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6)
마법을 품다 (6)
매일 아침 운동장을 뛰는 건 힘든 일이었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들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라, 처음에는 고작 16명만 모이기도 했다.
못 일어난 아이들?
그날 곡소리 나게 맞았다.
조교들이 돌아가면서 애들을 굴리고 팬 데다가, 하루 종일 시간 날 때마다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바로 다음 아침부터는 한 명도 예외 없이 운동장에 모였다. 지각하는 아이도 없었다. 폭력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듯해서 괜스레 서글펐다.
숙소 생활 3일 차.
오늘은 로딘이 다섯 살이 되는 생일이었다.
누구한테도 말하진 않았지만, 스스로는 나이를 먹었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다시 하루가 흘렀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조교들이 옷을 가져왔다. 숙소에 들어왔던 날 쟀던 치수에 맞게 만든 옷이었다.
조교는 옷만 나눠 주고 사라졌다.
옷에 숫자가 붙어 있어서, 자기 옷을 헷갈릴 일은 없었다.
“옷이다!”
옷을 받자마자, 헤들러가 신나게 체육복을 갈아입었다.
그동안 꽉 끼는 정복 때문에 꽤 답답했다. 팔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옷이 땅기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체육복은 아니었다. 약간 크게 나온 체육복은 팔다리를 아무리 움직여도 걸리는 게 없었다.
“나도.”
“나도 입어 봐야지.”
헤들러의 뒤를 이어서 랜트와 코리도 체육복부터 갈아입었다. 그간 정복이 꽤 답답했는데, 그제야 살 것 같았다.
반면 로딘은 108번이라고 적힌 옷을 침대에 하나하나 내려놓았다. 개수를 세고, 여러 벌인 옷들은 접어서 한쪽에 보관했다.
체육복은 3벌, 속옷도 3벌씩이었다. 신발은 한 쌍이 전부였고, 108번이라는 글자가 정중앙에 새겨진 모자도 있었다.
“잠깐 나갔다 올게.”
“또 씻으러 가?”
“응.”
“하루에 몇 번을 씻는 거야? 피부 벗겨지겠다.”
헤들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타박했다. 옆에서 랜트와 코리도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로딘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씻는 걸 지독하게 싫어하는 저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로딘은 숙소에서 하루에 2번 샤워했다. 아침에 운동을 마치고 1번, 취침 전에 1번.
이 정도는 그다지 번거로운 행위도 아니었다. 헤들러의 걱정처럼 피부가 벗겨질 일도 당연히 없었고.
무엇보다 샤워는 그 자체로 즐거운 행위였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샤워 횟수를 줄이고 싶진 않았다.
로딘은 공용 샤워실로 가서 씻고 왔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샤워실은 텅 비어 있어서, 줄을 설 필요도 없었다.
샤워를 마치고, 이번에 지급된 속옷을 입었다. 그 후에 체육복까지 입으니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 * *
다음 날 아침에도 구보는 똑같이 이어졌다. 복장만 정복에서 체육복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3기 52명 전원이 운동장으로 모였다. 57번부터 60번까지 4줄로 앞에 서고, 나머지가 그들 뒤에 번호대로 섰다.
조교는 이 대형을 ‘4열 종대’라고 불렀다.
입소식은 오전 내내 이어졌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이곳 리아즈 왕국 특수군 양성소는 위원회가 관리하는데, 위원회는 1명의 위원장과 5명의 위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늘 입소식을 담당한 사람은 엘로브라는 이름의 위원이었는데, 오전 내내 혼자서 떠들었다. 엘로브 위원 때문에 다른 위원들은 잠깐 자기소개만 하고 들어가야 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엘로브 위원이 중요한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긴 연설이었지만, ‘시키는 대로 해라’가 긴 연설의 핵심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중앙 건물 1층으로 집합한다. 오늘 할 일은 너희들의 머리에 노예 인장을 새기는 일이다.”
“노, 노예?”
“아!”
노예라는 말에 로딘은 현실을 되새겼다.
자신은 돈에 팔려 온 노예였다. 아무리 대우가 좋아도 신분이 달라지진 않았다.
그러니 노예 인장을 찍는 건 지극히 당연했다. 오히려 노예 인장을 찍지 않고 한 달 이상을 방치한 게 놀라운 일이었다.
‘맞아. 나는 노예였지.’
리아즈 왕국은 노예를 인정하는 나라였다. 그것도 13국 연합 통틀어서 노예 사업이 가장 잘되는 곳. 당연히 노예는 엄청나게 많았다.
시골에 살면서 로딘도 몇 번 노예를 본 적이 있었다. 생필품 거래를 위해 시골 마을을 방문하는 상인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노예를 짐꾼으로 부렸다.
‘그런데 1기와 2기는 노예 인장이 안 보였는데?’
보통 노예 인장은 이마의 정중앙에 찍었다. 눈에 잘 띄는 곳에 새겨야 노예가 자기 신분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노예를 통제하기에도 뇌와 가까운 곳에 인장을 새기는 게 좋았다.
