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39)
마법을 품다 (39)
코리는 로딘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로딘, 감시자 죽이고 노예 스틱 회수하면 그냥 도망치면 되는 거 아냐? 자유잖아.”
“아니. 네 안전을 위해서 임무는 꼭 완수해야 해.”
“왜?”
“네가 임무를 팽개치고 도망치면 위원회에서는 네가 감시자를 죽였다고 생각할 거다. 그러면 추적이 붙을 거야.”
정령사가 자기 흔적을 숨기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마법사 역시 추적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둘 중 누가 더 우세할지는 불분명하지만, 코리 실력으로 5서클 마법사의 추적을 뿌리칠 수 없는 건 확실했다.
“임무를 완수하면?”
“임무를 완수하고 그냥 사라지면 돼. 그러면 위원회는 네가 감시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생각할 거야. 네가 사라진 건 감시자가 노예 스틱을 부러뜨려서 죽었기 때문이라고 여기겠지.”
“감시자는?”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거나, 아니면 도망쳤거나. 알아서 생각하겠지. 분명한 건 위원회는 네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거야. 뒤통수 터진 시신 하나쯤 준비해 두면 더 완벽할 테고.”
간절히 바랐던 자유를 위해서는 스테인 후작을 죽이고, 깔끔하게 사라져야 했다.
그걸 위해서 며칠 동안 왕도에 머물며 머리를 쥐어짰다.
‘로딘이 알려 준 방법이 최선인가?’
방법을 정했다. 이제 움직일 때였다.
코리는 옷 안에 속옷을 넣어 뚱뚱한 체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머리를 산발한 채로 멀리 있는 옷 가게를 찾아갔다.
로딘은 처음 방문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풍기는 인상을 기억하는 거라고 했다.
“코리, 만약 치안대가 네가 옷을 산 가게로 가서 이 옷을 사 간 놈을 기억하느냐고 옷 가게 주인에게 물으면 옷 가게 주인은 뭐라고 대답할까?”
“어, 어떻게 대답하는데?”
“키, 몸무게, 그리고 이미지. 이 3가지야. 가령 ‘키 크고 뚱뚱한 청년이 사 갔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코가 어떻고 눈이 어떻고. 이런 식으로 대답하진 않는다고. 왜냐하면 애초에 제대로 된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거든.”
로딘의 조언을 떠올리며, 코리는 하루에 여덟 군데의 옷 가게에 들러서 각기 다른 옷을 샀다. 갈 때마다 다양한 이미지를 가진 손님을 연기했다.
어떤 가게는 몸을 뚱뚱하게 만들어서 찾아갔고, 어떤 곳은 부츠 안에 수건을 넣어서 키를 키웠다. 어떤 곳에서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만들어서 병약한 사람인 척했고, 어떤 곳에서는 머리에 기름을 잔뜩 발라 젊은 부자 행세를 했다.
옷을 다 사고, 마지막으로 말도 한 필 샀다. 말을 살 때는 젊은 부자의 모습이었다.
‘일단 한고비는 넘겼고.’
말을 타고 왕도를 벗어났다. 특수군 양성소가 있는 동쪽이 아니라 남문을 이용했다.
“여기 하나쯤 묻고.”
말을 타고 30분쯤 달려서 적당히 외진 곳에 도착했다. 땅을 파고 옷 한 벌을 보자기에 싸서 묻었다. 티 나지 않게 땅을 고르게 만든 후, 위치를 확인했다.
“까먹으면 안 되지.”
다시 말을 타고 30분 정도 이동했다. 그리고 다시 옷을 묻었다.
“옷을 몇 벌이나 쓰게 될까?”
준비한 8벌의 옷을 다 쓴다면, 마지막까지 쫓기고 있다는 뜻이다. 가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기왕이면 1벌로 끝내는 게 좋은데.”
모든 옷을 묻어 두고 다시 왕도 근처로 왔다. 성문을 닫기까지 대략 2시간이 남았다.
