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54)
마법을 품다 (54)
마법사용 무기는 오브(Orb), 완드(Wand), 스태프(Staff). 이렇게 3가지가 있었다.
오브는 속성이 담긴 커다란 구슬을 뜻하고, 완드는 오브를 박아 놓은 작은 막대기였다. 스태프는 긴 나무에 오브를 박아 놓은 것.
결국 마법사 무기의 핵심은 오브. 즉, 어떤 구슬을 쓰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런데 이건 몸체도 특별한 것 같은데.”
하늘색을 가진 나무가 몸체였다. 로딘은 이 나무가 뭔지 알고 있었다.
“아로바인, 이거 마수림에서나 얻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아로바인은 마력을 머금는 능력으로는 꽤 알아주는 재료였다. 아로바인을 사용하면 작은 크기에 많은 마력을 담을 수 있었다.
로딘은 스태프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로바인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컸다.
“스태프 재료로는 별론데.”
아로바인은 무른 나무였다. 세월에 풍화되지 않은 특성이 있지만, 조금만 강한 충격을 받아도 부러진다.
멋모르고 스태프로 바닥을 강하게 내려치기만 해도 쩍 갈라질 것이다.
“고대 서적에서는 아로바인을 초보 마법사들의 스태프에 쓴다고 했었지.”
아주 오래된 서적에서 나온 얘기였다. 대략 3천 년의 얘기로, 책도 원본이 아닌 필사본이었다.
“그냥 팔까?”
스태프를 통째로 팔아도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 크기의 불 속성 오브와 희귀한 재료인 아로바인으로 구성된 스태프면 탐내는 마법사들이 꽤 많을 것이다.
“따로따로 빼서 아티팩트를 만들어도 되고.”
일단 고민은 나중에.
지하에 만들어 둔 공간에는 스태프 외에도 신기한 물건이 하나 더 있었다. 로딘의 시선이 새로운 물건에 꽂혔다.
“유물 같은데.”
사람 모양의 조각상이었다. 크기는 손바닥 하나보다 작았는데, 재질은 확인이 안 되었다. 게다가 안에 담긴 마력이 상당했다.
“아티팩트. 그것도 아주 오래된.”
로딘은 조각상을 쥐고 마력을 살짝 주입해 봤다. 그리고 마력을 통해서 내부에 새겨진 마법진의 룬어를 하나하나 읽어 나갔다.
“아! 이럴 때가 아니구나.”
환수인 지토는 지금도 하늘 높은 곳에서 자신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방금 지토를 통해 크세르 위원과 하비뇽 위원의 접근을 보고받았다.
마력을 다시 풀고 조각상을 가방에 넣었다. 스태프도 일단 챙겼다.
“너무 마음 놓고 있었네. 엘로브를 욕할 게 아니었어.”
이곳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지토가 아니었다면, 크세르 위원과 하비뇽 위원을 이곳에서 마주칠 뻔했다. 둘에게 협공당하면 자신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계단을 빠르게 통과해 1층으로 올라왔다.
방음을 위해 통로에 만들어 둔 실드를 없애고, 반쯤 열린 장식장을 다시 원위치했다. 대신 바닥에 희미한 흔적을 의도적으로 남겼다.
‘이렇게 해야 랜트가 고생을 안 하겠지.’
이곳에 도착할 크세르 위원이나 하비뇽 위원이 안에서 싸웠는데 훈련생들은 뭐 했냐고 추궁할 수 있었다.
그럴 때, ‘지하에서 싸워서 훈련생들은 못 들었다.’라는 핑곗거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희미하게 흔적을 남겼다.
‘랜트, 잘 지내라.’
이미 해가 완전히 떠서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로딘은 문이 아니라 빛이 들어오는 창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랜트를 비롯한 훈련생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 * *
밖으로 나오고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 크세르 위원과 하비뇽 위원이 엘로브 위원의 저택에 도착했다.
입구에 여전히 멍하게 서 있는 훈련생들을 보며, 크세르 위원이 혀를 끌끌 찼다.
“대체 뭐 한다고 아직 안 나오는 건지?”
“평소에는 빠릿빠릿하던 사람이 오늘따라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똑똑!
둘은 대화를 나누며 문을 두드렸다. 당연히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엘로브 위원! 엘로브 위원! 나 크세르 위원입니다.”
“엘로브 위원! 뭐 하십니까? 바빠 죽겠는데.”
크게 소리쳐도 안은 조용했다. 크세르 위원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어이, 거기 58번!”
“예. 58번 훈련병입니다.”
크세르 위원이 콕 집은 대상은 랜트였다.