노예의 주인은 노예와 연결된 막대기를 받는데, 이 막대기를 부러뜨리면 언제든지 노예 인장을 터트릴 수 있었다.
머리가 터지면 죽는 건 당연지사.
노예는 도망쳐도 죽고, 주인의 명을 거역해도 죽을 수밖에 없었다.
“후후, 안심해라. 너희들은 리아즈 왕국의 특수군이 될 몸. 다 보이는 곳에 노예 인장을 찍지는 않는다.”
그렇게 말한 엘로브 위원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손으로 자기 머리의 뒤쪽을 툭툭 두드렸다.
“너희들의 노예 인장은 이곳에 찍는다.”
노예의 인장 위치가 달라졌지만, 별 차이는 없었다. 이마에 새기든 뒤통수에 새기는 터지면 죽는 건 마찬가지였다.
“전달 사항은 이것으로 끝이다. 마침 시간이 됐군. 식사하고, 오후 한 시까지 중앙 건물 앞으로 집결하도록. 이상.”
항상 쉬지 않고 떠들던 아이들이 오늘은 조용했다. 식사 속도도 점점 느려졌다.
그런다고 시간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어느새 시간이 됐고, 아이들은 조교들이 안내한 곳에 모였다.
노예 인장을 새기기 위해 중앙 건물에 준비된 4서클 마법사는 모두 5명. 그래서 아이들도 다섯 명씩 순서대로 입장했다.
57번인 헤들러와 58번인 랜트는 첫 순서였다. 다른 3명과 함께 죽상을 하고 건물로 들어갔다.
대략 20분 후, 먼저 들어갔던 5명이 나왔다. 다음의 번호순으로 5명이 고개를 축 늘어뜨린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때?”
헤들러와 랜트는 뒷머리를 시원하게 민 채로 나타났다. 뒤통수에 뭔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노예 인장?”
“이상해?”
“글쎄. 모자 쓰면 안 보일 것도 같고.”
“아! 맞네. 모자가 있었구나.”
억지로 밝게 웃었던 헤들러의 표정이 조금은 나아졌다. 노예 인장이 꽤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헤들러는 귀족 출신. 노예 인장이 더 굴욕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반면 랜트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아무 생각이 없는 그 표정 그대로였다.
“괜찮아?”
“응, 괜찮지.”
“머리카락 좀 자랄 때까진 모자 쓰고 다녀야겠다.”
“응, 그러자.”
5명씩 차례로 들어가다, 어느새 코리와 로딘의 차례까지 왔다. 코리가 몸을 파르르 떨면서 로딘의 손을 잡았다.
“우, 우리 둘만 남았어.”
“그러게.”
3기가 52명이라, 마지막 순서로는 로딘과 코리만 남았다. 둘은 뒷머리를 민 다른 이들을 둘러보고, 중앙 건물로 시선을 고정했다.
“아, 아플까? 아픈 건 싫은데.”
“넌 그걸 걱정했냐?”
“응, 너도 아픈 거 싫잖아.”
“들어가자.”
건물로 들어가는 와중에 마법사 3명을 마주쳤다. 10명의 노예 인장을 새기고 오늘 일을 끝낸 마법사들이었다.
로딘과 코디는 마법사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그들을 지나쳤다. 안에서 안내를 받아서 각자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앉아라. 108번? 맞지?”
“예, 108번입니다.”
“통증이 좀 있을 거다. 참을 자신 없으면 이거라도 물고 있어.”
마법사가 수건을 말아서 건넸다. 이미 침이 흥건한 수건이었다.
‘애들이 죄다 저걸 돌려 쓴 건가?’
수건을 받으려는 마음이 싹 사라졌다. 이를 악물고 혼자 참아 내는 게 낫지, 다른 아이들의 침이 잔뜩 묻은 수건을 물고 싶진 않았다.
“괜찮습니다. 참을 수 있습니다.”
“어린 네가 견디긴 어려울 텐데.”
“어릴 때부터 잘 참는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뭐, 그러든가.”
마법사가 막대기 하나를 꺼내서 보여 줬다. 평범한 쇠로 만든 쇠 색깔의 막대기였다.
로딘은 막대기를 힐끗 보고, 마법사의 얼굴을 쳐다봤다. 무슨 의미인지를 묻는 동작이었다.
“이게 네 생명 줄이다.”
“예?”
“노예 인장을 새기면 이 막대기와 네 생명이 연동된다는 말이다. 노예의 주인이든 누구든 이 막대기를 부러뜨리면, 펑! 네 머리는 터지고 말지.”
“아!”
로딘은 저절로 막대기에 눈길이 갔다. 괜스레 몸이 떨리고, 입이 말랐다.
“엎드려라. 시작하자.”
“예.”
간이침대에 엎드리고 이를 꽉 다물었다. 통증을 기다리고 있는데, 머리에서 싹둑 하는 느낌이 왔다.
