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60)
마법을 품다 (60)
누나 찾기를 포기하고, 남동쪽으로 길을 잡았다.
이동 중에 수없이 많은 제국군을 발견했다. 미리 발견해서 최대한 피해 다녔는데, 도저히 피해 갈 방법이 없을 때도 몇 번 있었다.
그럴 땐 조용히 다가가서 최소한의 제국군만 죽이고 이동했다. 흔적도 최대한 지웠다.
계속 남동쪽으로 가기를 한참.
다시 잉그렘 제국과 리아즈 왕국 사이에 만들어진 전선을 넘었다. 집에 들러서 잠깐 조사하는 동안 전선은 한참 남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진짜 못 버티는구나.’
리아즈 왕국으로 들어온 후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쉬지 않고 남쪽, 또 동쪽으로 이동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스트렌이라는 이름의 중간 규모의 도시에 도착했다.
‘이야, 포션값이 진짜 많이 올랐네.’
이곳은 전장과 꽤 떨어진 남쪽 도시였다. 유동 인구가 그리 많은 대도시도 아니었다.
그런데 잡화점에서 상처 치유 포션을 30골드에 매입한다고 적어 놨다. 전방에선 40골드 이상에 팔린다는 뜻이었다.
로딘은 고대 비전의 포션을 하나만 꺼내서 팔았다.
금색 주화 30개를 받자마자, 주변에 있던 거친 인상의 남자들이 눈을 빛냈다. 탐욕스러운 눈빛이었다.
‘귀찮은 건 질색인데.’
꼬리를 떼어 내기 위해 가볍게 발화 마법을 사용해 손바닥에 올렸다. 그리고 장난치듯 양손으로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마법을 취소했다.
그러자 탐욕 가득하던 시선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간단한 무력시위로 어중이떠중이가 시비 거는 일을 일찌감치 차단했다.
‘가 볼까?’
오면서 봐 둔 여관에 들어가, 하루 숙박을 요청했다. 숙박은 하루에 1골드, 식사까지 포함하면 끼니당 10실버 추가였다.
숙박과 함께 저녁과 내일 아침 식사를 요청했다. 그 비용으로 2골드를 내고 80실버를 거슬러 받았다.
‘돈 가치에 대해서도 좀 알아봐야겠네.’
로딘은 굳이 언쟁을 벌이기 싫어 여관 주인이 달라는 대로 돈을 냈다. 바가지를 썼는지 정상적인 가격인지 감이 안 잡혔다.
원래 10골드였던 포션의 가격이 후방인 이곳에서 30골드에 팔렸다. 포션 가격만 오른 게 아니었다. 전쟁 중이라 식량과 생필품 전부의 가격이 올랐다. 숙박비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확인하고.”
홀에 준비된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기다렸다. 약간 묽은 수프와 양념으로 볶은 잘 익은 고기, 샐러드와 삶은 감자가 나왔다.
나이프로 고기를 조금 잘라 입에 넣었다.
꽤 훌륭한 식사였다. 헤들러의 말처럼 양성소 안에서 먹었던 식사보다 사회에서 먹는 식사가 2배쯤 맛있었다.
수프도 좋았고, 감자도 퍼석거리지 않았다. 샐러드조차 뭔가 신선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양이 좀…….”
수프, 고기, 삶은 감자가 전부 양이 부족했다. 특수군 양성소에서 먹던 양의 절반 정도로는 배가 차지 않았다.
“여기요.”
“예. 손님.”
“이거 1인분 더 주세요.”
“10실법니다.”
돈을 주고 음식을 기다렸다. 그동안 앞으로 뭘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중앙 대륙이 정답은 아니야.’
코리가 이미 갔고, 헤들러와 랜트가 가려는 땅. 수많은 훈련생이 가려는 곳이 중앙 대륙이었다.
하지만 로딘은 알고 있었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상향 같은 건 없었다.
중앙 대륙은 중앙 대륙만의 힘듦이 분명히 존재한다.
