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47)
마법을 품다 (47)
노예 스틱 문제는 해결됐지만, 오히려 헤들러와 랜트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너희들…… 오늘 복귀하고 위원회 위원들 만났어?”
“아니. 교관들만 몇 명 만났는데?”
“그러면 나중에 위원들이 너희들을 부를 거야.”
헤들러와 랜트는 한 달 이상 걸리는 임무를 마치고 복귀했다. 위원회는 임무 중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반드시 확인하려 들 것이다.
“우리를? 아! 임무 보고를 해야 하나? 그런데 우리 말고 먼저 온 애들 있지 않아?”
“없어.”
“뭐? 아무도 안 왔다고?”
“응. 왔으면 분위기가 달랐을 테니까 내가 몰랐을 리가 없어. 너희 외에는 온 애들 없어.”
헤들러와 랜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살아서 돌아왔다는 생각만 했지, 함께 간 이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국경에서 만난 클리프 부단장도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다.
“교관들도 안 왔다고?”
“응. 아무도 안 왔어.”
해들러, 랜트와 함께 임무를 받아 떠난 교관은 3명이나 된다. 왔다면 분명히 양성소 내의 분위기에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설마?”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에 함정이었다고 했지? 토리, 드록은 부상이었고?”
“응.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클리프 부단장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클리프 부단장의 임무는 혹시나 케나스 숲에서 돌아올지 모르는 동료들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헤들러, 랜트를 만난 후에도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오는 길에 근위 기사단원들은 보지 못했나?’
‘고생했다. 가 봐라.’
이 정도 대화가 전부였다.
헤들러와 랜트는 묻는 말에만 대답해 주고 바로 특수군 양성소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위원회는 알고 있을 텐데.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위원회에서 너희들을 부를 거야. 아마 임무 얘기하고 알브레이트에 관해서 물을 텐데.”
“맞네. 보고하라고 부르겠네.”
“너희들은 딱 2가지만 생각해. 코리는 못 만난 거야. 웅덩이 같은 곳에 빠져서 며칠 동안 숨어 있었어.”
“코리를 못 만났고, 웅덩이에 빠져서 숨어 있었다?”
“코리를 제외하고 은신처를 웅덩이로 바꿔. 그러면 돼. 나머지는 너희들이 겪은 그대로 말하면 되고.”
헤들러와 랜트는 뭔가 큰 계획을 세우고 알브레이트 위원을 버린 게 아니었다. 그냥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고, 데리고 다니다가는 다 죽을 것 같아서 슬쩍 버렸을 뿐이다.
“그 정도는 뭐.”
“나도 할 수 있다.”
“알브레이트에 관해서는 절대 너희들이 먼저 말을 꺼내면 안 돼. 너희들은 알브레이트가 당연히 이곳으로 먼저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알브레이트에 관해 물으면? 어? 먼저 오지 않았어요? 이런 반응이어야 해. 이해했지?”
“응. 이해했어.”
“위원회에서…… 누가 왔다.”
로딘이 급하게 말을 끊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헤들러와 랜트도 반사적으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똑똑! 철컥.
“57번, 58번. 호출이다.”
문이 열리고, 조교가 목만 빼꼼히 내밀었다. 내무실 담당으로 자주 봐서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 밤에요? 무슨 일인데요?”
“나도 모른다. 상담실에서 호출이니, 거기로 가 봐.”
“하아암, 알겠습니다.”
조교가 문을 닫고 사라졌다.
헤들러와 랜트는 급하게 옷을 갈아입으면서 로딘을 쳐다봤다.
“와아, 로딘.”
“역시 우리의 로딘. 모르는 게 없다니까. 대단해.”
“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야. 임무가 끝났으니 제대로 보고받고 싶겠지.”
“후우, 잘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
헤들러는 공부 머리가 좀 없을 뿐, 은근히 영악한 구석이 있었다. 코리와 비슷한 과였다. 어지간해선 말실수를 안 하고 잘 넘어갈 터였다.
랜트는 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말수 자체가 적고, 딱 핵심만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런 종류의 사람이 하는 말은 은근히 신뢰가 있어서, 어지간해선 의심받지 않는다. 위원회 위원들도 의심하지 않고 넘어갈 게 분명했다.
“그런데 드록, 토리, 대런은 어떡하지?”
“뭐가?”
“들은 게 없어서. 뭘 알아야 말을 하지.”
“그러면 그렇게 말하면 되지. 들은 게 없다고. 국경에서 클리프 부단장을 만났는데 아무런 말도 못 들었다고. 아까 말했잖아. 코리 얘기 빼고, 은신처를 웅덩이로 바꾸고. 그 정도를 제외하면 다 사실대로 말해. 원래 거짓말은 진실 속에 조금씩 묻히는 거야. 이물질처럼.”
위원회 위원들은 기다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들은 항상 늑장 부려서 남을 기다리게 하지만 남이 자기를 기다리게 하는 건 싫어했다.
조교의 호출을 받은 이상, 오래 지체할 수 없었다.
로딘의 말을 되새기며, 헤들러와 랜트는 허겁지겁 내무실을 나갔다.
