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5)
마법을 품다 (5)
아이들은 입은 옷에 만족하며, 어깨를 쭉 폈다. 몇 시간 전의 선배들처럼, 폼을 잡았다.
“풉! 푸하하.”
그때 코리가 로딘의 몰골을 보고 웃기 시작했다. 로딘도 자신의 꼴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채 다섯 살도 안 된 아이에게 맞는 옷은 준비가 안 된 모양이다.
옷이 너무 컸다. 상의 밑단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왔다. 소매는 너무 길어서 나풀거렸고, 바지 밑단 역시 축 늘어져서 바닥 청소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에휴.”
로딘은 어쩔 수 없이 소매를 접었다. 한 번으로 부족해서 세 번이나 접어야 얼추 손목이 드러났다.
바지 밑단도 적당한 크기로 세 번을 접었다. 그러자 오래 신어서 낡고 해진 신발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멋은 없었다. 어린애가 아빠 옷을 입은 듯한 모양새였다.
“나도 접어야겠다.”
로딘을 보고 비웃었지만, 코리 역시 키가 작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로딘보다는 훨씬 커서, 한 번씩 소매와 바지 밑단을 접으니 대충 모양새가 갖춰졌다.
“모두 주목!”
옷에 감탄하던 아이들이 ‘주목’ 소리에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단 한 번의 엎드려뻗쳐와 폭력이 아이들을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했다.
“가슴에 새겨진 숫자가 앞으로 너희 이름이다. 숫자를 모르는 놈, 손! 아니, 숫자를 아는 놈, 손.”
‘숫자를 모르는 놈, 손’이라고 했을 때, 아이들이 우수수 손을 들었다. 그러자 교관이 명령을 바꿨다.
숫자를 아는 아이들은 52명 중에서 6명이었다. 로딘과 코리도 그 6명에 속해 있었다.
“너!”
교관이 손을 든 6명 중 1명을 지목했다. 맨 왼쪽에 있던 헤들러였다.
“네 가슴에 적힌 숫자를 읽어 봐라.”
“삼 다시 오십칠입니다.”
“좋군. 너! 네 가슴에 적힌 숫자가 뭐지?”
교관이 다른 아이를 골랐다. 손을 든 6명 중 1명이었는데, 키 순서로 중간쯤에 서 있던 아이였다.
“삼, 팔, 칠이요.”
87번이라고 적힌 아이의 대답이었다. 숫자를 10까지만 알고 있어서, ‘팔십칠’이 아니라 ‘팔, 칠’이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 들어라. 앞으로 교관들과 조교들은 너희들을 숫자로 부를 것이다. 자기 숫자가 몇 번인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도록! 조교!”
“예.”
“아이들에게 자기 번호를 알려 주도록.”
“예, 알겠습니다.”
조교들이 아이들에게 붙어서 숫자를 가르쳤다.
헤들러에게는 따로 조교가 붙지 않았다. 이미 자기 번호를 정확하게 부를 줄 알았기 때문이다.
조교 중 1명이 로딘과 코리에게도 다가왔다.
“너! 숫자를 안다고 손을 들었지?”
“예.”
“말해 봐.”
“삼, 일, 영, 칠입니다.”
코리의 대답에 조교가 짧게 혀를 찼다. ‘그럼 그렇지.’ 하는 듯한 표정이 조금 얄밉게 보였다.
“네 번호는 삼 다시 백칠이다. 일영칠이 아니라 백칠.”
“예, 알겠습니다.”
“너. 네 가슴에 적힌 숫자 말해 봐.”
“삼 다시 백팔이요.”
로딘의 대답에 조교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로딘 바로 앞으로 와서 눈을 쳐다봤다.
“키가 작네.”
“예, 덜 자라서요. 잘 못 먹기도 했고요.”
“숫자는 어디까지 알아?”
“만 단위까지 말할 줄 압니다.”
로딘이 살던 곳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 추수가 끝나면 촌장이 직접 각 집안을 돌면서 수확량을 계산하고 가격을 책정하는데, 그때 로딘은 눈치로 숫자를 깨우쳤다.
그리 큰 마을이 아니라서, 만 단위가 넘는 숫자는 배우지 못했다.
“오, 똑똑한데.”
“감사합니다.”
조교의 몸이 코리 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왜 ‘일영칠’이 아니라 ‘백칠’인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주목!”
“예.”
“숫자를 다 깨우친 아이들은 저 건물 뒤쪽 대운동장으로 이동하도록.”
앞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던 교관의 말이었다. 로딘은 조교를 보며 의사를 물었다.
“저 가도 됩니까?”
“가도 된다.”
“같, 같이 가.”
대운동장으로 가려는 로딘을 코리가 붙잡았다. 로딘은 코리를 잠깐 쳐다보다가, 이내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여기서 기다릴게.”
“빨리 배울게.”
“천천히 해도 돼.”
조교는 단순히 코리의 숫자가 ‘백칠’이라고만 가르치진 않았다. 왜 ‘일영칠’이 ‘백칠’이 되는지, 그 원리도 함께 설명했다. 그러면서 10단위의 개념, 100단위의 개념까지 알려 줬다.
