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56)
마법을 품다 (56)
특수군 양성소를 공격하러 왔던 잉그렘 제국의 번스타인 공작과 타격대는 본국으로 귀환을 결정했다.
마법사의 파밀리어 마법을 통해 포위망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는 걸 파악하고, 서둘러 귀로에 올랐다.
하지만 모두가 북쪽으로 돌아간 건 아니었다. 이번 일의 시작이랄 수 있는 페리오스 백작과 알브레이트 위원, 추적 마법에 일가견이 있는 3서클 마법사 에디프는 특수군 양성소에 남았다.
“에디프, 필요한 게 뭐지?”
“찾아야 할 자의 물건이 좋습니다. 오래된 물건일수록 오랫동안 추적할 수 있습니다.”
에디프는 처음 1서클 마법을 배울 때부터 추적 마법을 파고들었다. 잉그렘 제국의 계획에 따른 선택이었다.
에디프도 불만이 없었다.
처음부터 마력 재능 점수가 높지 않았다. 기껏해야 3서클이나 4서클이 성장의 한계치였다.
잉그렘 제국 내에는 흔하디흔한 수준이 3서클과 4서클 마법사였다. 평범하게 성장해 봐야 그저 그런 마법사로 남을 수밖에 없을 터.
차라리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돼지, 들었지? 그 꼬마 놈이 사용한 물건이 어디 있지?”
“108번이니까 내무실을 뒤져 보면 나올 겁니다.”
“가지.”
알브레이트 위원이 페리오스 백작과 3서클 마법사 에디프를 내무실로 안내했다.
2층을 지나 3층에 도달하자, 급하게 도망친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다.
‘위원들이 애새끼들까지 다 데려간 건가?’
뒤에 남은 알브레이트 위원은 버려진 듯한 상황에 불만이 많았다. 왠지 오래 지나지 않아서 폐기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다행인 건 자신을 감시하는 눈이 페리오스 백작과 3서클 마법사까지 고작 2명이라는 점이었다. 감시하는 숫자가 줄어든 만큼 잘만 하면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디냐?”
“이곳입니다. 301호.”
“그놈의 물건이면…….”
방을 뒤져서 물건 몇 개를 찾아냈다. 107번이 적힌 옷도 있고, 57번과 58번이 적힌 옷도 몇 벌 보였다.
그런데 108번이라 적힌 옷은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알브레이트 위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심히 찾았는데, 역시나 108번의 옷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네놈들은 꼬맹이 녀석한테 옷도 안 줬어?”
“그, 그게…… 모르겠습니다.”
조교도 아니고 위원들이 훈련병들에게 지급되는 보급품 상황까지 파악하는 건 무리였다.
교관이나 조교들이 중간에 보급품을 빼먹었는지 어떤지 알브레이트 위원이 알 방법은 없었다.
“다른 곳은?”
“아! 심화 3 서고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물건은 108번이 오래 관리해 왔습니다.”
“가지.”
셋은 급하게 움직여 호숫가를 지났다. 아름다운 광경에 절로 걸음이 멈췄다.
“좋은 곳이군.”
“예. 정령사를 위한 곳이라…… 아, 참. 108번도 정령과 계약했습니다.”
“음? 정령사였다고?”
“그냥 물의 정령하고 계약만 했고, 따로 정령술 훈련은 안 한다고 들었습니다. 재능이 낮아서……, 예. 그렇습니다.”
페리오스 백작은 ‘물의 정령’이라는 말을 몇 번 되뇌더니, 곧 머릿속에서 지웠다.
바람의 정령이라면 정찰 능력이 특출나서 추격이 쉽지 않을 수 있었다.
의도적으로 멀리 도망치거나, 일찌감치 눈치채고 함정이라도 파면 꽤 큰 곤란을 겪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의 정령이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갑자기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뒤를 쫓는 걸 들킬 확률은 낮았다.
“여긴가?”
“예.”
“비켜라.”
심화 3 서고는 잠겨 있었다. 급하게 오느라 열쇠도 가져오지 않았다.
서걱!
어쩔 수 없이 페리오스 백작이 검을 휘둘러 강제로 잠금장치를 잘랐다. 6데나급 기사의 오러 앞에 잠금장치는 썩은 나뭇가지처럼 잘려 나갔다.
그그그극!
페리오스 백작이 힘으로 밀어내니, 묵직한 문이 가볍게 밀려났다.
“저건 옷이군. 에디프, 어때?”
“확인해 보겠습니다. 체이싱 원.”
에디프가 108번이라는 숫자가 적힌 특수군 양성소의 정복에 마법을 사용했다. 이 옷과 깊은 관련이 있는 자를 추적하는 마법이었다.
“어때?”
“이상합니다. 흔적이 몹시 희미합니다. 옷이면 계속 입고 다녔을 텐데.”
