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38)
마법을 품다 (38)
시간에 맞춰 정문으로 간 코리가 임무를 받았다.
임무를 전한 사람은 엘로브 위원이었다. 코리는 차분하게 임무를 설명하는 엘로브 위원을 보며 소름이 끼쳤다.
로딘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다. 받은 명령은 암살이었고, 그 대상도 리아즈 왕국의 귀족이었다.
코리는 약간의 임무 진행비를 받고 양성소를 벗어났다. 오늘따라 구름이 끼어 달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로딘의 말이 다 맞았어. 그렇다면 뒤에 붙은 감시자도 분명히 있을 거야.’
코리는 로딘의 말대로 느릿하게 몇 시간을 걸었다. 대략 목적지인 왕도와 특수군 양성소의 중간 지점까지는 티 내지 않고 느긋하게 이동했다.
‘여기가 좋겠다.’
함정을 만들기 좋은 지형이었다.
한겨울이라 나뭇잎이 다 떨어졌지만, 상관없었다. 정령이 만든 함정은 평범하지 않으니까.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 굵직한 나무를 깎아 간단한 함정을 만들었다. 지나가다가 건드리면 쓰러지는 방식이었다.
코리는 몇 분 정도 태연하게 이동하다가, 함정을 만든 장소로 되돌아왔다.
역시나 로딘의 말대로 누군가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호펜 교관이다.’
호펜 교관의 습성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급하면 급소부터 가리라고 가르치는 교관이었다. 방패를 항시 패용하기 때문에 순식간에 처리하는 건 어려웠다.
‘하필이면 호펜 교관이라니.’
잘 아는 상대는 아니었다. 오가다 몇 번 본 게 전부였다.
하지만 헤들러에게 생존 전문 교관이라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났다. 유사시에도 최악의 상황은 피할 정도의 실력은 있는 검사였다.
‘안 되겠어. 팔부터 날리자.’
도박이었다. 기껏 팔 하나를 날렸는데, 반대쪽 팔로 노예 스틱을 꺼낼 수 있다면?
코리는 오늘 아침 해를 보기 힘들 터였다.
그래도 지금은 도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에 죽이려다가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면 싸울 기회도 못 얻을지도 몰랐다.
‘셀리스트. 시작해.’
보통 함정이라면 대상이 뭔가를 밟거나 건드려야 발동한다. 함정이 발동할 때의 느낌이나 소리에 반응해 피하는 예민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정령사의 함정은 대상이 굳이 뭔가를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정령사의 뜻을 받은 정령이 직접 움직여서 함정을 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억!”
“하앗!”
뾰족하게 깎인 나무가 떨어지며 호펜 교관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중심을 잃은 상태였다.
코리는 곧바로 달려가며, 바람의 중급 정령 실라페를 움직였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실라페는 흔들리는 호펜 교관의 왼쪽 팔을 날려 버렸다.
서걱!
‘일단 됐다.’
바랐던 대로 왼쪽 팔을 날렸다. 오른쪽 손으로는 뽑기 힘든 곳에 노예 스틱을 넣어 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크아악!”
호펜 교관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본능적으로 방패를 들어 앞을 가렸다. 급소부터 보호하는 정석적인 반응이었다.
‘운이 좋았어.’
팔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호펜 교관이 방패를 들었다. 노예 스틱을 꺼낼 수 있는 순간을 스스로 버린 행위였다.
“셀리스트.”
부우웅!
불의 중급 정령 셀리스트가 허공에 거대한 불덩어리를 생성했다. 얼굴이 익을 듯한 열기에 호펜 교관은 방패를 더 꽉 쥐었다.
“실라페.”
앞에서 열기로 호펜 교관의 시선을 잡아 두는 사이, 뒤에서는 바람의 중급 정령 실라페가 커다란 바람의 칼날을 생성했다.
양쪽으로 공격을 당하자, 몸을 방어하던 호펜 교관도 동작이 꼬였다.
앞을 막지도, 뒤를 막지도 못한 채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말았다.
이건 호펜 교관의 실수였다.
과거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기사였지만, 특수군 양성소의 교관으로 너무 오래 지냈다.
전투와 동떨어진 채로 10년 이상을 보내면서 전투 감각을 잃어버렸다.
퍼엉!
“커어억! 네, 네놈!”
코리는 호펜 교관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어차피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얼굴만 아는 상대를 봐주기에는 이쪽 사정도 급했다.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생사를 건 전투에 코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령을 이용해 앞뒤로 쉼 없이 몰아쳤다.
