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50)
마법을 품다 (50)
로딘은 헤들러와 랜트가 팔찌로 노는 모습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인데.”
로딘이 작게 중얼거린 목소리였다. 그런데 신나서 움직이던 헤들러와 랜트가 동시에 반응했다.
“오늘부터 당직이 하비뇽이야?”
“중앙 건물 지하?”
“응. 오늘 끝내려고. 오늘만 바꿔치기하면 끝나니까.”
예상대로라면 하비뇽 위원이 야간에 중앙 건물을 지킬 것이다. 진즉에 만들어 둔 가짜 노예 스틱을 진짜와 바꿔치기할 기회였다.
“하비뇽 왔어?”
“아직. 이 인간은 항상 늦어.”
“이전에도 들어갔었다고 했지?”
“응. 네 번. 하비뇽이면 걸릴 일은 없어. 엘로브하고 크세르가 문제지.”
“우리가 도와줄 건 없어?”
“응. 없어. 그냥 기도나 해.”
로딘은 바로 인비져빌리티를 사용해 몸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내무실을 나가, 중앙 건물과 정문이 잘 보이는 옥상에 자리 잡았다.
밖에서 기다리기를 대략 1시간.
멀리서 마차의 실루엣이 보였다. 실루엣은 점점 커지더니, 잠깐의 멈춤도 없이 정문을 통과했다.
‘왔구나.’
뭐가 급한 일이라도 있는지. 크세르 위원은 하비뇽 위원이 중앙 건물로 들어오기도 전에 뛰쳐나왔다. 그리고 마차가 있는 마구간에서 하비뇽 위원과 한참 옥신각신하더니, 마차를 타고 출발했다.
‘매번 지각이라니. 저것도 습관인데. 그런데 급한 일이라도 있나?’
크세르 위원은 바빠도 바쁜 척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다급해 보였다.
크세르 위원이 탄 마차는 빨랐다. 순식간에 정문을 통과해 멀리 사라졌다.
‘가 볼까.’
먼저 호숫가의 심화 3 서고로 가서 이전에 제작한 가짜 노예 스틱을 챙겼다. 만들어 둔 양이 상당히 많아서, 미리 준비해 간 커다란 보자기에 담아야 했다.
다시 중앙 건물로 돌아왔다. 들어가는 방법은 전과 같았다.
투명한 상태로 지하 창고의 입구가 있는 곳으로 갔다.
3중의 마법적인 잠금장치는 마력을 이용해서 순식간에 해체했다. 물리적인 잠금장치는 이전에 만들어 둔 열쇠로 한 번에 열었다.
노예 스틱이 있는 상자를 열어서, 싹 다 뺐다. 그리고 미리 번호순대로 분류해 놓은 가짜 노예 스틱을 상자 안에 넣었다.
적당히 흐트러뜨려서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끝이구나.’
지하 창고를 나가려다, 반대쪽의 서류 묶음을 쳐다봤다.
자신의 정보만 따로 빼내서 폐기했기에 동기들의 정보는 저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래, 둘만 더 없애자.’
헤들러와 랜트의 정보가 적힌 서류를 쏙 빼냈다. 이전에 빼낸 자신의 서류까지 3장이 빠졌다.
대신 다른 서류에서 1장씩 빼내 대신 끼워 넣었다. 얼추 두께가 맞아 갔다.
‘이러면 모르겠지.’
별 티는 안 났지만, 괜스레 걱정되었다. 그냥 다시 꽂아 놓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모르겠다. 들키면 들키는 거지.’
노예 스틱을 다 바꿔치기한 것으로 최악의 상황은 막은 거다. 문제가 생겨서 의심받는다면, 그냥 싸우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힘에 부치면 도망치는 거고.
들어올 때의 역순으로 지하 창고를 빠져나갔다.
지하에서 훈련생들의 운명이 결정될 큰일이 벌어졌지만, 하비뇽 위원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중앙 건물을 나가서, 호숫가로 이동했다. 조교들 몇 명이 잡담을 나누며 순찰을 돌고 있었다.