로딘은 둘이 사라진 후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내무실 옥상에서 중앙 건물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전투 상황을 그리고 있었다.
‘여차하면 싸워야지.’
만약 보고에 문제가 생겨서 위원들이 헤들러와 랜트를 죽이려 든다면, 로딘은 기꺼이 싸울 생각이었다.
아직 노예 스틱 제작이 덜 끝났고, 바꿔치기도 한참 남았다. 이대로 싸우면 남은 훈련생들이 노예로 영영 남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훈련생들 전부보다 헤들러와 랜트가 더 중요했다.
훈련생들?
같은 노예였고 같은 훈련생이라는 동질감이 있지만 그게 전부였다. 남보다 조금 가까운 정도에 불과했다.
‘휴우, 끝났구나.’
헤들러와 랜트는 대략 1시간이 지난 후, 중앙 건물에서 나왔다. 다행히 싸운 흔적도 없고 표정도 어둡지 않았다.
‘잘 말했나 보네. 그나저나 드록, 토리, 대런은 진짜 죽었을까? 연락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 * *
잉그렘 제국은 비슷한 시기에 꽤 많은 공격을 받았다.
리아즈 왕국의 근위 기사단의 공격으로 바하스 백작과 6서클 마법사 와이드먼, 선봉 기사단의 기사 30명을 잃었다.
베로스 왕국의 근위 기사단에게도 제국의 6데나급 기사가 죽었고, 란데르트 왕국의 기습에 6데나급 기사만 셋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패리 왕국과 아스란 왕국을 포함한 다른 13국 연합도 비슷한 시기에 제국의 인재를 죽이고 사라졌다.
고작 두 달 사이에 잃은 6데나급의 기사만 16명에 6서클 마법사가 3명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당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깊숙하게 들어와 후방을 공격했다는 건 도주로 역시 길어진다는 뜻.
제국은 자국에 손해를 입히고 도망치는 자들을 추격해서, 자국 내로 들어왔던 전력의 절반가량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 숫자만 비교하면 오히려 잉그렘 제국의 이득이었다.
하지만 잉그렘 제국의 누구도 이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병력의 숫자는 13국 연합이 더 많았다. 기사든, 마법사든, 병사든. 합치면 13국 연합의 우위였다.
하지만 잉그렘 제국은 훨씬 정예화되어 있었다.
기사 전력도 같은 숫자끼리 붙으면 압승, 병력끼리의 전투에서도 숫자가 비슷하면 패한 적이 없었다.
실제로 전투의 교환비도 대략 1 대 4에서 1 대 5 사이였다. 제국이 1의 병력을 잃을 동안 13국 연합은 4에서 5의 병력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 기습의 교환비는 기껏해야 1 대 1.5 수준이었다. 잉그렘 제국으로서는 전쟁 발발 후 처음 겪은 뼈아픈 손해였다.
“이놈이야?”
“예. 리아즈 왕국의 기삽니다. 알브레이트라고. 예전에 꽤 이름을 날렸습니다.”
“진짜 기사 맞아? 저 몸으로 기사가 말이 돼? 리아즈 왕국은 몸무게로 기사를 뽑나?”
알브레이트 위원은 그 난리 통에 낙마하고도 살아남았다. 운 좋게 등으로 떨어졌고, 혼잡한 와중에도 말에 밟히지 않았다. 천운이었다.
“저 돼지가 대체 뭘 알고 있다는 거지?”
“뭐, 들어 보고 가치 없으면 처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 온 시간이 아까워서 그래. 저런 돼지 놈이 기밀 같은 걸 알고 있을 리가 없잖아.”
“잠시만 들어 보지요. 혹시 압니까? 중요한 정보일지.”
잉그렘 제국 지휘관들의 비아냥은 알브레이트 위원도 듣고 있었다. 양팔이 의자에 묶인 상태였지만, 청각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야! 너 기사 맞아?”
“맞습니다.”
“와, 대체 얼마나 게으르면 몸이 이렇게 되냐?”
“크음.”
자존심이 상했지만, 알브레이트 위원은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저들의 말 한마디에 자기 생사가 결정된다는 걸 아는 까닭이었다.
“그래. 좋아. 돼지, 할 말이 있다고? 쓸 만한 정보여야 할 거야.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놈들처럼 너도 목이 잘릴 테니까.”
“마음에 들 겁니다.”
알브레이트 위원은 너무 오랜 시간 평화에 젖어 살았다. 수련을 멈춘 지도 오래였다.
긴 시간의 나태함은 알브레이트 위원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망가뜨렸다. 그는 더 이상 자부심 강한 리아즈 왕국의 상급 기사가 아니었다.
과거였다면 ‘차라리 죽여라.’, ‘아무리 고문해도 네놈들이 원하는 대답은 들을 수 없을 것이다.’라며 크게 호통을 쳤을 텐데. 지금은 목소리를 높일 용기조차 없었다.
지금 알브레이트 위원이 바라는 건 하나뿐이었다. 비굴해도 좋으니 살아남는 것.
“말해 봐.”
“십여 년 전에 왕실에서…….”
