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59)
마법을 품다 (59)
로딘이 향한 곳은 북쪽이었다. 제국군이 이미 한참 전에 점령한 곳이라, 어딜 가든 위험 지역이었다.
지토의 정찰을 통해 제국군의 움직임을 미리 읽었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한참을 돌아서 이동했다.
‘이 근처가 맞을 텐데.’
노예로 팔려 오기 전까지 집 밖으로 나온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것도 마을 안에서만 돌아다녀서, 마을 주변 모습에 대한 기억이 흐릿했다.
“지토, 조금만 더 돌아보자.”
―꾸엥!
지토를 다시 하늘로 띄워 올렸다. 고도를 낮춰서 살핀 끝에 익숙한 지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됐어. 돌아와.”
로딘은 마을로 예상되는 장소로 걸어가면서 지토를 불렀다. 지토는 도착과 동시에 옷으로 변해, 로딘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조금 속도를 내서 걸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도착했구나.”
이름 모를 산기슭에 만들어진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인구라고는 고작 1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곳. 외출 몇 번 안 해 봤지만,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정겨운 장소였다.
“다 알겠네. 저기 나무, 저쪽에 울타리도, 저 마을 지붕에 걸린 장식도. 다 익숙해.”
의외로 마을이 평온했다. 딱히 피해를 입은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제국군이 놓치고 갔을 리는 없는데.”
로딘이 살던 마을은 국경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진즉 제국군의 영토로 편입되었어야 정상이었다.
“으음.”
마을의 길을 느릿하게 걸었다.
집마다 사람들이 나와서 빨래를 널고,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노예가 되어 이곳을 떠나기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자기 일을 하는 마을 사람 중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로딘이 분명 낯선 사람일 텐데, 억지로 못 본 척하고 있었다.
“이상하긴 한데. 그래도 이곳은 시간이 비켜 간 것 같네.”
과거에 봤던 사람들이 과거와 같은 얼굴로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그림자 취급하는 건 이상하지만 어찌 됐든 평온하고 따뜻한 풍경이었다.
“저쪽이 화전(火田)이었고, 저 아래는 꽤 넓은 경작지가 있었지. 저쪽은 눈을 다친 아저씨가 살았고.”
느긋하게 걷다 보니, 어느새 잊어선 안 되는 장소에 다다랐다. 태어나서 5년 가까이 살았던 집이었다.
“음?”
시간이 흐르지 않은 듯한 마을과 달리, 자신이 살던 집은 시간을 직격으로 맞은 것 같았다. 지붕은 이미 무너졌고, 담벼락도 성하지 않았다.
“실례합니다.”
안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으로 말을 뱉었다. 그리고 문을 밀고 들어가 집 안을 살폈다.
“흐음. 버려진 지 꽤 된 것 같은데.”
적어도 몇 달. 어쩌면 그 이상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없었다. 그 전에 가족이 떠났거나 혹은 죽은 것 같았다.
끼이익!
낡은 문을 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헤집은 듯 엉망진창이었다.
방으로도 들어가 봤다. 방 역시 사방을 뒤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다시 나와서 무너진 지붕과 담벼락을 살폈다.
“이거…… 강제로 무너뜨린 흔적이구나.”
시간이 되어 저절로 무너진 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묵직한 무기, 혹은 힘으로 강제로 깨고 부숴 놨다.
“제국군인가?”
다른 집은 다 놔두고, 이곳만 공격했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겁 많은 그의 부모님 성향을 생각했을 때, 반항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나저나 농사는 포기한 건가?”
화전은 관리되지 않아서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저 아래쪽에 보이는 넓은 밭 역시 거의 숲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방치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네.”
집을 나와서 다시 마을 쪽으로 걸어갔다.
로브를 푹 눌러쓴 누군가의 등장인데도 여전히 마을 사람들은 힐끔거리기만 했다. 처음 마을에 나타났을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말을 걸진 않는군. 두려워하는 건가?’
마을 사람들은 계속 자신을 신경 쓰고 있었다. 어떻게든 얼굴을 안 보이려고 고개를 돌린다거나, 건물 같은 곳에 계속 자기 몸을 숨기려 애썼다.
“실례합니다.”
“에구머니나.”
말을 걸자마자, 아주머니 1명이 후다닥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역시.’
머쓱해진 로딘이 고개를 긁적이고, 다른 사람들을 살폈다. 그러고 얼굴을 아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마을의 촌장이었던 할아버지였다.
원래 촌장님은 노인이라고 부르긴 좀 젊은, 그렇다고 중년이라고 하기에는 늙은 나이였다. 자기를 ‘아저씨라고 불러.’라고 말할 정도로 애매한 분이었다.
