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42)
마법을 품다 (42)
전투는 헤들러와 랜트 일행이 오기 30분 전부터 시작되었다.
긴 싸움으로 기사들이 대부분이 지쳤지만, 와이드먼도 정상은 아니었다.
‘혹시?’
헤들러가 다리에 묶어 둔 단검을 꺼내 던졌다.
무언가 큰 성과를 노리고 던진 건 아니었다. 많이 지쳐 보이니까 피하면서 체력이나 더 쓰라는 의도였다.
푸욱!
그런데 와이드먼은 별생각 없이 던진 단검을 피하지 못했다. 자기도 당황했는지,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헤들러가 던진 단검은 와이드먼의 오른쪽 가슴을 파고들었다.
심장이 있는 쪽은 아니었다. 한 방에 죽을 정도의 부상도 아니었고.
하지만 마력의 움직임을 거슬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와이드먼이 준비 중이던 마법 영창을 한 차례 끊기까지 했다.
“헤들러!”
“잘했어!”
“후아!”
“블링크. 푸악!”
랜트가 지친 와이드먼에게 달려들어 칼을 휘둘렀다. 뒤이어 다른 기사들도 와이드먼에게 쇄도했다.
와이드먼이 다시 마법을 사용해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마법이 완성됨과 동시에 피를 토했다. 마력을 무리하게 끌어올려서 생긴 반동이었다.
푸욱!
그때 와이드먼의 등 뒤에서 칼이 삐죽 튀어나왔다. 전투 현장의 뒤로 빙 돌아서 움직였던 부단장 클리프의 칼이었다.
“지금!”
푸욱! 푸욱! 푸욱! 서걱!
클리프 부단장의 한 방이 와이드먼을 끝장냈다.
더는 발악할 힘을 잃은 와이드먼은 멍하게 10여 개의 칼이 꽂힌 채로 죽음을 맞이했다.
“베이크, 우린 단장님을 돕는다. 래키 경은 부상자들 수습하고 말에 태워 주세요. 다른 기사들은 동료들을 도와라!”
“예.”
“알겠습니다.”
변수가 될 수 있는 와이드먼이 죽으면서 결과는 사실상 결정되었다. 이제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하고, 이 자리를 벗어나는 일만 남았다.
헤들러와 랜트는 다수의 기사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전투에 참전했다.
이미 2배의 숫자로 압도하고 있던 상황에서 40여 명의 기사들이 추가되었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바하스 백작의 호위들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프레이스 백작도 승기를 잡았다. 1대 1로 싸울 때는 조금 열세였지만, 5데나급의 기사인 클리프와 베이크가 끼어들면서 상황이 변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호위를 마무리한 기사들이 단검을 꺼내 던지기 시작했다.
프레이스 백작을 포함한 3명에게 연신 밀리던 바하스 백작의 손이 어지러워졌다.
푸욱!
“크윽!”
그러다 칼을 한두 방씩 맞더니, 이내 피투성이가 되었다.
비틀거리던 바하스 백작은 결국 프레이스 백작이 마무리했다.
서걱!
바하스 백작의 목이 떨어지면서 전투가 끝났다.
프레이스 백작은 바로 검을 넣고 말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전원! 승마하라! 최대한의 속도로 귀환한다!”
“예.”
근위 기사단이 일제히 남쪽으로 달렸다. 헤들러와 랜트도 고삐를 꽉 쥔 채로 기사단의 꽁무니를 쫓았다.
“한칼 맞았네?”
“이 정도쯤이야.”
특수군 양성소에서 함께 나온 드록의 허벅지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한 달 정도의 요양은 필요했다.
토리는 팔에 화상을 입었다. 와이드먼의 마법에 맞은 모양이다.
“넌 어때?”
“괜찮아. 피부만 살짝 탄 거야.”
“후유증은?”
“나야 모르지. 내가 치료사나 마법사도 아닌데. 그래도 움직이는 데는 지장 없어.”
헤들러, 랜트, 대런은 다친 곳이 없었다. 드록과 토리 역시 큰 부상은 아니었다.
3명의 교관도 다친 부위를 대충 붕대로 감고 말을 몰았다. 당장 어찌 될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 알브레이트 위원님은?”
“저~기. 쓰러져 있잖아.”
“빨래처럼 말 등에 널려 가는 사람이 알브레이트 위원님이야?”
“님은 무슨. 4데나 검사도 못 이겨서 헤매다가 제대로 맞았다.”
알브레이트 위원은 훈련을 멈춘 지 너무 오래됐다. 특수군 양성소의 위원이 된 순간부터 칼을 놓았으니, 10년 이상 훈련을 쉰 것이다.
긴 나태함 때문에 허리둘레가 족히 2배로 커졌다. 어찌나 살이 쪘는지, 어깨 위에 목 없이 바로 머리를 올려놓은 것 같았다.
