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53)
마법을 품다 (53)
하비뇽 위원이 마차를 타고 급하게 사라졌다. 로딘은 투명화를 풀고, 멀어지는 마차를 노려봤다.
“하비뇽이 아니라, 엘로브나 크세르를 죽여야 하는데.”
하비뇽 위원이 오랫동안 훈련을 쉬었다는 건 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5데나급 기사였다곤 하지만, 과거의 실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헤들러, 랜트, 대런 정도만 나서도 승산이 있었다. 훈련생 몇 명이 더 돕는다면 지는 게 이상했다.
그래서 좀 강한 크세르 위원이나 엘로브 위원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 정도는 해 줘야 그들과 동행하는 훈련생들이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저것 볼일을 보는 사이에 크세르 위원과 엘로브 위원은 이미 사라졌다. 하비뇽 위원만 남았는데, 놈만 처리하기엔 뭔가 아쉬웠다.
“어쩔 수 없지.”
배낭에서 체육복을 꺼내고, 입고 있던 지토를 본체로 돌렸다. 지토가 작은 형체로 변하더니, 머리 위에 앉았다.
로딘은 꺼내 둔 체육복을 입고, 지토를 하늘로 보냈다.
‘주변 좀 살펴봐.’
크세르 위원이나 엘로브 위원을 찾기 위해 지토를 하늘로 날렸다. 지토가 높은 곳에 거의 정지하듯 비행 중일 때, 감각을 공유했다.
‘아! 이런.’
특수군 양성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차 2대가 세워져 있었다. 크세르 위원의 마차와 엘로브 위원의 마차였다. 거기에 특수군 양성소를 벗어난 하비뇽 위원의 마차가 합류했다.
말을 타고 있는 헤들러, 랜트를 포함한 훈련생들이 마차의 주변을 둘러쌌다. 마치 호위를 하는 듯한 진형이었다.
기마 수업을 받은 만큼 말을 못 타는 훈련생은 없었다. 몇 명은 좀 아슬아슬해 보였지만, 낙마할 것 같진 않았다.
‘셋이 함께 움직인다고?’
이건 자신의 실수였다. 당연히 따로 움직이다가 항구 도시 멜코스에 도착한 후에나 합류할 줄 알았다.
‘등 뒤를 맡길 정도로 믿는다고? 그럴 리가.’
지토가 위원들의 마차에 시선을 고정했다가 서서히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북쪽 멀리서 또 다른 무리를 발견했다.
‘아! 이거였구나.’
북쪽에 나타난 무리는 대략 30명 정도로 이뤄져 있었다. 병장기를 제대로 갖춘 그들의 복장은 리아즈 왕국의 병사와 달랐다.
‘벌써 제국군이 오다니.’
세 위원은 무시무시한 번스타인 공작과 제국군이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뒤를 쫓긴다는 두려움이 위원들을 뭉치게 했다.
‘거리는 대략 8킬로미터? 9킬로미터? 아직은 거리가 있지만.’
리아즈 왕국이 잉그렘 제국의 바하스 백작을 죽일 때, 최정예인 근위 기사단을 동원했다. 기동성을 확보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리아즈 왕국으로 들어온 제국군도 하나같이 정예일 것이다. 병사는 없고, 전원 기사. 거기다 마법사도 일부 섞여 있을 게 분명했다.
‘최대로 잡아도 2시간이야. 지체하면 따라잡힌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제야 눈앞에 닥친 위험이 실감이 되었다.
“로딘!”
“어? 드록! 여기서 뭐 해?”
“애들은 다 깨웠거든. 노예 스틱 얘기도 이미 했고.”
드록의 말투는 해맑았다. 마치 ‘나 잘했지? 칭찬해 줘.’라고 바라는 듯했다.
“당장 도망쳐. 북쪽으로는 절대 가지 말고. 서쪽도…… 왕도가 있으니까 피하고. 남쪽이나 동쪽이야. 무조건 달려.”
“왜? 아직 여유 있지 않아?”
“제국군이 가까이 왔어. 생각보다 훨씬 빨라. 걸리면 너희들은 화풀이 상대가 될 거야.”
“아!”
드록이 급하게 훈련생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로딘도 바로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달렸다.
‘나도 걸리면 위험해.’
다행히 로딘에겐 지토가 있었다.
환수인 지토는 바람의 정령보다 더 높은 곳에서 훨씬 넓은 범위를 감지할 수 있었다. 미리 보고 피하면 어지간해선 만날 일이 없었다.
또 시야를 공유했을 때, 정령사는 자기 시력이 적용되지만 환수 소환사는 환수의 시력이 적용된다. 로딘은 지토의 어마어마한 시력으로 지상을 세밀하게 살필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생겼네.’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제국군과의 거리는 벌어졌다. 대신 위원들의 마차와는 일정 거리를 두고 따라가게 됐다.
