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48)
마법을 품다 (48)
헤들러와 랜트는 며칠 후에 한 번 더 상담실로 불려 갔다.
크세르 위원과 엘로브 위원, 하비뇽 위원이 전부 있는 자리에서 이전에 했던 보고를 다시 반복해야 했다.
헤들러와 랜트를 보내고, 세 위원만 남았다.
“알브레이트 위원의 실종이라니. 믿기지 않는군요.”
“저들의 말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의도적으로 속이진 않았더라도,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요? 저는 알브레이트 위원이 죽었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일 겁니다. 저도 근위 기사단에 아는 기사가 있어서 좀 알아봤습니다. 잉그렘 제국을 벗어나면서 근위 기사단 절반이 죽었다고 하더군요. 살아남은 이들도 태반이 부상자고요.”
하비뇽 위원은 원래 상가 출신이라 발이 넓었다. 상단이 사라졌지만, 과거의 인맥은 여전히 왕국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하비뇽 위원이 얻은 정보라면, 사실일 확률이 높았다.
근위 기사단 절반의 죽음. 어마어마한 피해였다.
크세르 위원과 엘로브 위원은 근위 기사단의 피해 규모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근위 기사단 절반이 날아갔다는 말입니까?”
“그렇다고 하더군요. 단장인 프레이스 백작도 부상이 심해서 요양 중이라고 합니다.”
“하아, 그 강하던 근위 기사단이…… 믿어지지 않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리아즈 왕국의 근위 기사단은 왕국 내에서 단일 전력으로는 최강이었다. 전원 4데나급 이상의 기사로 이뤄져 있고, 훈련 강도도 가장 강했다.
“우리가 보낸 특수군 피해도 있습니다. 교관 셋은 전원 사망. 오늘 온 57번, 58번은 다행히 무사해 보입니다만 90번은 죽었습니다. 60번은 허벅지 부상이 회복할 수 없는 정도라, 죽은 것과 다름없지요.”
교관 3명의 죽음에 관해서는 위원회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고용된 관계이기 때문이다.
“뭐, 피해는 어쩔 수 없지요. 전쟁 중에 피해자가 나오는 건 당연한 거니까.”
“운이 나빴다고 봐야죠.”
90번은 토리, 60번은 드록이었다.
토리는 케나스 숲에서 함정에 빠졌을 때, 목에 화살을 맞았다. 시체가 이미 아군 진형에 도착한 터라 살아 있다는 희망조차 품을 수 없었다.
드록은 살아 있긴 하지만, 꽤 오래 방치된 허벅지가 거의 괴사 상태였다. 급속 치료라면 나을 수 있지만, 누구도 급속 치료를 해 줄 생각이 없었다.
급속 치료라는 건 특별한 게 아니었다. 양동이 같은 곳에 포션을 잔뜩 붓고, 부상 부위를 통째로 담가 놓는 걸 급속 치료라고 불렀다.
드록이 당한 허벅지 부상을 급속 치료하려면 상치 치유 포션이 족히 10리터는 필요했다. 위원회가 매달 로딘에게 받아서 판매하는 포션의 양과 같았다.
현재의 포션이 30골드가 넘으니, 급속 치료에 12,000골드 이상이 필요한 셈이었다.
노예인 4데나급 검사에게 그만한 돈을 쓸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위원회도 고작 훈련생 1명을 위해 12,000골드를 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특수군 마법사의 희망 4기 155번이 살았습니다. 다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부상이라고 합니다.”
“오호, 우리의 희망은 역시 살아남았군요.”
3기 108번인 로딘은 더 이상 특수군 양성소의 희망이 아니었다.
12살의 나이에 5서클 마법사가 된 순간부터 위원회의 골칫거리가 되었고, 포션을 제작하면서 위원회의 돈줄로 신분이 변했다.
“언제 돌아온답니까?”
“4기 155번의 부상만 나으면 보낸다고 하는군요.”
