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4)
마법을 품다 (4)
지시가 떨어졌는데도 아이들은 상황 파악을 못 했다.
“왜요?”
“어디로요?”
“지금요?”
같은 멍청한 소리만 해 댔다. 로딘은 ‘뛰어!’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움직이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아니야.’
혼자 튀는 건 좋지 않았다. 그냥 남들이 움직일 때 같이 움직이기로 하고, 자리를 지켰다.
남들 다 도망칠 때 남았다는 이유로 마차를 타고 오는 내내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게 싫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즐거운 경험도 아니었다.
‘같이 움직이자. 같이.’
“조교! 잡아 와!”
“예.”
조교들 몇 명이 아이들 몇 명을 끌어냈다. ‘왜요?’, ‘어디로요?’ 같은 질문을 해 댔던 아이들이었다.
“엎드려뻗쳐!”
“왜…… 왜 그러세요?”
“조교! 뭐 하나!”
퍼억!
교관의 질책과 동시에 조교가 발길질을 해 댔다. 왜 그러냐고 되물었던 아이가 등을 맞고 철퍼덕 엎어졌다.
“앞으로 본 교관이 명령하면 재깍 명령대로 움직인다. 알겠나!”
“예, 그, 그럴게요. 때리지 마세요.”
“대답은 ‘예, 알겠습니다’로 통일한다. 엎드려뻗쳐!”
“예, 알겠습니다.”
눈치 빠르게 앞으로 끌려 나온 이들이 양팔을 바닥에 대고 엎드렸다. 엎드려뻗쳐를 몰랐던 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자세를 보고 따라 했다.
“나머지는 운동장 33바퀴를 뛴다. 실시!”
“예.”
“대답 소리 봐라! 더 크게 못 하나!”
아이들이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로딘도 아이들의 후미에 붙어서 적당한 속도를 유지했다.
무려 33바퀴였다. 시작부터 빨리 달리면 절대 완주할 수 없는 거리. 로딘은 머릿속으로 거리를 계산하고 속도를 늦추었다.
그래서인지, 달린 지 얼마 안 되어서 로딘은 뒤로 처졌다. 걷는 것도 아니고 뛴다고 보기도 애매한 속도였다.
“후훅.”
뛰면서 호흡에 집중했다. 길게 숨도 쉬어 보고, 짧게 나눠서 숨을 들이쉬거나 내쉬면서 몸을 관조했다. 장거리를 달릴 때 어떤 호흡이 적합한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긴 호흡은 안 좋아.’
길게 숨을 들이켜고, 길게 내쉬었다. 몸속에 숨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들이켰던 공기가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짧게 반복해서 들이켜고 내쉬었다. 몸속에 꽤 많은 공기가 남았다. 대신 호흡 과정에서 체력이 소모되었다.
‘두 번씩이 좋겠어.’
로딘은 자기가 가진 예민한 감각을 이용해서, 효율적인 호흡법을 알아냈다.
두 번 나눠서 숨을 들이켜고, 두 번 나눠서 숨을 내뱉었다. 몸에 부하도 적고, 몸속에 숨도 많이 남았다.
운동장을 2바퀴 돌았다. 처음 출발했던 자리에서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던 아이들이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항상 리더처럼 나섰던 드록이라는 아이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드록은 리더십이 있는 아이였다. 먼저 나설 줄도 알고, 아이들을 대신해서 질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웅 심리와 허세도 심한 편이었다. 굳이 나설 필요가 없는 자리에 나서서 화를 자초하는 일도 많았다. 오늘처럼.
‘괜찮아?’
로딘은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으로만 아이들을 위로했다. 그가 이 자리에서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5바퀴를 돌았다. 어떻게든 버티고 있던 아이들 몇 명이 쓰러졌다. 그러자 조교들이 곧장 달려가서 아이들에게 발길질을 해 댔다.
아이들이 다리를 붙잡고 애원해도 소용없었다. 조교들은 감정 없는 얼굴로 묵묵히 아이들을 팼다.
10바퀴를 돌았다. 한참 동안 맞고 있던 아이들이 다시 엎드렸다. 쓰러질 때마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었다.
12바퀴째.
한계에 달했는지 아이들이 죄다 쓰러졌다. 조교들이 발길질도 부족해서, 어딘가에서 가져온 매를 휘둘렀다.
아이들이 조교들의 다리를 붙잡고 애걸복걸했지만, 의미 없는 발악이었다. 조교들은 여전히 무표정했고, 발길질과 매질의 강도도 약해지지 않았다.
14바퀴째.
달리던 아이 중에서 낙오자가 우수수 생겼다.
크기가 작은 운동장이었지만, 아이들도 어렸다. 14바퀴씩이나 달린 것도 매 맞는 아이들을 봤기 때문이지, 평소였다면 더 일찍 포기했을 것이다.
