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43)
마법을 품다 (43)
바하스 백작과 6서클 마법사 와이드먼을 처리했던 리아즈 왕국의 근위 기사단과 특수군은 전력을 다해 남쪽으로 내달렸다.
힐끗.
중앙 부분에서 달리던 기사단의 단장 프레이스 백작이 일행을 눈으로 훑었다.
하나같이 몰골이 엉망이었다. 온몸에 가득한 건 먼지였고, 피로에 지쳐 눈빛도 퀭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적과 3번 조우했다. 기사 없이 병사들로만 이뤄진 추격대였는데, 도주 속도를 늦추기 위해 투입된 병력이었다.
프레이스 백작은 앞을 막는 병사들을 힘으로 뚫었다. 옆으로 돌아가다 허비하는 시간에 뒤를 잡힐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옳았다.
불과 몇 시간 거리에서 잉그렘 제국 기사단 두 곳이 매섭게 추격해 오고 있었다. 지체했다면 따라잡혀서 더 위험한 전투를 치러야 했을 터였다.
‘후우, 아까운 인재들을 잃었어.’
병사들로 이뤄진 적들을 뚫는 과정에서 기사 둘을 잃었다. 돌파에 집중하느라, 죽은 기사들의 시신을 수습하지도 못했다.
바하스 백작과 와이드먼, 30명의 호위를 처리하는 과정에도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부상자만 13명 나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병사 무리를 뚫으면서 기사가 2명이나 죽었다. 부상자도 29명으로 늘어났다. 다치지 않은 기사들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한계까지 몰린 상태였다.
‘철저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이야.’
국경선이 변했다.
왕도를 출발할 때는 분명 어제 지나온 산에서 리아즈 왕국이 잉그렘 제국을 막아 내고 있었다. 그곳이 두 나라의 국경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바하스 백작을 잡고 복귀하는 사이에 전선이 너무 많이 밀렸다. 국경이 밀린 만큼 근위 기사단의 도주 거리도 길어졌다.
“단장님.”
“무슨 일이지?”
“전방 30분 거리에 적이 보입니다.”
종군 마법사 보일은 도망치는 내내 사방을 정찰했다. 말을 몰 여력이 없어서, 다른 기사의 품에 안긴 채 이동해야 했다.
그런 보일 덕분에 도주 중에 기습당하는 일은 없었다.
항상 먼저 발견했고, 미리 결정한 후에 움직일 수 있었다.
“숫자는 얼마나?”
“지금 모인 숫자는 3만. 동쪽과 서쪽 끝에서 수백 단위씩 계속 추가되고 있습니다.”
“기사는?”
“중앙에 대략 200명 정도가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병사 같습니다.”
프레이스 백작은 자신이 알고 있던 지형과 현재 위치를 대입해 봤다. 적들이 서 있는 곳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보일, 저 앞이 케나스 숲이었나?”
“예. 적들은 케나스 숲을 등진 채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케나스 숲을 등지고 있다고 하니, 적들의 진형도 대충 알 것 같았다.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추격대는?”
“1시간 거립니다.”
“전원! 정지.”
“정지!”
프레이스 백작의 명령에 기사들이 일제히 말을 세웠다.
헤들러, 랜트가 포함된 특수군도 말을 세우고 지친 말을 다독였다.
“이곳에서 30분을 쉰다. 말을 풀어놓고, 식사도 알아서 하도록.”
“알겠습니다.”
말에서 내린 사람도 지쳤지만, 사람을 태우고 계속 달린 말들이 더 지쳤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말들이 비틀거리며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2명의 기사를 잃게 된 것도 지친 말이 쓰러져서였다. 말이 쓰러지면서 기사도 쓰러졌고, 결국 수백의 병사에게 꿰뚫려 죽었다.
“쉬면서 들어라. 전방에는 적들이 기다리고 있고 우리의 꼬리에는 적들의 추격대가 붙었다. 다행히 적들의 진형만 뚫으면 바로 케나스 숲이다.”
겨울이라 무성하진 않겠지만, 어찌 됐든 나무가 많은 곳이었다. 일단 숲으로만 들어가면 몸을 숨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케나스 숲이라니. 벌써 여기까지 밀렸단 말입니까?”
“우린 전쟁이 어찌 될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건 군부나 왕실에서 고민할 일. 우리가 할 일은 이곳을 벗어나 안락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것만 생각해라.”
안락한 집이라는 말에 헤들러가 혀를 가볍게 찼다. 랜트도 별로 납득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들은 특수군 양성소로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갇혀서 지낼 바에는 차라리 쫓길지언정, 마음껏 세상을 돌아다니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노예 스틱으로 목숨줄이 잡힌 이상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기한이 지났는데 복귀하지 않거나, 혹은 다 돌아왔는데도 그들만 보이지 않으면 노예 스틱이 부러질 수 있었다.
“30분간 휴식 후, 우린 적들의 진형 중심을 뚫는다. 케나스 숲까지 들어가면, 적들은 쉽게 따라올 수 없다.”
“숲이면 말을 타기 힘들지 않습니까?”