호펜 교관이 어떻게든 방패에 몸을 숨겼지만, 앞뒤를 다 막을 순 없었다.
화르르!
“크아악!”
셀리스트가 호펜 교관의 오른쪽 팔을 활활 태워 버리는 것으로 전투는 끝났다.
바닥에 쓰러져 숨을 헐떡이던 호펜 교관이 고개만 힘겹게 들었다.
“대체…… 왜?”
“저도 살고 싶어서요.”
코리는 쓰러진 호펜 교관의 품을 뒤져서, 손에 걸리는 걸 전부 다 꺼냈다. 그중에 찾던 물건이 있었다.
노예 스틱이었다. 오른쪽 품에 들어 있었다.
오른쪽 손으로 오른쪽 품속에 있는 물건은 꺼내기 힘들었다. 호펜 교관이 노예 스틱을 꺼내지 못하고 방패를 잡은 이유였다.
“네, 네놈이…… 어떻게?”
“똑똑한 친구를 두니까 좋더라고요. 교관님 중에도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네놈…… 위원회에서 가만두지 않을 거다.”
“아니요. 가만둘 거예요. 제가 죽였다는 걸 모를 테니까요. 호펜 교관님은 전쟁 상황이 안 좋은 걸 눈치채고 도망친 기사가 되는 거죠.”
“크크크, 우리가 너구리를 키웠……구나.”
호펜 교관의 고개가 떨어졌다. 급하게 오르내리던 가슴의 움직임도 멎었다.
“그래도 제대로 처리해야겠지. 로딘이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 셀리스트, 다 태…… 아, 아니다. 미안. 셀리스트, 돌아가.”
끄덕!
불의 중급 정령 셀리스트가 사라졌다.
코리는 남은 마력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얼치기 정령사가 맞네. 젠장. 부정할 수가 없잖아.”
3데나급 기사와 2가지 속성과 계약한 중급 정령사.
둘의 힘 차이는 꽤 큰 편이었다. 정령사가 절대 패하면 안 되는 싸움이었다.
게다가 함정과 기습으로 팔 하나를 잘라 놓고 시작했다. 여유롭게 상대해서도 이길 수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전혀 여유롭지 않았다. 이기긴 했지만, 마력이 바닥이었다.
첫 실전이라 냉정하지 못했고, 그 탓에 힘을 너무 과도하게 썼다.
“실라페, 누가 오는지 감시해 줘. 할 수 있으면 처리해 주고.”
끄덕.
실라페에게 호위를 부탁하고, 코리는 마력 연공에 들어갔다.
정령은 소환해 두는 것만으로도 마력을 끊임없이 소모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양이 적지만, 가능하면 그 조금도 줄일 수 있다면 줄이는 게 좋았다.
그래서 셀리스트를 일단 돌려보냈다. 마력을 회복하고 다시 소환할 생각이었다.
코리는 거의 2시간 하고도 몇십 분이 더 흐른 후에야 눈을 떴다. 겨우 마력 연공 1사이클을 돌렸을 뿐인데도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쳇, 이놈의 재능.”
연공의 1사이클에 걸리는 시간은 마력 재능에 영향을 받는다. 재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같은 연공법을 사용해도 빨리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재능 점수가 2배 높다고 연공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로딘은 1사이클에 걸리는 시간이 대략 30분이었다. 몸 상태가 안 좋을 때는 더 걸리긴 하지만, 그때도 40분을 넘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마력 재능 17인 코리는 1사이클에 보통 90분 정도가 걸린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긴장한 데다 몸이 정상이 아니라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후우, 셀리스트.”
스팟!
셀리스트가 허공을 뚫고 나타났다. 활활 타오르는 몸체를 가진 새 형태였다.
“저 시체, 재만 남도록 태워 줘.”
끄덕.
셀리스트가 화기를 끌어 올려 호펜 교관의 몸에 불을 붙였다. 작게 타오르던 불길은 코리의 마력을 연료로 점점 몸집을 키웠다.
완전히 태우려면 시간이 꽤 걸릴 터.
코리는 호펜 교관의 품에서 꺼낸 소지품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오호, 돈이다.”
임무 진행비라며 엘로브 위원에게 받은 돈이 10골드였다. 4인 가족 평민이 한 달은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런데 호펜 교관의 품에서 나온 돈은 100골드가 넘었다. 은화와 동화도 있어서, 도시에서 바로 쓰기 편했다.
“나머진 의미 없고. 장비도…… 뭐, 나하곤 안 맞고.”
검사들 장비는 죄다 무거웠다.
