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41)
마법을 품다 (41)
텅 빈 내무실을 둘러보며, 로딘이 가볍게 혀를 찼다.
혼자 남은 내무실이 어색했다. 저녁 시간에 조용한 내무실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후우, 오늘도 반복되는 하루구나.”
오늘의 일과 역시 포션 제작.
하지만 책을 읽고 느긋하게 쉬어도 상관없었다. 어제 포션을 납품했기 때문이다.
포션 제작 속도도 많이 빨라졌다. 이젠 한 달의 절반 정도는 마음대로 사용해도 생산 일정에 충분히 맞출 수 있었다.
‘코리는 잘 도망쳤으려나.’
아직 코리에게 주어졌던 임무 기간 1개월이 끝나지 않았다. 위원회에서도 아직은 별 반응이 없었다.
내무실을 나가 건물의 뒤로 돌아갔다. 내무실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내는 호숫가 심화 3 서고로 가는 길이었다.
멈칫.
로딘이 순간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마치 멈춘 적이 없는 것처럼 태연한 걸음이었다.
‘누구지?’
이동 중, 지토에게 신호를 받았다. 멀지 않은 커다란 바위 뒤에 사람 1명이 숨어 있다는 경고였다.
지토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숨어 있다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특유의 예민한 감각이 바위 뒤에 사람이 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바위 위쪽으로 살짝 머리카락이 드러나 있었다.
‘저걸 대체 어떻게 찾은 거야?’
바위 뒤에 숨은 사람에 대한 궁금증보다 저 작은 흔적까지 찾아낸 지토가 더 신기했다.
저런 작은 흔적은 눈만 좋다고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평소 바위의 모습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야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탁!
바위 근처로 가자, 작은 돌 같은 게 굴러왔다. 로딘은 작은 돌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마나의 흔적을 발견했다.
‘마나석? 하아, 이 녀석.’
로딘은 신발을 고쳐 신는 척하며 자연스럽게 바닥을 굴렀던 돌을 집어 들었다. 하급 마나석이 확실했다.
“돌겠다. 도망이나 칠 것이지. 여긴 왜 왔어?”
바위 옆에 등을 기대고 섰다. 그리고 바위 뒤에 숨은 사람에게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알아챘어?”
“응. 임무는?”
“스테인 후작을 죽이는 암살 임무더라고. 죽이고 도망쳤어. 운이 좀 따라 줘서 들키지도 않았지.”
스테인 후작이라는 말에 로딘이 움찔했다.
스테인 후작은 리아즈 왕국의 재상이었다. 코리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았지만, 로딘은 이미 스테인 후작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미쳤네. 위원회에서 재상을 죽이라는 임무를 내렸어? 싸우자는 건가?”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반대더라고. 위원회가 특수군을 독립시킨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렇지. 1기를 불러들인 순간부터 군부와는 다른 길을 걷기로 했다고 봐야지.”
“왕궁에서 말이 많았나 봐. 여기를 공격해야 한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뭐 그런 언쟁이 벌어졌던 모양이야.”
실제로 특수군 양성소가 1기의 출동을 막았던 그 시기에 왕궁에선 매일 격한 언쟁이 오고 갔다.
군대를 몰아서 특수군 양성소를 지워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 귀족들이 수십 명이었다. 군부에서도 기꺼이 병력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렇겠지. 기껏 지원금까지 줘서 만든 조직인데, 위원회라는 놈들이 꿀꺽 삼켜 버렸으니. 왕실은 눈이 뒤집혔을 거야.”
“반대야. 분명히 화는 났는데, 전쟁이 이미 벌어진 상황이잖아. 왕실에서는 일단 두고 보자고 다른 귀족들을 설득했다고 해. 전황이 안 좋아지니까, 다른 귀족들도 어쩔 수 없이 국왕의 말을 따르기로 했고.”
“오호, 리아즈 왕국의 왕이 제법 대인배였네.”
“그게 대인배인지, 호구인지. 아무튼 그랬는데, 스테인 후작이 재상이 되면서 바뀐 거지. 스테인 후작은 무조건 내부 단속이 먼저라면서, 특수군 양성소를 빠르게 지워야 한다고 주장한 거야. 귀족들도 선동했고.”
스테인 후작은 귀족파의 거두이면서 귀족주의의 화신이었다. 그는 노예가 기사나 마법사가 되는 걸 용납하지 못했다.
그래서 특수군 양성소 폐쇄만이 아니라 특수군 양성소에서 키운 훈련생들 역시 죄다 원래의 위치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테인 후작이 말한 원래 위치는 노예가 일하는 곳. 즉, 고생스럽고 힘든 일을 하는 노동 현장을 뜻했다.
“위원회는 스테인 후작을 그냥 둘 수 없었구나.”
“응. 그대로 뒀다가는 코앞에 있는 왕도의 기사단과 싸워야 할 판이니까.”
“상황은 이해했어. 그런데 여긴 왜 왔어? 일 다 끝났으면 도망치라니까.”
“흐흐흐, 안 그래도 그럴 거다. 중앙 대륙으로 갈 생각이야. 그쯤은 가야 전쟁에 휩쓸리지 않겠지.”