노예 제도가 없다는 것과 전화(戰火)를 피할 수 있다는 걸 제외하면 서대륙이나 중앙 대륙이나 다르지 않았다.
‘어차피 전쟁이나 노예 인장은 나하고 관계없으니.’
자신은 5서클 마법사였다. 그것도 같은 5서클 마법사나 5데나급 기사보다는 확실히 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실력자였다.
이미 포위망까지 갖춰 놓고 잡으려 들거나, 상위 경지의 강자가 자신만 노리는 게 아닌 이상은 이곳에서도 위험할 일은 없었다.
‘노예 인장은 오늘 중으로 완전히 지우면 되고.’
로딘의 뒤통수에는 아직도 노예 인장이 남아 있었다. 폭발하는 속성의 마법진만 지웠을 뿐, 뒷머리를 깎으면 노예를 뜻하는 문양이 여전히 선명했다.
오늘은 그 문양까지도 지울 생각이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일도 아니었다.
“식사요.”
“감사합니다.”
전과 조금 다른 메뉴의 식사가 나왔다. 수프와 샐러드는 같았는데 고기는 다른 맛의 양념으로 바뀌었다. 삶은 감자 대신 따끈한 빵이 나온 것도 달랐다.
“이것도 맛있네.”
메뉴는 달라졌지만, 이것도 특수군 양성소에서 먹던 음식보다는 맛있었다.
아주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2층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노예 인장 완전 제거 작업에 들어갔다.
마력을 세밀하게 움직여, 뒤통수에 남은 낯선 마력을 하나하나 제거했다. 애초부터 허술하게 새겨진 마력이라,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마력이 삭삭 지워졌다.
“미러 이미지.”
40분에 걸쳐서, 노예 인장을 다 지웠다.
뒤통수 쪽으로 좌표를 계산해서 마법을 시전했다. 뒤통수가 보이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디 보자.”
뒷머리를 들춰 가며 혹시나 문양이 남았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다행히 말끔했다. 노예 인장 특유의 붉고 푸른 색깔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완벽하네.”
잠깐 할 일을 생각하다가, 오늘 마력 연공을 못 했다는 게 생각났다. 바로 바닥에 있던 물건들을 벽으로 붙이고, 마법을 사용했다.
“인쇄. 마나 집적 마법진.”
마룻바닥에 저장해 둔 마법진을 그렸다. 그 중앙에 하급 마나석 하나를 꽂았다.
마나가 모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서너 시간. 지금이 7시니 자기 전에 마력 연공을 한 사이클 돌리고 자면 얼추 맞았다.
‘또 뭘 하나?’
배낭을 열어서 오늘 엘로브 위원의 지하에서 찾은 조각상을 꺼냈다. 오브가 제거된 스태프는 이미 침대 옆에 걸쳐 놓은 상태였다.
“이 조각상은 정체가 뭐지? 라이트.”
빛의 구를 띄워 놓고, 조각상을 살폈다.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사람 형태의 인형이었다.
“이거 앞치마 맞나? 이것도 설마 조리 모자?”
손바닥 절반 크기의 조각상은 사람 형태였다. 앞치마를 둘렀고, 조리사용 모자를 썼다. 허리둘레는 하비뇽 위원이 생각날 정도로 굵었다.
“전형적인 요리사의 모습인데. 어디 보자.”
눈을 감고, 마력을 주입했다. 아주 약간의 마력을 세밀하게 조종해서 내부의 담긴 마법진을 읽어 나갔다.
“소환 쪽인 것 같은데?”
아직은 정체가 뭔지 애매했다. 좀 더 집중해서 룬어를 하나하나 파악했다.
모르는 룬어가 느닷없이 튀어나와서 당황스러웠지만, 앞뒤의 다른 룬어를 이용해서 뜻을 유추했다.
모든 마법진을 다 확인하고, 조각상을 내려놓았다.
“소환이 분명해. 이 물건에 뭔가를 저장해 놓고, 소환과 역소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어.”
