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51)
마법을 품다 (51)
자려고 누웠던 로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헤들러와 랜트도 거의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바퀴 구르는 소리도 말발굽 소리에 섞여 있었다. 마차가 달리는 소리였다.
새벽 2시가 넘었다. 훈련생들은 당연히 다 잠들었고, 조교들도 슬슬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간이었다.
“뭐지?”
“글쎄다.”
헤들러가 창을 열어서 고개를 길게 뺐다. 양성소의 정문 쪽이 잘 안 보였다.
“내가 확인하고 올게.”
로딘은 바로 몸을 투명하게 만들고 내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옥상 쪽에서 양성소의 정문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정문을 통과해서 마차가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불과 2시간 전에 떠났던 크세르 위원의 마차가 분명했다.
‘뭐지? 갑자기 왜?’
마차는 마구간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중앙 건물 앞에 서더니, 크세르 위원이 급하게 뛰쳐나왔다.
‘급한 일인 것 같은데.’
크세르 위원은 유독 ‘품위’, ‘품격’을 따지는 인물이었다. 급하게 달리는 행위를 귀족적이지 못하고, 마법사에게 걸맞지 않다고 믿는 고리타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 크세르 위원이 달리고 있었다. 얼굴은 안 보이지만, 뭔가 다급해한다는 게 멀리 있는 자신에게도 느껴졌다.
‘뭘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중앙 건물로 따라 들어가서라도 뭔 대화를 하는지 듣고 싶었다.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아는데 욕심에 몸을 자꾸 들썩이게 됐다.
‘참자. 안 돼.’
그때 정문 쪽에서 또 마차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엘로브 위원의 마차였다.
역시나 미친 듯이 달리던 마차는 중앙 건물 앞에 섰고, 엘로브 위원은 허겁지겁 나와서 중앙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도저히 못 참겠다.’
더는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내무실로 돌아가 헤들러와 랜트에게 본 사실을 말해 줬다.
“위원들이 이 시간에 허겁지겁 돌아왔다고? 이상하잖아.”
“모르겠다. 무슨 일이 생긴 건 분명하다.”
헤들러와 랜트도 이거다 하고 생각나는 건 없었다. 그저 ‘뭔 일이 터졌구나.’ 하고 의심하는 게 전부였다.
“나 잠시 샤워실 좀 갔다 올게.”
“밖에 몇 분 있었다고 샤워를 또 해?”
“나 늦을 수도 있으니까 먼저 자라.”
로딘은 체육복을 챙기고 급하게 샤워실로 갔다. 새벽이라 샤워실 역시 을씨년스러웠다.
‘지토. 원래 모습으로.’
―꾸엥.
체육복이었던 지토가 순식간에 본래 형태로 돌아갔다. 꼬리가 길고 비늘이 달린 작은 새의 모습이었다.
‘본모습은 오랜만에 보네.’
―꾸엥. 꾸엥.
‘저기 저 건물 지붕으로 올라가서, 아래쪽에서 하는 얘기를 들어 줘.’
―꾸엥.
창을 열자, 지토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지토를 보내고, 로딘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서서히 청각을 열고 감각을 공유했다.
지토와 공유할 감각은 시각이 아닌 청각. 날갯짓 소리가 잠깐 들리더니, 이내 ‘탁’ 소리와 함께 고요해졌다.
그렇게 몇 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일 먼저 들리는 목소리는 크세르 위원이었다.
* * *
중앙 건물의 최상층.
크세르 위원을 포함한 3명의 위원 전부가 모였다.
원래 당직을 서는 중이던 하비뇽 위원은 사태 파악을 못 해서 어리둥절했다. 대체 ‘두 위원이 왜 한밤중에 나타났지?’하는 얼굴이었다.
반면 크세르 위원과 엘로브 위원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직접 달려온 것도 아닐 텐데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하아, 하비뇽 위원. 정말 태평하게 주무시고 계셨군요.”
“아, 예. 어제 좀 피곤한 일이 있어서 잠깐 졸았습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입니까? 크세르 위원, 엘로브 위원? 이 시간에 다 돌아오시고.”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 한 하비뇽 위원이었다.
엘로브 위원은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아는 게 워낙 없으니,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하아, 근처에 잉그렘 제국군이 왔어요.”
“벌써 왕도가 위험하단 말입니까? 아직 전선은 좀 더 북쪽일 텐데.”
“아니요. 왕도가 아니라 우립니다. 우리가 목표라고요. 정보 부서에서 제국군의 회의 내용을 도청했답니다.”
“아!”
그제야 하비뇽 위원도 사태를 알아챘다. 약간 흐리멍덩하던 눈도 순식간에 또렷해졌다.
“아니, 대체 왜?”
“이유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대로라면 해가 뜨는 내일이면 도착할 거예요.”
“흐음. 맞서 싸워야겠군요. 어차피 소규모 병력만 보냈을 테니, 우리가 지진 않을 겁니다. 우리 전력이 약한 것도 아니고.”
