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46)
마법을 품다 (46)
헤들러와 랜트는 코리가 만들어 둔 은신처에서 며칠을 쉬었다. 랜트의 부상을 치료하고 그간 쌓인 여독도 풀었다.
“바깥은 어때?”
“이제 많이 비었어. 해 떨어지니까 확 빠지네. 움직여도 되겠다.”
이곳에 숨어 있는 동안 바깥 정찰은 코리가 담당했다.
코리의 정령 실라페가 열심히 날아다니며 주변 정보를 모았다.
“너는 어때?”
“나 정령사라니까.”
코리가 자신 있게 말했지만, 위험한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특히 마법사 중에 일부가 뭔가를 느낀 듯, 실라페가 있는 쪽을 바라봤을 때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줄 알았다.
“랜트, 어떻게 할래?”
“움직이자. 너무 오래 지체했다.”
언제까지고 이곳에 숨어 있을 순 없었다. 코리가 먼 길을 떠난다고 식량을 충분히 준비했지만 셋이 먹으니 바닥나는 것도 금방이었다.
랜트의 식사량은 보통 사람의 3인분이었다. 헤들러와 코리 역시 한창때의 나이라 식사량이 적지 않았다.
셋이 신나게 먹어 대니 감당이 안 되었다.
“이거 가지고 가.”
헤들러가 가지고 있던 포션을 코리에게 건넸다. 다쳤을 때 써도 되고, 돈이 필요하면 팔아도 좋았다.
“뭐래? 너희들이 더 중요하지.”
“우린 하루면 국경을 넘을 거야. 양성소로 가면 로딘이 또 만들어 줄 거고.”
“으음, 그러면 내가 가져갈게. 고마워.”
코리가 헤들러가 건넨 포션을 챙겼다. 랜트도 옆에 있다가 포션을 스윽 내밀었다.
“내 것도.”
“응. 전부 고맙다.”
“이제 마지막이네. 코리, 잘 지내라. 너하고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어.”
마지막이지만, 슬픔은 없었다.
자유를 찾아서 떠나는 날이었다. 이런 날은 웃으면서 보내 줘야 했다.
“내 소식은 또 들을 수 있을 거야. 난 대륙 최고의 정령사가 될 거거든. 대륙에 내 소문이 퍼질 테니까, 귀 기울이고 있어.”
“그래.”
코리의 허세를 들으며 모두가 피식 웃었다.
해가 완전히 떨어졌다.
어둠을 틈타, 헤들러와 랜트가 조심스럽게 은신처에서 나왔다. 그 뒤를 이어 코리도 등장했다.
“먼저 간다.”
“응.”
먼저 코리가 실라페를 이용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헤들러와 랜트는 허공에 떠오른 코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남쪽으로 길을 잡았다.
며칠 전까지 병사들로 바글바글했던 숲이 맞나 싶었다. 숲은 적막할 정도로 조용했다.
어쩌다 순찰을 도는 병사들이 있었지만, 긴장감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근무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듯, 빈틈이 많은 태도였다.
헤들러와 랜트는 전투를 최대한 피한 채로 남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새벽 해가 떠오를 무렵, 케나스 숲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운이 좋았어.”
“그래도 움직여야 한다.”
“그래, 움직여야지.”
전투를 최대한 피했지만, 완벽히 피하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경계 중인 적병 2명을 죽였다.
시간이 흐르면, 적들도 알아차릴 터.
그 전까지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했다.
“달린다.”
“응.”
숲을 나가자마자 둘은 미친 듯이 달렸다.
삑삑!
한참을 달리고 있을 때, 뒤의 숲 어딘가에서 작게 호각 소리가 들렸다.
“이제 들켰나? 후후후.”
“운이 좋았다.”
호각 소리가 멀었다. 저 소리가 들린 시점부터 쫓아와서는 자신들을 잡기 어려웠다.
