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55)
마법을 품다 (55)
로딘은 5서클 마법사이긴 하지만, 노예라는 신분 외에는 자신을 증명할 게 없었다. 노예로 살 생각은 물론 없으니 다른 신분이 필요했다.
“돈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텐데.”
다행인 건 지금이 전쟁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전쟁은 모든 것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비리도 많아지고, 부정부패도 늘기 마련이다.
“어디가 좋을까?”
로딘은 동쪽과 서쪽, 남쪽으로 움직이는 훈련생들을 한 명 한 명 확인했다. 그러다 동쪽으로 이동 중인 드록이 곤란한 상황에 처한 걸 발견했다.
“저 멍청이. 왜 혼자 다녀서는. 쯧, 녀석부터 어떻게 해야겠구나.”
커다란 2개의 가방을 어깨에 멨다. 어깨를 누르는 무게감을 애써 무시하며, 발을 옮겼다.
“지토. 돌아와.”
정령사는 평상시에도 항상 정령을 소환해 두려고 애쓴다. 로딘 역시 마력이 일정 수준을 넘어간 후부터 물의 정령 운디네를 정령계로 보낸 적이 없었다.
이는 함께 지내면서 저절로 해당 정령과의 친화력이 오르기 때문이다.
환수 역시 비슷했다. 함께 가까이에서 지내면 지낼수록 둘 사이의 유대감이 깊어진다.
이는 환수 성장의 거름이 된다. 정찰이 당장 급한 수준이 아니라면 옆에 둬야 하는 이유였다.
때마침 주변 정찰이 어느 정도 끝났다. 제국군은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두 위원은 남쪽으로 도망쳤다.
당장 다급한 상황이 아니라, 로딘은 지토를 불러들였다.
지토로 된 옷을 입고, 서둘러 발을 옮겼다.
* * *
로딘이 본 것처럼 드록은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탈영병으로 보이는 자들이 드록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적의 숫자는 대략 50명.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겨우 병사들. 오러는 전혀 모르는 이들이라, 평소의 드록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지금 드록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직 다리가 다 낫지 않아서, 제대로 힘을 줄 수 없었다.
‘어쩐다?’
싸운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패하는 건 아니었다. 어찌 됐든 자신은 4데나급의 검사. 오러를 뿜어 대며 싸우면 탈영병으로 보이는 자들을 이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확신이 안 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승산은 반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달라는 거 다 주고 나중에 되찾을까?’
대략 10일 정도만 쉬면 다리는 한결 나아질 것이다. 그 정도 몸 상태만 되어도 오러조차 모르는 이들을 쓸어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나를 살려 둘지가 문젠데.’
애초에 가진 물건이 거의 없었다. 임무를 받기 전에 지급받은 칼과 방패, 가죽 갑옷이 전부였다. 다 뺏기더라도 크게 아쉽진 않았다.
하지만 상대가 물건만이 아니라 목숨까지 빼앗자고 들면 곤란했다. 무기를 뺏긴 후에 싸우면 승산은 더 낮아질 테니까.
“저기요.”
“뭐냐?”
“혹시 제가 칼하고 방패를 주면, 곱게 보내 주실 건가요?”
드록은 조심스럽게 물으면서 일부러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여 줬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걸 확인했을 때, 상대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표정이 바뀌고 죽일 의사를 보인다면, 드록도 어쩔 수 없이 싸울 생각이었다. 설사 그 끝이 안 좋더라도 순순히 목을 내밀고 싶진 않았다.
“어라? 이 새끼. 다리가 정상이 아닌데?”
“야! 너 다리는 어디서 다쳤냐?”
“제국군들하고 싸우다가.”
드록은 대답하면서도 탈영병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여차하면 싸우기 위해 자세도 살짝 낮췄다.
“뭐야? 이 새끼도 우리하고 같은 처지였잖아. 나이가 어린 걸 보면 신참이었을 텐데.”