상당히 오래된 물건이었다. 전혀 모르는 룬어도 상당히 많았고, 룬어를 배열하는 방식도 자신이 아는 것과 달랐다.
“한번 소환해 볼까? 이상한 물건이 튀어나오진 않겠지?”
생명체를 소환하는 마법진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물건이 들어 있는 조각상이니 위험은 없을 것이다.
“소환.”
마력을 조금 주입하고, 마법진에 새겨진 시동어를 읊었다.
조리용 앞치마와 조리 모자를 쓴 조각상이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이 향한 자리에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이 생겨났다.
“아! 뭐냐? 이거.”
튀어나온 건 식칼, 도마, 냄비, 프라이팬이었다. 몸체가 전부 검은색으로 만들어진 꽤 고풍스러운 조리 도구였다.
“이게 끝이 아닐 텐데.”
조각상의 소환은 2단계로 이뤄져 있었다. 방금은 1단계의 소환을 했을 뿐이었다.
“다음에는 뭐가 나오려나? 소환?”
조각상이 왼손을 거둬들이더니, 이번에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손이 향한 장소에 몇 가지 물건이 생겨났다.
그릇, 접시가 2개씩, 포크와 나이프, 숟가락이 2개씩이었다. 처음 소환된 것들과 달리 깨끗한 하얀색이었다.
“조리 도구와 식기라니. 하아, 충격적이네.”
로딘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당히 놀란 얼굴로 소환된 것들을 보고 있었다.
전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아티팩트였다. 고작 요리와 식사에 필요한 도구들을 마법으로 보관해 둔 것이다.
이는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그 시기에는 일상 깊숙하게 파고들 정도로 아티팩트가 흔했다는 의미였다.
“조리 도구와 식기에도 마법이 담겨 있어.”
먼저 나왔던 조리 도구 중 도마에는 강도 강화, 식칼은 절삭력 강화, 냄비와 프라이팬엔 발열 마법이 걸려 있었다. 모두 조리에 필요한 마법이었다.
두 번째 소환 때 나온 식기도 비슷했다.
포크와 나이프에는 절삭력 강화, 숟가락에는 강도 강화, 접시와 그릇에는 온기 유지 마법이 걸려 있었다. 식사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마법이었다.
“마법이 하나 더 걸려 있는데, 뭔지를 모르겠네.”
강도 강화, 절삭력 강화, 발열, 온기 유지. 이런 마법은 로딘도 할 줄 알았다. 모두 1서클 혹은 2서클 마법의 저서클 마법인데, 주로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통해서 독학했다.
마법을 안다는 건 당연히 룬어도 알고 있다는 뜻. 그래서 조리 도구와 식기에 걸린 마법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데 모든 조리 도구와 식기에 공통으로 걸린 마법이 하나 더 있었다. 생소한 룬어와 낯선 조합이라, 정체를 유추하기 어려웠다.
“클린 업 마법하고 비슷하긴 한데, 다르단 말이지. 쓰다 보면 알게 되려나?”
막상 뭘 하려니, 할 게 마땅치 않았다. 저녁 식사는 이미 했고, 요리에 쓸 식재료도 없었다.
“아!”
배낭을 열어서 심화 3 서고에서 가져온 약초와 90% 정도 완성된 포션을 꺼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 포션의 양은 15리터 정도였다. 며칠 더 공을 들여서 완성하면 10리터 정도로 줄어들 것이다.
“이걸 써도 되나?”
가열 과정이 필요하긴 한데, 조리 도구에 있는 냄비를 써도 될지 모르겠다. 약초의 향이 배어서 요리에 못 쓰는 거 아닌지 걱정이었다.
“해 보지, 뭐.”
냄비에 미완성의 포션을 부었다. 다행히 냄비는 15리터를 다 부어도 여유가 있을 정도로 컸다.
“가열.”
마법을 사용했다. 머릿속으로 적당한 온도를 떠올려, 너무 뜨거워지지 않게 유지했다.
