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57)
마법을 품다 (57)
알브레이트 위원은 연신 눈치를 살폈다.
머릿속으로는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궁리 중이지만, 겉으로는 충신이 따로 없었다. 부름이 있으면 잽싸게 움직였고, 시킨 일도 최대한 열심히 했다.
“대체 어떻게 교육한 거야?”
“그, 그게…… 저는 잘…….”
“하긴 네가 뭘 알겠냐? 위원회라고 했나? 뭐, 아랫사람한테 다 시키고 열매만 따 먹으려고 했겠지. 그런데 말이지.”
페리오스 백작이 알브레이트 위원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보통 노예 인장을 찍는 이마의 중앙 부위였다.
“하, 하명하십시오.”
“그놈은 왜 따로 움직이지?”
“예?”
“노예잖아. 노예 스틱이 부러지면 바로 뒈지는 놈이란 말이야. 그런데 왜 노예 주인도 없이 혼자서 움직이고 있느냐는 말이야.”
페리오스 백작은 모닥불과 물고기를 먹은 흔적을 통해, 로딘이 혼자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먹은 물고기의 숫자가 혼자 먹기에는 충분하지만, 2명이 먹기에는 부족한 양이었다. 물고기를 많이 잡지 못해서 여럿이 몇 마리를 나눠 먹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자신들이 쫓는 상대는 5서클 마법사였다. 물고기 정도는 손짓 몇 번으로 수십 마리씩 잡을 능력이 있는 자였다.
“저도 잘…….”
“내 생각인데. 놈은 자기 노예 스틱을 탈취한 것 같아.”
“예? 그건 말도 안 됩니다. 108번은 노예 스틱이 어디 보관되어 있었는지도 모를 겁니다.”
“확신해? 그 꼬맹이 놈이 모르고 있었다고 정말 확신할 수 있어?”
“그, 그…… 모르겠습니다.”
알브레이트 위원도 확신이 안 섰다.
특수군 양성소에 있을 때만 해도 108번이 이런 놈인 줄 몰랐다.
그냥 어린 나이에 5서클 마법사가 되었으니,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만 생각했을 뿐. 성격이 어떤지는 궁금해한 적도 없었다.
“자기 흔적을 죄다 지울 정도로 철두철미한 놈이 자기 목줄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웃기는 소리야. 그놈은 알고 있었을 거야. 확실해.”
“그렇다면?”
“진즉에 빼돌렸을 거야. 혹시 그놈 노예 스틱을 마지막으로 점검한 게 언제지?”
“그……, 그게……”
이번에도 알브레이트 위원은 대답 못 했다.
노예 스틱을 관리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크세르 위원이었다. 노예 스틱을 반출할 일이 있을 때도 주로 크세르 위원이 움직였다. 마법적인 잠금장치 때문이다.
“그게, 그게. 이딴 소리만 하지 말고. 제대로 대답해. 언제야?”
“없습니다.”
“뭐가 없어?”
“처음에 노예 인장을 새긴 후, 따로 확인해 본 적이 없습니다.”
페리오스 백작은 혀를 끌끌 찼다.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 놈은 자기 노예 스틱을 일찌감치 빼돌린 게 틀림없었다.
정확한 시기가 언제인지,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아마 위원회 놈들도 모르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음흉한 꼬맹이 놈이라면 어떤 방법을 써도 이상하지 않았다. 교관이나 위원을 포섭했을 수도 있고, 약점을 잡아 협박했을 수도 있었다.
“하긴,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이미 지난 일이니까. 중요한 건 놈이 노예 스틱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어딘가에 숨겨 뒀을까? 그거야.”
“숨겨 놓지 않았을까요?”
“아닐 거야. 흔적을 계속 지운다는 건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는 얘기야. 의심 많은 놈은 절대 자기 목숨을 운에 맡기지 않지.”
“운이요?”
“어딘가에 숨겨 놓는다는 건, 누군가가 발견하지 못하길 빌어야 하는 거잖아. 그 어린놈 성격과 안 어울려. 분명히 가지고 있을 거야.”
페리오스 백작은 로딘을 정확히 봤다.
로딘의 성격이라면 자기 노에 스틱을 절대 남에게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또 어딘가에 숨겨 놓지도 않았을 테고.
다만 페리오스 백작은 로딘이 노예 인장의 위험에서 이미 벗어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놈을 잡으면 문제는 해결되는군요.”
“맞아. 놈을 잡으면 노예 스틱도 우리 손에 들어와. 위원회라는 놈들이 멍청해서 다행이지.”
“그건 그렇습니다. 놈이 108번의 노예 스틱을 부러뜨렸으면 여기까지 온 보람도 없어지지 않습니까?”