“신참이라고 보기엔 칼하고 방패가 너무 좋지 않냐?”
“제국군 놈들 죽이고 빼앗았나 보지.”
“아니면 우리처럼 했을지도 모르지.”
‘우리처럼’은 누군가에게 약탈했다는 의미였다. 그런 생각까지 이어지자, 탈영병들의 기세가 변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지?”
“그렇지. 저런 놈이 나중에 복수하겠다고 찾아온다니까.”
“그러면 뭐, 어쩌겠어? 죽여야지.”
탈영병들이 드록의 처우를 결정했다. 드록이 피하고 싶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젠장. 그럴 줄 알았다. 탈영병 새끼를 믿은 내가 바보지. 덤벼! 새끼들아.”
“오호, 어린놈이 제법 용기가 있는데?”
“그래서 더 죽이고 싶잖아.”
“키키키키.”
드록이 싸울 자세를 취했다. 방패를 왼팔에 끼고, 자세를 바싹 낮추었다.
다리를 숙이자, 완치되지 않은 허벅지에 부하가 걸렸다. 힘이 제대로 안 들어가서 부들부들 떨렸다.
‘망할.’
탈영병들은 좌우로 슬금슬금 흩어지더니, 사방에서 드록을 향해 다가갔다. 눈에는 살기가 번들거렸다. 이런 짓을 한두 번 한 모습이 아니었다.
‘몇 놈만 먼저 와라.’
드록은 오러를 보여 줘서 적을 겁먹게 해야 할지, 아니면 오러를 숨겨서 방심하게 해야 할지. 둘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러다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놈들은 자신이 다리를 절뚝거리는 걸 봤다. 오러를 보여 주더라도 탈영병들이 도망칠 리가 없었다.
“곱게 죽어 주라. 애송아.”
“닥쳐! 탈영병 새끼들.”
“그렇게 죽고 싶다면야.”
탈영병의 숫자는 모두 50명이 넘었다. 무기는 제각각이었지만, 입은 옷은 거의 비슷했다. 모두 리아즈 왕국에 소속되어 있던 병사들이었다.
그중 단 2명만 무기를 들고 다가왔다. 드록을 우습게 본 것이다.
“애송아. 이 형님이 너한테 한 수 가르쳐 주…….”
서걱!
드록은 무방비 상태로 다가온 한 놈의 목을 순식간에 베었다. 그리고 바로 대각선 앞으로 치고 들어가, 옆에 있던 또 다른 자의 복부를 찔렀다.
푸욱!
“커억! 너, 너…… 이…….”
“어? 뭐, 뭐야?”
“뭐긴! 쳐! 한꺼번에 덤벼서 죽여 버려!”
뒤늦게 탈영병들이 우수수 달려들었다. 동료의 죽음에 거의 눈이 뒤집힌 모습이었다.
“다 덤벼!”
드록은 호기롭게 소리치고 검을 휘둘렀다.
서걱!
“크악!”
가장 앞에서 달려드는 놈의 손목을 잘라 버렸다. 뒤이어 찔러 들어오는 창은 허리를 비틀어 피했다. 그리고 칼을 쳐올려서 놈의 턱을 때렸다.
“커억!”
드록은 달려드는 적들을 하나하나 상대했다. 승산이 높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할 만했다.
병사들의 검은 느리고 몸에는 허점이 너무 많았다.
지금까지 기사들만 상대해서 몰랐는데 4데나급 검사인 자신은 상당한 강자였다.
“크억!”
“크윽!”
그러다 파탄이 드러났다. 순간적으로 허벅지에 힘이 풀려 중심을 잃은 것.
그 짧은 순간에 뒤에서 찌른 창에 맞았다. 옆구리를 꽤 깊게 뚫고 지나간 창에 드록의 몸이 휘청거렸다.
드록이 비틀거리자, 탈영병들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창을 겨눈 채로, 견제만 하고 있었다.