‘아! 머리부터 깎는구나.’
마법사는 작은 가위로 뒷머리를 시원하게 잘라 버렸다. 긴 머리가 잘려서 볼 옆에 떨어졌다.
‘머리를 자르는 것도 처음이네.’
태어나서 처음 자르는 머리카락이었다.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그저 좀 시원해졌다 정도의 느낌만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혀 깨물지 않게 조심해.”
워낙 막 밀어서인지, 뒷머리는 순식간에 횅해졌다. 로딘은 이를 악물고, 통증을 기다렸다.
“스페로, 하이비오나, 칸타스…….”
알 수 없는 주문이 들렸다. 목소리와 함께 기묘한 느낌이 뒤통수를 간지럽혔다.
‘음? 안 아픈데?’
마법사의 경고와 달리 큰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가 만지는 느낌은 났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직 시작 안 한 거겠지?’
곧 닥쳐올 통증을 기다리며, 이를 더 꽉 깨물었다. 힘을 너무 많이 줘서, 턱이 뻐근할 정도였다.
‘왜 아직 안 아프지?’
통증을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 곧 마법사가 뒤로 물러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법사가 입으로 내뱉은 ‘휴우’ 하는 소리도 들렸다.
“끝났다.”
“예?”
“어린 녀석이 잘 참는구나. 통증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 런가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넌 참을성이 대단한 놈이다.”
마법사의 칭찬에 로딘은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다.
참은 게 아니었다. 애초에 아프지 않았다. 그냥 뭔가가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느낌이 전부였다.
“나가 봐라.”
“예, 마법사님.”
로딘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3기에서 가장 작은 꼬맹이를 보내고, 마법사 아브렌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야, 마력이 바닥이네. 바닥이야.”
너무 지쳐서 힘이 없었다. 이불만 주면 그냥 이 자리에서 잘 수 있을 정도로 피곤했다.
“다음에는 좀 낫겠지.”
이번 일에 동원된 4서클 마법사 중에서 아브렌의 경력이 가장 짧았다.
4서클 마법사가 된 지 고작 3개월. 4서클 마법사로 10년 이상 보낸 이들에 비하면 애송이나 다름없었다.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노예 인장을 찍으면서 마력을 너무 많이 썼다.
정확한 양만 사용했다면 20명 이상에게 노예 인장을 찍어도 마력이 남았을 텐데, 그 양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마지막 꼬맹이에게 마법을 쓸 때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로 마력만 쥐어짰던 것 같았다.
“그래도 일은 끝났으니. 좀 쉬자.”
다행히 마법은 실패하지 않았다. 꼬맹이의 뒤통수에 노예 인장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로딘이 밖으로 나오면서 노예 인장 새기기는 끝났다.
3기생 52명이 4열 종대로 섰다. 그러자 조교들이 돌아다니면서, 3기생의 뒤통수에 새겨진 인장을 확인했다.
노예 인장의 일부가 희미해지거나 지워지는 일이 아주 가끔 벌어졌다. 어지간해선 안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야 했다.
3기 52명 전부를 확인하자, 조교들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장이 모두 선명하다는 의미였다.
“여기 이 막대기 보이나? 너희들의 생명이다.”
조교 1명이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교관이 상자 한쪽을 아이들에게 보여 줬다.
로딘은 의식적으로 앞만 쳐다봤다. 저딴 막대기에 시선을 뺏기고 싶지 않았다.
“너희들의 생명 줄은 오늘, 바로 지금 왕궁으로 들어간다.”
“아!”
“혹시 몰래 들어와서 훔쳐 갈 생각을 한 놈 있나? 포기해라. 왕궁 경비는 너희들 따위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힘으로 뚫겠다? 외성이 뚫리기 전에 저 막대기가 먼저 부서질 거다.”
협박이었다. 애초에 훔칠 생각을 안 했는데도 괜스레 기가 죽었다.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해라. 너희들의 생명 줄은 왕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보관된다. 어떤 놈도, 너희의 생명 줄은 훔쳐 갈 수 없다. 알브레이트 위원님.”
“예.”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조교들이 마차를 끌고 왔다. 그 마차에 막대기가 담긴 상자를 싣고는 주변을 쇠사슬로 칭칭 감았다. 안전하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한 일종의 쇼였다.
그 후, 알브레이트라는 이름의 위원이 마부석에 앉았다. 단상에 있던 위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알브레이트 위원이 마차를 출발시켰다.
“숙소로 돌아가면 너희들의 일과표가 붙어 있을 거다. 매일 교육 시간에 늦지 않도록. 해산.”
교관의 해산 선언으로 긴장이 풀렸다. 여기저기서 털썩 주저앉는 아이들이 많았다.
‘오늘, 유독 피곤하네.’
로딘도 오늘은 좀 지쳤다. 육체적으로는 숙소를 배정받은 날이 가장 힘들었지만, 정신적인 피로는 오늘이 제일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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