* * *
마차의 속도와 맞춰 따라가기를 2시간.
위원들은 센토스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센토스는 리아즈 왕국의 손꼽히는 휴양 도시로,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왕도하고도 가까워서 귀족들이나 돈 많은 상인들의 별장이 많았다.
‘멋지네.’
서서히 떠오르는 해가 센토스의 정경을 비췄다. 백색으로 만든 벽과 파란색 지붕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서쪽을 막고 있는 산과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적당한 폭의 강 그리고 곳곳에 지어진 풍차와 멋들어진 저택이 눈을 사로잡았다.
도로는 넓고 깨끗했으며, 도로와 인접한 상점의 간판에는 상점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귀족은 이렇게 사는구나.’
센토스는 누구라도 살고 싶어 할 아름다운 도시였다. 로딘도 순간 이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을 잊지 말아야지.’
센토스로 들어선 위원들의 마차는 세 방향으로 갈라졌다. 위원들이 각자 자기 집으로 향한 것이다.
로딘은 잠시 고민하다가 엘로브 위원의 뒤를 따랐다.
하비뇽 위원과 크세르 위원은 집이 가까워 보였다. 비슷한 방향으로 가다가, 오래 지나지 않아서 바로 마차가 멈췄다.
반면 엘로브 위원의 마차는 남쪽으로 계속 이동하다가, 옆으로 빠졌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달리다가 커다란 저택에 멈췄다.
거의 남쪽 성문과 가까운 곳으로, 북동쪽에 있는 다른 위원들의 집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서 처리하자.’
좀 시끄러워지겠지만 이곳이 최선이었다. 센토스를 떠나면 배를 탈 때까지 위원들은 흩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저택 사이의 거리는 꽤 멀어. 소리가 들리더라도 오는 데 1시간은 걸려.’
위원들의 숫자를 줄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로딘은 마음을 굳히고 마법을 사용했다.
“인비져빌리티.”
먼저 몸을 투명하게 만들고, 저택으로 다가갔다.
저택 입구를 지키는 자들이 꽤 많았지만, 투명한 상태의 로딘을 알아차릴 정도의 실력자는 없었다.
‘플라이.’
룬어를 읊어 마법을 사용했다. 하늘을 날아 저택 담을 넘었다. 그리고 편안한 걸음으로 저택 안의 본채로 향했다.
본채 앞에는 19명의 훈련생이 편한 자세로 쉬고 있었다. 그중 1명은 랜트였다.
“여기서 뭐 해?”
랜트의 바로 뒤에 붙어서 작게 중얼거렸다.
랜트는 움찔했지만, 다행히 소리를 내진 않았다. 대신 먼 산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연기 참 못해.’
당황한 랜트를 보니, 웃음이 났다. 아마 얼굴도 시뻘겋게 변했을 것이다.
“작게 얘기해. 작게.”
“대기하라고 했다. 짐 옮긴다고.”
“짐?”
“창고 열면 짐 옮긴다.”
쫓기는 와중에도 위원들이 자기들 집으로 온 이유. 평생 모아 온 재산을 챙겨 가기 위함이었다.
위원들은 오래전부터 타국으로의 도주를 계획했다. 그 시간 동안 덩치가 큰 물건들은 대부분 처리했고, 창고에는 금과 귀금속처럼 값비싼 것만 남았다.
“곧 나오겠군.”
“엘로브. 오늘 죽어?”
“응. 죽어. 넌 그냥 다른 위원들 기다리면 돼.”
로딘은 본채의 문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돌렸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서서히 열렸다.
갑자기 들린 문소리에 훈련생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 금방 관심을 껐다.
로딘은 반쯤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문 역시 조심스럽게 닫았다.
‘가족이 없나? 아니다. 미리 멜코스로 보내 놨겠구나.’
위원들은 거의 1년 전부터 리아즈 왕국을 뜰 준비를 해 왔다. 가족들도 바로 도망칠 수 있도록 배를 탈 수 있는 항구 도시 멜코스로 보내 놓은 지 오래였다.
‘엘로브네.’
엘로브 위원은 구석에 있는 식당에 있었다. 자신이 있는 곳과 꽤 가까웠다.
‘뭐 하고 있는 거지?’
엘로브 위원은 마법사. 이 정도 거리면 자신이 사용한 투명화 마법의 마력을 감지했어야 했다.
그런데 아직도 별 반응이 없었다.
대체 뭘 하는 건가 싶어서 식당 쪽으로 다가갔다. 들킬 걸 각오한 움직임이었다.
‘어라?’
엘로브 위원은 식당 벽에 붙어 있는 장식장을 밀고 있었다. 장식장은 시계 방향으로 반 바퀴 돌았고, 원래 장식장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뭐지? 은신처 같은 건가?’