‘말만 잘 묶어 두면 얼추 준비는 끝인가? 아! 머리 부서진 시신도 하나 있어야 하는데. 뒷골목 좀 뒤져 볼까?’
성문이 닫히기 30분 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말을 묶었다.
오래 묶어 두면 문제가 되겠지만, 오늘 밤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닫히기 직전에 성문을 통과했다. 왕도를 느긋하게 걸으며 주변을 감상했다.
‘저기가 좋겠군.’
마침 뒤로 이어지는 작은 골목이 보였다. 골목 안에서 서너 명의 실루엣이 움직이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코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기척이 들렸다. 앞과 뒤, 각각 2명씩이었다.
“야! 거기 꼬맹이.”
“아놔.”
꼬맹이라는 말에 코리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코리의 나이는 어느새 18살. 사실상 성장이 거의 끝나 가는 나이였다.
그런데 코리는 여전히 작았다. 3기 중에서 자신보다 더 작은 훈련생은 서너 명뿐이었다. 4살 어린 로딘하고도 큰 차이가 안 났다.
그래서 ‘꼬맹이’, ‘난쟁이’ 같은 호칭에 예민했다. 헤들러가 ‘난쟁이’라고 하자 이틀이나 대화를 안 한 적도 있었다.
“야! 꼬맹이. 거기 서 봐.”
“하아, 좀 전까진 살짝 미안했는데. 미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겠네.”
“뭐래? 꼬맹이. 가진 거 다 내놓고, 저기 가서 손 들고 서 있어.”
앞을 막은 20대 건달 1명이 턱으로 벽을 가리켰다.
코리는 건달의 말은 무시하고, 앞뒤를 둘러싼 놈들의 나이와 몸집을 눈으로 살폈다.
넷 중 1명이 자신과 비슷한 키에 비슷한 나이였다. 머리카락 색도 가장 흔한 갈색으로, 자신과 같았다.
“딱 좋네.”
“야! 꼬맹이. 말 안 듣네. 꼭 맞아야 말을 듣는 애들이 있다니까.”
“실라페, 저놈 빼고 다 죽여.”
스스스!
건달 셋이 죽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실라페는 바람의 칼날을 일으켜 셋의 목을 순식간에 날려 버렸다.
비슷한 외형이라 살아남은 한 놈은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주춤주춤 물러났다.
“실라페, 그놈 도망 못 가게 잘 잡아 둬. 셀리스트, 시체 셋 다 태워. 재만 남도록.”
끄덕!
시체에 불이 붙었다. 화력은 점점 강해졌고, 시체를 완전히 감쌌다. 시체는 30분에 걸쳐서 타더니, 이내 재만 남았다.
“살, 살려 주십시오.”
“글쎄, 어떻게 할까?”
“제가 높으신 분을 못 알아봤습니다. 반성하고 살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살려만 주시면 뭐든지 다 하겠…….”
퍼억!
실라페에게 머릿속으로 기절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실라페는 칼날이 아닌 뭉툭한 바람의 망치를 만들어 건달의 머리를 내리쳤다.
“시간이 좀 남았네.”
스테인 후작은 2시간쯤 지나야 정부를 찾아갈 거다. 그때까지 할 일이 없었다.
“으음, 일단 이 녀석은 좀 옮기자. 저쪽 옥상으로.”
끄덕.
실라페가 기절한 건달을 가까운 건물의 옥상으로 옮겼다. 뒤이어 코리 역시 실라페의 도움을 받아 옥상으로 올라왔다.
해가 완전히 떨어졌다. 며칠 전에는 달도 잘 안 보이더니, 오늘은 둥글고 노란 달이 커다랗게 떴다.
‘실라페, 셀리스트. 이 녀석 머리통을 터트리는데, 이쪽 뒷머리가 반 정도만 터지도록 위력을 조절해 줘.’
끄덕!
셀리스트와 실라페가 가까이 붙어서 건달의 뒤통수에 손을 댔다. 그리고 아주 약간의 마력을 이용해 폭발을 만들어 냈다.
