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52)
마법을 품다 (52)
지토가 창을 통해 돌아왔다. 지토를 체육복으로 바꾸고, 로딘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할까?’
노예 스틱을 부수는 건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진즉에 노예 인장의 폭발 속성을 지웠으니까. 지금 머리에 남은 인장은 단순한 그림에 불과했다.
문제는 위원들이 데려간다는 동기들이었다. 미리 빼내야 할지, 아니면 함께 이동하다 나중에 기회를 봐야 할지.
‘일단 동기들은 위원들과 함께 이동하는 게 낫겠어.’
전쟁이 벌어진 이 지역에 있어 봐야 좋을 게 없었다. 어차피 어딘가로 도망쳐야 한다면 중앙 대륙이 괜찮은 선택이었다.
‘나야 알아서 움직이면 되고.’
자신은 5서클 마법사. 포위된 상태가 아니라면 언제든지 몸을 뺄 자신이 있었다.
‘일단 가자.’
샤워실을 나와서 우선 310호 내무실부터 들렀다. 그곳에서 자고 있던 드록을 마구 흔들어 깨운 후, 질질 끌다시피 해서 301호로 돌아왔다.
“헤들러, 랜트. 일어나.”
막 잠들었던 헤들러와 랜트를 깨웠다. 드록은 그 와중에도 벽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았다.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이다.
벌떡!
잠에 취해서 헤매는 드록과 다르게 헤들러와 랜트는 몸에 손을 대자마자 눈을 떴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중요한 얘기야. 아까…….”
로딘은 자신이 엿들은 얘기를 헤들러, 랜트, 드록에게 전했다. 졸고 있던 드록도 어느새 잠이 완전히 달아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러니까 위원들이 우리를 데려갈 거라고?”
“아마 드록은 목록에 없을 거야. 부상이 있잖아. 위원들이 데려갈 리가 없지.”
드록은 아직도 완치되지 않았다. 목발 없이 걸으려면 열흘은 필요하고, 뛰어다니려면 한 달은 지나야 했다.
“그러면 날 왜 부른 거야?”
“넌 남을 테니까. 여길 수습해야지. 아! 노예 스틱.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전 기수 노예 스틱은 이미 바꿔치기했어. 혹시나 누군가 노예 스틱으로 협박하더라도 무시해. 가짜니까.”
드록은 뭔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노예 스틱 바꿔치기라니.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드록은 노예 스틱이 왕성에 있다고 알고 있었다. 초창기, 위원들이 왕도로 마차를 보내는 모습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진짜? 노예 스틱을 바꿔치기했다고? 내 것도?”
“응. 네 것뿐 아니라 전 기수 모든 노예 스틱을 다 가짜로 바꿔 놨어. 확인시켜 줄 수는 없지만. 그냥 날 믿어.”
드록은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옥죄던 족쇄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그냥 도망가도 되잖아.”
“노예 스틱이 없는 거지, 너희들의 노예 인장이 사라진 건 아니잖아. 귀족들한테 잡히면 다시 노예 취급일 거다. 실력이 있으니 대부분 호위로 쓰겠지만, 그렇다고 노예라는 사실이 사라지진 않아. 조금만 위험해져도 화살받이로 버려질 거야.”
리아즈 왕국만큼 노예 제도가 흥한 곳이 없었다. 서대륙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 노예가 가장 많고, 거래가 가장 활발한 나라였다.
게다가 대우도 엿 같았다. 리아즈 제국은 노예를 재미 삼아 죽여도 처벌받지 않은 유일한 나라였다.
“그럼 어떻게 하지?”
“날이 새면 제국군이 들이닥칠 거야. 어디로든 가야 한다면, 헤들러하고 랜트는 위원들하고 같이 움직여. 중앙 대륙으로 가는 배는 무조건 같이 타. 배에서 뭔 짓을 하든 그건 너희들이 그때 알아서 판단하고.”
일단 배에 타면 로딘이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온전히 헤들러와 랜트 그리고 위원들과 함께 움직이는 훈련생들의 선택에 달렸다.