페리오스 백작은 108번 로딘을 잡는 데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건 마법사인 에디프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흔적을 못 찾았으면 모를까. 추적 마법이 성공한 이상은 만나게 되어 있었다. 일단 만나면 6데나급 기사의 손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지. 흐음, 해가 벌써 떨어졌군. 식사부터 하자고.”
“늦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마법사잖아. 아무리 빨라도 한계가 있는 빠름이지. 마력 떨어지면 어차피 장시간 쉬게 되어 있어.”
“그건 그렇습니다.”
“그럼, 배부터 채우자고.”
* * *
함레스 협곡.
약 300년 전의 지진으로 생긴 협곡인데, 남북으로 좁고 긴 통로 형태였다. 마치 거인이 칼로 땅을 베어 낸 듯한 모습이라, ‘거인의 칼질’이라는 별명도 붙은 곳이었다.
로딘은 함레스 협곡을 지나가며 주변 지형을 꼼꼼하게 눈에 담았다. 저 위에서 병력을 500명만 준비해 두면, 능히 만 명은 막을 수 있는 지형이었다.
“이런 곳을 리아즈 왕국은 왜 그냥 버려둔 걸까?”
이곳은 원래 리아즈 왕국의 땅이었지만, 전쟁으로 잉그렘 제국으로 넘어갔다. 그것도 전투 한번 하지 않고, 그대로 내어 줬다.
천혜의 지형을 제대로만 써먹었다면 잉그렘 제국군을 족히 반년은 더 막아 냈을 텐데. 리아즈 왕국은 마치 대단한 전술이라도 준비한 듯 이곳을 통째로 비웠다.
효과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잉그렘 제국군은 당연히 함레스 협곡에 적이 매복했을 줄 알고, 사흘 정도를 수색으로 허비했다.
“반년을 막을 수 있는 이곳을 사흘 만에 내주다니.”
휘이이잉!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옷을 파고들었다. 로딘이 옷을 여미려고 하자, 지토가 눈치 빠르게 몸에 더 달라붙었다.
“쌀쌀하네.”
함레스 협곡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관통하며 일단 지형 전체를 머릿속에 담았다. 그리고 다시 함레스 협곡의 중심부로 돌아왔다.
“여기서 해결을 봐야겠어. 지토, 정찰 부탁할게.”
꾸엥.
지토가 옷의 형체에서 본체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깨를 박차더니, 순식간에 까만 점으로 보일 만큼 높이 날아올랐다.
‘어디쯤 왔지?’
지토와 시야를 공유해 남쪽을 살폈다. 적당한 거리까지 따라온 제국군 2명과 알브레이트 위원이 보였다.
“운디네, 저놈들을 내가 이길 수 있을까?”
힐끗.
로딘의 질문에 운디네가 쳐다봤다. 말은 없었지만, 로딘은 그냥 웃고 넘겼다.
애초에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지토가 정찰 중이라, 좀 외로워서 말을 걸어 본 것뿐이었다.
“저놈들. 기사는 아마 6데나급일 거야. 5서클 마법사를 잡으러 5데나급 검사를 보내진 않았을 테니까. 마법사는 별거 없어. 태도로 보면 4서클 이하야. 알브레이트, 이 인간은 5데나급 기사. 하지만 훈련을 너무 게을리했지. 과거의 실력을 내지는 못할 거야.”
로딘은 상대의 모습, 태도 등을 통해 상대의 전력을 파악했다. 가볍게 말했지만 실제로는 마주치면 절대 이길 수 없는 전력이었다.
“대략 네다섯 시간? 그 정돈가? 서둘러야겠군.”
협곡의 중앙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진의 정체는 폭발 형태의 익스플로전 마법. 말 그대로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마법이었다.
“불 속성은 이거 하나로 끝. 나머진 다른 속성으로 해야지.”
기사들이 마법사를 상대할 때 화염에 대한 대비만큼은 철저히 한다고 들었다. 아티팩트 역시도 불 저항과 관련된 상품이 시장에 자주 나오는 편이었다.
기사들이 특별히 불 속성 마법에 큰 피해를 입어서는 아니었다. 불이든 뇌전이든, 어차피 강한 마법에 당하면 피해 정도는 비슷했다.
하지만 불은 그 특성상 눈에 가장 잘 띄었다. 여러 종류의 마법에 당해도 불 속성 마법이 뇌리에 더 강하게 남는다.
그래서 기사들의 머릿속에 ‘마법사는 = 불’이라는 공식이 들어 있었다.
“이건 좀 아깝지만.”
배낭에서 엘로브 위원의 지하에서 얻은 스태프를 꺼냈다. 몸체는 파란색의 아로바인 나무였고, 머리에는 붉은색의 커다란 오브가 박힌 스태프였다.