3기 중에서는 108번과 함께 57번과 58번이 가장 유명한 번호였다. 그중 엘로브 위원과 함께 움직이던 사람은 58번 랜트였다.
“엘로브 위원은 안 나왔나?”
“1시간 전에 들어간 이후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너희들은 뭐 하는데?”
“나중에 창고 문 열어 주면 옮길 짐이 있다면서 대기하라고 했습니다.”
크세르 위원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불길했다. 1시간이나 지났는데 나오지 않는다니. 어디서 졸고 있는 게 아닌 이상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크세르 위원. 강제로라도 들어가야겠습니다.”
“그래야겠네요.”
부우웅! 콰아앙! 파직!
하비뇽 위원이 검을 뽑아 힘으로 문을 부쉈다. 손잡이 부근이 뜯겨 나가자, 그 사이로 손을 넣어 문을 열었다.
“조용한데요?”
“조심하세요. 혹시나 제국군이 왔을지도 모릅니다.”
“밖에 훈련생들이 있었잖아요. 엘로브 위원이 싸웠으면 훈련생들이 몰랐을 리 없습니다.”
둘은 흩어져서 저택을 수색했다. 2층으로는 하비뇽 위원이 올라갔고, 1층은 크세르 위원이 샅샅이 뒤졌다.
“없습니다. 대체 어디로 간 건지.”
“하비뇽 위원. 여깁니다. 이쪽으로 와 보세요.”
2층에 있던 하비뇽 위원이 급하게 내려왔다.
크세르 위원은 장식장 앞에서 바닥에 남은 흔적을 손으로 가리켰다.
“하아, 하비뇽 위원. 애도 아니고. 뭔 비밀 공간 같은 걸 만드는지.”
“그러게 말입니다. 엘로브 위원!”
똑똑!
“엘로브 위원! 저 하비뇽 위원입니다. 대답 좀 하세요.”
장식장을 두드리며, 이름을 크게 불렀다. 안에선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일단 당겨 볼까요?”
“이거, 엘로브 위원이 화내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요. 어차피 여길 떠나면 다신 못 오는 곳입니다. 좀 망가뜨려도 상관없어요.”
“그런가요?”
하비뇽 위원이 힘을 줘서 장식장을 당겼다. 제대로 된 방법으로 여는 게 아니라, 걸쇠에 걸리는 느낌이 났다.
하비뇽 위원은 무시하고 힘을 줬다. 그걸로 부족해서 오러까지 사용해 장식장을 잡아당겼다.
끼이이익! 탕!
기묘한 소리와 함께 장식장과 연결된 어떤 장치가 부러졌다. 그리고 장식장은 힘없이 스르르 열렸다.
“하비뇽 의원! 안에 있으면 말이라도 좀 하시지.”
“하비뇽 위원. 우리 시간 없습니다. 당장 움직여야…….”
“허업!”
두 위원은 뒤늦게 까맣게 타서 죽은 시체를 발견했다. 얼굴을 발로 슬쩍 돌려 보니, 엘로브 위원이었다.
두 위원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혹시나 이 안에 흉수가 있을 수도 있었다.
크세르 위원이 마법 하나를 캐스팅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5서클 마법 헬 레이저였다. 시동어만 말하면 바로 발현되는 상태로,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하비뇽 위원은 반사적으로 크세르 위원의 앞을 막은 채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툭툭 하는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둘의 몸이 움찔거렸다.
“없습니다.”
“비었어요. 하아아.”
“누구 짓일까요?”
“모르죠. 엘로브 위원은 마법에 당했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떤 마법에 당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몸을 이 정도로 까맣게 태울 정도면 불 마법을 장시간 쬐거나, 아니면 6서클 이상 마법에 당해야 하는데.”
로딘은 원래 존재하는 4서클 마법 썬더 볼트를 개량했다.
마법사로부터 날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대상의 머리 위에서 떨어지게 만들고, 번개의 위력을 크게 끌어 올렸다.
그 탓에 썬더 볼트의 색깔이 검게 변했고, 5서클 마법으로 올라갔다.
“엘로브 위원이 가만히 있었을 리 없으니, 6서클 이상의 마법사라는 뜻입니까?”
“아니요. 태우는 건 죽인 후에도 가능합니다. 이 모습만으로는 누구 짓인지 짐작할 수 없어요.”
“마법사들은 마력의 잔향인가? 그걸 맡고 상대를 읽어 낸다고 하던데.”
“겨우 5서클 마법사인 제가 어떻게 마력의 잔향을 맡습니까? 그런 건 대마법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결국 알아낸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엘로브 위원이 누군가에게 죽었다는 것밖에는.
“여기에 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 누군가가 훔쳐 갔어요.”
“보물을 노린 누군가의 짓일까요?”