서대륙은 탈레흐 왕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잉그렘 제국이든 13국 연합이든 안전한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탈레흐 왕국으로 가자니, 마수가 문제였다. 마수림하고 맞닿은 국가라 전쟁을 치르는 국가만큼이나 위험했다.
“배 타게?”
“아니. 잉그렘 제국 통해서 북부로 갈 거야.”
“지붕을 건너겠다고? 하긴, 넌 바람의 정령사니까. 날아가면 되겠네.”
서대륙 북부에는 대륙의 지붕이라 불리는 거대한 산맥이 있었다. 산 전체가 바위로 이뤄진 곳이라, 비행형 마수만 몇 마리 사는 곳이었다.
“나 메이븐으로 갈 거야. 혹시나 나 찾으려면 거기로 와라.”
“야! 메이븐 왕국이 네 손바닥만 한 줄 알아? 거기서 널 어떻게 찾아?”
“찾을 수 있을 거야. 난 대륙 최고의 정령사가 될 테니까. 아, 참. 이거 받아.”
코리가 하급 마나석을 잔뜩 쥐고 건네줬다. 처음 굴려 준 마나석까지 모두 10개였다.
“왜 이렇게 많이 샀어?”
“포션이 엄청 비싸게 팔리더라고. 몇 개 안 팔았는데, 이만큼 사고도 남았어. 늦었지만 고마워. 네 덕에 살았다. 꼭 보답할게.”
“그럼 다행이고. 아, 참. 보답. 그거 지금 할 수 있어? 바쁘면 어쩔 수 없고.”
“왜? 시킬 일 있어? 며칠 정도는 괜찮아.”
안 그래도 코리는 로딘에게 꼭 보답하고 싶었다.
이번 임무에서도 도움을 받았고, 9년을 함께 지내면서 로딘에게 배운 게 참 많았다.
“너 노예 스틱은 잘 숨겨 놨어?”
“여기 있지.”
로딘은 코리가 내민 노예 스틱을 받아서 자세히 살폈다.
길이와 두께, 내부에 새겨진 107이라는 숫자와 숫자의 모양까지. 눈에 새겼다.
“자, 받아. 앞으로 가지고 다니지 말고. 어디 숨겨 놔. 땅에라도 묻든가.”
“나 정령사야. 안 들켜.”
코리의 자신감엔 근거가 있었다.
바람의 정령은 정찰에 있어서 최고였다. 지금도 주변을 끊임없이 돌면서 낯선 인물이 접근하는지 살피고 있었다.
상대보다 먼저 발견해서 몸을 숨기면, 어지간해선 걸리지 않을 터였다.
“아무튼 조심하고. 으음, 노예 스틱을 좀 찾았으면 좋겠어.”
“노예 스틱? 이거?”
“네 것 말고. 헤들러, 랜트. 그 외에 훈련생 전부. 분명 양성소 어딘가에 숨겨 뒀을 텐데. 찾을 수가 없네.”
“왕궁에 보관한다고 하지 않았…… 아! 그건 말이 안 되는구나. 노예 스틱이 왕궁에 있으면 위원회가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지.”
뒤늦게 코리는 앞뒤가 안 맞는다는 걸 알아챘다.
노예 인장을 새긴 날, 분명히 노예 스틱 전부를 한곳에 모아 왕궁으로 가져간다고 말했다. 위원회의 위원이 한 말이어서 의심 없이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었다.
노예 스틱은 노예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도구였다.
작은 막대기 하나 때문에 노예는 죽음을 각오하고 불구덩이로 뛰어들고, 죽을 게 뻔한 전장에서 기꺼이 칼받이가 된다.
그런 노예 스틱을 왕궁이 가지고 있다면 이곳에 있는 훈련생 전부를 왕궁에서 통제할 수 있었다.
위원회가 특수군을 독자적인 세력으로 만드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확한 위치는 아니어도 돼. 대강 어디 근처에 있는지만 알면 나머진 내가 직접 찾아볼 수 있어.”
“으음, 누굴 감시하면 되지?”
“교관들은 모를 거야. 세리온 교관은 노예 스틱이 왕궁에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어.”
예전에 세리온 교관에게 수업을 들으면서 몇 번을 떠봤다. 위원회가 노예 스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심지어 1기를 빼내고 특수군이 독자적인 결정권을 갖자, 그게 가능한지부터 의심했다.
훈련생들을 통제할 수단을 왕궁이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훈련생을 위원회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그러면 위원회? 내가 며칠 조사해 볼게. 가까이는 못 가. 좀 멀리서 살펴볼 거야. 이해하지?”
“이해해. 위원회는 너보다 경지가 높으니까. 슬슬 가라. 교관들 움직일 시간 됐어.”
“응. 로딘, 나중에 보자. 노예 스틱은 꼭 찾아볼게.”
“무리하지 말고. 절대 걸리지 마.”
코리가 휙 하고 사라졌다. 방향을 보니, 바람 속성 훈련을 했던 산 쪽이었다.
