
헤들러를 포함한 훈련생들도 오늘 왕궁 근위 기사단을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직접 소개를 받는 건 와닿는 느낌이 달랐다.
“임무에 관해 이미 들은 녀석들도 있겠지만, 모르는 이들이 있으니 설명하지. 우린 잉그렘 제국 안으로 들어가서, 선봉 기사단 단장인 바하스 백작과 마법사 와이드먼을 처리한다.”
왕궁 근위 기사단의 기사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이미 임무를 듣기도 했고, 상대의 정체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훈련생들은 목표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반응을 못 했다.
기사단 단장이라고 하니, 강한 사람이겠지. 마법사는 몇 서클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하스 백작은 6데나급 상급 기사다. 잉그렘 제국 내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검수로 알려졌지. 그리고 와이드먼은 6서클 마법사로, 선봉 기사단의 종군 마법사다.”
“그 둘만 처리하면 되는 겁니까?”
“목표는 그렇지만, 그들도 호위를 위해 기사들을 대동하고 있다. 정보에 의하면 대략 20명 정도의 기사와 함께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흐음.”
임무를 이번에 처음 들은 이들은 6데나급 상급 기사와 6서클 마법사의 전력을 머릿속으로 대강 가늠했다.
이곳에 모인 전력을 서로 대입해, 승산이 얼마나 될지 짐작해 봤다.
“우리 정보가 정확하다면 바하스 백작과 와이드먼을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종군 마법사 와이드먼이 6서클인 만큼 우리 힘으로 마법 통신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반드시 지원 요청을 할 텐데, 지원이 오기 전에 우리가 얼마나 도망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아!”
최선은 적의 지원군이 오기 전에 몸을 완전히 빼내는 것. 모든 일이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큰 피해 없이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적의 지원군이 빠르거나, 적들의 포위망 형성이 먼저 끝난다면?
오늘 모인 이들 중 대부분은 잉그렘 제국 땅을 벗어나지 못할 터였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이동한다. 클리프 경. 뒤에서 신참들이 처지지 않게 돕도록.”
“알겠습니다.”
“출발하지.”
왕궁 근위 기사단의 숫자는 100명. 거기에 종군 마법사가 1명 포함되어 있었다.
특수군은 알브레이트 위원장과 교관 3명, 훈련생 5명까지 모두 9명으로 이루어졌다.
근위 기사단의 숫자와 합하면 110명이었다.
전원이 말을 타고 북쪽으로 이동했다. 밤에는 속도를 내고, 낮에는 땅을 파서 몸을 숨겼다.
* * *
저녁에도 포션 제작을 직접 진행한 로딘이 내무실로 돌아왔다.
헤들러와 랜트가 떠난 내무실에서 코리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허름한 옷을 입은 채였다.
“로딘, 왔어?”
“코리 너, 임무야?”
“응. 상담실 갔다 왔거든. 혼자 조용히 시킬 일이 있대. 밤에 나오라더라.”
‘혼자’와 ‘조용히’라는 단어가 로딘의 귀에 거슬렸다. 코리가 입은 옷도 영 느낌이 안 좋았다. 왠지 불쾌한 임무를 받을 것 같았다.
“무슨 임무인지는 모르고?”
“응. 오늘 밤에 정문 쪽으로 나오면 말해 준다고 했어.”
“혼자 진행하는 거야? 인솔자는 없고?”
싸한 예감에 로딘은 기분이 더러웠다. 해맑게 웃는 코리가 오늘따라 불길하게 보였다.
“응. 나 혼자 진행할 거니까 준비 단단히 하라더라. 아! 네가 숨겨 둔 포션 몇 개 챙겼어. 가져가도 되지?”
“당연하지. 그러라고 알려 준 건데.”
“고마워.”
“흐음, 코리.”
옷을 벗은 로딘은 샤워를 미루고, 코리 앞에 앉았다.
이상한 분위기를 읽은 코리도 로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왜? 뭐 아는 거 있어?”
“지금 상황에서 18살 철없는 정령사한테 시킬 수 있는 일은 둘 중 하나야. 하나는 부대에 배속되는 거야. 정령사는 다수와 함께할 때 시너지가 나니까. 여러 도움으로 부대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코리는 불의 정령, 바람의 정령과 계약한 중급 정령사였다. 개인이 가진 전투 능력도 상당하지만, 정찰 능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바람의 중급 정령을 부리면 주변 2km~3km를 항시 감시할 수 있었다. 불침번의 숫자를 확 줄일 수 있고, 이동 중이라면 전방 수색에도 도움이 된다.
“맞아. 정령사는 다재다능하니까. 도움이 되지.”
“그런데 부대에 배속되는 임무라면 널 혼자 나오라고 하진 않았을 거야. 세상 물정 모르는 훈련생이잖아.”
“세상 물정을 모르다니. 난 대륙 최고의 정령사가 될 몸이라고!”
코리가 장난꾸러기처럼 발끈했지만, 로딘의 표정은 여전히 무거웠다. 지금은 어리광을 받아 줄 때가 아니었다.
벌써 밤 9시였다. 곧 출발해야 할 코리에게 반드시 조언을 해 줘야 했다.
“너, 식당에서 먹는 식사 한 끼가 얼만진 알아? 숙박비는? 옷값은?”
“그거야…… 물어보면 알 수 있어.”
“맞아. 물어보면 알겠지. 그러니까 분명 교관 1명 정도는 함께했을 거야.”
“어……, 맞네.”
코리도 더 우기진 않았다.