계속 달리고 달렸다. 오전을 꼬박 달리고, 해가 중천에서 서서히 넘어갈 무렵이 됐다.
앞쪽에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가 익숙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아군이다.”
“응. 리아즈 왕국군이다.”
헤들러와 랜트가 서서히 속도를 늦췄다. 그리고 양손을 들어 올리며, 적이 아님을 드러냈다.
“어? 헤들러! 랜트!”
앞에 잔뜩 모인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자신들과 도시 햄튼으로 함께 갔던 부단장 클리프였다.
“클리프 부단장님!”
“오호, 너희들. 살아 있었구나.”
“숨어 있었죠. 흐흐흐.”
드디어 적진 잉그렘 제국에서 리아즈 왕국으로 돌아왔다. 임무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특수군 양성소를 출발한 날로부터 정확히 44일째였다.
* * *
로딘은 시간이 날 때마다 가짜 노예 스틱을 만들었다.
납품일에 맞춰 포션을 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기 전에는 반드시 마력 연공을 행했다.
‘곤란하네.’
하비뇽 위원이 특수군 양성소를 지킨 지 딱 10일. 엘로브 위원이 출근하더니, 하비뇽 위원이 퇴근했다.
앞으로 10일 동안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엘로브 위원이 중앙 건물에 상주할 것이다.
엘로브 위원은 5서클 마법사. 마력에 예민한 만큼 섣부르게 중앙 건물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건 위험했다.
어쩔 수 없이 로딘은 매일 가짜 노예 스틱만 만들고, 진짜와의 바꿔치기는 나중으로 미뤘다.
그래도 4기 55명의 노예 스틱은 이미 다 바꿔치기했다.
‘남은 건 5기부터 12기까지인데.’
12기는 다행히 숫자가 적었다. 고작 9명. 왕실의 견제 때문에 노예를 제대로 못 모은 탓이다.
리아즈 왕국의 왕실은 전쟁이라는 예외적인 상황 때문에 특수군을 묵인했을 뿐. 그들의 행태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당연히 전쟁이 끝나면 특수군 양성소를 해체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특수군이 더 덩치를 불리지 못하도록 견제를 시작했다. 노예 거래의 핵심인 상단주 하르딘을 잡아들이고, 노예를 모을 수 없도록 감시를 강화했다.
이 때문에 12기는 고작 9명뿐이었다. 11기가 51명이니, 반의반도 안 되는 숫자였다.
‘12기는 적고. 5기는 너무 많고. 그래도 한 달이면 얼추 끝날 것 같은데.’
포션의 납품은 한 달 단위로 반복되지만, 로딘이 실제로 포션을 제작하는 날은 13일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포션을 제작하는 척하면서 개인 시간을 보냈다.
그 개인 시간에 매일 40개가 넘는 가짜 노예 스틱을 만들었다. 매일 만들다 보니, 익숙해지면서 속도가 빨라졌다.
‘책은 그 이후에 열흘 정도만 읽으면 마무리될 것 같고. 한 달이면 여기서 할 일은 없네.’
자유.
몹시 중요하지만, 애타게 갈망한 적은 없었다. 일찌감치 노예 인장의 폭발 속성을 지웠기 때문이다.
로딘은 언제든지 얻을 수 있는 자유를 일부러 미뤄 두고 있었다. 손쉽게 쥘 수 있기에 갈망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노예 스틱 바꿔치기가 끝나고, 책도 다 읽으면?
무조건 이곳을 떠날 생각이었다. 전쟁이고 뭐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슬슬 마무리하자.’
마지막으로 마력 연공법을 끝내고, 심화 3 서고를 나왔다.
“오늘도 수고했다.”
“뭘요. 조교님들도 고생하세요.”
“그래. 쉬어라.”
일과를 끝내고 돌아갈 때는 밤이거나 밤이 되기 직전이었다.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아,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옷섶을 여미고 내무실로 향했다. 301호 문을 앞에 둔 로딘이 순간 멈칫했다.