로딘은 헤들러라면 옳은 결정을 할 거라 믿었다. 공부 머리가 좀 없을 뿐, 머리가 나쁜 친구가 아니었으니까.
“우린? 남은 사람은 어떻게 하면 되는데?”
“어떻게 하긴. 위원들이 떠나면 무조건 도망쳐야지. 다른 애들한테도 노예 스틱이 가짜라고 말하고.”
사실 로딘은 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노예 스틱을 확실하게 바꿔치기했지만, 과연 몇 명이나 그 말을 믿을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여기서 우물쭈물하는 훈련생도 나올 게 분명했다.
그러다 잉그렘 제국군을 만나면 좋은 꼴 보기 어려웠다. 어쩌면 텅 빈 특수군 양성소의 분풀이를 당할 수도 있었다.
리아즈 왕국군을 만나면? 지금처럼 노예로 부려지겠지만, 대우는 더 안 좋아질 게 불 보듯 뻔했다.
“어디로 가지?”
“어디든 최대한 빨리 이동하는 게 좋을 거야. 잉그렘 제국의 번스타인 공작하고 페리오스 백작이라고 했던가? 나도 그 사람들이 누군진 모르는데, 위원들 반응만 보면 엄청나게 강한 사람일 거야. 걸리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미친 듯이 도망쳐. 기왕이면 노예 제도가 불법인 곳으로.”
“베로스 왕국뿐인데 거기도 전쟁 중이잖아.”
“일단 거기로 가서 상황을 봐. 넌 머리가 좋은 놈이 아니지만, 함께 움직이는 사람 중에서 머리가 좋은 놈이 한 놈은 있겠지. 그놈한테 의견을 구해. 자존심 세우지 말고.”
로딘의 말이 자존심을 건드렸지만, 드록은 화를 내지 않았다.
로딘에게는 생명의 빚을 졌다. 뭔 말을 하든, 웃으며 받아 줄 수 있었다.
“너는 어쩔 건데?”
“위원 중에 한 놈 정도는 처리하려고. 위원 셋은 너희들도 부담스럽잖아.”
“그건…… 그렇지.”
이곳에 남은 위원회의 위원은 5서클 마법사 2명과 5데나급 검사 1명이었다.
아무리 녹슬었어도 경지가 아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들 셋을 헤들러와 랜트가 포함된 훈련병들만으로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아마 노예 스틱은 크세르가 일단 다 가지고 이동할 거야. 그러니까 그놈은 빼고, 나머지 둘 중 한 놈을 적당한 곳에서 처리하려고.”
“같이 움직이지 않을까?”
“목적지는 같아도 같이 움직이진 못해. 가진 재산을 옮겨야 하거든. 자기 집으로 먼저 이동하고, 거기서 각자가 알아서 멜코스로 갈 거야.”
셋이 함께 있으면 로딘도 섣부르게 나서기 힘들었다. 같은 경지의 마법사에 비해 강하다고 자부하지만, 셋을 상대로는 싸워서는 승산이 없었다.
“그러면 우리는 둘만 남는 거네.”
“그렇겠……, 어? 조교들 움직인다. 1층으로 모이고 있네.”
“그래? 난 내무실로 돌아갈게.”
드록이 문을 살짝 열더니, 잽싸게 사라졌다. 지금 모습만 보면 다리를 다친 사람 같지 않았다.
“우리도 자는 척할까?”
“헤들러, 너 신분패 있지? 황금색으로 된 거.”
로딘은 오래전부터 도서관 심화 1 서고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어쩌면 청개구리 심보인지도 모른다. 못 가게 하니까, 더 가 보고 싶다고 할까.
그래서 심화 1 서고에서 뭔가를 얻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궁금했을 뿐이다.
“어, 있지. 그거 연공실 들어갈 때 쓰는 건데.”
“그거 나 주라.”
헤들러가 옷걸이에 걸린 옷 주머니에서 신분패를 꺼내 건넸다.
어차피 앞으로 오러 연공실을 이용할 일은 없었다.
다른 어떤 곳에서 누군가 만든 오러 연공실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특수군 양성소에 있는 오러 연공실과는 작별이었다.
“우리 이제 다시는 못 보겠지?”