짐을 무겁게 만들고 싶지 않은 코리는 호펜 교관의 장비 전부를 폐기하기로 했다.
“그래도 장비를 가지고 가긴 해야 하는데.”
이 자리에 장비를 버려두면, 호펜 교관의 실종을 조사하는 누군가도 전투 흔적을 되짚어갈 거다. 자칫 정령사가 싸웠다는 걸 들킬 위험이 있었다.
정령사는 검사, 마법사와는 흔적이 다르니까.
이곳과 멀리 떨어진 곳. 전투하고 상관없는 장소로 가서 장비를 처리해야 했다.
“에휴.”
칼을 어깨에 턱 하니 걸치고, 커다란 방패를 엎다시피 등에 올렸다. 더는 들 힘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장비는 실라페에게 맡겼다.
“마력 아껴야 하는데.”
2시간이 넘는 마력 연공으로도 마력이 다 채워지지 않았다. 앞으로 2~3번은 더 해야 온전한 상태가 될 것이다.
* * *
호펜 교관을 죽인 장소와 왕도의 중간쯤에 흐르는 강에 장비를 버렸다. 수심이 깊은 중간에 버려서, 찾을 수 없게 신경 썼다.
코리는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왕도에 도착했다. 밤새도록 걸었다.
한바탕 싸우고, 장비까지 들고 몇 시간을 이동했다. 몸이 말이 아니었다.
“아, 피곤하다.”
코리는 적당한 여관에 숙박료를 지불하고, 하루를 묵었다. 피곤함에 눈이 저절로 감겼다.
다행히 시간적인 여유는 많았다. 엘로브 위원에게 들은 기한은 1개월. 넉넉하게 쉬다가 움직여도 충분했다.
코리는 하루를 쉬고, 왕도를 돌아다녔다. 복잡한 거리를 걷고, 식당에서 다른 사람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런. 보통 사람이 아니었잖아.’
임무 대상은 스테인 후작이었다. 이름만 알았지, 어제까지만 해도 뭐 하는 귀족인지는 몰랐다.
그런데 이곳에서 돌아다니면서 스테인 후작의 정체를 알게 됐다. 재상이란다.
정체를 알게 된 순간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었다.
암살 대상이 재상이라니. 자신이 저지른 짓이라는 게 밝혀지는 순간 왕국 전부가 자신을 찾아다닐 게 뻔했다.
‘그래도 동선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죽일 수는 있을 거야. 딱히 강한 사람도 아니고.’
스테인 후작은 검사도 아니고 마법사도 아니었다. 개인 무력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동선도 이미 파악했다. 엘로브 위원에게 받은 자료 그대로였다.
스테인 후작은 왕도에만 3명의 정부(情夫)가 있었다.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닌 듯했는데, 엘로브 위원은 3명의 정부가 누군지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코리는 엘로브 위원에게 그 정보를 받았고, 오늘 확인까지 마쳤다. 들은 정보와 다르지 않았다.
‘죽이는 건 쉽고 빠져나가기는 어려워.’
스테인 후작이 항상 데리고 다니는 호위는 2명인데, 모두 4데나급 기사였다. 정면으로 싸워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겠어.’
왕도를 돌아다녔다.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 청년이었다.
“어?”
한 잡화점 앞에 적힌 문구가 코리의 눈에 들어왔다.
―상처 치유 포션. 30골드로 무제한 매입―
문구를 보니, 로딘에게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원래 상처 치유 포션의 가격은 10골드라고 했다. 지금은 전쟁으로 올랐을 거라고.
“30골드면 3배잖아. 와, 진짜 많이 올랐네.”
코리는 잡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포션을 팔지는 않고, 마나석의 가격을 문의했다.
“하급 마나석? 10골드만 줘.”
“사기는 아니죠?”
“사기 같은 소리 하네. 여기 왕도야. 이 친구야. 여기서 사기 치다 걸리면 장사 접어야 돼.”
“아하하, 그렇군요.”
로딘은 하급 마나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간밤에 로딘의 조언으로 목숨을 건졌으니, 하급 마나석 정도는 사 줄 수 있었다.
다행히 가격도 쌌다. 임무 진행비와 호펜 교관이 가지고 있던 돈이면 충분히 살 수 있었다.
‘로딘을 만날 시간이 될까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 놔야겠지.’
원래 가지고 있던 돈으로 먼저 하급 마나석 10개를 샀다. 그리고 포션 2개를 팔아서, 이곳에서 지낼 동안 쓸 자금을 마련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