그런데 9년이 흐른 지금, 촌장 할아버지는 진짜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허리도 구부정하고, 머리도 눈이 쌓인 듯이 하얗게 셌다.
“실례합니다.”
“말 걸지 말게. 우린 더 이상 아무것도 줄 게 없네.”
촌장님은 말을 못 들은 것처럼 딴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대하지 않겠다는 그 나름의 반항이었다.
“아!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제가 원래 이 동네에 살았습니다.”
“뭐?”
동네에 살았다는 말에 그제야 촌장의 고개가 돌아왔다. 얼굴에도 호기심이 조금 담겨 있었다.
“저기 위에 있는 집 있잖습니까? 거기 넷째였습니다. 둘째 형하고 누나는 어딘가로 팔려 갔고, 제가 그다음으로 팔렸는데. 혹시 기억하시는지.”
“아! 브롱스. 그 집 넷째였는가?”
하도 오랜만이라 아버지 이름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곳에 살 때만 해도 촌장님은 집에 찾아와서 ‘브롱스 있는가.’ 하고 부르곤 했는데, 이젠 과거의 이름이 되어 버렸다.
“예. 벌써 9년하고 몇 달은 됐죠. 정말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마을 분위기가 좀 이상해서.”
“아! 브롱스. 그 친구는…… 하아.”
촌장은 말을 잇지 못하고 로딘의 눈치를 살폈다.
로딘은 본능적으로 아버지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도 제가 아들인데, 아무것도 몰라선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나저나 브롱스, 그 집의 넷째면 자네는 올해…….”
“14살입니다.”
로딘이 대답하면서 로브에 달린 후드를 벗었다. 살짝 길어진 머리에 뽀얀 얼굴이 드러났다.
“어이쿠, 예쁘장하게 잘 컸구먼.”
“아, 예.”
예쁘다. 여자 같다.
이런 얘기를 개인적으로 정말 싫어했다. 헤들러와 코리가 자신을 놀릴 때 주로 저런 단어를 썼는데, 부정할 수 없어서 더 화가 나곤 했다.
똑똑한 사람한테 하는 ‘멍청아.’는 장난일 수 있지만, 멍청한 사람에게 하는 ‘멍청아.’는 절대 장난일 수 없었다. 듣는 사람도 기분 나쁠 테고.
로딘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성장하면서 선이 곱고 예쁜 얼굴로 자란 탓에 ‘예쁘다.’라는 말만 들으면 닭살이 돋았다.
“예전 모습이 거의 없구먼.”
“그러게요. 왜 이렇게 자랐는지.”
“그래. 브롱스라……, 브롱스…… 하아, 벌써 1년쯤 됐나? 갑자기 이상한 도적놈들이 마을로 들어왔다네. 닥치는 대로 패고,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무전취식을 일삼았지. 우린 전부 죽은 듯이 지냈는데, 벤이 사고를 쳤네.”
벤은 큰형의 이름이었다. 작은형과 누나가 팔릴 때도 팔리지 않고 남았다. 나이가 많아서였다.
로딘이 팔릴 때 이미 큰형의 나이는 17살이었다. 팔아서 몇 푼 챙기는 것보단 노동력으로 써먹는 게 이득인 나이였다.
“사고라면?”
“평소에도 술 먹고 사고를 많이 쳤는데, 그날도 그랬네. 어디서 잔뜩 만취해서는 그자들에게 시비를 걸었네. 그러다 1명을 죽이고 말았지.”
“아!”
“화가 치민 그들이 벤과 브롱스, 마리까지 다 죽였네. 집도 부쉈지.”
마리는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결국 이 마을에 있던 가족들은 전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자들이…… 제국군이었습니까?”
“아니었네. 제국군이 들이닥치기 2달 전이었지. 그자들 중에는 제국군 복장을 입은 자들도 있었고, 우리 왕국군 복장을 입은 자들도 있었네.”
“아! 탈영병이었군요.”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혹시 그자들 정체를 아십니까?”
“다른 자들은 모르고, 대장이라는 자의 이름이 고웬이라고 했네.”
로딘은 입으로 작게 ‘고웬’을 읊조려 봤다.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고웬이라는 자를 찾기 위해 사방을 뒤지고 다닐 생각은 없었다.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로딘은 부모에게 별 애정이 없었다. 돈을 받고 판 순간부터 서로 남남이나 다름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난 여길 왜 온 걸까? 미련이라도 털어 버리려고?’
희한하게 부모와 큰형이 죽었다는데도 전혀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찝찝한 뭔가를 털어 버린 듯, 속이 시원해졌다.
“그런데 촌장님, 마을에 남자들이 안 보이는데 왜 이런 겁니까?”
“그건 제국군이 저지른 일일세.”