“글쎄다. 코리를 보낼 때도 그랬는데, 우리 웃으면서 헤어지자.”
“하아, 로딘. 네 덕분에 즐거웠어. 고마웠고.”
“공치사는 됐다. 나도 너희들 도움 많이 받았어. 우리 아쉬워하지 말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웃자고.”
코리를 보낼 때는 시원섭섭했다. 코리가 자유를 찾은 건 기뻤지만, 다신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 지금은 기쁨은 거의 없고 아쉬움만 가득했다.
아직 완전한 자유가 아니어서일까. 2명이라서 그런 걸까. 뭐라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래. 웃자.”
“조교 온다. 자는 척해라.”
“응. 로딘. 고마웠어.”
“나도. 로딘, 고마웠다.”
잠시 누워 있으니, 곧장 조교가 들어왔다. 급했는지, 노크도 없었다.
“57번! 58번! 호출이다.”
“흠냐.”
“57번! 58번! 호출이다! 장비 다 챙겨서, 상담실로!”
마음이 급한 조교가 헤들러와 랜트를 흔들어서 깨웠다. 열린 문 너머로 비슷하게 외치는 다른 조교의 목소리도 들렸다.
“호……출이요?”
“그래! 호출이다! 최대한 서둘러서 상담실로 가라! 장비 다 챙겨서 바로 출동할 수 있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헤들러가 잠이 덜 깬 척, 혼신의 연기를 보였다.
조교는 헤들러와 랜트가 확실하게 깬 걸 몇 번이나 확인하곤, 문밖으로 사라졌다.
“로딘, 우린 간다.”
“포션 챙겨 가. 9개 남았거든. 난 따로 챙겨 놓은 거 있으니까, 너희들이 다 가져가.”
“응. 고마워.”
옷을 입고 장비를 챙긴 헤들러와 랜트가 내무실을 나갔다.
* * *
필요한 훈련생을 죄다 데려간 후, 조교들도 사라졌다.
그때부터 드록은 각방을 돌면서 다른 훈련생들을 깨우러 다녔다.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정말 바쁘게 움직였다.
‘나도 움직여 볼까.’
일단 옷부터 챙겼다. 정복은 한 벌, 체육복은 전부, 그 외에 속옷과 신발, 생필품을 배낭에 쑤셔 넣었다. 코리 소유의 배낭도 잘 접어서 기존의 가방 안에 넣었다.
“흐음, 운디네. 내 물건 전부 다 씻어 줘.”
꾸벅!
운디네가 이불과 베개, 침대를 깔끔하게 세탁했다. 이걸로 로딘이 301호 내무실에 남긴 모든 흔적이 완벽하게 지워졌다.
“인비져빌리티.”
투명한 상태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최소한 1명은 지키고 있던 도서관의 입구에 아무도 없었다.
‘역시 다 떠났네.’
위원들이 조교들을 데리고 갈 생각은 아닐 거다. 수백 명을 먹이고 재우는 비용을 위원들이 감수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도망치라는 말 정도는 해 줄 거다. 조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행적을 숨기는 데 필요한 일이었다.
쩌적!
로딘은 입구를 막고 있는 문을 힘껏 밀었다. 경첩이 크게 흔들리며 균형을 잃었다.
“꽤 튼튼하네. 윈드 커터.”
아예 마법을 사용해 경첩을 잘라 버렸다. 기댈 곳을 잃은 문이 그제야 크게 넘어졌다.
“안 되지. 매직 핸드.”
마법을 사용해 문을 잡고 버텼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간 후, 문을 원래 자리에 대충 걸쳐 놨다.
자세히 보면 문짝이 뜯겼다는 걸 알겠지만, 과연 여기까지 와서 문을 살펴볼 사람이 있을까. 오늘만큼은 전부 살기 위해 바쁠 것이다.
일반 코너를 지나쳐 심화 서고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오른쪽은 파란색 신분패를 넣어야 하는 심화 2 서고. 참 많이 들렀고,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었다.
문을 멍하게 보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헤들러와 랜트를 보낼 때보다 더 기분이 이상했다.
‘청승이네.’