로딘은 조용히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늘 훔쳐 온 진짜 노예 스틱을 호수의 밑바닥에 파 놓은 깊은 구덩이에 넣고, 위를 커다란 바위로 막았다.
‘이걸로 끝났구나.’
예전에 바꿔치기한 진짜 노예 스틱은 다른 장소에 묻었다. 코리가 바람 속성 훈련을 위해 종종 올랐던 산의 중턱 바위틈이었다.
오늘 묻은 진짜 노예 스틱은 5기부터 12기까지. 산의 중턱에 묻은 진짜 노예 스틱은 1기부터 4기까지였다.
애초에 따로 묻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원래는 산의 중턱에 있는 바위틈에 다 넣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겉에서 보는 것보다 바위틈의 내부가 작았다. 4기까지 넣고 나니, 더 넣을 공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강제로 틈을 벌리면 너무 티가 날 것 같았고.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야 했고, 고민 끝에 호수 아래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끝이구나.’
호수 밖으로 나왔다. 젖은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지토는 축축한 게 싫은지, 살짝 꿈틀대며 물기를 털어 냈다.
로딘은 운디네를 부려 옷이 된 지토와 몸에 묻은 물기를 완벽하게 날려버렸다.
‘뭔가 개운하네.’
내무실로 돌아와 인비져빌리티를 풀었다. 투명화 상태가 풀리자, 헤들러와 랜트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다 해결했어?”
“응. 끝났어. 이제 위원회는 우리 목숨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어.”
“어디 묻었는지 물어봐도 말 안 해 줄 거지?”
“원한다면 너희들 건 가져올 수 있어. 그런데 위치는 말해 줄 수 없어.”
헤들러도 딱히 대답을 들으려고 질문을 한 건 아니었다. 로딘이 노예 스틱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기 위해서 슬쩍 말을 던져 본 거였다.
“됐어. 난 그냥 너한테 맡기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
“나도.”
노예 스틱을 들고 다니는 건 위험했다. 가지고 다니다가 잃어버릴 수도 있고, 내무실에 두고 갔다가 다른 사람 눈에 띌 수도 있었다.
결국 어딘가에 숨겨 두는 게 최선인데, 그런 쪽으로는 로딘이 더 믿을 만했다.
마법사이니 검사는 가기 힘든 곳까지 들어갈 수 있을 터. 훨씬 찾기 어려운 곳에 숨겼을 것이다.
“아티팩트 확인은 다 해 봤어? 마음에 들어?”
“응. 써 보니까 실전에서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오더라.”
“나도. 아주 좋아.”
“그런데 로딘, 너는 아티팩트 없어? 우리 것만 만들었나?”
“없을 리가. 여기 있지.”
로딘이 소매를 걷어 왼쪽 팔목을 보여 줬다. 헤들러와 랜트에게 준 아티팩트와 비슷한 팔찌가 손목에 감겨 있었다.
“그런데 넌 여전히 그 긴 옷을 입고 다니네.”
“긴 옷? 아, 소매?”
“응. 안 답답해? 나 같으면 답답해서 그런 옷은 못 입을 것 같은데.”
로딘은 손가락을 다 가릴 정도로 소매가 긴 옷을 입고 다닌다. 헤들러는 그게 볼 때마다 신기했다.
어릴 때는 작은 몸집에 맞는 옷이 없어서 큰 옷을 입는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로딘은 겨우 5살이었고, 자신을 포함한 다른 훈련생은 9살 아니면 10살이었으니까.
그런데 로딘은 나이를 먹고 몸이 커진 후에도 계속 긴 소매를 고수했다. 옷을 맞출 때도 따로 ‘소매를 길게 해 주세요.’라고 주문할 정도였다.
“난 검사가 아니잖아. 소매가 좀 길어도 괜찮아. 그리고 어릴 때부터 이런 옷을 입어서인지, 긴 소매가 익숙하고 편해.”