“155번이 60번을 챙겨서 데려오는 거군요.”
“쯧, 아무튼 이번 임무에 피해가 큽니다. 보고받기로는 1기가 입은 피해도 적지 않다고 하던데.”
잉그렘 제국의 마법 병단을 찾기 위해 떠난 1기는 벌써 일 년 넘게 13국 연합 곳곳을 돌아다녔다. 이들만이 아니라 13국 연합에서 보낸 다른 수색 부대 역시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피해가 누적되는 중이었다.
“말 나온 김에 얘기해 봅시다. 여러분, 이번 전쟁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왕실과 군부가 노력하고 있고, 우리가 적절하게 도우면 충분히 이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엘로브 위원, 솔직하게…… 정말 솔직하게 얘기합시다. 엘로브 위원은 이미 가산을 정리하고 있지 않습니까? 중앙 대륙으로 갈 생각 아닙니까?”
“커험.”
민망함에 엘로브 위원이 헛기침했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지만, 얼굴이 붉어진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크세르 위원과 하비뇽 위원은 엘로브 위원을 나무라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자신들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어서였다.
“질책하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 역시 슬슬 시기를 보고 있으니까요.”
“허험, 저 역시 그렇습니다. 이 나라는 끝났어요. 시기의 문제일 뿐. 얼마 안 가서 리아즈 왕국이란 이름은 사라질 겁니다.”
“후우, 그렇겠지요.”
“아깝게 됐습니다. 과거에 욕심을 내지만 않았어도…… 쯧쯧.”
하비뇽 위원의 말에는 크세르 위원과 엘로브 위원도 동의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해도, 13국 연합이 이기는 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그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어차피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중앙 대륙뿐이죠.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요. 서대륙에서 전쟁이 없는 나라라고 해 봐야 탈레흐 왕국뿐인데, 거긴 마수들이 문제라서.”
“알겠지만 중앙 대륙의 나라들은 다 고만고만합니다. 이 나라도 중앙 대륙에 있었다면 큰소리치며 살았을 겁니다.”
“그렇죠. 중앙 대륙은 압도적인 강국이 없는 곳이니.”
13국 연합에 속한 나라들이 약한 게 아니었다. 서대륙의 패자 잉그렘 제국이 워낙 강할 뿐이었다.
압도적인 1강이 존재하고 있으니, 다른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약해 보였다.
이에 비해 중앙 대륙은 무려 60개가 넘는 국가들이 난립해 있었고, 가진 힘도 비슷했다.
중앙 대륙에서 손꼽히는 국가인 메이븐 왕국이라고 해 봐야 리아즈 왕국과 별 차이도 안 났다.
“우리가 힘을 조금만 갖추면 중앙 대륙의 어느 나라를 가건 쉽게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힘을 갖춘다? 어떻게 말입니까?”
“우리 노예들을 데려가야죠. 잘 벼려 놓은 칼이지 않습니까? 노예 스틱이라는 확실한 안전장치도 있고. 그러니 잘 써먹어야죠.”
크세르 위원은 도망친다고 해서 특수군 노예들을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공들여 키웠으니 두고두고 써먹을 생각이었다.
“흐음, 전부 데려가는 건 힘들겠지요?”
“뭐, 감당할 자신이 있으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저는 몇 명만 데려갈 겁니다. 규모가 너무 커지면 발이 느려지거든요.”
“어떻게 분배할 생각입니까?”
“이 자리에서 얘기해야지요. 여기 우리 노예들 정보가 있습니다. 읽어 보고, 선택합시다. 아! 57번은 제가 데려갈 생각입니다.”
크세르 위원이 먼저 57번이 헤들러를 찍었다.
헤들러는 귀족 출신이라서인지, 외모적으로 훌륭했다. 노예가 아니라 기사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저는 그러면 58번을 데려가지요. 데리고 다니면 든든할 것 같아요.”
