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44)
마법을 품다 (44)
결국 적의 기사단과 병사들을 뚫고 케나스 숲으로 들어왔다. 근위 기사단은 케나스 숲으로 들어온 후에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뭐지?”
케나스 숲에 아군이 안 보였다. 이곳에 들어오면 전선을 형성하고 있던 아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케나스 숲을 등지고 적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케나스 숲이 리아즈 왕국과 잉그렘 제국의 전선인 줄 알았다.
‘여기가 전선이 아니라고?’
헤들러는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등 뒤가 서늘하고, 피부가 올올이 서는 기분이었다.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야. 그때 조심해야 해.’
임무를 받기 전 로딘이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제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일부러 길을 열어 준 것 같기도 했다.
“설마?”
아군의 숫자를 살펴봤다. 피해가 크지 않았다. 사람으로는 100여 명. 말의 숫자는 대략 60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도 50필 이상의 말과 그 말에 탄 기사들이 보였다.
‘피해가 이렇게 적다고?’
머릿속으로 계속 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랜트! 뛰어내려!”
“뭐?”
“말에서 내리라고!”
말을 마친 헤들러가 뛰는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말은 주인이 사라졌음에도 근위 기사단을 따라 계속 달렸다.
랜트는 이게 뭔가 싶었지만, 헤들러의 말을 무시하진 않았다.
터억!
랜트가 말에서 뛰어내리고 자세를 낮추었다. 헤들러가 급하게 랜트 옆으로 붙었다.
“함정 같아!”
“무슨 소리야!”
“상처는 어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말에서는 왜 내리라고 한 거야?”
랜트는 앞에서 길을 뚫는 과정에서 꽤 많은 상처를 입었다. 베인 상처만 족히 10곳은 넘었고, 찔린 상처도 1곳 있었다.
“말했잖아. 함정 같다니까.”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너무 쉽게 통과했어. 상대가 일부러 보내 준 것 같아.”
“그러니까. 적이 여기에 함정을 만들어 놓…….”
“화살이다! 피해!”
그때 앞서간 기사 중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프레이스 백작의 목소리는 아니고, 베이크라는 기사의 목소리 같았다.
“망할.”
“어떡하지?”
“좀 돌아서 가자. 저놈들도 이 넓은 숲을 전부 감시할 수는 없을 거야.”
방향이 바뀌면서 근위 기사단과 거리가 벌어졌다. 자세를 낮추고 이동하느라 속도도 느렸다.
그래도 이동 중에 적을 마주치진 않았다.
랜트는 헤들러의 지시를 불만 없이 따랐다. 위험한 상황에서는 눈치 빠른 누군가의 말대로 하는 게 최선임을 알기 때문이다.
삐이이!
“엎드려.”
헤들러와 랜트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숨죽이고 가만히 숨어 있는데, 코앞으로 기사들과 병사 수십 명이 뛰어서 지나갔다.
“갔어?”
“응. 휴우, 살 떨려.”
“어디로 가?”
“일단 좀 멀어지면 숨을 곳부터 찾아보자. 지금은 적이 너무 많아.”
귀를 최대한 열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작은 소리만 들려도 몸을 숨기를 한참. 멀리서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리는 곳에 도착했다.
“물인가?”
“그런…….”
타악!
그때 뭔가가 날아왔다. 랜트는 반사적으로 날아오는 물체를 잡고, 물체가 날아온 쪽을 노려봤다.
휘익!
헤들러는 곧장 칼을 뽑았고, 랜트는 헤들러와 나란히 섰다.
“뭐야?”
“몰라. 뭔가가 날아왔어. 이거.”
랜트가 손에 쥔 걸 보여 줬다. 헤들러는 랜트가 건넨 나뭇조각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 어?”
“어? 코리다.”
나뭇조각에는 ‘따라와 –코리-.’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라 헤들러와 랜트 둘 다 잠깐 멍해졌다.
“진짜일까?”
“저들이 코리 이름을 어떻게 알겠어? 코리가 맞을 거야. 그리고.”
헤들러가 들고 있던 나뭇조각을 떨어뜨렸다. 바닥으로 자연스럽게 떨어져야 할 나뭇조각이었지만, 두둥실 떠서 눈앞에 고정되었다.
“정령이다.”
“맞아. 정령이야. 코리가 확실해.”
나뭇조각이 한쪽으로 서서히 멀어졌다.
헤들러와 랜트가 나뭇조각을 따라가며 연신 주변을 살폈다.
나뭇조각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개울을 거슬러 한참 동안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나무들이 빽빽하게 심어진 곳에서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거의 3시간에 걸친 이동이었다.
“어?”
“뭐지? 아무것도 없는데?”
“바닥이다.”
바닥이 들썩였다. 흙이 좌우로 밀려나더니, 이내 작은 틈을 만들었다.
“들어와.”
“코리! 네가 여긴 어떻게?”
“시끄럽고. 일단 들어와. 입구가 좁으니까 어…… 랜트는 좀 몸을 구겨야겠다.”