“어?”
안에서 느껴지는 기척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벌컥!
문을 확 열었다. 자려고 준비하고 있던 헤들러와 랜트가 로딘을 빤히 쳐다봤다.
“왔구나.”
“흐흐흐. 왔지.”
로딘은 헤들러, 랜트와 가볍게 포옹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헤들러와 랜트도 맞은편에 앉아서 서로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다친 곳은 없어 보이네. 언제 왔어?”
“오자마자 저녁 먹었다. 역시 음식은 바깥이 훨씬 맛있어.”
“지금 나 놀리는 거지?”
“너도 언젠간 나갈 수 있을 거야. 흐흐흐.”
헤들러는 바깥 물 좀 먹었다고 아주 신났다. 랜트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고 있었다.
로딘은 바깥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온 그들이 조금 부러웠다.
4서클이 됐을 때 노예 인장을 지웠다. 그때 나갔다면 여기보다 더 맛있다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아, 참. 잠시만.”
로딘은 문을 열고 바깥에 간단한 마법 하나를 펼쳤다. 알람 마법으로, 누군가 접근하면 알려 주는 마법이었다.
“왜?”
“너희들 노예 스틱은 이미 회수했어. 내가 따로 숨겨 놨어.”
“진짜?”
“정말?”
헤들러와 랜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로딘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가로저었다.
“너희들 목숨은 내 손에 있다. 무섭지?”
“응. 무서워. 살려 줘.”
“내 목숨은 로딘에게 있다. 괜찮아. 로딘은 믿을 만해.”
“쳇. 무서워하지도 않네.”
협박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동기들을 보니 기분은 좋았다.
“그러면, 우리 나가면 되는 거 아냐? 여기서 나가는 건 쉽잖아.”
“그러면 꼬리가 붙겠지. 너희들은 평생 도망 다녀야 할 테고.”
“그래서 어떻게 하게?”
“일단 상황 좀 보자. 기회가 생길 거야.”
로딘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기회가 없다면 만들면 된다.
코리처럼 자연스럽게 도망칠 상황이 되는 게 최선이지만, 위원회 위원들을 전부 죽여서 쫓을 사람이 없게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
“코리처럼?”
“어? 그 얘기 누구한테 들었어?”
“코리를 만났거든. 케나스 숲에서 도망치는데…….”
헤들러의 얘기는 양성소 정문에서 임무를 받는 장면부터 시작했다.
임무에 관한 궁금증이 크지 않았던 로딘은 조금 지루함을 느꼈지만, 참고 듣기로 했다.
왕도에서 근위 기사단을 만나고 잉그렘 제국으로 건너간 얘기. 그러다가 목표인 바하스 백작을 죽이고 도망친 얘기로 이어졌다.
슬슬 지루해서 말을 끊을까 하던 찰나에 케나스 숲 얘기가 나왔다.
케나스 숲에서 코리를 만나는 장면은 꽤 극적이었다.
실제로 극적이었는지, 헤들러가 그렇게 말을 한 건지. 아무튼, 헤들러와 랜트 입장에서는 운이 따라 줬다.
“진짜 운이 좋았지. 거기서 코리를 못 만났으면 우린 들켰을 거야. 확실히.”
“운이 좋기도 했고. 코리가 정령사니까 멀리 있었어도 너희들을 찾은 거기도 해.”
“그건 그렇지. 엄청나게 멀리 있었는데 우릴 찾아왔더라고.”
코리의 정령인 실라페는 제국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허공으로 높이 날아오른 상태였다. 코리는 감각을 공유하고, 실라페의 눈으로 제국군을 살폈다.
그러다 허겁지겁 도망치는 2명을 발견했다. 왠지 익숙한 사람 같아서 가까이 가서 살폈는데, 그들이 바로 헤들러와 랜트였다.
“그러면 거기서 제국군이 흩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왔겠군.”