오늘 목적지는 그 건너편에 있는 심화 1 서고였다. 오러 관련 책이 있다고 해서 출입조차 할 수 없었던 곳. 그 서고의 문을 가만히 쳐다봤다.
“여길 드디어 열어 보네.”
헤들러에게 받은 황금색 열쇠를 문에 넣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자, 시간 없다.”
안으로 뛰듯이 들어갔다. 그리고 서고가 있는 쪽을 빠르게 훑었다.
“책은 대략 500권인가?”
심화 2 서고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책의 양이 적었다. 책장도 고작 3개가 전부였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부족해서 내용까지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책장 앞에서 제목만 빠르게 살폈다. 그러다 마음에 끌리는 책이 있으면 꺼내서 옆으로 빼 뒀다.
“10권. 최대로 잡아도 20권.”
전부 처음 보는 책들이었다. 모두 다 챙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쫓기듯 생활할 수도 있으니, 짐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었다. 머릿속으로 최대 권수를 정하고, 제목만 빠르게 읽어 나갔다.
터억! 터억! 터억!
옆으로 빼 둔 책이 10권이 넘어갔다. 슬슬 ‘더는 무린데’ 하는 생각을 할 즈음, 책장의 마지막 줄을 보게 됐다.
“책 제목이 ‘오러를 움직이는 룬’이라고? 룬이면 룬어를 얘기하는 거겠지?”
3권으로 된 책이었다. 필사본이었고, 만든 지 오래되지 않아 새것 느낌이 풍겼다.
“이것까지.”
골라낸 책은 모두 14권이었다. 따로 빼 둔 책을 코리의 배낭에 넣었다.
운이 좋았다. 진즉 떠난 코리의 짐을 위원회에서 아직 정리하지 않았다.
“이제 뭘 챙기나?”
배낭 2개를 각각의 어깨에 멨다. 옷을 담은 배낭은 가볍고, 책을 담은 가방은 무거웠다.
도서관을 나가 호숫가의 심화 3 서고로 갔다. 역시나 이곳도 지키고 있는 조교가 보이지 않았다.
심화 3 서고 안으로 들어가 물건들을 챙겼다.
아티팩트를 제작하고 남은 하급 마나석, 90% 정도 완성된 포션과 남은 약초들을 모아서 옷이 든 배낭에 욱여넣었다. 드디어 배낭 2개가 얼추 비슷한 무게가 되었다.
“짐 정리는 끝났고, 다 도망쳤으려나?”
투명화 상태로 느긋하게 운동장 쪽으로 이동했다. 급하게 특수군 양성소를 벗어나고 있는 조교와 교관들이 보였다.
‘세리온 교관도 보이네.’
교관들은 주로 말을 타고 도망쳤다. 원래 자기 말을 가지고 온 이들이 대부분이니, 자기 것을 가져가는 셈이었다.
반면 조교들은 모두 두 발로 뛰어서 특수군 양성소를 벗어났다. 평민 출신의 일반 병사들이라, 자기 말을 가진 이들이 거의 없었다.
‘이런 늦었나?’
중앙 건물 앞에 있던 2대의 마차 모두 보이지 않았다. 크세르 위원과 엘로브 위원이 이미 떠났다는 증거였다.
‘시간을 너무 허비했나 보네. 설마 하비뇽도 갔나?’
급하게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마구간 안에는 말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하비뇽이 타고 온 마차는 남아 있었다. 마부가 마차를 지키고 있었는데, 떠날 채비를 다 갖춰 놓은 상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툼한 뱃살을 흔들며 하비뇽 위원이 나타났다.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었고, 하비뇽은 커다란 가방을 든 채로 마차에 올랐다.
‘훈련생들이 안 보이는데? 누가 데려간 거지?’
위원마다 자기한테 배정된 노예를 데리고 떠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잠깐 볼일을 보고 온 사이에 45명의 훈련생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하비뇽 위원 옆에는 훈련생이 1명도 없었다.
‘위원 1명이 훈련생들을 죄다 끌고 간 것 같은데.’
로딘은 멀리 떨어져서 기척을 숨긴 채, 하비뇽 위원의 마차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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