“그건 적들도 마찬가지야. 어차피 우리 말들은 모두 지쳤다. 말을 타고 갈 데까지 이동한 후, 상황이 안 좋으면 말을 버린다.”
“알겠습니다.”
“그럼 쉬어라.”
근위 기사단이 기사답지 않은 자세로 널브러졌다. 최대한 몸을 쉬게 하려고 아예 몸에서 힘을 풀어 버린 것.
쉬는 동안 헤들러가 랜트 옆으로 다가왔다. 말들을 살피던 랜트가 헤들러를 돌아봤다.
“왜?”
“기회 봐서 알브레이트 놈을 처리해야겠어.”
“알브레이트 위원? 어떻게?”
“어떻게든 뭐가 어떻게야? 어차피 저 돼지 놈. 전투에 도움도 안 되잖아.”
알브레이트 위원은 바하스 백작의 호위와 싸우다 다친 후로 의식을 잃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의식이 없을 때는 거대하고 무거운 짐짝이었고, 의식이 있을 때는 특수군을 턱짓으로 부려 먹는 상전이었다.
전투에도 도움이 안 되고, 도주에는 더 도움이 안 되는 돼지 놈.
원래 친분이 있었던 프레이스 백작조차도 알브레이트 위원을 보면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어떻게 할 건데?”
“우선 내가 그놈을 받아야지. 옆에 두고 있다가 슬쩍 버리면 돼.”
“의심하지 않을까?”
“다른 위원회 위원들? 뭐, 확인은 해 보겠지. 그래도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알면 수긍할 수밖에 없을 거야. 실제로 난 칼 두세 방 정도 맞을 각오도 하고 있거든.”
헤들러는 알브레이트 위원을 죽이고 의심을 피하기 위해 부상까지 각오했다. 치명적이진 않지만, 위험해 보이는 부위를 다쳐 피를 철철 흘리면 의심받진 않을 것이다.
“교관들은?”
“반대쪽에 있잖아. 들킬 리가 없어.”
특수군 양성소에서부터 함께 온 3명의 교관은 자기하고 친한 기사들과 함께 움직였다. 그들이 있는 곳은 헤들러, 랜트가 있는 곳과 반대쪽이었다.
“내가 도와줄 건 있어?”
“신호하면 몸 좀 가려 줘. 네 큰 몸집에 제격인 일이지?”
“알브레이트가 나보다 크다.”
“키는 작지. 허리가 굵어서 그렇지.”
“알았어. 신호만 보내. 가려 줄게.”
일행은 육포를 뜯으며 휴식을 취했다. 말들도 오랜만의 휴식에 풀을 뜯고 물을 마셨다.
휴식 시간이 얼추 끝났다. 하늘을 보며 시간을 가늠하던 프레이스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레이스 백작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던 헤들러도 움직였다.
헤들러는 ‘알브레이트 위원님은 제가 맡을게요.’ 같은 소리는 하지 않았다. 괜히 그런 소리를 해 봐야 나중에 추궁받을 구실을 줄 뿐이었다.
대신 자연스럽게 움직여 토리 옆에 있던 알브레이트 위원을 자기 말에 실었다. 그리고 태연한 얼굴로 말의 갈기를 쓸었다.
“전원 승마하라!”
“승마!”
부상자가 전체 인원의 3분의 1이었다. 멀쩡한 사람 2명 중 1명은 부상자를 담당해야 했다.
하지만 랜트는 부상자와 함께 타지 않는다. 랜트 자체가 워낙 무거웠다. 다른 사람과 함께 움직이면 말이 그 무게를 버티질 못했다.
“미안하네. 나 때문에.”
“네가 왜?”
“내가 치유 마법을 못 해서.”
“그게 어떻게 네 탓이야? 그걸 안 가르친 교관 탓이지.”
대런은 치유 마법을 배우지 못했다. 애초에 마법 전공 교관들의 수업 내용에 치유 마법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부상자들이 생기면 치료하는 치유 마법사는 있는데, 이들은 교관이 아니었다. 2서클, 혹은 1서클 마법사로 기초적인 치유 마법만 할 수 있는 고용직 마법사였다.
종군 마법사인 보일도 치유 마법을 할 줄 몰랐다. 배운 적이 없는 건 아닌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특정 마법과 유독 상성이 안 맞는 사람이 있는데, 보일 마법사와 치유 마법이 그런 경우였다.
그러다 보니, 부상자들이 입은 부상은 점점 악화하기만 했다.
드록의 허벅지 부상도 서서히 곪아 가고 있었고, 토리가 입은 팔의 화상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짐을 줄인다. 식량과 물을 버리도록.”
“알겠습니다.”
사람이 먹을 물 정도는 마법사들이 만들 수 있지만, 말이 마실 물까지 마법으로 생성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기사들이 소지한 짐 중에서 물이 가장 무거웠다.
묵직한 물을 바닥에 쏟았다. 말의 높이가 훅 하고 높아진 느낌이었다.
“케나스 숲으로 들어가면 알아서 남쪽으로 이동한다. 주변에 동료가 있다면 챙기되, 안 보인다면 무조건 남쪽으로 달려라.”
“예. 알겠습니다.”