포기한 아이들도 아예 움직임을 멈추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멈추는 순간 매질이 날아온다는 걸 알아서인지, 느릿하게 걸으면서 달리는 이들의 뒤를 따르는 모습이었다.
15바퀴를 돌았다. 처음 위치에서 엎드려뻗쳐를 하던 이들은 다 쓰러졌다. 진즉 의식을 잃어서, 오르내리는 가슴만 보였다.
‘쯧, 많이 맞았네.’
아이들의 입술은 죄다 터졌고, 눈도 팅팅 부었다. 발작하듯 팔을 움찔거리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20바퀴를 돌았다. 여전히 달리는 아이는 로딘을 포함해 채 10명도 되지 않았다.
‘힘들다.’
나름대로 체력 안배를 했음에도 슬슬 한계에 다다랐다. 33바퀴를 달리기에 아직 5살도 되지 않은 몸뚱이는 너무 약했다.
“허억! 허억!”
맨 앞에서 달리던 헤들러가 어느새 옆으로 왔다. 온몸이 땀에 젖고, 눈동자도 풀려 있었다.
“후후, 하하. 후후. 하하.”
로딘은 계획한 대로만 숨을 쉬었다.
헤들러에게 응원이라도 한마디 하고 싶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싹 마른 입에서 뻑뻑해진 침 냄새가 났다.
25바퀴를 돌았다. 로딘도 체력에 한계를 느껴서 달리기를 멈추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다리를 움직였다. 그저 느린 걸음에 불과했지만, 절대 멈출 순 없었다.
“후후, 하하.”
숨을 아무리 나눠 쉬어도 체력이 돌아오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처럼 느껴졌다.
‘괴물이네.’
다른 아이들은 다 낙오했다. 로딘보다 뒤로 처진 이들이 대다수였고, 몇 명만 로딘보다 앞에서 시체처럼 걷고 있었다.
그런데 헤들러는 여전히 달리는 중이었다. 걷는 속도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분명한 건 ‘달리는 중’이라는 거였다.
‘질 수 없어.’
로딘도 힘을 내어 달렸다. 헤들러와 마찬가지로 걷는 것과 차이가 없는 속도였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달렸다.
1바퀴를 달리고 2바퀴를 걸었다. 다시 1바퀴를 돌고 2바퀴를 걸었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마지막 바퀴를 뛰었다.
“흐어어억! 허억! 허억.”
로딘은 기어이 33바퀴를 완주했다. 허파가 목을 통해 입 밖으로 나올 것만 같았다.
1등은 헤들러였다. 다른 아이들과 족히 2바퀴 이상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속도와 체력을 자랑했다.
2등은 헤들러보다 덩치가 조금 작은, 키 순서로 대략 두세 번째쯤 될 것 같은 아이였다.
로딘은 7등으로 들어왔다. 아직 5살도 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였다.
“눕지 말고. 일어서서 숨을 크게 쉬어!”
“숨 쉬어라. 하나에 들이쉬고, 둘에 내쉰다. 하나! 둘!”
조교들의 지시에 누워있던 헤들러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애초에 눕지 않았던 로딘도 조교들의 지시에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체력이 돌아오면 천천히 걷는다. 대답 안 하나?”
“예, 알겠습니다.”
다 죽어 가는 목소리였지만, 대답은 즉각적으로 튀어나왔다. 엎드려뻗쳐와 폭력이 주는 공포 때문이다.
느릿하게 걷는 사이에 다른 아이들도 1명씩 도착했다. 죄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다.
“허억. 허억.”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는 아이가 로딘 앞에 널브러졌다. 키 순서대로 줄을 설 때, 로딘 바로 옆에 있었던 코리였다.
“죽, 죽겠……다.”
“눕지 마라! 앉지도 마라. 서서 숨 쉬어! 호흡 돌아온 놈들은 천천히 걸어라!”
“멈추지 마라. 걸어! 당장 걸어!”
조교들이 근처를 돌아다니며 계속 닦달을 해 댔다.
앞서 도착한 이들처럼 뒤늦게 도착한 이들도 두려움 때문에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허억, 허억, 흐어어어.”
크게 숨을 내쉰 코리가 천천히 걸었다.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돌자, 그제야 코리의 몸도 차츰 진정되었다.
“아고, 죽는 줄 알았네.”
“고생했다.”
“로딘 너 무지 잘 달리더라.”
“내가 잘 달린 거면 쟤들은 뭐냐?”
로딘이 턱짓으로 헤들러를 가리켰다. 헤들러 옆에는 로딘보다 먼저 도착했던 최상위의 체력 괴물들이 몰려 있었다.
“저쪽은 괴물이고. 우린 인간.”
“고맙네. 사람 취급해 줘서.”