“그럴 확률이 높지만, 아닐 수도 있죠. 일단 나갑시다. 여기서 더 지체했다가는 흉수가 아니라 제국군한테 죽게 생겼습니다.”
크세르 위원은 이곳에 있기가 거북했다. 시체가 타면서 나는 냄새도 역했고, 까맣게 탄 시체 옆에 계속 있는 머무르는 것도 찝찝했다.
“나가면 바로 출발합시다. 느낌이 안 좋아요.”
“저도 그렇습니다.”
* * *
로딘은 지토를 통해 허겁지겁 도망치는 두 위원을 확인하고 걸음을 돌렸다.
“데리고 갔군.”
혹시나 랜트를 비롯해 엘로브 위원에게 배정된 훈련생들을 두고 가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 위원은 훈련생들을 1명도 빠짐없이 다 데리고 남문으로 열심히 달렸다.
“당연한 건가?”
누군가가 엘로브 위원을 죽였다. 자신들도 같은 꼴을 당할 수 있으니, 호위 숫자를 줄이고 싶진 않을 것이다.
“나머진 알아서 하겠지.”
엘로브 위원을 처리했다. 이제 남은 위원은 둘. 그들을 처리하는 건 훈련생들의 몫이었다.
객관적으로는 훈련생들 쪽의 전력이 여전히 부족했다. 5서클 마법사 1명과 5데나급 검사라면, 45명의 훈련생보다 강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노예 스틱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 틈을 노린다면 큰 이득을 취한 채로 전투를 시작할 수 있고, 그 후에 잘 싸운다면 승산은 충분했다.
“후우.”
로딘은 길게 숨을 토해 내고, 랜트가 사라진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사실 로딘은 헤들러, 랜트와 함께 움직일 생각도 있었다. 자신이 크세르 위원을 맡아서 처리하고, 다른 훈련생들이 하비뇽 위원을 맡으면 승산은 더 확실해지니까.
하지만 특수군 양성소를 나온 이상, 꼭 가 봐야 할 곳이 있었다. 단순히 미련일 수도 있는데, 한 번은 꼭 들러야 그 미련을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들어오는구나.”
지토의 시선을 북쪽으로 옮겼다.
잉그렘 제국의 타격대는 이제 막 특수군 양성소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과 꽤 떨어진 곳에서 슬금슬금 움직이는 수천 명의 무리도 보였다.
“크세르 위원의 판단이 정확했군. 리아즈 왕국은 바로 싸울 생각이 없어.”
슬금슬금 움직이는 무리는 리아즈 왕국에서 번스타인 공작과 타격대를 잡기 위해 준비한 병력이었다. 숫자와 위치를 보면, 그냥 보내 줄 생각은 없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며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는 특수군 양성소와 제국군의 싸움에도 느릿하게 개입하려는 의도였다.
“둘 다 깜짝 놀라겠구나.”
역시나 제국군은 특수군 양성소에 들어서자마자,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당연히 있어야 할 정문의 경계병, 훈련받느라 땀을 흘리고 있어야 할 훈련생, 그들을 가르쳐야 할 교관 등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판단을 내리려나?”
제국군도 제국군인데 리아즈 왕국에서 번스타인 공작을 잡겠답시고 보낸 병력도 문제였다.
아직 번스타인 공작을 공격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당연히 포위망도 완성되지 않았다.
특수군 양성소와 족히 한두 시간은 싸운 이후에 진입할 생각이었으니, 준비가 미흡한 건 당연했다.
“아! 역시나.”
제국군은 특수군 양성소의 내부를 확인하기 무섭게 몸을 돌렸다. 방향은 당연히 북쪽이었다.
전력으로 달리는 제국군과 아직 진형이 갖춰지지 않은 리아즈 왕국군. 둘이 어떻게 싸울지 기대가 됐다.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겠네.”
우선 북쪽에서 눈을 뗐다. 제국군이 북쪽으로 방향을 튼 걸 알았으니, 로딘도 슬슬 움직여야 했다.
“가기 전에 애들 좀 살펴볼까?”
꼭 가야 할 곳은 있지만, 그리 급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9년 이상이 지났다. 며칠 더 늦어진다고 달라진 건 없었다.
“쟤들은 어디로 가나?”
지토의 눈에는 동쪽과 남쪽으로 도망치는 중인 훈련생들도 꽤 많이 보였다.
드록 역시 다리를 절뚝거리며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동료 없이 혼자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신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두 위원을 따라간 훈련생들은 신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리아즈 왕국에서는 노예라는 신분이 있고, 중앙 대륙으로 건너간 후에는 두 위원이 어떻게든 해결해 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알아서 신분을 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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