“저놈 다쳤어. 시간만 끌면 이겨.”
“맞아. 출혈이 심해. 적당히 견제만 해. 견제만.”
놈들은 탈영병이었다. 개개인의 무력은 떨어지지만, 전투를 해 본 경험이 많았다.
“덤벼! 새끼들아.”
“도발에 걸려들 필요 없어. 그냥 시간만 끌면 저놈은 쓰러질 거야.”
아쉽게도 드록의 도발은 통하지 않았다. 상대는 주변을 포위만 한 채로 대화만 나누고 있었다.
“벌써 눈앞이 핑핑 돌걸. 피를 저렇게 흘렸는데, 멀쩡할 리가 없지.”
“그래서 내가 도와주려고.”
“무슨 소리야. 도와주……, 웬 놈이냐!”
그때, 드록의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후드를 푹 눌러쓴 사람이었다. 얼굴은 안 보이지만, 목소리만 들으면 나이가 많은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뭔 꼴이냐? 저런 놈들한테 다치기나 하고.”
“설마 로……딘?”
“눈까지 침침한 건 아니네. 다행이야.”
로딘은 드록 옆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걸음이 빠르지도 않은데, 누구도 로딘을 막지 못했다.
“넌 뭐냐?”
“이 녀석하고 아는 사이. 좀 구해야겠어.”
“우리가 그렇게 내버려둘 줄 알고? 전원 저놈을…….”
“생각 잘하고 말해. 네가 하려는 그 말. 끝까지 하면 넌 무조건 죽어. 네 동료들도 다 죽고.”
로딘의 협박에 탈영병들이 주춤했다.
뭔가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들었다. 그의 말처럼 섣부르게 움직였다가는 진짜로 다 죽을 것 같았다.
“크크크. 저놈들, 나한테는 겁도 없이 덤비더니 너한테는 못 덤비는군.”
“난 다리가 멀쩡하니까.”
“하긴, 사람들은 기사보다 마법사를 더 무서워하지.”
기사라는 존재도 병사들에겐 하늘 같은 존재였다. 오러를 검에 담고 휘휘 휘두르는 모습은 병사들에게 대적 불가의 공포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마법사에 대한 두려움은 기사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컸다.
병사들에게 마법사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실제로 볼 수는 없는, 환상 속의 존재와 같았다. 강력한 화염으로 수백 명을 죽이고,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악몽이자 지옥 그 자체였다.
“마, 마법사?”
“진짜 마법사라고?”
“야! 너 때문에 걸렸잖아. 한 방에 다 죽이려고 했는데. 쳇.”
로딘이 아쉬운 얼굴로 3서클 파이어 볼을 만들었다.
사람 머리통보다 더 큰 불덩어리는 느릿하게 허공을 날더니, 드록과 탈영병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불덩어리가 좌우로 움직였다. 마치 다가오면 죽인다고 경고하는 듯했다.
“마법사다! 도망쳐!”
“못 이겨! 못 이긴다고!”
탈영병들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동료를 죽인 드록에게 복수하겠다던 탈영병들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쯧, 겁만 줘서 쫓아낸 거야?”
“응. 귀찮아. 일일이 죽이는 거.”
“보복할 것 같은데?”
“너한테나 보복하겠지. 난 아니야. 리커버리.”
로딘은 룬어를 영창해서 5서클 회복 마법을 시전했다. 손끝에서 시작된 하얀 빛은 드록의 허리와 허벅지에 장시간 머물다 사라졌다.
“아! 고맙다.”
“이것도 받아.”
로딘은 배낭에서 포션도 하나 꺼내 던졌다. 고대의 비전으로 만든 포션이었다.
고대의 비전으로 만든 포션은 원래 1리터. 즉, 40병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저런 실험을 하며 포션의 효능을 확인하는 동안 많이 소모했다. 지금은 고작 7병만 남았다. 방금 드록에게 1병을 줬으니, 이제 6병이었다.