“그래? 뭐, 네가 좋다면야.”
“응. 난 이게 편해.”
사실 로딘이 긴 소매를 고수하는 이유는 손가락으로 그리는 룬어. 즉, 수인법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수인법은 로딘이 가진 숨겨진 무기였다. 소매로 가리면 상대가 모르게 마법을 만들 수 있고, 중첩으로 상대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강한 위력의 마법을 시전할 수 있었다.
의외성으로 상대의 혼란을 유발하는 로딘만의 장치였다.
“말하다가 말았는데, 네 팔찌는 무슨 마법이 들어 있어?”
“조합 마법이야.”
“조합? 그게 뭔데?”
“이 팔찌에 담긴 마법은 리플렉션이라는 건데, 이 마법하고 내가 사용할 다른 마법하고 조합해서 다른 효과를 내지.”
로딘의 설명에도 헤들러는 이해를 못 했다. 랜트는 이해를 포기하고, 그냥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리플렉션은 굴절이라는 마법이거든. 이걸 빛 마법하고 조합하면 착시를 일으킬 수 있어. 바람 마법하고 조합하면 공격을 빗나가게 만들 수 있고.”
로딘은 의도적으로 마법을 복잡하게 구성해서 아티팩트를 만들었다. 마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반쪽짜리 마법을 담음으로써 로딘은 몇 분에 한 번씩 팔찌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남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수인법과 조합하기도 좋았다.
“아! 그러니까 마법사용 아티팩트라는 말이네. 이해했어.”
“이해한 거 맞아?”
“내가 쓸 수 없는 거잖아. 그거면 됐어.”
전혀 이해를 못 한 것 같지만, 로딘도 설명을 포기했다. 마법사용이라는 걸 알아들었으니 그거면 족했다.
사실 로딘이 만든 아티팩트는 팔찌 말고 하나 더 있었다. 로브의 안쪽에 숨겨 놓은 단검이었다.
마법사와 싸우면 기사들은 가까이 붙으려고 전력을 다한다. 기사가 근접전 전문가이기도 하고, 반대로 마법사는 근접전에 유독 취약하니까.
일단 가까이 붙으면 기사의 승산이 크게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로딘은 그런 상대를 찌를 수 있는 숨겨진 무기를 만들었다. 들키면 의미가 없지만, 상대가 모른다면 꽤 유용할 수 있는 무기였다.
* * *
잉그렘 제국은 결국 리아즈 왕국의 특수군 양성소를 치기로 했다.
대상은 오직 1명.
12살에 5서클 마법사가 되었던 천재를 본국으로 데려오는 게 목적이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잉그렘 제국은 노예가 불법인 나라. 노예의 인장이 찍힌 적국의 국민을 데려와서 노예로 부리는 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그래서 황실에서도 쉽게 결정을 못 내렸는데, 단 1명이라는 조건을 걸고 결국 계획을 승낙했다.
“목표는 14살 노예 1명인가?”
“목표는 그런데 할 일은 좀 있습니다. 우선 위원회 위원은 1명도 남기지 않고 죽여야 합니다. 자칫 그들이 노예 스틱을 부러뜨리기라도 하면, 우린 헛물만 켠 게 됩니다.”
“그건 그렇지.”
번스타인 공작의 물음에 대답한 사람은 처음 알브레이트 위원에게 14살짜리 5서클 마법사에 관해서 들은 페리오스 백작이었다.
“이제 하루인가?”
“예. 내일이면 특수군 양성소라는 곳을 눈앞에 두게 될 겁니다.”
잉그렘 제국의 특수군 양성소 타격대. 실제로는 어린 5서클 마법사 회수단은 5일 전에 국경을 넘어 리아즈 왕국으로 들어왔다.
숫자는 5데나급 기사와 5서클 마법사를 포함해서 모두 30명. 거기에 6데나급 기사인 번스타인 공작이 인솔자였다.