“응. 맞아. 아, 참. 남은 포션은 코리한테 다 줬어.”
“잘했어. 포션은 또 만들면 돼.”
“아! 이거. 받아. 마나석이야.”
헤들러가 주머니에서 호두알 크기의 하급 마나석을 꺼내 건넸다. 참 융통성 없는 녀석이었다.
코리는 무려 10개의 하급 마나석을 사왔다. 로딘이 1개라고 말했어도 혹시나 더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헤들러가 건넨 하급 마나석은 딸랑 하나였다. 하나가 필요하다고 말했더니, 정말 딱 그것만 사 왔다.
“고맙다.”
“흐흐흐, 잘했지?”
“헤들러 바보. 코리가 왔다 갔어. 마나석은 이미 로딘에게 줬을 거다.”
“아! 맞네. 너무 늦었네.”
‘늦기도 했고 양도 적어.’라는 말이 입에 맴돌았지만 참았다.
실망한 듯이 말하면 헤들러가 상처받을 게 분명했다. 녀석은 은근히 소심하니까.
“괜찮아. 마침 더 필요하던 참이었어.”
“그래? 흐흐, 나 잘했지?”
“그래. 잘했다.”
“그런데 로딘, 노예 스틱도 찾았겠다. 딱히 할 일도 없는 거 아냐? 요즘 뭐 해?”
“가짜 노예 스틱 만들어서 바꿔치기하는 중. 3기, 4기까지는 다 바꿔치기했는데 요즘은 일단 중지 상태야.”
특수군 양성소에 머무는 위원이 바뀌었다. 하비뇽 위원이나 알브레이트 위원이 다시 양성소를 담당할 때까지는 중앙 건물로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가짜 스틱은 얼마나 만들었는데?”
“지금은 6기생들 노예 스틱 만들고 있어. 이번 달 끝날 때까지 가짜 스틱 제작은 끝날 거야. 양성소 담당이 하비뇽이나 알브레이트로 바뀌기만 하면 돼.”
“마법사보다 검사가 낫다는 거지?”
“응. 마법사는 마력에 민감하니까. 근처에서 마법을 쓰기 조심스럽지. 그래도 이젠 위원이 넷이니까 좀 더 가능성이 있겠다.”
“어쩌지? 알브레이트, 죽었을걸?”
“어?”
이게 뭔 소린가 싶었다. 알브레이트 위원의 죽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마지막 탈출할 때, 슬쩍 버리고 왔거든. 아마 죽었을 거야.”
“흐음, 그러면 여전히 검사 위원은 1명이네.”
“내가 실수한 거야? 그냥 살려 둘 걸 그랬나?”
“아니. 잘했어. 며칠 기다리더라도 위원회 숫자는 줄여 두는 게 좋아. 재수 없으면 싸우게 될 수도 있으니까.”
알브레이트 위원의 죽음이 놀랍긴 했지만, 당황할 일은 아니었다. 만약의 사태를 생각하면 오히려 반길 일이었다.
“그 일 끝나면 뭐 할 건데?”
“아티팩트 연구 좀 하려고. 잘하면 몇 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거든. 마침 마나석도 들어왔으니까.”
로딘이 헤들러에게 받은 하급 마나석을 가볍게 던졌다가 받았다.
요즘은 가짜 노예 스틱을 만드느라 시간이 없지만, 여유가 생기면 아티팩트를 만들 생각이었다.
뭘 만들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괜찮은 생각이 몇 있었다.
“오호, 기대되는데.”
“노예 스틱은 어떻게 할래? 내일 갖다줄까?”
“아니. 네가 가지고 있어. 나보단 네가 더 잘 보관할 것 같다.”
“나도 로딘이 가지고 있는 게 좋다고 본다.”
로딘의 성격상 일을 허투루 하지는 않았을 터. 헤들러와 랜트는 로딘의 꼼꼼함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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