“포션?”
“귀한 거다. 네가 아는 그런 포션하고 달라. 팔지 말고. 아플 때 써라. 상처에 뿌려도 되고. 내장이 상했을 땐 마셔도 돼.”
로딘은 남에게 고대 비전의 포션을 누군가에게 준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헤들러와 랜트, 코리에게도 고대 비전의 포션은 준 적이 없었다.
로딘은 리커버리로 드록을 치료하면서, 드록의 오러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느꼈다. 무리하게 탈영병들과 싸우면서, 오러에 대한 통제를 잠시 놓친 게 아닌가 싶었다.
“마셔도 된다고? 상처 치유 포션을?”
“응. 이건 돼.”
고대 비전의 포션은 현재 만드는 포션과 여러모로 차이가 있었다. 특히 음용으로 내상뿐 아니라 외상까지 치료된다는 게 특이했다.
게다가 격한 마법 사용으로 마력이 진탕된 상태에서 들끓는 마력을 가라앉히는 효과도 있었다. 확인은 못 했지만,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오러에도 효과가 있을 게 분명했다.
“고맙다.”
“난 간다.”
“야! 아픈 사람을 두고 그냥 간다고?”
드록이 서운해했지만, 로딘은 냉정하게 몸을 돌렸다.
로딘은 드록을 죽이려던 탈영병들을 물리쳤다. 5서클 리커버리 마법으로 드록을 치료했고, 고대 비전의 귀한 포션까지 넘겨줬다.
이 정도면 동기로서 줄 수 있는 도움은 다 줬다고 봐도 무방했다.
“왜 할 말 있어?”
“그냥 좀만 더 있어 주라.”
“징그러워. 아! 양성소에 제국군 들어갔거든. 지금은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을 거야.”
“허탕을 쳤는데, 당연히 기분이 안 좋겠지.”
잉그렘 제국군도 기분이 안 좋겠지만, 특수군 양성소 위원들이 도망치면서 절호의 기회를 놓친 리아즈 왕국도 기분이 안 좋은 건 마찬가지였다. 아마 크세르 위원이나 하비뇽 위원을 만나면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만날 일은 없겠지만.’
크세르 위원도 리아즈 왕국이 벼르고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아마 항구 도시 멜코스에 도착하면, 최대한 빨리 준비해 둔 배를 타고 떠날 것이다.
“그리고 메리온은 저쪽으로 가면 만날 수 있을 거야.”
“메리온? 87번?”
“너하고 친하지 않았어?”
“작년까진 그랬지. 근데 내가 4데나급 되고 나서부터 좀 소원해졌어. 슬슬 피하더라고.”
로딘은 동기들 사이가 어떤지 잘 몰랐다. 헤들러, 랜트, 코리 외에는 사적인 대화조차 거의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 친한 사람은?”
“토리……는 죽었고.”
토리 역시 4데나급 검사. 같은 경지라 드록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임무에 헤들러, 랜트, 드록, 대런과 함께 나섰지만, 돌아오지 못했다. 화상을 입은 상태로 도망치다가 목에 화살을 맞았다.
“아, 몰라. 알아서 해. 난 간다.”
“어디로 가는데?”
“북쪽. 내가 태어난 곳으로.”
고향으로 간다고 하니, 드록이 미친놈 보는 듯했다.
이해는 갔다. 로딘도 자신이 왜 고향으로 가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거기를 왜 가? 어차피 팔린 거 아냐?”
“그러게. 내가 거길 왜 가려는 걸까? 나도 궁금하다.”
“잠깐만. 그냥 가지 말고. 잠깐만 있어 주라. 그놈들 또 올 수도 있잖아.”
로딘은 드록을 두고 그 자리에서 5서클 플라이 마법을 시전했다. 로딘의 몸은 순식간에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이내 북쪽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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