로딘은 이 중에서 붉은색의 오브만 따로 떼어 냈다. 마력을 넣고 살짝 돌리자 원래 별개였던 것처럼 깔끔하게 분리되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오브로 쓸 수 있는 구슬을 ‘엘비아즈’라고 부르는데, 상당한 고가였다. 특히 붉은색은 선호도 높은 불 속성 마법의 위력을 올려줘서, 훨씬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게다가 이 정도 크기라면 더더욱 귀했다.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시장에 잘 나오지도 않고, 어쩌다 나오더라도 마탑에서 싹 쓸어 가는 게 보통이었다.
“제대로 터져야 할 텐데.”
지토와 잠시 시야를 공유해, 추적자들과의 거리를 가늠해 봤다. 아직 두세 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꾸우욱!
마법진 중앙에 커다란 엘비아즈를 깊숙하게 박아 넣었다. 그 위로 흙과 돌조각을 덮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했다.
“일단 하나.”
그 후에는 협곡의 양쪽 벽에 마법진을 새겼다. 이번에도 상당한 크기의 마법진이었다.
‘크기만 크지, 실속이 없어.’
가지고 있던 마나석을 최대한 사용했지만, 위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마나석 자체가 하급이었다. 아무리 효율적으로 마나를 끌어내더라도, 6급 검사를 죽일 정도의 위력을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핵심은 바닥에 만든 마법진이었다. 좌우 절벽에 새길 마법은 시선 끌기용일 뿐이었다.
“최선을 다하는 거지.”
허리를 쭉 펴고, 다시 지토와 시야를 공유했다. 추적자들은 어느새 한 시간 거리까지 좁혀 온 상태였다.
“마법사, 그리고 알브레이트.”
이번에 함정을 파면서 목표로 삼은 둘이었다. 기사로 보이는 남자는 목표가 아니었다.
“6데나급 검사는 일단 배제하자. 부상을 입히는 정도면 충분해.”
물론 죽이면 좋겠지만 거기까지 바라진 않았다. 뒤에 따라붙은 꼬리를 잘라 낼 수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로딘은 잉그렘 제국에 별 원한이 없었다. 추적자만 아니었다면 부딪칠 일도 없었을 터였다.
“준비 끝.”
로딘은 주변에 바람 마법을 일으켜서, 새긴 마법진을 최대한 덮었다.
바람이 불었다. 마법이 만들어 낸 바람과 원래 이곳에 부는 바람이 주변을 마구 헝클어뜨렸다.
“됐네.”
로딘은 북쪽으로 느긋하게 이동했다.
서두를 필요 없었다. 상대에게 계속 이동하고 있다는 것만 알리면 되었다.
―꾸엥.
“어? 왜 돌아왔어?”
로딘이 이동하자, 지토가 돌아왔다. 마치 ‘나도 데려가.’ 하고 말하는 듯했다.
―꾸엥?
“위에 있어. 마법을 정확하게 터트리려면, 놈들을 보고 있어야 해.”
―꾸엥.
지토를 다시 하늘로 보냈다. 로딘은 전보다 더 느린 속도로 이동했다.
‘슬슬 올 텐데.’
지토와 시야를 공유해서, 추적자들을 살폈다. 추적자들은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함정을 준비해 둔 협곡에 들어서고 있었다.
* * *
페리오스 백작 일행도 함레스 협곡에 다다랐다. 쓸쓸하고 삭막한 분위기에 저절로 걸음이 멈췄다.
“에디프, 이곳 기억하나?”
“예. 물론 기억합니다. 각하께서 며칠 만에 이곳을 점령하셨죠.”
페리오스 백작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강하게 맞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로딘이 알고 준비한 건 아니지만, 이곳은 페리오스 백작과 인연이 있는 장소였다. 총사령관의 명령을 받아 이곳을 직접 점령한 당사자가 페리오스 백작이었다.
“맞아. 그랬지. 피해도 없었어.”
“백작 각하의 놀라운 능력 덕분입니다.”
“내 능력은 무슨. 리아즈 왕국 놈들이 멍청했던 거지. 난 여기를 쉽게 점령하지 못할 줄 알았거든.”
상부에서 함레스 협곡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페리오스 백작은 이곳의 지형부터 살폈다.
전체적인 정찰이 끝났을 때, 꽤 많은 병력을 이곳에서 잃을 걸 각오했다.
지형이 그야말로 지랄 같았다.
함레스 협곡의 폭은 넓은 곳이 고작 20미터였고, 좁은 곳은 채 10미터가 안 될 정도로 좁았다. 거기다 길이는 무려 3.1킬로미터인데, 길도 꼬불꼬불했다. 전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뒤에선 확인하기조차 어려운 지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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