“다 죽인 겁니까?”
“아니. 다 끌고 갔지. 제국군은 의외로 우릴 험하게 다루지 않았네. 집마다 병사들이 수색하긴 했지만 값비싼 것들만 챙겨 가고 식량은 그대로 두더군.”
잉그렘 제국군은 이 마을을 이미 자기 마을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당연히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자기 나라의 국민이었다.
‘승리를 확신했으니까 할 수 있는 짓이지.’
지금까지의 전황을 보면 잉그렘 제국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조만간 리아즈 왕국은 무너질 것이다.
13국 연합이 지금이라도 똘똘 뭉쳐서 싸우면 모를까. 그간 보여 준 것처럼 자기들의 이익을 우선하면, 패배는 확정된 미래였다.
“고맙습니다. 궁금증을 풀었네요.”
“아닐세, 이 정도는. 아! 혹시 다른 가족들 소식은 아는가?”
“다른 가족이요? 둘째 형하고 누나 말입니까?”
“그 집 딸내미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그 아이는 모르겠고. 둘째 아들이 있었지? 안톤이던가?”
안톤은 둘째 형의 이름이 맞았다. 로딘은 자신보다 한 달 먼저 팔려서, 어딘가로 갔다고만 알고 있었다.
“예. 둘째 형 이름이 맞습니다.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리아즈 왕국군에 징집됐다고 들었네. 벤이 죽기 전에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 자기는 군에 가면 금방 기사가 될 거라고. 동생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갈 거라고. 헛소리를 해 댔지. 쯧쯧. 철없는 것.”
큰형인 벤은 그 나이 먹고도 전혀 철이 들지 않았다. 참 한심한 짓거리였다.
동생들이 팔려 나가는 걸 봤으면 뭔가 배웠어야 할 텐데. 오히려 팔리지 않고 남았다는 생각으로, 자기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
“그렇군요. 얘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마을에 정착할 생각인가? 마을 사람들한테 말하면 집은 정리해 줄 것이야.”
촌장은 로딘이 남았으면 하는 눈치였다.
젊고 건강한 남자들이 죄다 제국군에 끌려 가는 바람에 마을에 일손이 부족했다. 그 때문에 농사도 못 짓고 있었고, 마을 상태도 엉망이었다.
“아닙니다. 저는 그만 떠나겠습니다.”
“미안하네. 안 좋은 소식만 들려주는군.”
“촌장님 잘못도 아니잖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이만.”
촌장님을 두고, 로딘은 마을을 떠났다. 촌장의 시선이 느껴져서 충분히 멀어질 때까진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 * *
로딘은 주변 마을을 돌면서 누나를 아는 사람이 있는지 수소문했다. 누나는 이름이 특이해서, 몇 번 만나 본 사람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없었다. 주변 마을 7곳을 돌았는데도 성과가 없었다.
그러다 그만 포기할까 하던 찰나에 마지막으로 들른 마을에서 누나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시에라? 기억하지. 어린데도 얼마나 똘망똘망했는데.”
“이 마을에 있습니까?”
“아니. 시에라는 여기서 한 반년 지냈나? 누가 와서 다시 사 갔어. 저기 사는 홀렌이 무려 100골드를 불렀는데도 망설임 없이 돈을 내더라고.”
홀렌이라는 사람이 원래 누나를 사 간 사람인 모양이다. 누나는 그 사람 아래에서 반년을 지냈고, 다시 누군가가 데려갔다.
이 마을에서 들은 누나의 소식은 이게 전부였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시고요?”
“나야 모르지. 아는 사람이 없을걸. 사 간 사람이 외지인이었거든. 아! 엄청나게 좋아 보이는 옷을 입은 귀부인이었어.”
“귀부인. 그렇군요.”
다른 가족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별 감정이 안 들었다. 둘째 형이 군에 들어갔다고 했을 때도, 그냥 그렇구나 정도의 감정이 전부였다.
그런데 누나 소식이 중간에 끊어지니, 속이 답답했다. 단서라도 있으면 시간이 들더라도 좀 더 찾아볼 텐데. 단서조차 여기서 끊어졌다.
‘누나는 보고 싶었는데.’
로딘이 진짜 궁금했던 가족은 오직 누나뿐이었다. 함께 살 때도 오직 누나만 자신을 따뜻하게 보살폈다.
‘누나가 나보다 8살이 많으니까. 13살에 그 귀부인이라는 사람이 데려갔다는 건데.’
‘귀부인’이라는 단서만으로는 더 이상 조사하는 게 불가능했다.
세상에 귀부인은 너무 많았다. 특히나 시골에 사는 사람들 눈에는 조금만 좋은 옷을 입어도 다 귀부인처럼 보이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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