“넌 인간 중에서 최상위야. 자부심을 가져.”
“풋.”
가볍게 대화하는 사이에 완주하는 아이들이 계속 나왔다.
완주한 아이가 30명을 넘기자, 초반과 반대로 거의 지쳐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찌감치 달리기를 포기하고, 걸어서 완주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어려서인지, 이곳 운동장은 크기가 작은 곳이었다. 시골에서 본 촌장님 집 앞의 광장과 비슷한 크기였다.
이런 작은 공간이지만, 33바퀴나 뛰어서 도는 건 10살도 안 된 아이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만 해도 33바퀴 전부를 ‘달려서’ 완주한 사람은 헤들러뿐이었다.
하지만 걸어서 도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사지 멀쩡한 아이들이면 누구든 낙오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는 거리였다.
“저렇게 꼼수 부리다 호되게 당할걸.”
“그럴지도.”
“교관님들하고 조교님들이 빤히 보고 있는데.”
코리는 조교들이 나서서 뒤에 들어온 이들을 혼내길 은근히 기대했다. 그런 기대감으로 조교들을 바라봤지만, 조교들은 눕지 마라, 숨 쉬어라 같은 얘기만 반복하고 있었다.
“글쎄. 뭐라고 하진 않을 것 같은데.”
“말도 안 돼.”
“그래도 나중에 고생할 거야.”
로딘은 이런 육체 혹사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체력을 키우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 반드시 일을 텐데, 그때를 생각하면 교관들과 조교들이 시키는 대로 한계까지 몸을 몰아세우는 게 나았다.
그런데 꼼수로 체력을 아낀 이들은 체력을 키울 기회를 스스로 버린 것과 같았다. 체력이 중요한 상황이 됐을 때, 오늘의 게으름은 큰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모두 왔으면 줄 서! 줄!”
“키 순서대로 줄 서라! 셋! 둘! 하나!”
로딘과 코리는 ‘셋’ 소리가 들리자마자 원래 섰던 끄트머리로 달려갔다. 반대로 달려가던 헤들러가 눈인사를 해 왔지만, 로딘은 어깨만 으쓱했다.
“으으, 다리가 후들거린다. 괜찮아?”
“괜찮을 리가. 배고프고 피곤해서 죽겠어.”
“어? 그러고 보니까 선배들이 안 보이네?”
“우리가 2바퀴째 돌 때 저쪽으로 가더라. 아마 여기보다 큰 운동장이 있는 모양이야.”
2바퀴째를 돌 때, 조교 중 1명이 선임들에게 ‘대운동장으로 이동!’하고 명령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회색과 군청색 옷을 입은 선임들은 발을 맞춰서 서편의 건물 뒤로 사라졌다.
“대체 선배들은 여기 왜 나타난 거야?”
“우리 외에 다른 아이들도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나 보지.”
“하아.”
로딘이 코리와 대화하는 사이에 줄 서기가 끝났다. 그러자 조교들이 어딘가에서 커다란 상자를 차례로 들고 왔다.
“배분해.”
“예, 교관님.”
상자를 열고 조교들이 뭔가를 수북하게 꺼냈다. 갈색 옷이었다.
“옷이다.”
“그러게.”
“히히. 아까 본 선배들하고 같은 옷이겠지?”
“그런 것 같네. 색깔만 다르고.”
조교들이 키가 큰 아이들부터 차례로 옷을 나눠 줬다. 마지막으로 코리에 이어서 로딘까지 옷을 받았다.
로딘은 옷을 들어서 살펴보다, 가슴에 적힌 숫자에 시선을 고정했다.
‘삼 다시 백팔?’
3-108.
로딘은 숫자를 보고, 직관적으로 의미를 이해했다.
회색 옷을 입은 선임, 군청색 옷을 입은 선임이 각각 1번과 2번. 이번에 모인 52명이 앞에 붙은 3번이었다. 즉, 이곳에 무리를 지어 모인 순서였다.
뒤의 108번은 선배들부터 차례로 매겨진 숫자였다. 아마도 회색 옷을 입은 22명에서 1-1부터 1-22번까지 있을 테고, 군청색 옷을 입은 34명이 2-23번부터 2-56번까지일 게 분명했다.
‘맞네.’
확인을 위해서 코리가 든 옷의 가슴에 적힌 숫자를 봤다. 3-107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옷을 입는다. 실시!”
“예, 알겠습니다.”
로딘은 입고 있던 누더기 같은 옷을 벗어 던지고, 새로 받은 옷을 입었다. 겨울옷인지 꽤 두툼했다.
“옷 좋다. 따뜻하고. 매끈매끈해.”
코리는 옷을 연신 쓰다듬으며 감탄했다. 코리가 태어나서 입어 본 옷 중 가장 좋은 옷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