퍼억!
건달의 뒷머리가 터졌다. 기절해 있던 건달은 통증도 느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적당한가? 조금 센가?’
예상했던 위력보다 조금 강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노예 인장이 터졌을 때 어느 정도 위력으로 폭발하는지 코리도 몰랐다.
‘움직이자. 실라페.’
실라페가 코리의 몸을 들어 하늘을 날았다. 유독 둥글게 뜬 달 때문에 하늘이 밝았지만, 유심히 보는 사람은 없었다.
도심의 상가 건물을 넘어서, 작은 가게의 옥상에 내려앉았다. 그곳에서 자세를 낮춘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설마 오늘 안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
스테인 후작은 지난 6개월 동안 왕궁 정례 회의가 끝난 날은 꼭 이곳을 지나서 정부(情夫)를 만났다.
엘로브 위원에게 받은 정보가 그랬다. 코리도 그 사실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왔다.’
저 멀리서 작은 인기척이 들렸다. 밝은 달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이들이 3명임을 보여 줬다.
‘한 방에 끝내야 한다. 두 번은 없어.’
자신보다 강한 4데나급 기사가 2명이었다. 한 번에 죽이지 못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야 했다.
‘셀리스트. 반대쪽으로.’
셀리스트를 보내고, 코리는 실라페와 함께 숨죽이고 기다렸다. 곧 스테인 후작이 원하던 곳을 지나쳤다.
‘지금이다. 셀리스트 먼저, 실라페.’
셀리스트가 반대쪽에서 미약한 열기를 풍겼다.
열기를 느낀 스테인 후작의 호위가 반사적으로 움직여 열기가 느껴진 쪽을 막아섰다.
그때, 호위가 비워 둔 방향에서 실라페가 움직였다. 날카로운 바람은 순식간에 들이닥쳐 스테인 후작의 허리를 양단해 버렸다.
‘이런.’
마력을 너무 과하게 썼다. 심장을 뚫거나, 머리 정도만 자르면 되는 것을. 너무 긴장해서 전력을 다해 버렸다.
“후작님!”
“적이다!”
“후스. 내가 쫓는다. 후작님을.”
호위 1명은 죽은 스테인 후작 옆에 남고, 다른 1명이 셀리스트가 느껴진 방향으로 달려갔다. 셀리스트의 기척을 암살자로 착각한 것이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코리도 바로 몸을 돌렸다.
‘셀리스트. 적당한 속도로 가다가 정령계로 돌아가.’
셀리스트를 보내고, 코리는 실라페의 몸에 매달렸다.
바람의 중급 정령인 실라페는 코리를 들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뒤에서 희미하게 ‘반대쪽이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코리는 피식 웃으며 하늘을 날아 성문을 넘었다.
성문 바깥을 경계하던 성문의 수비병들은 코리가 나가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경계를 서는 방향이 바깥이어서였다.
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늘따라 성문 위의 경계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이런 행운이.’
어쩌면 옷을 한 번만 갈아입고 도주에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든 상황이 코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코리는 상황을 몰랐지만, 오늘부터 성문의 경비 숫자가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제국과의 전쟁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면서, 왕도의 수비병까지 전선으로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 내려 줘.”
말을 묶어 둔 곳에 내렸다. 몇 시간이 흘렀는데도 말은 여전히 잘 묶여 있었다.
준비해 둔 옷으로 갈아입고, 말에 올랐다. 기존에 입었던 옷은 봇짐에 잘 넣어 뒀다.
‘으음, 셀리스트는 돌아갔구나.’
셀리스트가 충격을 받은 느낌은 없었다. 마력 소모가 급격하게 커지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아마 거리가 너무 멀어져서 저절로 정령계로 되돌아간 듯했다.
“가자. 이럇!”
말을 달리며 뒤를 힐끔 돌아봤다.
따라붙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성문 위에서 경계 중인 수비병들도 조용했다.