“로딘! 숫자는 다 배웠어?”
“난 알아.”
어느새 헤들러가 다가왔다. 로딘은 옆에 있던 코리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와, 숫자를 알고 있었어?”
“어쩌다 보니.”
“친구?”
“으음, 아마도?”
로딘도 아직 코리가 친구인지 어떤지 확신이 안 섰다. 오늘 처음 인사를 나눴고, 대화도 많이 해 보지 못했다.
그래도 헤들러를 제외하면 가장 대화를 많이 해 본 아이가 코리다. 대화의 양을 기준으로 친분을 나눈다면, 코리는 이곳에 모인 52명 중에서 두 번째로 친한 사이임이 분명했다.
“오호.”
헤들러가 코리 쪽을 보며 작게 감탄했다. 나 역시 코리의 배움에 웃음이 나왔다.
코리는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10단위를 금세 깨우치더니, 100단위도 단숨에 이해했다.
“됐다. 이 정도면.”
“감사합니다. 조교님.”
조교가 떠나갔다. 헤어지면서 코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학생이 꽤 마음에 든 듯했다.
“가자.”
“친구?”
“아마도.”
이번에는 코리가 헤들러를 가리키며 물었다. 로딘은 헤들러에게 했던 대답과 똑같은 대답을 해 줬다.
“그런데 우리 앞으로 숫자 써야 하지?”
“으음, 그렇겠지.”
“그럼 난 57번이네.”
“난 107번.”
로딘은 이름을 지우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5년 가까이 지켜 온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리는 느낌이었다.
“가자.”
“응.”
셋이 나란히 서서 건물 뒤로 돌아갔다. 그러자 좀 전에 있던 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운동장이 나왔다.
“와! 여기서 33바퀴 돌았으면 다 죽었겠다.”
“여기선 10바퀴도 못 돌겠어.”
좀 전에 본 교관과 다른 교관이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그 앞에서 먼저 온 몇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로딘과 일행들도 그 앞으로 갔다.
교관은 새로 등장한 셋을 보더니, 이채를 발했다. 아마 가장 어린 로딘이 일찍 등장한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너희들. 여기 와서 열쇠 하나씩 받아 가.”
“이게 무슨 열쇠죠?”
“먼저 골라라. 고르면 설명해 줄 거다.”
열쇠는 큰 책상에 마구잡이로 널려 있었다. 열쇠에 특별한 표식도 없어서, 구분하기 힘들었다.
‘아이들 숫자와 같다.’
로딘은 눈으로 열쇠의 숫자를 세었다.
49개였다.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3명이니, 합치면 정확히는 52개.
로딘은 널려 있는 열쇠 중 하나를 쥐었다. 뒤이어 헤들러와 코리도 가까운 곳에 있던 열쇠를 쥐고 주머니에 넣었다.
곧이어 아이들이 차례로 모였다. 그들도 탁자에 놓인 열쇠를 하나씩 챙겼다.
모두 10명이 모이자, 조교가 앞으로 나섰다.
“너희들이 고른 열쇠는 앞으로 너희들이 묵을 숙소의 열쇠다. 숙소는 저기 있는 건물의 3층이다. 3층의 각 방은 4인실이고, 같은 방의 열쇠를 고른 사람끼리 같은 방을 쓰게 된다.”
“아!”
코리가 열쇠를 슬쩍 꺼내 봤다. 헤들러도 자기 열쇠를 꺼내더니, 코리가 가진 열쇠 위에 겹쳤다.
“다르네.”
“그러게. 다르다.”
헤들러와 코리가 가진 열쇠는 모양이 달랐다. 로딘도 열쇠를 꺼내서 둘에게 보였다.
“쳇, 다 다르잖아.”
“그러게. 이거 다른 애들하고 바꾸면 안 되나?”
“누가 떠들어도 좋다고 했지? 모두 조용! 따라와라. 지금부터 숙소로 이동한다.”
조교가 먼저 온 10명만 데리고 숙소로 이동했다. 혼잡을 막기 위해 적당한 인원을 먼저 보내는 모습이었다.
* * *
숙소 배정이 끝났다. 로딘은 계단 바로 앞의 방, 헤들러는 맨 안쪽, 코리는 중간쯤이었다.
하지만 숙소 배정은 의미가 없었다. 헤들러가 나서서 로딘의 방에 들어온 다른 아이들과 방을 바꿔 버렸다.
그렇다고 헤들러가 폭력을 쓰거나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든 건 아니었다. 그냥 ‘방 바꿀래?’ 한마디 했더니, 알아서 열쇠를 내줬다.
계단과 가장 가까운 방에 로딘, 헤들러, 코리, 그리고 랜트라는 아이가 배정되었다. 랜트는 헤들러보다 키가 아주 조금 작지만, 비쩍 마른 아이였다.
“극과 극이네. 57, 58번. 107, 108번. 뭔 조합이 이래?”
키가 가장 큰 2명과 키가 가장 작은 2명이 한 방에 모였다. 같이 다니면 참 희한한 그림이 될 것 같았다.
“아이고, 다리야.”
“난 다리가 마비된 것 같아.”