구멍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마력등은 벽에 박혀 있지만, 엘로브는 마력등을 켜지 않고 아래로 내려갔다.
‘뭔지는 모르지만. 기회다.’
로딘은 엘로브 위원의 뒤를 따라가며, 아래로 내려가는 입구 쪽을 실드로 막았다.
간단한 방식이지만, 안의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걸 어느 정도는 차단할 수 있었다.
“음?”
아래로 내려가던 엘로브 위원이 순간 걸음을 멈췄다.
“윈드 스톰!”
마법을 먼저 쓴 사람은 로딘이었다. 로딘은 엘로브 위원이 멈칫하기 무섭게 미리 준비해 둔 5서클 마법을 날렸다.
“크아악!”
엘로브 위원은 지하에 숨겨 둔 뭔가를 생각하느라, 주변에 대한 경계가 흐트러진 상태였다. 그래서 로딘의 접근을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내부로 무사히 내려오면서 뒤쪽에 뭔가 있다는 걸 알아챘지만, 너무 늦었다.
로딘의 5서클 마법 윈드 스톰은 엘로브 위원의 상체를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뒤늦게 엘로브 위원이 몸을 던졌지만, 로딘의 마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이스 스피어.”
허공에 만들어진 얼음의 창이 날아갔다.
순간적으로 엘로브 위원이 몸을 틀었지만, 조금 부족했다. 얼음의 창은 엘로브 위원의 옆구리를 뚫었다.
“누, 누구.”
“파이어 월.”
당황한 듯한 음성을 내뱉었던 엘로브 위원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찢었다. 마법 스크롤이었다.
로딘은 반사적으로 불의 벽을 만들어서 앞을 막았다. 동시에 어제 완성한 아티팩트 단검을 꺼내 엘로브 위원에게 던졌다.
채앵!
파앗!
“크윽!”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빛에 엘로브 위원이 신음을 흘렸다. 반사적으로 고개까지 숙였다.
로딘이 던진 칼은 평범한 무기가 아니었다. 어제 완성한 아티팩트로, 충격이 가해지면 빛이 터져 나오는 마법이 담겨 있었다.
어쩌다 보니 엘로브 위원을 상대로 먼저 사용하게 됐지만, 원래는 검이나 방패로 날아오는 물체를 본능적으로 쳐 내는 검사를 상대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로딘은 눈을 감고 몸을 숙인 엘로브 위원을 보며, 빠르게 수인을 맺었다. 입으로 룬어까지 영창하고 수식 계산까지 순식간에 끝냈다.
“블랙 썬더 볼트.”
검은색의 번개가 엘로브 위원의 정수리를 뚫었다. 머리부터 까맣게 타 버린 엘로브 위원이 그 자리에 무너졌다.
“후우, 첫 실전인가?”
아쉬움도 있고,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선공으로 치명상을 주고 시작했지만, 전투를 순식간에 끝내지 못했다. 좀 더 집중했다면 상대가 거리를 벌리기도 전에 끝낼 수도 있었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마력 소모를 최소화했다는 점이었다.
상당히 효율적으로 싸웠다. 전투 중에서 수식 계산은 빠르고 정확했고, 손가락으로 맺은 수인 역시 오차가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쉽게 잡았네. 운이 좋았어.”
엘로브 위원은 주변을 느끼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스스로 마력에 대한 감각을 죽이고 있었다.
뛰어난 감각이 제 역할을 하려면 뭔가를 느끼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어야 했다. 시력이나 청각과 다를 바 없었다.
아무리 귀가 좋아도 딴 데 정신이 팔려 있으면 주변에서 하는 얘기가 잘 안 들리기 마련이다. 마력에 대한 감각도 같아서, 주변을 느끼려고 해야 마력의 유동이 느껴진다.
엘로브 위원은 지하로 내려온다는 생각에 정신이 팔려서, 주변 경계를 게을리했다. 로딘이 거의 3미터까지 가까워진 후에야 알아차린 건 결국 엘로브 위원의 실수였다.
“그런데 여긴 뭐 하러 온 거야?”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단검을 다시 챙겼다. 쓰러진 엘로브 위원의 시체도 매직 핸드를 사용해서 옆으로 치우고, 계단을 마저 내려갔다.
“으음, 이거.”
한쪽에 놓여 있는 건 스태프였다. 하늘색 몸체와 붉은 구슬이 박힌, 상당한 수준의 마법 장비였다.
“나한테는 안 맞는데.”
수인을 쓰는 로딘에게 평범한 무기는 어울리지 않았다. 양손을 다 사용할 수 있게 특별히 제작한 무기가 아니면 앞으로도 쓸 생각이 없었다.
“좋은 스태프이긴 하네.”
스태프의 위에 박힌 마법 구슬에서 상당한 마력이 느껴졌다. 이 정도 마법 구슬이면 가격도 상당할 터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