모든 일이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었다. 아니, 그 이상으로 수월하게 풀렸다.
너무 일이 잘 풀려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임무 완수. 딱 열흘 걸렸구나. 대륙 최고의 정령사 코리. 자알했어. 흐흐흐.’
* * *
도시 햄튼은 원래 잉그렘 제국의 3대 도시에 속한 번화한 곳이었다. 제국 남부의 교역 중심지로, 리아즈 왕국을 포함한 남부의 수많은 국가와 무역을 하던 활기찬 도시였다.
하지만 약 30년 전 13국 연합이 잉그렘 제국을 공격하면서, 햄튼은 무역 도시로의 기능을 잃었다. 대신 최전방을 지원하는 후방 지원 도시로 탈바꿈했다.
도시 햄튼으로 병장기들이 모였다. 마법 병단이 머물 숙소와 훈련장이 생겼고, 수많은 신참 훈련생을 교육하는 훈련장, 대장간, 목재소가 들어섰다.
동쪽에는 수천 개의 막사가 세워졌고, 반대쪽에는 기사들의 훈련장이 만들어졌다. 물론 수많은 병사가 이용할 유흥가와 병사들의 가족을 맞을 여관도 있었다.
헤들러, 랜트 등이 포함된 리아즈 왕국의 근위 기사단은 도시 햄튼과 도시 오르퍼스 사이의 산길에 도착했다.
도시 오르퍼스는 도시 햄튼과 3일 거리인 도시로, 햄튼과 마찬가지로 군사 도시화한 곳이었다.
“첫 집결지에 도착했다. 전원 하마하고 휴식한다.”
“예.”
“앞으로 대답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한다. 기도비닉을 유지하도록.”
끄덕!
무려 12일에 걸친 강행군이었다. 기사들과 특수군 모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특히 특수군 소속 마법사인 대런과 기사단 소속 종군 마법사인 보일은 입에 게거품을 물 정도로 인사불성이었다.
“쉬면서 듣도록. 이곳은 햄튼과 오르퍼스 사이의 산길이다. 우리 정보가 정확하다면 열흘 안에 바하스 백작과 마법사 와이드먼은 호위들을 이끌고 이곳을 지나갈 것이다.”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진다는 뜻이었다.
그걸 깨달은 일행들이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보시다시피 기습하기 좋은 곳은 아니다. 산이긴 하지만, 나무들은 이미 앙상하게 말랐지. 비트를 파고 숨어서 기다리다가 바하스 백작과 와이드먼 마법사를 친다.”
“아!”
숨을 곳을 만드는 일도 그들의 몫이었다.
너무 지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데 막노동까지 해야 한다니. 다 때려치우고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클리프 경.”
“예, 단장님.”
“몇 명 데리고 햄튼으로 간다. 뭘 해야 하는지는 알지?”
“지키고 있다가 바하스 백작 일행이 몇 명인지 통신으로 보고합니다.”
부단장인 클리프는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목표와 해야 할 일을 이미 전달받았다. 프레이스 백작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미리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
“맞아. 애송이 몇 포함해서 다섯 정도면 되겠지. 저기 특수군 마법사 녀석도 데려가고.”
“알겠습니다.”
왕궁 궁정 근위 기사단의 클리프 부단장이 특수군 중에서 눈빛이 좋은 둘을 골랐다. 헤들러와 랜트였다.
거기에 이곳과의 마법 통신을 위해 특수군 소속 마법사인 대런을 넣었다. 또 대런과 나이대가 최대한 비슷한, 젊은 기사 둘을 포함했다.
부단장인 자신을 합해서 6명이었다.
“우린 바로 이동한다.”
“조금만 쉬면…… 안 됩니까?”
“가면서 쉴 시간 줄 테니. 지금은 움직여.”
대런이 버텨 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체력이 약한 마법사라고 해서 봐주는 것도 없었다.
클리프 부단장의 인솔을 받아 6명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목적지는 햄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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