“방법은 생각해 뒀지?”
“셋 중 하나를 택할 생각입니다.”
“말해 봐.”
“하나는 몰래 들어가서 노예 스틱만 훔쳐 오는 겁니다. 저기 있는 돼지 놈이라면 출입할 방법을 알고 있을 테니까요.”
페리오스 백작이 옆에 있는 알브레이트 위원을 힐끔 쳐다보며 대답했다.
이번 일의 총지휘자인 번스타인 공작도 옆을 힐끔 쳐다봤다.
알브레이트 위원은 고개를 숙인 채,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최대한 시선을 피하려 아예 바닥만 내려다봤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 유명한 번스타인 공작이었기 때문이다.
잉그렘 제국에 6데나급 기사는 수십 명이지만, 번스타인 공작은 그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강자였다.
벌써 30년 가까이 흐른 과거의 전쟁에서 번스타인 공작은 13국 연합 소속의 기사 수백을 베면서 이름을 떨쳤다.
죽은 기사 중에는 경지가 같은 6데나급 기사도 많아서, 13국 연합에는 거의 공포로 자리 잡은 존재였다.
“장단점은?”
“장점은 큰 싸움 없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단점은 저 돼지가 딴마음을 품었을 때 우리 마법사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됩니다.”
기사에게 몰래 들어가는 재주 같은 건 없었다. 6데나급 기사인 번스타인 공작도 잠입 같은 건 할 줄 몰랐다.
결국 몰래 들어가서 열쇠를 가져오려면 5서클 마법사를 보낼 수밖에 없는데, 일단 들키면 살아 돌아오기 어려웠다.
상대방 측에는 5서클 위원 2명에 14살짜리 5서클 마법사도 있으니까.
“됐어. 우리하고 안 어울려. 두 번째 방법은?”
“야간에 기습하는 겁니다. 장점은 혼란한 상대를 몰아쳐서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둠이라는 변수 때문에 위원이라는 작자들을 놓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그건 안 돼. 다른 방법.”
“마지막은 간단합니다. 대낮에, 모두가 모여 있는 시간에 쳐들어가는 겁니다. 장점은 변수를 없애고 힘으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대신 우리 측 기사 몇은 다치거나 죽을 수 있습니다.”
밤은 변수의 시간이었다. 어둠을 잘 이용하면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도 있고, 강자의 손에서 약자가 도망치는 것도 가능했다.
잉그렘 제국에서 넘어온 전력은 이미 특수군 양성소를 한참 앞섰다. 변수 때문에 고생하느니, 차라리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낮에 상대를 쓸어버리는 게 나았다.
“그게 전부야? 다른 단점은 없고?”
“뭐, 리아즈 왕국의 왕궁으로 보고가 들어갈 수 있긴 한데, 시간상으로 보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말을 타고 왕복 4시간. 리아즈 왕국은 보고 체계가 복잡하니 실제로는 6시간 이상은 우리 시간입니다. 그 전에 목표를 달성하고 빠져나가면 됩니다.”
“좋네. 그 방법으로 진행하지. 내일 저녁에 도착하면 충분히 쉬고, 오전에 특수군 양성소라는 곳을 친다. 아시노프, 넌 특수군 양성소와 저놈들 수도 사이에 자리 잡고 통신 방해 마법만 써. 최소 2시간은 통신을 못 하게 막아야 한다. 할 수 있지?”
“2시간 정도라면 가능합니다.”
아시노프는 5서클 마법사. 6서클 마법사가 사용하는 통신 마법이 아닌 이상은 중간에 방해할 수 있었다. 대신 무한히 가능한 건 아니었다.
통신 마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통신 마법을 방해할 때 마력 소모가 훨씬 컸다. 통신 마법을 2시간 동안 막으려면, 통신 마법을 서너 시간 연속으로 쓰는 것만큼의 마력이 필요했다.
“작전 시작은 오전 10시다. 확실하게 12시까지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예. 공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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