뒤이어, 마력을 실처럼 뽑아내 포션액에 주입했다.
마력이 과하면 낭비가 되고, 부족하면 포션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신경 써서 균일한 마력을 일정한 양으로 주입해야 했다.
* * *
로딘은 여관에서 하루를 더 묵었다. 여관의 음식이 맛있어서는 아니었고, 만들던 포션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약초까지 가지고 다니려니 부피가 너무 컸다. 짐을 줄이기 위해 포션을 완성하기로 했다.
“400병을 한 번에 사는 사람은 또 처음 보네.”
“그래요? 마탑에선 많이 사지 않나요?”
낮에는 잡화점에서 포션을 담을 공병도 잔뜩 사 왔다. 포션도 아니고, 공병만 잔뜩 사니 잡화점 주인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이 동네에 무슨 마탑이 있다고. 저기 멀리 서쪽 대도시에나 가야 마탑이 나오지.”
“하하, 그런가요? 여기 돈이요.”
공병 하나의 가격은 5실버. 400병을 한 번에 구입하고, 공병 10개를 덤으로 더 받았다. 잡화점 주인은 가격을 조금 깎아 줄까 제안했지만, 로딘은 그냥 공병을 덤으로 받기로 했다.
10리터 포션액을 제작하다 보면 실제로는 10리터보다 조금 더 만들어진다. 그래서 400병만으로는 조금 부족했다.
그날 오전, 여관에 처박혀서 포션 제작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만든 포션액을 공병에 옮겨 담았다.
‘조교들이 포션이 완성될 때마다 한숨 쉬는 이유를 알겠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국자로 포션을 옮겨 담았다. 힘들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얼마나 힘든지, 한 병 한 병 담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남은 포션액을 쳐다보게 됐다. ‘저게 왜 안 줄어들지?’ 하는 생각을 수십 번은 한 것 같았다.
“하아, 힘들다.”
정확히 407병의 상처 치유 포션이 만들어졌다. 이 중에서 400병은 충전재로 감싸서 배낭에 넣었다.
“7병만 팔자.”
요즘 상처 치유 포션의 가격은 30골드.
포션의 부피와 무게가 30골드보다 작고 가벼웠다. 돈으로 바꾸면 오히려 짐만 늘어나는 셈이었다.
그래서 포션은 돈이 필요할 때만 팔기로 했다. 그게 짐을 불필요하게 늘리지 않는 방법이었다.
* * *
여관에서 이틀을 묵고 사흘째 오전에 여관을 나섰다.
도시를 지나치는 길, 잡화점에서 포션 7병을 팔았다. 그렇게 번 돈으로 마시장에서 말 한 필을 샀다.
말의 가격은 108골드. 약간 오른 가격이라고 한다. 원래는 100골드 아래쪽에서 거래됐는데,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서 수요가 늘었단다.
재미있는 건 공급도 늘었다는 것. 전쟁 중에 노획한 말이나 훔친 말들이 계속 마시장에 나오는 듯했다.
말을 직접 몰고, 도시를 떠났다. 이번에도 방향은 동쪽이었다.
도시 스트렌의 동문을 통과했다. 다행히 아직은 신분을 확인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신분 문제를 해결하긴 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대도시로 가야 한다. 동쪽으로 가면서 만날 수 있는 대도시는 단 한 곳. 본티스뿐이었다.
도시 본티스는 리아즈 왕국의 최동단이고, 인접한 베로스 왕국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방금 출발한 도시 스트렌에서 말을 타고 열흘을 달려야 할 정도로 거리가 멀었다. 계속 전력으로 달릴 수는 없는 일. 얼추 한 달은 예상해야 했다.
“가다 보면 나오겠지.”
태평하게 이동하던 로딘이 고삐를 잡고 말을 세웠다.
전방에서 살기와 기척이 함께 느껴졌다. 자신을 노리고 미리 와서 기다린 놈들이 있었다.
“하아, 왠지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더라니.”
오