‘그나저나 마나석이 10개라…… 하나면 충분했는데, 이렇게 많이 주다니. 이걸로 뭘 만들 수 있으려나.’
즐거운 상상을 하며 호숫가의 심화 3 서고로 향했다.
입구를 지키던 조교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안으로 들어갔다.
* * *
뒤에서 따라가는 건 힘들었다. 앞서 이동한 바하스 백작 무리와의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나름대로 20분이라고 생각하고 이동 중이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었다.
20분을 훌쩍 넘을 수도 있고, 너무 가까이 붙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클리프 부단장은 혹시나 거리가 너무 좁혀질 걸 걱정해서, 속도를 좀 늦추었다.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휴식을 취했고, 아침이 된 후에도 조금 늦게 출발했다.
“우리 너무 늦는 거 아니에요?”
“너무 가까이 붙어서 바하스 백작이 알아차리는 것보단 차라리 늦는 게 낫다. 본대를 믿어라. 단장님과 근위 기사단의 실력이면 우리가 없더라도 승리할 수 있다.”
그림자가 점점 짧아졌다. 해가 머리 위에 닿자, 클리프 교관이 일행을 돌아봤다.
“이제 달린다. 이럇!”
“이럇!”
전원이 말 허리를 박찼다. 느릿하게 움직이던 말들이 순식간에 속도를 올렸다.
몇 분을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렸다. 저 앞쪽에서 희미하게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콰아앙!
굉음과 함께 땅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마법사의 마법이 작렬하는 소리였다.
“전투가 끝나지 않았다. 전력으로 달려 아군을 돕는다. 하앗!”
“이럇!”
말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이젠 멀리서 소리뿐 아니라 뭔가가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
“보입니다!”
“바로 합류한다. 대런, 넌 마법사 담당이다.”
“예.”
전투 현장에 도착했다.
왼쪽 구석에서는 근위 기사단 단장인 프레이스 백작과 바하스 백작이 치열하게 검을 나누고 있었다.
그 반대쪽에는 기사들이 돌아가며 마법사 와이드먼에게 다가가려 애쓰는 중이었다.
“랜트, 우린 마법사부터 잡자.”
“응. 그러자.”
헤들러는 랜트와 함께 오른쪽으로 빠졌다.
전황을 스윽 훑어보니, 문제가 되는 부분은 6서클 마법사인 와이드먼뿐이었다.
프레이스 백작도 살짝 밀리고 있었지만, 금방 결판이 날 싸움은 아니었다. 다른 곳을 먼저 처리해도 문제가 생길 것 같진 않았다.
중앙에서 싸우는 기사들의 전투는 압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숫자 차이가 커서, 그냥 두더라도 승리가 확실했다.
반면 와이드먼과 싸우는 오른쪽에는 이미 아군 쪽에 피해자가 나왔다. 마법에 당한 듯, 온몸에 화상을 입은 기사 몇 명이 전투 현장에서 떨어져 나와 있었다.
‘교관들도 다쳤네.’
훈련생들과 함께 움직인 교관이 3명인데, 그들 전부가 뒤로 빠져 상처를 부여잡고 있었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전투에 다시 끼어들기는 힘든 상처였다.
“흐압!”
랜트가 말에서 뛰듯이 내리더니, 와이드먼에게 돌진했다. 어느새 말 허리에 있던 방패를 손에 쥔 채였다.
헤들러는 그런 랜트의 뒤에 빠짝 따라붙었다. 랜트가 든 방패와 랜트의 큰 덩치로 자기 몸을 가린 상태였다.
“쇼크웨이브!”
뒤로 살짝 물러나는가 싶던 와이드먼이 마법을 사용했다. 커다란 충격파가 전방을 휩쓸었다.
기사들이 일제히 나자빠졌다. 일부 버티는 기사들도 있지만, 전진할 여력은 없었다.
“버틴다!”
랜트는 방패를 바닥에 박고 힘을 줬다. 뒤에서 헤들러가 체중을 실었다.
“잠깐만 버텨. 내가 저놈 몸에 칼 박아 줄게.”
“버틴다.”
쇼크웨이브는 2분가량 이어졌다. 마법 한 번에 주변이 난장판이었다.
그래도 랜트는 버텨 냈다. 4데나급에 오른 마력과 선천적인 힘이 5서클 마법에도 무너지지 않게 랜트를 지탱했다.
“간다!”
“달려!”
쇼크웨이브의 기운이 사라지자마자 랜트가 앞으로 달렸다.
와이드먼에게 닿기까지 고작 서너 걸음을 남겨 뒀을 때, 와이드먼이 다시 마법을 사용했다.
“흥. 블링크.”
코앞에 있던 와이드먼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곳은 원래 위치보다 한참 뒤였다.
“썩을!”
“포위망부터 만들어!”
“블링크는 이동 거리가 짧다.”
“후아!”
기사들이 저마다 소리치며 사기를 끌어 올렸다. 랜트 역시 소리를 지르며 와이드먼에게로 다시 달렸다.
‘음.’
헤들러는 와이드먼의 표정에서 피로를 읽었다. 완전히 지쳐서 억지로 마법을 쓰는 느낌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