“보일, 추격대는?”
“30분 거리로 좁혀졌습니다.”
전방에도 30분 거리에 적이, 후방에도 30분 거리에 추격대가 붙었다. 앞을 막는 이들과의 전투 시간이 30분을 넘기면 뒤를 쫓는 추격대까지 상대해야 했다.
“상황은 들었겠지? 우린 30분 안에 앞을 막는 놈들을 뚫는다. 출발한다. 이럇!”
“이럇!”
잠깐이나마 쉬었던 말들이 힘차게 발을 굴렀다. 겨울의 얼어붙은 땅이 말과 기수의 무게에 파여 흔적을 남겼다.
거리가 가까워졌다. 눈으로 보일 정도까지 근접하자, 잉그렘 제국 쪽에서도 기사들이 달려 나왔다.
콰앙!
첫 공격은 마법이었다. 보일보다 먼저 완성된 대련의 4서클 마법이 제국 측 기사들의 정중앙에 떨어졌다.
히히히힝!
“달려!”
“흐앗!”
콰아앙!
이번에는 제국 측의 마법이었다. 5서클 마법인 헬 레이저가 근위 기사단의 전면으로 날아왔다.
“어딜. 임펙트 배리어!”
미리 준비하고 있던 보일이 방어 마법으로 적의 공격을 막아 냈다.
헬 레이저의 압축된 열기가 좁은 범위를 막는 강력한 방어 마법 임펙트 배리어에 막혔다.
둘 다 5서클 마법으로 서로 상쇄되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를 거세게 뒤흔들었다.
“관통한다! 달려!”
“하앗!”
뚫고 지나가고자 하는 근위 기사단이 말 허리를 박찼다. 반대로 어떻게든 막아 주저앉히려는 제국의 기사들이 거칠게 막아섰다.
헤들러 역시 제국의 기사 1명과 마주쳤다. 알브레이트 위원 때문에 느려서, 도저히 떨치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하앗!”
공격을 방패로 흘리고, 헤들러가 기사의 허리를 쳤다. 상대는 허리를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공격을 흘리고, 헤들러의 말을 노렸다.
“흥.”
놈들이 말을 노릴 줄은 알고 있었다. 헤들러는 검을 치켜올리면서 적의 공격을 옆으로 쳐 내고, 그대로 검을 밀어 올렸다.
서걱!
헤들러의 검이 적 기사의 가슴을 얇게 베고 지나갔다. 갈라진 풀 플레이트 메일 사이로 피가 조금씩 스며 나왔다.
‘얕아. 쯧.’
헤들러는 아쉬움에 짧게 혀를 찼다. 그래도 바로 털어 버리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잠깐 비등했던 싸움. 하지만 헤들러가 순식간에 승기를 잡고 상대를 몰아붙였다.
“하앗!”
차창!
“크읍!”
“흐라앗!”
헤들러가 칼을 밀 듯이 휘둘러 상대의 중심을 흔들었다. 그 상태로 발을 휘둘러 적의 말 머리를 찼다.
‘만만치 않네.’
제국 측의 기사는 3데나급 기사였다. 외모만 보고 만만하다고 생각해 헤들러를 목표로 삼은 듯했는데, 헤들러는 상대보다 높은 4데나급 검사였다.
하지만 경험은 상대가 더 많았다. 부족한 오러와 약한 위력을 유려한 움직임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부상은 당해도 치명상은 용케 잘 피했다.
“헤들러! 뭐 해?”
“아!”
랜트의 고함에 헤들러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여기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적에게 이기려고 시작한 싸움이 아니었다. 이곳을 뚫고 지나가면 성공이었다.
“어서!”
“이럇! 하앗!”
말의 허리를 박차고 적에게 돌진했다.
상대가 또 싸우려는 줄 알고 검을 들었지만, 헤들러는 대신 말의 목을 베고는 지나갔다.
“이럇!”
1명이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1명이 방패와 검을 쥐고 앞을 막았다.
“랜트. 막아 줘.”
“알았어.”
알브레이트 위원의 무게 때문에 통 속도가 안 났다. 이 기회에 알브레이트 위원을 버리기로 하고 랜트를 불렀다.
랜트가 다가와 앞을 막은 기사를 몰아붙였다. 저 말도 안 되는 힘에 상대가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그때 헤들러도 랜트 옆으로 붙었다. 둘이 나란히 서면서, 한쪽을 완벽하게 가리게 됐다.
반대쪽이 비었지만, 이곳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끄으응.”
터억!
알브레이트 위원이 워낙 무거워서 버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던져 버리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묵직한 짐을 덜자, 지친 줄 알았던 말도 반응 속도가 빨라졌다.
“달려!”
“달려!”
사방에서 기사들이 달렸다. 아군도 있고, 적군도 있었다.
랜트가 그 사이에서 틈을 만들었다. 몸에 칼 몇 방이 꽂혔지만, 랜트는 멈추지 않았다.
랜트의 괴력 덕에 구멍이 생겼다. 헤들러는 그 구멍으로 뛰어들며 랜트의 말 고삐를 잡았다.
“가자!”
“응.”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