“하하, 검사인 저는 아무래도 마법사가 좋겠죠. 155번을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그리고 3기 중에서…….”
특수군 훈련생의 배분은 3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3기 그리고 4기에서 나름 괜찮은 인재들을 추렸고, 그들을 위원 셋이 적당히 나눴다.
“제가 19명이군요.”
“저는 16명이네요. 그런데 크세르 위원은 10명으로 괜찮겠습니까? 새로운 곳에 자리 잡으려면 노동력도 많이 필요할 텐데요.”
“더 많으면 식량 소모도 커지고, 무엇보다 제가 번잡스러운 걸 싫어합니다. 저는 이 정도면 적당합니다.”
위원들끼리 훈련생을 나눠 가졌다. 당사자의 의견은 전혀 듣지 않은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면 이동은 언제쯤 할 생각입니까?”
“빠르면 반년, 늦어도 1년. 아무튼 저는 왕도가 포위되면 바로 움직일 생각입니다.”
“그러면 이번에 우리가 선택한 녀석들은 임무에서 빼야겠네요.”
“그래야죠. 막상 떠날 때 옆에 없으면 곤란하니까요.”
위원들은 의도적으로 108번 로딘에 관한 언급을 피했다.
실력은 아까웠다. 포션을 꾸준히 제작할 수 있으니 돈주머니 역할도 해 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옆에 두긴 껄끄러웠다.
재능이 과해도 너무 과했다. 노예 스틱을 잃어버리거나 뺏기는 순간 자신들은 죽은 목숨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위원들은 108번의 결말을 정해 놨다.
폐기.
방법도 간단했다. 지하 창고에 보관된 108번의 노예 스틱을 찾아서 똑 부러뜨리면 끝이었다.
* * *
드록과 대런은 헤들러와 랜트가 양성소에 도착하고 딱 10일째 되는 날 복귀했다.
대런은 초췌한 얼굴이었고, 드록은 허벅지 괴사로 얼굴까지 시커멓게 죽은 상태였다.
“왔다.”
“드록은 아픈 모양인데?”
“그러게. 다리를 절잖아.”
운동장에서 훈련받은 검술 전공 훈련생들이 특수군 양성소로 들어오는 드록과 대런을 발견했다.
“대런, 넌 상담실로 가라.”
“알겠습니다.”
대런은 양성소에 도착하자마자, 위원회에 불려 갔다. 임무에 관한 보고를 위해서였다.
동시에 헤들러와 랜트에게 들은 내용이 맞는지 교차 검증하는 절차이기도 했다.
대런의 보고는 헤들러와 랜트에게 들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갈라설 때까지 들은 내용은 양쪽이 같았다.
위원회는 1시간의 보고 끝에 대런을 내무실로 보냈다. 헤들러와 랜트에게 가졌던 약간의 의심도 이 순간 사라졌다.
“드록, 넌 바로 치료소로 가서 치료받아라.”
“예.”
드록은 특수군 양성소의 치료사에게 불려 갔다.
특수군 양성소 내의 치료사는 마법사가 아니라, 약초로 상처를 소독하거나 뼈를 맞추는 이들이었다. 마법사가 치유 마법을 쓰기 전에 예비 치료를 하는 이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마법으로 치료하는 이들은 ‘치유사’라고 불렀다. 모두 저서클이지만, 약초를 쓰는 치료사의 능력과 합쳐지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이건 안 되겠는데.”
“마법사님들은 뭐래?”
“당연히 안 된다고 하지. 다리가 완전히 썩었잖아. 일찍 치료받았으면 모를까, 이젠 늦었어.”
드록은 치료사들의 대화를 들으며 좌절했다.
특수군 양성소의 치료사를 만났음에도 허벅지를 치료할 방법은 없었다. 치료 마법을 할 수 있는 치유사들도 ‘치료 불가’를 선언했다.