코리가 안으로 사라졌다. 랜트는 만들어진 작은 틈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못 들어가. 너무 좁다.”
“들어갈 수 있어. 내가 밀어 줄게.”
랜트가 엎드린 자세로 틈에 머리를 넣었다. 역시나 어깨에서 걸렸다.
헤들러가 힘들 주어서 밀었다. 주변 흙이 다 밀려날 정도로 힘을 주니, 랜트가 안으로 쑥 사라졌다.
뒤이어 헤들러도 안으로 들어갔다.
탁!
열렸던 틈이 닫혔다. 그리고 위쪽에서 뭔가 움직이는 느낌이 났다.
“놀랄 필요 없어. 실라페한테 티 나지 않게 정리하라고 시킨 거야.”
“아!”
3명이 들어왔지만, 공간은 충분했다. 나란히 누워서 자도 될 정도였다.
“와. 잘 만들었네.”
“코리한테 이런 재주가 있다니.”
제일 먼저 보이는 건 공간을 밝히는 마력등이었다.
은은한 마력등이 비추는 한쪽에는 먹다 만 빵이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커다란 가방과 이곳을 만드는 데 쓰였을 삽이 보였다.
“위원회에서 보낸 거야?”
“그럴 리가.”
“그러면 넌 대체 어떻게 여기 있는 건데?”
“이야기가 좀 길어. 으음, 먼저 너희들이 떠나고 이틀 후에 나도 호출을…….”
코리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위원회에서 코리를 죽이려고 했다는 부분에서 랜트의 눈이 뒤집혔고, 함정을 파서 처리했다는 부분에서는 헤들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하, 넌 이제 노예 탈출이네?”
“아니지. 아직은 노예야. 노예 스틱을 돌려받은 것뿐이지.”
“그래서 이제 북쪽으로 가게?”
헤들러와 랜트는 코리의 목적지가 중앙 대륙의 메이븐 왕국이라는 걸 들었다. 오늘 못 만났다면, 작별 인사도 못 나눌 뻔했다.
“그러려고 했는데, 이 동네가 난리더라고. 갑자기 수천 명이 몰려오더니, 여기저기 숨는데. 아우, 이러다 들키겠다 싶어서 여길 만들었지.”
“활 들고?”
“응. 죄다 활 한 자루씩 들고 있더라고.”
‘화살이다. 피해!’라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도주하는 방향 쪽에 궁수가 매복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삽은 어디서 난 거야?”
“제국 애들이 가지고 있던 거 훔쳤지. 질이 좋아. 막 썼는데, 흠집도 별로 안 났어. 어? 다쳤어?”
뒤늦게 랜트의 상처를 본 코리가 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포션을 꺼내려는 몸짓이었다.
“나도 포션 있다.”
“근데 왜 치료를 안 했어?”
“급하게 움직이느라.”
랜트가 품에서 포션을 꺼내 상처에 발랐다. 등에도 상처가 있어서, 헤들러의 도움을 받았다.
“포션 효과 좋네.”
“그러게. 통증이 금방 줄어드네.”
“그런데 코리, 넌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거야?”
“제국군이 좀 흩어질 때까지 있어야지. 아무리 정령사라도 걸리면 답이 없거든.”
바람의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는 남의 눈을 피해 움직이는 능력이 탁월했다. 정령으로 주변을 살피고 숨거나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하늘을 날아서 도망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정령사의 존재를 안다면 달라진다.
정령은 눈으로 안 보일 뿐.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것이었다. 정령의 기척을 먼저 찾고, 정령과 연결된 마력의 흔적을 따라가면 정령사를 찾는 건 의외로 간단했다.
“중앙 대륙이라…… 나도 가고 싶다.”
“노예 스틱 때문에 안 되지. 제때 못 돌아가면 우린 죽은 목숨이다.”
“노예 스틱만 회수하면 갈 수 있다는 말이잖아.”
“로딘이 찾길 바라야지.”
* * *
특수군 양성소의 워원회는 본래 6명이었다. 위원장 1명과 위원 5명으로 이뤄졌었다.
하지만 크레이트 위원장이 노화로 죽고, 켈라인 위원이 1기와 함께 특수군 양성소를 떠났다. 한 달 전에는 알브레이트 위원마저 헤들러, 랜트가 포함된 5명과 함께 특수군 양성소를 떠난 상태였다.
이제 크세르 위원, 엘로브 위원, 하비뇽 위원, 3명만 남았다.
로딘은 인비져빌리티(투명화) 마법을 쓴 상태로 숙소 건물의 옥상에 서 있었다. 시선은 중앙 건물로 고정된 채였다.
‘오늘은 하비뇽이 분명한데. 왜 이렇게 안 오지?’
지금 특수군 양성소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크세르 위원이었다. 로딘은 크세르 위원이 떠나고 하비뇽 위원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교대는 열흘 단위. 일단 하비뇽이 오면 그 시간에는 마음대로 조사할 수 있어.’
특수군 양성소에는 최소한 1명의 위원은 반드시 머문다. 교관은 책임자의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책임질 수 있는 위원의 존재는 필수였다.