“그냥 왕실에서라고 하지 말고. 어느 나라 왕실인지를 말해. 우리가 싸우는 나라가 무려 한두 곳인 줄 알아? 13곳이라고 13곳!”
“리아즈 왕국의 왕실에서 특수군 창설을 결정했습니다. 크레이트 마법사를 위원장으로 삼고…….”
알브레이트 위원은 자기가 알고 있는 특수군 양성소의 정보를 죄다 풀었다. 훈련생들의 수준뿐 아니라 교관과 위원들의 정보도 입에서 술술 나왔다.
“……그렇게 양성했습니다.”
“그러니까 특수군 양성소라는 곳에서 애들 데려다 키웠다. 그중에는 5서클 마법사도 있다. 그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겨우 5서클 마법사 얘기를 하려고 날 부른 거야? 그 정도 마법사는 제국에도 많아. 내 참, 이럴 줄 알았다니까. 시간 아깝게.”
5서클 마법사가 대단한 전력이긴 하지만, 전장의 변수가 되기엔 부족했다.
지금은 지방과 지방이 싸우는 작은 전쟁이 아니었다. 잉그렘 제국과 13국 연합이 대륙 규모의 전쟁이었다. 양쪽이 동원한 병력만 도합 150만이 넘었다.
규모가 어마어마한 만큼 5서클 마법사 정도는 발에 치일 정도로 많았다. 심지어 잉그렘 제국에서 동원한 6서클 마법사도 11명이나 되었다.
“아, 아닙니다! 그는 14살입니다.”
“어?”
“음?”
몸을 돌리려던 잉그렘 제국의 지휘관 둘의 몸이 덜컥 멈췄다. 가볍게 들을 수 없는 나이가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봐. 몇 살이라고?”
“14살입니다.”
“5서클 마법사라면서? 그런데 14살이라고?”
“예. 분명히 14살입니다. 지금은 골방에 처박혀서 포션이나 만들고 있지만, 그전까지는 누구보다 성장 속도가 빨랐습니다.”
지휘관 중 1명 페리오스 백장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눈으로는 묶여 있는 알브레이트 위원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이봐, 돼지. 네 말이 거짓이면 넌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꼴로 죽을 거야.”
“사실입니다. 심지어 5서클 마법사가 된 건 12살 때입니다.”
“하아, 기가 차네. 12살에 5서클이라……. 루스, 지도 가져와.”
“예.”
루스가 부하들에게 눈짓했다. 눈치 빠른 누군가가 어딘가로 달려가더니 서대륙 전체가 대략 그려진 지도를 들고 나타났다.
“야! 돼지. 특수군 양성소라는 곳, 어디 있는지 찍어. 최대한 정확하게.”
“여, 여깁니다.”
“으음…… 여기 리아즈 왕국의 수도 아냐?”
“그 옆입니다. 말을 타고 2시간이면 닿을 정도로 가깝습니다.”
페리오스는 알브레이트 위원이 찍은 위치를 한참 살폈다. 곧이어 잉그렘 제국에서 특수군 양성소로 가는 길을 머릿속으로 그려 봤다.
“만만찮은데. 위치 참 애매하네.”
“어쩔까요?”
“일단 이 돼지 새끼는 따로 가둬 놔. 거짓말이면 살을 한 점 한 점 발라 낼 거니까. 먹이도 부족하지 않게 주고.”
“하아, 감사합니다.”
알브레이트 위원이 안도했다.
자신이 살아남았음을 직감했다. 적어도 특수군 양성소를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살려 둘 것이다.
“알겠습니다.”
“난 총사령관을 만나 뵈어야겠다.”
“대대장님, 리아즈 왕국의 왕도는 너무 멉니다. 가는 길에 원치 않은 전투도 벌어질 테고, 피해도 좀…… 그만한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만한 가치? 당연히 있지. 12살에 5서클 마법사가 됐다잖아. 잘 키우면 7서클 대마법사도 가능하다고.”
7서클 대마법사.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는 경지였다.
하지만 7서클 대마법사는 단순히 마법을 오래 쓴다고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잉그렘 제국만 해도 무려 30년 넘게 6서클에 머문 마법사가 있었다. 그것도 2명이나.
한데 누구도 7서클에 오르지 못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못 오를 확률이 높았다.
“가능성은 좀…….”
“7서클은……, 그래. 좀 힘들 수도 있겠지. 마탑 외에는 7서클 마법사가 나온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6서클은 좀만 키우면 가능하잖아.”
7서클은 상징적인 경지였다. 지금까지 어느 나라도 7서클 마법사를 보유하지 못했다.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마탑에서만 보유하고 있는 신비로운 존재.
그래서 오직 마탑만이 7서클 마법사에 필요한 뭔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포션을 만들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뻔하지. 위원이라는 것들이 그 애새끼의 성장이 두려웠던 거야. 그래서 성장할 시간을 주지 않고 포션만 만들게 한 거지. 쯧쯧. 노예 스틱도 있는데 뭐가 무섭다고.”
“맞, 맞습니다. 연공실 이용을 금하고, 하루 종일 포션만 만들게 했습니다.”
“하이고. 자랑이다. 돼지 새끼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