“이봐. 60번. 다리를 자르는 게 가장 좋아.”
“맞아. 그냥 두면 다른 곳으로 독기가 번질 거야. 지금 자르고, 잘 관리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어.”
“안, 안 돼요. 절대. 살려 주세요! 치료사님들. 제발 저 좀 살려 주세요. 저. 다리 없으면 안 돼요. 제발요. 제발 좀 살려 주세요. 엉, 어어엉.”
드록은 대성통곡하며 치료사에게 매달렸다.
그 모습이 너무 짠해서 치료사들도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드록은 절대 다리를 자를 수 없었다.
다리를 잃으면 검술도 잃는다. 4데나급의 검사가 그냥 다리 잘린 병신 노예가 되는 것이다.
“하아, 일단 돌아가. 돌아가서 차분하게 생각해 봐. 네 다리가 중요한지, 네 목숨이 중요한지.”
“맞아. 냉정하게 생각해. 늦으면 다리가 아니라 목숨이 위험해.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오늘 하루만 생각해 봐.”
치료사들은 드록의 치료를 포기했다. 멀리서 보고 있던 치유 마법사들도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로딘은 가짜 노예 스틱 제작을 진즉에 끝냈다. 중앙 건물 지하로 들어가서 진짜 노예 스틱과 바꿔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통 기회가 안 났다. 한동안 마법사 위원들이 당직이라, 밤에 중앙 건물로 갈 수가 없었다.
일과를 끝내고, 내무실로 돌아왔다.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로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지? 헤들러하고 랜트는 또 어디 간 거야?”
취침까지 고작 1시간 남았다. 이 시간에 헤들러와 랜트는 항상 침대에 걸터앉아서 놀거나 잡담을 나누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둘이 보이지 않았다. 정리되지 않은 내무실 꼴을 보니, 정리도 못 하고 나간 듯했다.
“어이, 94번.”
“어? 나?”
“왜 이렇게 어수선해?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로딘은 복도를 지나가던 3기 훈련생 중 1명을 붙잡았다. 평소에 얼굴 정도만 아는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60번하고 4기 마법사인가? 그 친구가 임무 끝내고 돌아왔대.”
“그게 이 정도로 소란을 피울 일이야?”
“60번 부상이 심각한가 봐. 지금 전부 310호 내무실에 가 있어.”
“흐음, 그래? 대답 고마워.”
“흐흐흐. 이 정도야, 뭐.”
로딘은 먼저 내무실로 들어가서 옷부터 갈아입었다. 정확히는 옷 역할을 하는 환수 지토가 정복에서 체육복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허벅지를 다쳤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헤들러와 랜트에게 드록은 허벅지를, 토리는 팔에 화상을 입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드록은 여전히 부상 중이고, 토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죽은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침대 옆 벽을 열어서 포션 몇 병을 꺼냈다. 지토가 변신한 체육복 주머니에 포션을 넣고, 310호 내무실로 향했다.
“헤들러, 랜트. 여기서 뭐 해?”
“아, 로딘! 방법이 없을까?”
“부상이 심해?”
“응. 다리가 완전히…… 후우.”
헤들러는 드록의 상처를 보며 자책하고 있었다.
잉그렘 제국에서 탈출할 때, 일행 중에 치유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가 없었다. 일행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계속 달리느라 육체의 피로도는 극에 달했고, 그사이에 다친 다리가 악화되었다.
한데 헤들러와 랜트는 드록을 치료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포션을 사용했다면, 드록의 허벅지 부상은 치료되었을지 모른다. 아니, 무조건 치료되었을 것이다.
“비켜 봐. 좀 보자.”
“로딘. 부탁한다.”
“알았으니까 비켜 봐.”
헤들러를 옆으로 밀어내고, 310호 안으로 들어갔다.
드록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침대에 누워 있고, 그 주변에 310호 내무실 동기들과 대런, 랜트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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