하비뇽 위원의 말에 크세르 위원이 고개를 저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하비뇽 위원의 말이 맞다. 특수군 양성소의 전력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6데나급 기사가 단장으로 있는 근위 기사단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리아즈 왕국 내에 특수군 양성소 수준의 전력을 가진 기사단은 없었다. 왕궁에서 특별히 선별해서 관리하는 마법 병단과 비교해도 크게 꿀리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명! 다수의 인재를 우습게 처리할 수 있는 강자가 문제였다.
“아니요. 우린 무조건 도망쳐야 합니다.”
“왜 이러십니까? 아직은 시기가 아니에요. 가산도 정리가 덜 끝났고요.”
“이쪽으로 오고 있는 제국군에 번스타인 공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 번스타인 공작.”
번스타인 공작은 잉그렘 제국 소속의 기사 중에서 가장 유명했다. 리아즈 왕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공포가 된 이름이었다.
“페리오스 백작의 목소리도 들었답니다.”
“아!”
번스타인 공작과 페리오스 백작. 둘 다 6데나급 기사였다.
번스타인 공작은 오랜 경력으로 많은 공을 쌓았고, 페리오스 백작은 한때 마스터를 넘볼 수 있는 유망주로 유명세를 얻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왕실에 보고는 했습니까? 중앙군이 도와주면 번스타인 공작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수도 방위 사단도 있고.”
여전히 왕도에는 많은 병력이 남아 있었다.
비록 절반이나 죽었지만 근위 기사단도 있고 수도 방위 사단, 왕실 친위대, 왕도 수호 기사단까지.
제국에서 보낸 소수의 병력 정도는 충분히 이겨 먹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이들이 움직이면 천하의 번스타인 공작도 무섭지 않았다.
“물론 보고했지요. 아니, 그쪽에서 우리한테 연락을 줬습니다. 제국군을 막고 있으면, 뒤에서 공격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럼, 우리도 어서 준비해야겠군요.”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우리가 온 겁니다. 우리는 의견이 갈렸어요. 저는 하비뇽 위원처럼 맞서 싸우자는 의견이고 크세르 위원은 당장 도망치자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크세르 위원과 엘로브 위원은 특수군 양성소로 돌아오기 전에 이미 한 차례 의견을 나눴다. 두 의견 모두 나름대로 근거가 있어서,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크세르 위원은 대체 왜 도망을…… 아직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하비뇽 위원, 왕실을 믿으십니까? 뒤에서 공격하겠다? 언제요? 우리가 다 죽은 후에?”
“아니. 그래도 뒤에서 공격하겠다고 했으니 하겠지요.”
크세르 위원은 속 편한 소리만 내뱉는 하비뇽 위원과 엘로브 위원이 답답했다.
지금 왕실은 자신들의 편이 아니었다. 잉그렘 제국군이 더 미울 뿐, 특수군 양성소 역시 눈엣가시인 건 마찬가지였다.
“물론 하겠지요. 바로 하겠다고 하지는 않았지만요. 그리고 제가 어떤 부대를 보낼 거냐고 물으니, 말을 얼버무리더군요. 제국군이 코앞까지 왔는데 아직 결정되지 않았을까요? 아니요. 외부에서부터 포위망을 만들고 있어서 그런 겁니다.”
“포위망? 제국군을 한 놈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 같은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우릴 살릴 생각이라면 포위망 형성과 동시에 번스타인 공작과 페리오스 백작을 붙잡아 둘 강자도 보냈어야죠. 우리가 뭔 수로 그 둘을 막습니까? 하비뇽 위원, 번스타인 공작을 막을 수 있습니까? 페리오스 백작은요?”
“아! 번스타인 공작은 그러니까……, 어…….”
하비뇽 위원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이대로 있으면 자신이 번스타인 공작이나 페리오스 백작의 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순식간에 등줄기가 축축해졌다.
‘말도 안 돼. 못 막아.’
하비뇽 위원은 번스타인 공작과 검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앞에 서기도 싫었다.
한창때의 자신이라도 번스타인 공작은 못 막는다. 고작 경지 하나 차이였지만, 5데나급 기사와 6데나급 기사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하물며 지금의 자신은 이미 기사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망가진 상태였다.
두꺼워진 허리, 사라진 복근, 빈약한 체력 등.
기사다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몰골이었다.
“하비뇽 위원, 엘로브 위원. 잘 들으세요. 왕실에선 우리를 번스타인 공작을 잡기 위한 미끼로 사용할 겁니다. 기왕이면 우리 위원들이 다 죽은 후에 움직이겠죠. 그래야 특수군 양성소를 꿀꺽할 수 있을 테니까.”
“이해했습니다. 크세르 위원. 우린 버림받았군요. 하아, 도망쳐야겠네요.”
“예.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번 기회에 여길 뜹시다. 안 그래도 불안했어요. 전황은 점점 안 좋아지는데, 정보는 띄엄띄엄 들어오고.”
“예, 알겠습니다. 살아 있는 게 중요하죠.”
드디어 엘로브 위원과 하비뇽 위원이 마음을 바꿨다. 이곳에 남아 봐야 결국 말로가 좋지 못할 듯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정말 운이 좋았어요. 그래도 이런 정보를 일찍 얻었으니, 그나마 빠져나갈 여유가 생겼어요.”