“알브레이트 위원이 저 정도면 다른 위원도 비슷하지 않을까?”
“허튼 생각하지 말자. 말하더라도 여기선 아니야.”
“알았다.”
알브레이트 위원이 제대로 못 싸울 거라는 건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다.
이곳까지 말을 타고 달려오는 동안 마법사만큼 빨리 지친 유일한 기사가 알브레이트 위원이었다.
육체적으로 이미 기사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다.
하루도 되지 않아서 추격이 붙었다.
종군 마법사인 보일이 파밀리어 마법으로 수천 명의 추격대가 따라붙었음을 발견했다.
“국경에서 문제가 생기겠군.”
“예. 미리 막고 있을 겁니다.”
“전투는 최대한 피해야 한다. 보일 마법사. 정찰에 신경 써 주게.”
“예.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 * *
코리는 사흘 만에 나타났다. 전에 숨어 있던 곳과 같은 바위 뒤였다.
“로딘.”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흐흐, 난 정령사라니까. 어지간해선 안 걸리지. 작정하고 날 찾으면 모를까.”
코리는 3일 내내 위원들의 동태를 살폈다. 대화도 최대한 들으려고 애썼다.
그 덕에 중요한 정보 하나를 얻어 낼 수 있었다.
“알아냈어?”
“대충은. 그런데 이상하게 말이야. 난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더라고.”
“무슨 소리야?”
“크세르 위원이 하비뇽 위원한테 한 말을 들었는데, 지하에 잠금장치를 추가하자는 얘기를 하더라고.”
코리는 이제 위원들을 부를 때 ‘님’을 붙이지도 않았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들을 높여 부르기도 싫었다.
“지하? 중앙 건물?”
“응. 그래서 내가 어젯밤에 중앙 건물을 좀 뒤져 봤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고.”
“흐음, 마법으로 감춰 둔 것 같은데. 고생했어. 넌 이제 손 떼도 돼.”
로딘의 머릿속으로 몇 가지 마법이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그 마법을 푸는 방법도 떠올랐다.
“괜찮아? 더 조사해 볼 수 있는데.”
“아니, 됐어. 너 중앙 대륙으로 갈 거라며.”
“흐흐흐. 이제 작별이네?”
“응. 나중에 또 만날 날이 올 거야. 그렇게 믿자.”
로딘은 올해 14살이다. 그중 10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코리와 함께 보낸 시간도 10년 정도였다.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보낸 친구가 떠나는 날이었다. 아쉽지만, 오늘이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응. 로딘, 그동안 고마웠어. 노예 스틱 문제를 내가 말끔하게 해결했으면 좋았을 텐데.”
“괜찮아. 넌 네 역할을 다해 줬어. 그 정도로 만족해.”
“가 볼게.”
코리의 모습이 사라졌다.
지토 역시 코리가 북쪽으로 이동했음을 알려 왔다. 로딘의 감각에도 코리가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또 보자. 친구야.’
코리가 있던 곳을 잠깐 바라봤다. 오늘따라 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심화 3 서고 입구에서 조교들과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날씨가 어떻고, 요즘 분위기가 어떻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서도 얻을 건 있었다.
전황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 위원회 위원들의 외유가 잦다는 것, 그만둘지를 고민하는 교관들이 많다는 것.
당장은 쓸모없는 정보였다. 그래도 언젠가 이런 정보가 큰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몇 분가량 대화를 나누고, 로딘은 심화 3 서고로 들어왔다.
‘오늘 안으로 연구가 끝나야 할 텐데.’
우선 책상을 한쪽으로 붙이고, 의자도 치웠다. 넓게 만들어진 바닥에 마나 집적 마법진을 그렸다.
코리에게 하급 마나석을 받은 날부터 매일 심화 3 서고에 오면 마나 집적 마법진부터 그렸다. 마나가 어느 정도 모일 때까지 기다린 후, 그 안에서 마력 연공법을 수련했다.
마나 집적 마법진은 연공법의 효율을 크게 끌어올렸다. 마력 연공실만큼은 아니지만, 자연 상태보단 훨씬 많은 마력을 모을 수 있었다.
마력의 질적인 차이를 고려하면 연공실보다 마나 집적 마법진이 나았다. 적어도 로딘에겐 그랬다.
‘오늘은 이미지 저장하고 인쇄 마법을 완성해야겠어.’
마나 집적 마법진의 단점은 그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로딘의 실력으로도 거의 5시간은 걸렸다. 380개가 넘는 룬어의 조합이라, 현재로서는 이게 한계였다.
그렇다고 아예 바닥에 마나 집적 마법진을 그려 놓고 다닐 수는 없었다.
이곳은 개인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위원회나 조교 누구든 들어올 수 있는 곳에 마나 집적 마법진을 그려 놓았다가는 자칫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다.