로딘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기색을 읽었다. 장난을 칠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다른 부대에 배속되는 임무라면 인솔자도 없이 너 혼자 보낸다고 하진 않았을 거야. 정령사를 지원 보내는 일이니 굳이 비밀로 할 필요도 없고.”
“그러면?”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두 번째 일은 암살일 가능성이 커. 그것도 불쾌한 암살.”
“불쾌한 암살이 뭐야? 암살이 다 불쾌하지.”
사람을 죽이는 임무임이 확실했지만, 코리는 개의치 않았다.
특수군 양성소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이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었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도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할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거기다 마구간이 아니라 정문이라고 했지? 말을 타고 가면 안 되는 일이야. 말에는 특수군 양성소를 뜻하는 인장이 찍혀 있거든.”
“내가 특수군 양성소 출신이라는 걸 들키면 안 된다는 거야?”
“응. 제국군이 아니라 아군을 죽이는 일이 분명해. 그것도 꽤 고위직일 테고.”
코리는 정령사들이 입는 로브가 아니라, 도시의 빈민가에서 입을 법한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양성소의 말도 탈 수 없고, 야밤에 혼자서 조용히 해야 하는 임무였다.
이런 조건에 맞는 건 아군을 죽이는 일뿐이었다.
적을 상대한다면 이 정도로 흔적을 지우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아직 잉그렘 제국에서는 이곳에 관심도 없을 테니까.
“말도 안 돼. 왜 우리 편을 죽인다고? 왜 그런 짓을.”
“지금 특수군 양성소가 직면한 상황을 보면 말이 돼. 그런데 그건 중요하지 않아. 네가 걱정해야 하는 건 위원회는 네가 잡힐 걸 가정하고 있다는 거야.”
“잡힌다고? 내가?”
살인 자체에는 별 거부감이 없던 코리였지만, 잡힌다는 말에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게 곧 죽음을 뜻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응. 너만 죽으면 누가 시켰는지 누구도 알 수 없도록 상황이 갖춰지고 있잖아.”
“아! 내가 안 잡히면 되잖아.”
“임무 자체는 얼치기 중급 정령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일 거야. 상대는 검사나 마법사가 아니라 일반인. 아니, 암살할 가치가 있어야 하니까 고위 정치가나 상단의 주인 정도일 확률이 높아. 대신 암살 이후에 몸을 뺄 수 없다고 예상한 것 같아. 경비나 기사가 많은 도시에 머무는 사람인 거지. 어쩌면 왕도일 수도 있고.”
로딘의 말을 들으며 코리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사람이 바글거리는 도시에서 높은 직위의 누군가를 죽인다?
아무리 정령사가 다재다능해도 빠져나오긴 쉽지 않았다.
“로딘, 나 어쩌지? 안 죽을 수 없어? 나 진짜 죽기 싫은데.”
“살 방도를 마련해야지. 너 3데나급 검사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어? 손도 까딱 못 할 정도로 빠르게.”
“상대가 예상 못 하고 있으면 가능하지.”
코리는 평범한 중급 정령사가 아니었다. 2가지 속성의 정령과 계약한 듀얼이었다.
이런 정령사의 전투 능력은 3데나급과 4데나급 사이로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거기다 코리는 전투에 가장 적합하다는 불의 정령, 바람의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였다. 거의 4데나급 기사에 근접한 전투 능력을 갖췄다고 봐도 무방했다.
“네가 움직이면 교관 중 1명이 널 따라붙을 거야. 4데나급 검사는 이미 3명이나 빠졌으니까. 너한테는 3데나급 실력의 교관이 붙을 확률이 높아. 그래야 노예 스틱을 부러뜨릴 수 있으니까.”
“내가 사로잡히면 입을 막으려고?”
“아니. 무사히 빠져나와도 죽일 거야. 너만 죽으면 암살을 떠들어 댈 입도 사라지니까.”
로딘의 설명에 코리는 화가 치밀었다.
성공해도 죽고 실패해도 죽는다. 사로잡혀도 죽고, 빠져나와도 죽는다.
뭐, 이런 개 같은 일이 다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하면 돼?”
“네가 할 일은 2가지야. 널 따라붙은 누군가를 순식간에 죽이고 스틱을 회수하는 것. 암살에 성공한 후에도 무사히 빠져나올 방도를 미리 만들어 놓는 것.”
둘 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노예 스틱을 부러뜨릴 수 있는 약간의 틈만 줘도 감시자는 노예 스틱부터 부러뜨릴 것이다. 코리가 전투 능력이 더 강하니까.
탈출하는 일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탈출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아예 들키지 않고 빠져나와야 했다.
얼굴도 보이면 안 되고, 특수군 양성소 출신이라는 것도 들키지 말아야 했다.
얼굴이든 출신이든 일단 들키면 추격이 붙는다. 추격이 붙으면 코리가 살아남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방법은 있지? 로딘, 너라면 있을 거야. 그렇지?”
“감시자는 어차피 너하고 적당히 떨어진 거리를 두고 따라올 거야. 네가 움직인 경로를 그대로 따라올 테니까. 준비만 해 두면 너한테 유리해. 다만 상대가 노예 스틱을 부수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는 게 문제야.”
“경로가 똑같다면 할 수 있어. 정령으로 미리 준비해 두면 돼.”
“감시자는 네 노예 스틱을 가지고 있을 거야. 노예 스틱은 일단 회수하면 어딘가 묻어 놔. 절대,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네가 들고 다니는 건 너무 위험해. 알지?”
“응.”
“남은 건 들키지 않고 탈출하는 건데. 먼저 도시로 들어가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