“정보 부서에 고마워해야겠죠.”
이번에 정보를 습득한 건 순전히 운이었다. 정보 부서에서조차 ‘운이 좋았다.’라는 걸 부정하지 못했다.
감시를 위한 최선은 정령을 부리거나 5서클 파밀리어 마법을 사용하는 것.
그런데 정령사의 숫자는 턱없이 적고 5서클 마법사는 전투에 쓸 자원도 부족했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각 나라는 소리를 흡수하는 아티팩트를 사용했다. 여기저기 아티팩트를 심어 놓고, 들리는 소리를 수집해서 적의 침입이나 이동 방향 등을 예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선은 넓고, 아티팩트 수는 부족했다.
보통 100미터 거리를 두고 소리 흡수 아티팩트를 설치하는데, 아티팩트가 소리를 흡수할 수 있는 거리는 고작 4~6미터 거리에 불과했다. 아티팩트의 범위가 닿지 않는 모든 곳이 감시의 사각인 셈이다.
그런데 몇 안 되는 그 감시 범위 안, 소리를 흡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잉그렘 제국군이 숙영지를 꾸렸다. 같은 장소에서 특수군 양성소를 공격할 계획도 세웠다.
단 몇 미터만 더 이동하고 숙영지를 꾸렸거나 혹은 아티팩트를 찾기 위해 공을 들였다면, 정보가 새어 나가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그러면 이제 어쩌실 겁니까?”
“전에 정해 둔 노예들을 데려가야겠습니다. 잊으신 건 아니죠?”
“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도 155번부터 여럿 정했었죠.”
“목록은 기억하시죠?”
“따로 적어 뒀습니다. 제가 16명, 엘로브 위원이 19명, 크세르 위원이 10명. 맞죠?”
하비뇽 위원이 서랍에서 예전에 적어둔 목록을 꺼내 읽었다. 3명의 위원이 나눠 가지기로 한 3기부터 5기까지의 45명이었다.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합니까?”
“그게 좋기는 한데. 새벽이라… 아무래도 조교들을 불러서 조용히 빼내는 게 낫겠습니다.”
이 시간에 훈련생 전원을 깨우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훈련생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난리를 치면 그들도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인지할 게 분명했다.
“임무라고 해야겠네요.”
“예. 중요한 임무라고 하고. 은밀하게 불러내야죠.”
“시간은 괜찮습니까?”
“몇 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으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아! 108번 노예 스틱은 제가 떠나는 순간에 부러뜨리겠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로딘을 잊지 않았다. 돈줄이지만 위험한 녀석이라, 반드시 처리하고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디로 갈 생각입니까? 저는 멜코스로 가려고 했는데.”
“어차피 왕국을 떠나려면 멜코스뿐이지 않습니까? 저도 멜코스로 갑니다.”
“저도 멜코스에서 배를 탑니다. 중앙 대륙까지는 같이 가시겠습니까?”
크세르 위원이 마지막에 하비뇽 위원과 엘로브 위원에게 제안했다. 리아즈 왕국을 벗어날 때까지는 함께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다.
멜코스는 리아즈 왕국 최남단의 항구 도시였다. 중앙 대륙으로 가는 배편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서대륙에서 중앙 대륙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뿐이었다. 바닷길을 통해 가는 길과 북쪽의 지붕을 건너는 길.
북쪽의 지붕은 잉그렘 제국을 관통해야 갈 수 있는 곳. 당연히 후보지에서 제외였다.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갈 수 없는 것이, 대륙의 지붕은 지형이 워낙 험했다. 마차 같은 걸 끌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결국 남은 방법은 항구 도시 멜코스에서 배를 타고 가는 길뿐이었다. 가장 안전하고, 원하는 만큼 짐을 실을 수도 있었다.
대신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싸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숫자가 너무 많지 않겠습니까? 제 식솔에 노예도 만만찮은데, 여러분들까지 더하면. 으음, 중앙 대륙의 나라들이 견제할 수 있을 텐데요.”
“도착하면 흩어져야죠.”
“밤을 틈타서 도착하고 바로 갈라서면 됩니다. 저는 최종적으로 테비아 왕국이 목적지입니다.”
“그러면 일단 배를 타고 중앙 대륙까지 가는 건 함께 합시다. 중앙 대륙에 도착하면 그때 갈라서고.”
그들은 오랫동안 함께 지냈고, 그만큼 친분도 쌓았다. 하지만 등 뒤를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서로를 믿진 않았다.
적당히 함께 지내다, 적당한 때에 갈라서는 것. 그 정도면 만족이었다.
“움직이죠. 조교들은 제가 부르겠습니다.”
“저는 일단 노예 스틱부터 챙기겠습니다.”
“저는 교관들 불러서 상황을 설명하겠습니다. 대신 도주 방향은 최대한 사방으로 흩어지도록…….”
위원들이 바쁘게 흩어졌다.
그들의 얘기를 은밀하게 엿들었던 로딘 역시 지토를 불러들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