로딘은 평소에는 환수인 지토를 옷으로 입고 다녔다. 지토는 아주 가끔 산책을 겸해서 주변을 돌아다니게 했는데, 그때 로딘이 잠깐 입은 옷이 에디프가 들고 있는 정복이었다.
“그래서 찾을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방향만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시간제한이 존재합니다. 한 달만 흘러도 남은 흔적은 거의 사라질 겁니다.”
“한 달에 방향만? 그 정도면 됐어.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겠지. 간다. 에디프는 방향 잡아.”
“예. 백작 각하.”
페리오스 백작은 잉그렘 제국의 6데나급 검사이면서, 한때 신성으로 불렸다. 고작 31세의 나이로 6데나급에 오르면서, 잉그렘 제국의 차기 마스터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빠른 성장은 거기까지였다.
어느새 40대 중반이 됐음에도 페리오스 백작은 여전히 6데나급 기사였다. 아직도 6데나급 기사치고는 젊은 편이지만, 과거처럼 큰 기대를 받지는 못했다.
누구나 그렇듯,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부족한 건 단 한 걸음이었다. 그 걸음을 내딛는 사람은 영광의 자리에 오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페리오스 백작은 후자였다. 이젠 마스터가 될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 * *
북쪽으로 이동하던 로딘은 야영을 준비하며, 지토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보통은 새벽에 자고 일어나면, 지토에게 정찰을 시킨다. 밤새 벌어진 일을 간략하게 파악하기에도 새벽이 적합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느낌이 안 좋았다. 뭔가 싸하고 불쾌한 기분이 몸을 축축하게 적시는 기분이었다.
‘지토, 좀 더 천천히 주변을 돌아봐.’
지토가 주변을 살피는 동안 로딘은 감각을 공유했다. 거기에 더해서 마력까지 충분히 주입해, 시력을 끌어 올렸다.
“괜한 걱정이었나?”
민가가 거의 없는 곳이라, 주변에도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시야에 들어온 몇 명도 촌락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수고했어. 돌아……, 잠깐만. 그쪽. 아니, 조금 더 오른쪽.’
로딘의 지시를 받은 지토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꺾었다. 아래쪽에 산을 오르는 인영 셋이 보였다.
‘시력 좀 올리자.’
마력을 더 많이 주입했다. 멀리 있던 이들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젠장.”
2명은 제국군 복장이었다. 그중 1명은 갑옷을, 또 1명은 로브를 입었다. 기사와 마법사가 분명했다.
그리고 기사 앞에서 마치 안내인처럼 걷는 사람. 로딘이 기억하는 얼굴이었다.
“알브레이트 저 작자가 대체 왜?”
알브레이트 위원이 제국군을 안내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들이 왜 전선과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왔는지 로딘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고했어. 돌아와.’
로딘은 감각 공유를 끊었다. 지토는 멀리서 크게 1바퀴 돌더니, 순식간에 돌아왔다.
“고생했다.”
―꾸엥.
지토가 몸에 착 달라붙더니, 금세 옷으로 변했다. 정복도, 체육복도 아닌 평범한 로브 형태였다.
“대체 이유가 뭘까? 설마 날 따라온 건가?”
아직은 확신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최악은 가정하고 움직여야 했다.
“방향을 틀어 보자. 뭔가 달라지는 게 있겠지.”
로딘은 북쪽으로 향했던 걸음을 남쪽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1시간 간격으로 지토를 날려, 알브레이트 위원과 제국군의 움직임을 살폈다.
‘추적이 맞구나.’
로딘은 자신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상대도 방향을 바꾼다는 걸 확인했다. 볼 것 없이 자신을 따라오는 게 분명했다.
“대체 왜? 설마 알브레이트가 나를 제국군에게 넘기기로 한 건가?”
로딘은 정확한 사정을 몰랐지만, 자신의 가치는 잘 알았다.
12살에 5서클 마법사가 된 희대의 천재. 어느 단체든지 탐낼 만한 탐스러운 먹잇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날 쫓는 거지?”
로딘은 흔적을 남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어딜 가든 자신이 머물렀던 흔적은 본능적으로 지웠다.
어제도 야영을 마치고 불을 피운 흔적까지 흙으로 말끔하게 덮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추적 마법밖에 없는데…… 다 지운 거 아니었나?”
로딘도 추적 마법의 존재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할 줄은 모르지만, 마법으로 체취를 읽어 흐름을 추적한다는 내용을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특수군 양성소를 떠나올 때도 운디네를 이용해서 그간 사용했던 모든 물건을 씻었다. 침구류뿐 아니라, 매일 사용한 식기까지 모두 운디네로 한 번 더 깔끔하게 지웠다.