‘내 보물이니까.’
로딘은 마나 집적 마법진을 만들기 위해 8천 개 가까이 되는 룬어를 수없이 조합해야 했다. 아는 지식을 쥐어짜고, 머릿속으로 수천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이론적으로 되겠다 싶어서 만든 마법진이 작동하지 않아서 수십 번이나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코리에게 받은 하급 마나석도 3개나 날려 먹었다.
고생고생해서 만든 마법진을 남에게 홀라당 넘겨주긴 싫었다.
아무리 귀찮아도 매일 아침에 마법진을 그리고 오후에 지우는 게 마음이 편했다.
대신 이 귀찮은 일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마법을 연구하는 중이었다.
이미지 저장과 인쇄.
그림이나 마법진을 기억해 두고 필요할 때 한 번에 그릴 수 있는 마법이었다. 지금은 연구가 거의 끝난 상태였다.
‘이 방식은 안 됐고. 이건 어떨까?’
머릿속으로 새로운 룬어를 조합하고, 입으로 작게 영창했다. 마법이 향한 곳은 좀 전에 그려 둔 마법진이었다.
“이미지 저장.”
스으으으.
손에서 빠져나온 마력이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을 훑고 지나갔다. 실제로 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스으으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됐으려나?’
머릿속으로 ‘축소’를 떠올린 후, 공책에 마법을 시전했다. 마법진을 저장할 때와는 다른 룬어를 영창하고, 수식 계산도 끝냈다.
지익!
공책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과 거의 90% 흡사했다.
‘끝이 잘리네. 범위를 계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다시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을 보며 마법을 시전했다.
룬어는 그대로, 대신 수식 계산에서 도착 지점의 범위를 조금 넓혔다.
스으으으.
공책의 빈 곳에 다시 저장된 마법을 인쇄했다. 복잡하고 빽빽한 룬어와 서클이 공책에 그려졌다.
‘어디 보자.’
공책과 바닥을 번갈아 보며 마법진을 비교했다. 룬어의 작은 획 하나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됐다.’
완벽히 같았다. 바닥에 그려 놓은 마나 집적 마법진을 ‘저장’해서 공책으로 ‘인쇄’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고생을 좀 덜 해도 되겠군.’
마법진을 그리느라 더는 5시간씩 허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인쇄가 고작 4서클 마법이라, 로딘에게 부담되는 마법도 아니었다.
‘일단은 됐고. 후속 연구도 계속 진행하긴 해야지.’
인쇄 마법으로 인쇄한 마법진이나 그림은 몇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지워진다. 영구적으로 지속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상황에는 적합한 마법이었다. 저녁에 돌아갈 때는 항상 지워야 하니까, 저절로 지워지는 게 더 편했다.
하지만 아티팩트 제작에 쓰려면 영구적으로 마법진을 남길 수도 있어야 했다. 만약 연구적인 인쇄가 된다면 아티팩트를 매일 수백, 수천 개씩 쏟아 내는 것도 가능했다.
‘재료가 없으면 어차피 못 만들긴 하겠지만.’
똑똑!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점심 식사 시간이었다.
마법진 위를 대충 책상으로만 가리고 문을 열었다. 조교가 손에 식사를 든 채 기다리고 있었다.
“고마워요, 브랜.”
“내 일인데, 뭐. 다 먹고. 알지?”
“예. 바로 내놓을게요.”
조교가 나갔다. 마법을 전혀 모르는 조교들이라 바닥에 기이한 문양을 봐도 별 반응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밖으로 내놨다. 그리고 바닥에 그려 둔 마나 집적 마법진의 중앙에 앉았다.
‘얼추 됐네. 해 볼까.’
마나 집적 마법진은 주변의 마나를 끌어모아서 마나 밀도를 높여 주는 마법진이었다. 마나를 끌어모을 시간을 충분히 줘야, 중앙에 마나 밀도가 높아졌다.
로딘은 밀도가 높아진 마나를 만끽하며 연공법을 수련했다.
자연 상태보다 훨씬 많은 마나가 룬어에 반응해 몸으로 들어왔다. 들어온 양이 많은 만큼 마력으로 변환되는 양도 늘어났다.
‘역시 연공실보단 못해.’
그래도 마법사에겐 마력 연공실보다 마나 집적 마법진이 나았다. 마력의 기민한 반응과 영리함이 마법을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대신 정령사나 검사에겐 아니었다.
정령사에게 마력은 정령이 활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에 불과했다. 마력이 말을 잘 듣든, 영리하든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약간이라도 더 많은 마력을 모을 수 있는 마력 연공실이 마나 집적 마법진보다 나았다.
검사 역시 오러를 신체 강화와 오러를 뿜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오러가 똑똑하다고 나아지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