대략 열흘 전에 크세르 위원이 오더니, 며칠간 특수군 양성소를 지키던 엘로브 위원이 떠났다.
교대 주기대로라면 오늘 하비뇽 위원이 오고, 크세르 위원이 떠나야 했다.
‘마법사인 크세르 위원, 엘로브 위원은 쉽지 않아.’
노예 인장은 마법적인 수단을 이용해 중앙 건물에 감춰 뒀을 확률이 높았다. 이를 찾으려면 로딘 역시 마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는 마력에 민감한 존재. 같은 건물에서 마법을 사용하면 들킬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로딘은 하비뇽 위원이 특수군 양성소에 남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비뇽 위원은 검사. 아무리 5데나급 상급 기사여도, 마법사만큼 마력에 민감하진 않았다. 걸리지 않고 중앙 건물을 수색할 수 있었다.
‘왔다.’
그때 양성소 입구 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말 두 필이 이끄는 마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오다니. 출근 시간도 엉망진창이고.’
크레이트 위원장이 죽은 후부터 특수군 양성소 내의 규율이 무너졌다. 교관들의 입에서 술 냄새가 풍기는 경우도 많아졌고, 위원회 위원들도 제멋대로였다.
‘역시나.’
선명하신 희미하게 중앙 건물에서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났다. 고요한 한밤중이라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고 따지고 변명하고, 자기들끼리 언쟁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금방 끝나겠지.’
규율은 엉망인데 자기들끼리는 엄청 예의를 차렸다. 서로 말실수라도 할까 봐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왔다.’
중앙 건물을 통해 두툼한 옷으로 몸을 칭칭 감은 크세르 위원이 나타났다.
마차가 있는 마구간으로 가면서 로딘이 있는 방향은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인비져빌리티 마법은 만능이 아니었다. 같은 서클의 마법사라면 가까운 곳에서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로딘은 수십 미터 떨어진 장소에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게다가 한밤중이기까지 했다. 인비져빌리티를 안 썼어도 로딘을 찾긴 쉽지 않았다.
크세르 위원이 곧 마차를 타고 떠나갔다. 하비뇽 위원이 타고 온 마차와는 다른 모습의 마차였다. 훨씬 화려하고, 고급스러웠다.
‘움직여 볼까.’
투명화를 유지한 상태로 중앙 건물로 천천히 다가갔다.
조교 4명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지만, 5서클 마법사인 로딘을 발견하진 못했다.
로딘은 1층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아래로 내려가는 곳이 있는지 찾아봤다.
오래되지 않아서, 마력이 고여 특정한 패턴으로 움직이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쉽게 찾기는 했는데.’
눈을 감고 마력을 읽어 나갔다. 마법적인 잠금장치가 셋, 물리적인 잠금장치 하나였다.
‘최근에 추가한 건가?’
원래 이곳은 물리적인 잠금장치가 둘, 마법적인 잠금장치가 하나였다.
그런데 위원들이 보안을 강화한다며 마법적인 잠금장치를 2개 추가했다. 그 과정에서 마법진을 새길 부분의 물리적인 잠금장치 1개가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이는 로딘에게 도움이 되었다.
마법적인 잠금장치를 푸는 건 로딘에게 간단한 일이었다. 반대로 골치 아플 수 있는 물리적인 잠금장치가 줄어들면서 들어가기가 수월해졌다.
‘되게 간단한 방식인데? 위원회 방식은 아니고. 이런 걸 해 주는 상단 같은 곳도 있나?’
마력 패턴을 읽고, 하나하나 해체해 나갔다. 3개의 마법적 잠금장치를 다 푸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남은 건 이거 하난데.’
마법적인 잠금장치를 다 없애니, 하나만 남았다. 열쇠를 넣어서 돌리는 아주 간단한 방식의 잠금장치였다.
‘오히려 이런 게 까다롭다니까. 살짝 잘라 봐?’
잠깐 들었던 생각을 바로 지웠다.
감지 장치 하나만 설치되어 있어도 문이 잘리면 바로 경고가 갈 터. 들키면 무조건 전투였다.
자신은 상관없었다. 이미 노예 인장 문제도 해결한 지 오래였다. 여의찮으면 도망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실패가 다른 동기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특히 같은 방을 쓰는 헤들러, 랜트는 자신 때문에 보복을 당할 게 뻔했다.
‘운디네.’
로딘이 물의 정령을 불렀다.
항상 어깨에 앉아 있지만, 로딘이 물의 정령을 부리는 일은 드물었다. 기껏해야 비 오는 날, 비를 안 맞게 하는 정도였다.
하급 정령이라 발휘하는 힘이 약한 것도 있고 물의 정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마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저 구멍 안으로 들어가서 형태를 기억해 줘.’
끄덕!
운디네가 열쇠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몸을 부풀리려는 듯 얼굴에 입을 빡 주었다.
‘얼굴 터지겠다. 형태만 기억하면 돼. 굳이 네가 잠금장치를 열 필요는 없어.’
끄덕!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