“졸리다.”
“나도. 그냥 자면 안 되나?”
오늘 처음 대화를 나눴을 텐데도, 헤들러와 코리는 죽이 잘 맞았다. 서로 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몇 년은 함께 지낸 사이 같았다.
“배고프다.”
반면 랜트는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성격이 아니었다. 헤들러와 코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다가, 적당한 대꾸만 해 주는 편이었다.
대신, ‘배고프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실제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쉬지 않고 들리기도 했다.
‘재미있다.’
로딘은 조용조용 얘기를 주고받는 셋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또래라고 하기엔 나이 차이가 좀 있지만, 함께 지내는 게 꽤 즐거웠다. 52명이 함께 지낼 때보다 4명이 모인 지금이 더 좋았다.
“우리 뭐 하지? 그냥 여기 있으면 되나?”
“몰라.”
“점심은 언제 먹는 거야?”
벌컥!
그때, 문이 열리고 조교가 들어왔다. 숙소까지 10명의 아이들을 안내했던 그 조교였다. 조교 뒤에는 길쭉한 장치도 있었다.
“자, 점심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그 안에 용건만 빨리 끝내자고. 번호 순서대로 서.”
“예, 알겠습니다.”
번호 순서대로라는 말은 키 순서대로 서라는 말이었다.
로딘은 당연하다는 듯 맨 뒤로 갔다. 헤들러가 맨 앞, 그 뒤로 랜트와 코리 순이었다.
“키를 잴 테니까 이 위로.”
먼저 헤들러의 키를 쟀다. 그 후, 헤들러의 어깨너비와 가슴둘레, 허리와 허벅지의 두께도 측정했다. 마지막으로 발 크기까지 재고, 모든 신체 측정이 끝났다.
“저기, 이건 왜…….”
“너희들 몸에 맞춰서 옷을 지어야 하니까.”
“옷이요? 오늘 받았는데요?”
헤들러가 입고 있던 옷을 손으로 짚었다. 오늘 받은 건 뭐냐는 뜻이었다.
“그것만 입고 평생 살 거야? 체육복도 필요하고, 속옷도 있어야지.”
“아!”
“다음. 너. 위로 올라가.”
“예.”
헤들러부터 시작해서 랜트, 코리, 로딘 순으로 신체 측정을 마쳤다. 그러자 조교가 키를 재는 도구 뒤에서 커다란 그림 하나를 꺼내 왔다.
“이게 특수군 양성소의 지도다. 여기가 너희 숙소. 이 건너편에 있는 건물이 도서관이다. 중간에 있는 이 건물은 너희들이 수업을 듣는 곳. 입소식이 끝나면 매일 가야 할 곳이지. 이 건물 뒤쪽으로 연공실이나 여러 실습실이 있지만, 어차피 한동안 너희가 저기 갈 일은 없으니까. 이 세 곳만 알면 된다.”
운동장을 중심으로 ㄷ 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 로딘도 숙소로 들어오기 전에 다 봤던 건물들이었다.
쿵!
그림 소개를 마친 조교가 어마어마한 두께의 책 한 권을 가져왔다. 성인인 조교의 머리보다 더 두껍고, 크기도 엄청났다.
“여기서 레안토 글자 아는 사람?”
“저…, 조교님. 레안토 글자가 대륙 공용어 말씀하시는 겁니까?”
레안토 글자는 800년 전에 멸망한 레안토 제국에서 만든 글자였다. 현재는 대륙 대부분이 레안토 글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대륙 공용어’라고 부르기도 했다.
“맞아. 아네.”
“예, 제가 압니다.”
“이 책에는 우리 리아즈 왕국에서 사용하는 단어 대부분이 적혀 있다. 이 방에서 누가 물어보면 네가 알아서 잘 가르쳐.”
조교의 대답으로 책의 정체가 알려졌다.
일종의 단어 사전이었다. 로딘은 촌장님 댁에서 단어 사전을 본 적이 있는데, 조교가 놓고 간 사전이 그보다 열 배는 두꺼웠다.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어차피 공용어 수업은 입소식이 끝나면 바로 진행하니까. 넌 조금 돕는다고 생각하면 돼.”
“예.”
“입소식은 닷새 후에 있고, 옷은 나흘 후에 나온다. 또 앞으로 매일 아침 일곱 시에는 요 앞 운동장에서 운동을 한다. 아직 체육복이 없으니 기껏해야 운동장을 가볍게 뛰는 정도일 거다. 늦으면 크게 혼나니까 옆에 있는 친구들이 잘 깨워 주고.”
조교는 꽤 친절했다. 오전 내내 폭력을 행사했던 사람들과 같은 조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잘 깨우겠습니다.”
“시간 됐네. 식당은 1층이다. 내려가서 식사하도록.”
조교가 밖으로 나갔다. 동시에 랜트가 문고리를 잡고 바깥 동정을 살폈다.
“뭐 해?”
“조교님 사라지면 식당 가야지.”
“식당 가라고 했잖아. 그냥 가면 되지.”
헤들러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용기 있게 대장처럼 나섰지만, 몸놀림은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조교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가자.”
“두 배로 먹어야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