“내가 놓친 게 뭐가 있지? 아! 심화 3 서고구나. 미처 생각 못 했어.”
심화 3 서고에 둔 옷은 자주 입는 옷이 아니었다. 지토가 본체로 돌아갔을 때만 잠깐 입던 옷이라, 깜빡하고 있었다.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이 저 사람은 없애야겠구나.”
언제까지고 도망만 칠 수는 없었다.
뒤에 꼬리를 달고 움직여 봐야 자신만 힘들어진다. 식사 중에도, 잠을 잘 때도. 단 한시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할 것이다.
“불안에 떨면서 살 수는 없어. 으음, 어디가 좋을까? 여기가 좋겠네.”
적당한 지형을 선택했다. 대충 어떻게 할지 계획이 섰다.
좌우가 높고 중간이 푹 파인 좁고 긴 협곡이었다. 병력을 움직이는 지휘관이라면 무조건 조심해야 하는 지형이었다.
“당신들은 병력이 아니니까.”
상대는 조심성 없이 따라올 것이다. 겨우 3명이기도 하고,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을 테니까.
대신 로딘도 추격자의 존재를 눈치챘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아야 했다. 들키면 상대도 매사에 조심할 터. 그러면 함정에 빠뜨리기 어려웠다.
“크게 돌아가자.”
바로 협곡으로 갔다가는 들킬 것 같아서, 크게 빙 돌았다. 그 과정에서 작은 냇물을 발견해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이번에는 흔적을 절반만 지웠다. 쉽게 보이지 않지만, 잘 살피면 불을 피운 흔적을 발견할 수 있게 신경 썼다.
그렇게 큰 반원을 그리며, 점차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 *
작은 냇가에 도착한 페리오스 백작 일행은 잠시 추격을 멈췄다. 쫓는 것도 좋지만 그 때문에 끼니까지 거를 순 없었다.
마침 이곳은 냇가였고, 의외로 물고기도 많이 보였다. 뒤쪽에는 큰 바위가 있어서 바람도 많이 들이치지 않았다.
“여기서 저녁을 먹는다. 에디프.”
“모닥불을 준비하겠습니다.”
“오호.”
페리오스 백작은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주변의 마른나무를 모으다가, 희미하게 불을 피운 흔적을 발견했다. 흙으로 거의 덮어 놨지만, 검게 탄 재를 완벽하게 치우지 못해서 흔적이 조금 남았다.
“하아, 기가 차는구나.”
“백작 각하. 무슨 문제라도?”
“우리가 쫓는 꼬맹이 놈 말이야. 대체 뭐 하는 놈이지? 이동하면서 계속 자기 흔적을 지우고 있어. 14살짜리가 이런다는 게 넌 이해가 돼?”
“아, 예. 저도 놀라고 있습니다.”
페리오스 백작의 말에 마법사 에디프도 동의했다.
꼬맹이 마법사를 쫓은 지 오늘로 4일째. 그런데 이동 중에 꼬맹이가 남긴 흔적을 1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마법이니 추적할 수 있었지, 그저 흔적만 보고 쫓는 사냥꾼이었다면 하루 만에 추적을 포기했을 터였다.
“신기한 놈이지 않아?”
“혹시 우리 추적을 눈치챈 게 아닐까요?”
“아니. 그건 아닐 거야. 우리 추적을 눈치챘다면 뒤늦게 흔적을 지웠어야 했는데, 이 녀석은 처음부터 자기 흔적을 남기지 않았어. 심지어 그 양성소라고 했나? 거기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지.”
“그건 그렇습니다.”
페리오스 백작이 바닥에 있는 흙을 발로 툭툭 찼다. 아주 약간 드러났던 검은 재가 사방으로 튀어나왔다.
“이거 보이지? 녀석은 여기서도 자기 흔적을 지웠어. 내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라서 찾은 거지. 아니었으면 여기서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을 거야.”
“이게 놈이 남긴 흔적입니까?”
“응. 여기서 뭔가를 구워 먹은 것 같아.”
페리오스 백작이 손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러자 마법사인 에디프가 땅 계열 마법을 사용해, 땅을 파헤쳤다.
“아!”
“물고기를 구워 먹었군.”
땅을 뒤집으니, 모닥불을 피운 흔적과 함께 가시만 남은 물고기 잔해가 드러났다. 대략 대여섯 마리를 잡은 것으로 보아, 꽤 여유롭게 식사를 한 듯했다.
“대단한 놈입니다. 14살이라고 들었는데.”
“맞아. 대단한 놈이지. 대체 이런 놈은 어떻게 키워 내는 거지? 어이! 돼지. 이리 와 봐.”
“예. 백작 각하.”
페리오스 백작의 부름에 멀리서 눈치를 보고 있던 알브레이트 위원이 후다닥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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